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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의 문학으로] 휴거의 추억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9. 11. 03:46

[최재봉의 문학으로] 휴거의 추억

등록 :2020-09-09 15:16수정 :2020-09-10 02:41

 

최재봉 ㅣ 책지성팀 선임기자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인가, 인민의 아편인가. 코로나19 재확산과 몇몇 교회의 연관성이 불거지면서 교회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되는 이즈음이다. 휘황하게 반짝이는 십자가들의 물결이 교회의 외면적 성장을 상징하는 한편에서는 교회의 오염과 타락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그에 비례해 높아져만 간다. 이런 의문과 걱정을 안고 지난 소설을 다시 읽어 본다. 윤흥길의 두 권짜리 장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이다.

 

1997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1992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휴거 소동을 배경으로 삼는다. 그해 10월28일 예수가 재림해 구원받을 이들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다는 ‘예언’에 따라 다미선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 신자들이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공동생활에 들어갔던 사건이 휴거 소동이다.

 

찬송가 구절을 제목 삼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윤흥길의 전작 <완장>(1983)의 남녀 주인공인 임종술과 김부월. 고향 동네 저수지의 감시원 완장을 차고 온갖 패악질을 일삼던 종술은 그 완장으로 상징되는 알량한 권력을 박탈당하자 작부 애인 부월과 함께 서울로 근거지를 옮기지만, 생존을 위한 온갖 몸부림이 수포로 돌아가자 결국 동반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 둔치로 간다.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투신을 망설이던 이들 앞에 독실한 교인인 박 장로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그의 도움으로 살길을 찾고 내처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지만 머지않아 운명처럼 시한부 종말론 교파에 발을 들이게 된다.

 

“한 줄기 눈부신 빛이 항구 잃은 배 같은 신세의 저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와서는 주변을 겹겹이 에워싼 어둠의 장막을 장도칼의 위력으로 갈기갈기 찢으면서 앞길을 환히 터주고 있었다.”

 

부월의 시점을 택한 2권 도입부의 이 문장은 소설의 제목과도 연결된다. 부월과 종술은 그 빛을 부여잡고 휴거 소동의 한가운데로 돌진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휴거를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다. 그 점은 이들이 따르는 ‘선지자’ 하 목사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두 사람은 이내 알아차린다.

 

“첨에는 몰랐는디, 시한부 종말론이란 게 알고 보니깨 돈 놓고 돈 먹기 야바우판이드라고. 일트레면 솔찮이 벌이가 잘 되는 신종 사업인 심이여. (…) 시한부 종말론을 사시미칼맨치로 휘둘러서 순진헌 사람들 쌈짓돈이나 털어먹는 날강도고 사기꾼이란 말여.”

 

부월의 이런 말은 사태의 정곡을 찌른다. 신도나 가족을 이 교회에 빼앗긴 이들이 들림교회의 천막 공동체를 찾아와 소동을 벌일 때마다 종술은 타고난 완력과 배짱으로 그들을 물리친다. 교인을 빼앗긴 기성 교회는 이들에게 이단 딱지를 붙이지만 이들은 “기성 교단이야말로 이단의 표본”이라며 맞선다. 하 목사는 “정통임을 내세우는 기성 교단과 신문 방송 따위 매스컴 (…) 다수라는 위세를 업고 여론을 빙자하면서 거짓 증언만을 일삼는 그것들이야말로 적그리스도의 수족”이라며 신도들의 단합을 호소하는데, 종술과 부월에게 하 목사는 선지자라기보다는 사업상 파트너에 가깝다. 하 목사는 “주님 영광을 위해서 언제든지 순교할 각오는 돼 있”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휴거 이후에도 자신은 지상에 남아 “최후 순간까지 성전을” 벌여야 한다며 “막대한 군자금”을 꼬불쳐 놓는다. 종술과 부월은 그런 하 목사와 협력하는 한편 그를 협박해서 그 군자금의 일부를 저희들 몫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다.

 

마침내 ‘그날’이 닥쳐왔음에도 고대했던 공중 들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믿음과 소망이 환멸과 배신으로 바뀌면서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고 꿍쳐 두었던 돈도 모두 빼앗긴 두 사람은 다시 한강 둔치를 찾는다. 그런 그들 앞에 소설 첫머리에서처럼 다시 박 장로가 나타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되거니와, 이런 수미쌍관형 구조는 이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휴거 소동으로 끝나지 않고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암시로 읽힌다. 휴거 소동으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임종술과 김부월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혹시 지난 8월15일 광화문 광장 집회에 나와 반공과 애국을 부르짖고 있지 않았을까. 마스크도 없이.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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