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우울에 빠진 당신을 위한 ‘책 처방전’
등록 :2020-10-23 04:59수정 :2020-10-23 09:57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책 읽는 소녀>, 1769년경, 캔버스에 유채, 워싱턴 국립미술관.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이수은 지음/민음사·1만6000원
‘코로나 우울’에 빠진 듯 축 처진다면? 갑자기 울화통이 치민다면? 오랜 세월 한우물만 팠는데 이제서야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낀다면? 그럴 땐 차오르는 분노와 불안함을 꾹 누르고 이 책의 ‘처방전’을 펼쳐보는 게 도움이 될 듯싶다.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는 20년 차 출판편집자이자 다독가 이수은씨가 쓴 독서 에세이로, 다양한 고민을 풀어줄 책 52권을 소개한다. 추천 도서의 8할이 고전이고, 그래서 무겁고 딱딱할 것이라 멈칫한다면 오산이다. 유쾌하고 발랄한 문체 덕분에 술술 읽힌다.
지은이는 사표를 가슴에 품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레미제라블>(빅토르 위고)을 권한다. ‘이 책이 왜 거기서 나와’라고 할 법한데, 추천 이유는 전 5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때문이다.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이때 사표를 내고 싶은 마음이 순간적인 감정인지 아닌지 살펴볼 시간을 갖자는 의미다. “2476페이지를 읽어 나가는 동안 당신은 자신의 인생, 사랑, 가족, 미래, 사회, 정치, 경제, 도덕, 법과 정의, 신과 종교를 사유할 충분할, 아주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질 때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가 ‘극약 처방서’이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읽어 두면 세상 모든 종류의 인간은 물론 신과 맞짱을 떠도 이겨 먹을, 약점 없는 강철 세계를 갖게 되는” 책이다. 조금 힘이 날 수 있도록 돕는 책 속 문장도 소개한다. “그대는 위대함으로 통하는 그대의 길을 간다. 그대의 뒤에 이미 어떠한 길도 없다는 것. 그것이 이제 그대의 최상의 용기가 되어야 한다!”
더불어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 때는 <필경사 바틀비>(허먼 멜빌)를 펼치고,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절망스러울 때는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한다.
지은이 이수은씨는 21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5~6년 전에 이 책의 출판 기획서를 썼지만 책의 저자를 찾지 못하다가 결국 내가 쓰게 되었다”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탐구하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책, 특히 고전을 피하는 이들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이 책을 권하는 이유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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