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시론] 영남대를 바로잡아야 시대를 바로잡는다 / 이원영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27. 03:06

[시론] 영남대를 바로잡아야 시대를 바로잡는다 / 이원영

등록 :2020-10-25 16:13수정 :2020-10-26 02:39

 

이원영 ㅣ 수원대 교수·전 한국대학학회 감사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달 엠비시(MBC) 방송에서 사학비리를 비호해온 검찰의 실태는 처음 보는 이들에겐 충격이었을 것이다. 비리사학을 대변해서 해직교수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자들이 국가의 녹을 먹고 있다니. 작년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하려고 국회 동의를 받는 도중 검찰이 이를 방해하는 ‘쿠데타’를 감행한 짓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가 된다. 검찰마저 저러니 사학비리를 비호하는 세력이 얼마나 넓고도 깊은 것일까.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번 정부도 나름 노력은 해왔다. 사립학교법 시행령을 ‘재단’이 친족 위주로 운영하던 일을 투명하고 엄격하게 고치면서, 친족의 개방이사 선임 불가 등의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기실 사학비리를 바로잡는 과정상의 가장 큰 애로점은, 재단(학교법인)의 ‘소유’라는 의식이었다. 사법부도 그래왔다. 하지만 대개의 사립대학은 국가의 인허가로 설립된 뒤, 등록금으로 건물을 쌓고 공금이 투입되어 운영돼온 존재다. 말이 사립이지 완연한 공적 투자 기관이다. 그런 사회적 노력이 쌓여온 존재임에도 설립 시 약간의 투자를 한 것만으로 ‘소유적 권한’을 인정해온 풍토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이랬을까? 아니다. 이런 내력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영남대를 만난다. 영남대의 전신인 (구)대구대학은 수백년간 ‘깨끗한 부’의 상징으로서 귀감이 돼온 경주 최부잣집이 주도하여 세운 ‘민립’의 대학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광복 뒤 일제로부터 되찾은 재산으로 유지들과 함께 1947년에 설립한 대학이다. 이후 군사정권이 출범하면서 이 대학을 삼성 이병철 회장에게 맡기게 된다. ‘민립’의 취지를 당부하면서 잘 키워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런 선행의 바탕은 바로 ‘서원’의 전통에 있다. 조선조 서원은 원래 국공립대학 격인 향교와 쌍으로 설립된 민립의 고등교육기관이었다. 지역의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민립의 학교이자 민족의 유산이다. 작년에는 8개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이런 의식 아래 당시 능력 있는 경영자였던 이병철 회장에게 맡긴 것이다. 이 회장도 맡을 때는 ‘한수 이남의 제일가는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하지만 격변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궁지에 몰리게 되자 박정희 전 대통령 개인에게 ‘헌납’하게 된다. 이 ‘헌납’은 개념상의 질적인 변환을 가져오는 큰 사건이었다. ‘공적 존재’에서 ‘사적 소유물’로 정체성이 바뀌는 일대 사건인 것. 이게 문제의 뿌리다. 장기집권 권력자부터 재산으로 인식하니 그로부터 사학은 전통과는 단절된 길을 걷게 된다. 그의 사후, 재단을 맡은 20대 나이의 박근혜는 영남대 정관 1조에 “교주 박정희”라는 표현을 못박았다.

 

그녀는 이후 비리가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자 1988년 11월 ‘영남학원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퇴진한다. 이후 민립에 가깝게 운영되다가 20년이 지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박근혜 세력은 ‘종전이사’라는 이름을 달고 복귀했다. 권력의 힘으로 빼앗은 것이다. 영남대는 주지하다시피 그 이후 측근이라 지목되어온 최○○씨가 10년이 넘도록 실효 지배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그 법인이사회(이사장 한재숙)가, 오랫동안 대학 구성원 간 합의 과정을 거친 총장 선출안을 무산시켰다. 일방적인 횡포이자 예견된 결과다.

 

이 오랜 과정에서 영남대가 한국 현대사에 준 충격은 바로 ‘민립’이란 이름의 전통적 개념의 파괴다. 그 왜곡된 가치관을 모두들 본받고 있으니 이게 바로 사학비리의 뿌리다. 나라의 혜택을 받아서 유·무형의 공적 자산을 개인의 것으로 사유화한 것. 설립자의 명예는 인정되지만 소유물은 될 수 없음에도 세습이 태반이다. 정치인 ‘소유’도 많다. 이 회장은 작고했지만 삼성도 책임이 크다.

 

이젠 결자해지할 때가 됐다. 바로잡을 방법도 나왔다. 작년 봄 학봉 종가 등 24인의 영종회 종손들이 이 문제로 병산서원에 모였고, 그리고 많은 대구·경북 주민이 ‘영남대 바로잡기’에 서명했다. 이 서명들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대구·경북의 본래 면목이자 정체성이 독립운동정신과 유구한 민족정신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남대를 바로잡아야 시대를 바로잡는다.

영남대가 한국 현대사에 준 충격은 바로 ‘민립’이란 이름의 전통적 개념의 파괴다. 그 왜곡된 가치관을 모두들 본받고 있으니 이게 바로 사학비리의 뿌리다. 경북 경산의 영남대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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