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그래, 다시 하루다! [황동규 신작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 출간]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31. 07:15

그래, 다시 하루다!

등록 :2020-10-30 04:59수정 :2020-10-30 09:21

 

황동규 신작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 출간

 

신작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를 내고 27일 오후 서울 사당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황동규 시인. “시란 결국 시적 자아와 나와의 대화예요. 시적 자아가 나보다는 훨씬 더 정의롭고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좀 더 감각이 예민하지만, 현장성은 부족하죠. 그런 시적 자아와 나의 대화와 다툼 속에서 작품이 나오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오늘 하루만이라도

황동규 지음/문학과지성사·9000원

 

황동규 시인은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로 시작하는 산문시 ‘즐거운 편지’가 등단작의 하나였다. 시인이 그 시를 쓴 것은 1956년, 세는 나이로 열아홉일 때였다.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로 시작하는 시 ‘시월’이 또 다른 등단작이었다. 두 작품 다 나이답지 않게 무르익은 정서와 어조가 인상적이었다.



이 조숙했던 ‘소년 시인’은 웬만한 사람의 한살이에 해당하는 6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시업(詩業)에 매진해 왔고, 어느덧 원로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는 <연옥의 봄>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그의 신작 시집. 책을 펼치자니, ‘시인의 말’ 앞에서 오래 멈춰 있게 된다.“마지막 시집이라고 쓰려다 만다. 앞으로도 시를 쓰겠지만 그 시들은 유고집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는 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 삶의 마지막을 미리 알 수 없듯이 내 시의 운명에 대해서도 말을 삼가자./ 지난 몇 해는 마지막 시집을 쓴다면서 살았다.”

황동규 시인이 27일 오후 서울 사당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마지막 시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자신은 마지막 시집이라는 생각으로 시들을 써 왔다는 뜻이겠다. 그런 시인의 심사가 편편마다 어려 있다는 느낌은 읽는 이의 공연한 선입견일는지.“한 달에 한 번 병원 침대에 누워/ 외눈 덮개로 얼굴 가리고/ 황반변성 안구주사를 맞고 거즈로 덮은 눈과 산동(散瞳) 약 넣어 초점 잃은 눈 위에/ 안경을 얹고”(‘안구주사를 맞고’ 부분)“입에 달고 살던 것들이 곧잘 잊힌다./ 세상과 멀어진다는 거 아니겠어./ 한참씩 만나지 않으니/ 50여 년 알고 지낸 이들의 이름도 가물가물/ 꽃, 새, 새소리, 동네 이름들/ 모르는 새 많이들 길 떠나갔네.”(‘지우다 말고 쓴다’ 부분)신체 기관은 망가지고 총기는 흐릿해진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순발력이 떨어지며 크고작은 사고 위험은 커져 간다. 가파른 언덕을 조심조심 탈 없이 내려와 놓고는 “맨땅에서 넘어”(‘맨땅’)지기도 한다. 가득 충전해 놓은 휴대전화는 주말이 낀 사흘 동안 고장이라도 난 양 침묵을 지킬 뿐이다(‘이런 봄날’). 10년 후배 시인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도, “늙음은 슬픔마저 마르게 하는지/ 생각보다 덜 슬픈 게 슬프다.”(‘가파른 가을날’)27일 서울 사당동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에도 시인은 황반변성 치료를 위해 전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왔다고 했다.“혈압약 먹는 정도는 괜찮은데, 문제는 눈이에요. 청력도 떨어졌고 몸도 약해졌지요. 기억력도 나빠지고요. 75세의 건강으로 살 수만 있다면 120살까지도 살겠는데, 이젠 오래 살고 싶은 생각 조금도 없어요. ‘마지막’이라는 말이나 세상 뜨는 것에 대해서나 다 담담해졌어요.”

황동규 시인이 27일 오후 서울 사당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노화와 죽음이 지배하는 시집치고는 뜻밖에도 밝고 씩씩하며 심지어는 명랑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에 다시 놀란다. “내 삶의 마지막 악상은 밝고 또 밝게다!”(‘나팔꽃에게’)라고 시인은 선언하지 않겠는가. 늙어서 쇠약해진 몸일망정 여전히 맛보고 누릴 수 있는 삶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의연히 놓지 않는 품위와 유머가 독서를 즐겁게 한다.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 결사적으로 아름답다”(‘오늘 하루만이라도’)는 말은 연중 이 무렵에 특히 실감하게 되는 진리라 하겠다.“그래, 그나 나나 다 떨어지기 직전의 나뭇잎들!// 그의 발걸음이 몇 층 위로 오르길 기다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 집 8층까지 오르는 층계 일곱을/ 라벨의 <볼레로>가 악기 바꿔가며 반복을 춤추게 하듯/ 한 층은 활기차게 한 층은 살금살금, 한 층은 숨죽이고 한 층은 흥얼흥얼/ 발걸음 바꿔가며 올라가보자.”(‘오늘 하루만이라도’ 부분)엘리베이터가 수리를 위해 멈춘 상태에서 8층 집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란 젊은 사람들로서도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엄연한 고통과 시련을 춤과 축제로 바꾸어 놓는다. 어설픈 정신 승리가 아니다. “75세 이전이었다면 이런 시는 못 썼을 거예요. 2층 층계참 창으로 날아든 은행잎처럼, 마지막에도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쓸 수 있는 시인 거죠”라고 시인은 말했다.“이번 시집을 내고 그래도 기분 좋게 생각하는 건, 이전 시집들에 비해 악조건 속에서도 이만한 시집을 써 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동사 하나를 떠올리면 부사가 따라 나오고, 명사가 정해지면 형용사가 따라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따로따로 찾아야 해요. 그러니까 옛날보다 네댓 배 힘이 들지요. 그렇게 힘을 들여서라도 시를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쉽게 만들었을 때보다 더 기쁩니다. 역설적이죠.”시집 뒤에는 여느 시집들에서 흔히 보는 평론가의 해설 대신 시인 자신의 산문 두 편이 실렸다. 그중 한 글에서 시인은 “처음과 끝의 정황이 같”은 선배 시인들의 시와 달리 자신은 “처음과 끝의 정황이 다른 시를 쓰려 했다”고 밝힌다. 시 안에서 일종의 ‘거듭남’이 발생하는 것인데, 그런 시 양식을 일러 그는 스스로 ‘극서정시’라는 이름을 만들기도 했다. 이번 시집에도 그런 변화와 갱신의 작은 드라마를 담은 시들이 여럿 들어 있다. “그래, 고맙다, 지구, 커다랗고 둥근 곳,/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에게도/ 서성거릴 시간 넉넉히 준다”(‘손 놓기 3’), “그래 웃자./ 오늘은 날이 갰고 우린 만났다”(‘오늘은 날이 갰다’), “그래, 아직 저물 때가 아니다”(‘아직 저물 때가 아니다’)처럼 반전을 수반하는 긍정의 감탄사 ‘그래’가 극적 변화를 이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이 시집의 주제는 맨 뒤에 실린 작품 ‘삶의 앞쪽’에 나오는 한 대목, “그래, 다시 하루다”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황동규 시인이 27일 오후 서울 사당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