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편집국에서] 노벨상 특전이 ‘주차권’인 나라 / 전정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15. 06:33

[편집국에서] 노벨상 특전이 ‘주차권’인 나라 / 전정윤

등록 :2020-10-14 15:41수정 :2020-10-15 02:42

 

2020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스웨덴 노벨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10월 초 내내 국제부 야근자의 신경을 긁던 두개의 골칫거리가 마무리됐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감염이다. 미 대통령에게 변고가 생기면 야근 기자에게 벌어질 일을 독자들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매년 일정이 예고된 노벨상은 독자들에겐 의외일 수 있는데, 겪어본 기자들은 아는 떨리는 이벤트다.

 

노벨상 수상자는, 가령 문학담당 기자가 유력 작가들의 문학세계를 미리 다 써놓고도 10여년째 무용지물일 정도로 예측이 무의미하다. 개인적으로는 2013년 힉스 입자를 예견한 두 노학자의 물리학상 수상 날 야근 폭탄을 피한 걸 여태 천운이라 여긴다. 지구촌 최고 지성을 기리는 기사는 아무리 짧더라도 자칫 잘못 썼다가는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한국시각으로 저녁에 발표되는 탓에 ‘짬밥’을 총동원해도 앞서 언급한 난관을 극복하기엔 마감 시간이 야박하게 촉박하다.

 

12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미 현대의학의 ‘기적’을 과시하듯 확진 11일 만에 ‘썽썽’하게 플로리다주 유세 현장에 나타났다. 취임 이후 오매불망 노벨상 받기를 갈망해온 그는 퇴원 뒤 첫 현장 유세에서도 그 상을 언급했다. 트럼프는 “(내가)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된 뒤 가짜뉴스들을 틀어봤지만 어느 언론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수상 실패의 분을 언론에 대고 터뜨렸다.

 

현직 대통령도 채신머리없이 안달하는 와중에, 미국에는 ‘노벨상 가진 자의 여유’를 유희로 승화시키는 집단이 있다. 2009년 너무도 허랑했던 한 기사를 통해 그 존재를 ‘자각’했는데, 당시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노벨상 수상은 어렵다. 하지만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는 더 어려운 일이 있다. 바로 중앙 캠퍼스에서 주차 공간을 얻는 일이다.” 이 대학 캠퍼스엔 주차 공간이 제한적이고, 유료 주차를 하려면 당시 기준 연간 1500달러를 내야 했다. 대학 쪽은 ‘노벨상 수상자(NL) 예약석’을 특전으로 마련해 교수들을 독려했는데, 그해 이 대학 교수가 경제학상을 받으면서 주차 공간이 화제에 올랐다. 이 대학의 8번째이자, 현직 5번째 수상자였던 교수는 쏟아지는 축하 속에 “오, 주차 허가증을 받아서 유용하게 쓸 계획”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노벨상의 권위가 전만 못하지만, 그 수상은 웬만한 나라에서 여전히 수상자 이름을 딴 기념관이 들어서고도 남을 법한 쾌거로 받아들여진다. 이 대학은 그런 세계 최고 권위상에 대한 예우로 무료 주차공간 ‘따위’(라고 하기엔 대도시에서 너무도 소중한 특권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를 내걸고, 당사자도 그 특전에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그 정도로 노벨상이 흔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지성인들의 세련된 유희처럼 보였다.

 

지난 6일 이 대학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가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버클리 뉴스>는 그가 “무료 주차공간 전통에 대해 총장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멘트를 각별히 소개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학교의 전통 유희에 동참하는 화학과 동문들의 축하글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노벨상’ 수상보다 경제학과에서 독식하던 ‘NL 주차권’이 화학과에도 돌아갔다는 사실에 더욱 환호하는 방식으로,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우드나 교수는 이 대학 25번째 노벨상 수상자다. 한국이 2000년 노벨 평화상 이후 20년간 무소식일 때, 이 대학은 11년간 17개를 추가했을 뿐 아니라, 24번째 수상자는 전날 물리학상 수상자로 호명된 라인하르트 겐첼 교수였다. 심지어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는 미국에서 노벨상 1·2위 대학도 아니다.

 

노벨상의 미국 편향성이 분명히 있다. 1901년부터 2020년까지 역대 노벨상 수상자 933명 가운데 미국 출신이 391명이다. 2위 영국의 133명과 비교해도 세배나 많다. 이 숫자에 내재하는 편향성을 고려해도, 특히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은 개인의 역량은 물론, 국가적 투자와 연구 기반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지표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4년, 한국 초등학생도 트럼프 사례를 들어 미국이 얼마나 우스운지 몇줄은 읊을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도도한 미국 대학의 ‘노벨상 주차권 특전’ 유희는 트럼프가 아직 망가뜨리지 못한 미국의 위력을 느끼게 한다.

전정윤 ㅣ 국제부장ggum@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연재편집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