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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2. 12. 06:52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등록 :2020-12-11 04:59수정 :2020-12-11 09:33

 

서양사학자 곽차섭 교수의 마키아벨리 공화주의 사상 연구서
시민의 자유와 정의 사랑한 마키아벨리의 이상 집중 분석

 

16세기 피렌체의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도서출판 길 제공

마키아벨리의 꿈

곽차섭 지음/길·2만8000원

 

서양사학자 곽차섭 부산대 교수는 마키아벨리 전문 학자다. 마키아벨리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마키아벨리즘과 근대 국가의 이념>을 펴냈고, 마키아벨리 삶에 관한 권위 있는 전기인 로베르토 리돌피의 <마키아벨리 평전>과 마키아벨리 사상 연구에 획기적 전환을 가져온 존 포칵의 <마키아벨리언 모멘트>를 우리말로 옮겼다. 마키아벨리의 대표작 <군주론>의 이탈리아어 대역본을 내기도 했다. <마키아벨리의 꿈>은 이렇게 지난 30여 년 동안 마키아벨리에 관한 연구와 번역을 하면서 써낸 논문 12편을 묶은 책이다. 마키아벨리의 삶과 저작을 분석하는 글을 비롯해, 마키아벨리즘의 역사를 추적하고 ‘마키아벨리 공화주의’를 탐사하는 글,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관한 지은이의 새로운 발견을 정리한 글이 한데 모였다.이 책은 한마디로 줄이면, ‘마키아벨리의 꿈’, 다시 말해 마키아벨리가 가슴에 품었던 이상을 해명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위대한 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만큼 그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사람도 드물다. 악명 높은 권모술수의 주창자라는 낙인이 찍힌 마키아벨리 옆에, 폭정을 참지 못한 열렬한 공화주의자라는 칭송을 받는 마키아벨리가 있다. 그런 엇갈리는 평가를 받게 된 근본 원인은 마키아벨리의 두 주저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가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데 있다. <군주론>은 군주가 될 야심을 품은 자에게 악덕을 속삭이는 책처럼 보이고, <로마사 논고>는 공화국 시민이 자유와 독립을 지켜내는 데 필요한 미덕을 돋을새김한다. 이렇게 상반된 책이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이 수많은 논쟁을 낳은 ‘마키아벨리 문제’ 혹은 ‘마키아벨리 수수께끼’다. 이 책은 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지은이의 관점은 <로마사 논고>를 바탕에 놓고 <군주론>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공화주의자 마키아벨리를 프리즘으로 삼아서 <군주론>을 분석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것은 14년 동안 제2서기장으로서 봉직했던 피렌체 공화정부가 무너지고 메디치 가문이 실질적 지배자로서 복귀한 직후인 1513년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현실 정치에서 다시 펼쳐 보일 기회를 찾았다. 그 방법이 <군주론>을 집필해 메디치 가문의 유력자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헌정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군주론>은 피렌체의 지배자에게 자신을 써 달라고 천거하는 자기추천서였던 셈이다. 이 대목에서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은 <군주론>이 주제로 삼은 ‘군주’가 ‘새로이 국가를 세운 군주’, 그중에서도 ‘외부의 힘으로 국가를 세운 군주’라는 사실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바치려 했던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바로 이런 군주가 될 사람이었다. 줄리아노의 친형 조반니 데 메디치가 교황 레오 10세로 선출된 뒤 동생 줄리아노를 로마냐 지방의 군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마키아벨리가 줄리아노를 염두에 두고 <군주론>을 집필했다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군주론>의 주인공과도 같은 인물 체사레 보르자가 바로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사생아로서 로마냐 지방의 군주가 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줄리아노는 군주가 되기도 전에 급사했고, 마키아벨리의 구상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본심이 담긴 저작 <로마사 논고>를 저술한다.이런 상황에서 쓴 책이 <군주론>이지만, 이 책이 단순히 군주에게 조언만 하는 책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를 다룬 <군주론> 제7장에 이어 제8장에서 고대 시칠리아의 참주 아가토클레스의 사례를 거론한다. 주목할 것은 체사레 보르자나 아가토클레스나 모두 사악한 수단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는데도 이 두 사람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평가가 아주 다르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는 아가토클레스를 이렇게 논평한다.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반하고 신의도 자비도 신앙심도 내버리는 것을 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런 방식이 권력을 가져다줄 수는 있겠지만 영광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 왜 영광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걸까. 지은이는 아가토클레스가 자유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전제군주국을 세운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가토클레스의 악행에는 어떤 고귀한 공적 이상도 없었다. 마키아벨리에게 영광은 언제나 ‘공동체에 대한 헌신’에만 따라올 수 있는 것이었다. 아가토클레스는 사익을 위해 공익을 파괴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바로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적 신념이 드러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마키아벨리가 죽기 직전에 “나는 내 조국을 내 영혼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던 것도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신념의 강도를 알려준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 사상이 서양 정치사상사에서 겪은 변화의 경로도 상세히 살핀다.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사상은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더 주목할 것은 마키아벨리 공화주의가 프랑스혁명뿐만 아니라 미국혁명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인 존 애덤스부터가 마키아벨리 공화주의의 열렬한 사도였다. 지은이는 마키아벨리 연구의 권위자 존 포칵, 퀜틴 스키너, 필립 페팃의 저작을 검토한 뒤 공화주의가 ‘견제와 균형의 혼합정체론’을 제도적 틀로 삼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키아벨리의 인간관은 <로마사 논고>에서 밝힌 대로 “인간은 사악한 존재이며 틈만 나면 악의를 품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인간은 적절히 견제받지 않으면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에 제도적 절차로 ‘정치적 야심’을 제어함으로써 시민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앞둔 상황에서 숙고해볼 대목이다. 더 나아가 공화주의 이상은 법과 제도만으로는 구현될 수 없고 반드시 ‘시민의 덕’이 함께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자유와 정의는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로써만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패한 정부를 탄핵한 촛불시위가 그런 참여의 사례를 보여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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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73762.html?_fr=mt0#csidxf4f04385867d221aeb8468f1312ebc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