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만능주의에 대한 ‘강골’ 검사의 질타

법 만능주의에 대한 ‘강골’ 검사의 질타

등록 :2020-12-11 04:59수정 :2020-12-11 14:28

 

‘월가의 저승사자’ 프릿 바라라 전 뉴욕남부지검장 첫 저서
현장 사례 가득한 ‘실천적 정의론’…검사들 필독서로 충분

 

프릿 바라라 전 뉴욕남부지검장. 흐름출판 제공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프릿 바라라 지음, 김선영 옮김/흐름출판·1만8000원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설정한 뒤 결론을 정해 놓고 수사한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수사한다.’ ‘목표에만 집착해 절차를 무시하고 인권을 등한시한다.

 

’지난 2월 <한국일보>에 실린 칼럼(제목은 기사 뒷부분에)을 다시 읽다가, 이 대목에서 눈길이 멈췄다. 마침 프릿 바라라의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읽고 있던 터. 그가 누군가. ‘월스트리트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미국 뉴욕남부지검장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협력 요구를 거절하자 해고된 인물이다. 뉴욕 헤지펀드계 거물 등 71명을 기소해 67명의 유죄를 받아낸, 2012년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미국 드라마 <빌리언스> 주인공의 모델인, 전 검사장이다.(드라마 주인공 척 로즈 검사장은 프릿 바라라와는 사뭇 다른 ‘정치검사’로 그려졌다.)

 

‘99만9000원짜리 검사용 룸살롱 접대 패키지’라는 조롱성 풍자물을 곁눈질하다 접한, 바라라 전 검사장의 ‘정의론’은 눈을 씻어주는 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는 그저 승소만 바랄 뿐, 사실과 진실에는 신경 쓰지 않고 수사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정의를 목표로 수사에 착수한다면, 특정 결과에 얽매여 어떤 주장을 미리 상정해서는 안 된다. (…) 언제나 사실로부터 주장을 끌어내는 것이지, 주장으로부터 사실을 이끌어내서는 안 된다.”

 

바라라는 시종일관 ‘정의’가 실정법에 앞선다는 지론을 강조한다. 그것도 대단히 생생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비유법은 이렇다. “훌륭한 조리법이 맛있는 음식을 보장하지 못하듯, 현명한 법도 정의를 장담하지는 못한다.” 실정법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 바탕한 법실증주의자가 득실대는 검찰의 세계에 이런 검사가 있다는 것은 뜻밖이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검사라는 찬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기소에 대한 그의 생각도 울림이 크다. 탈옥수를 사례로 든다. 명백한 범법 행위인 탈옥을 기소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그러나, 보안 상태가 허술한 감옥에서 탈출해 아내를 잠시 만나고 돌아오다 교도소 담장 앞에서 붙잡힌 탈옥수라면? 바라라는 정상참작 요인은 있겠지만 기소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배심은 ‘햄샌드위치 기소’(검사가 마음만 먹으면 햄샌드위치도 기소할 수 있다는 뜻으로 검사의 자의적 기소를 꼬집은 말)라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나는 당시에는 이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배심원들이 적절히 판단했다.” 대대적 탈출을 감행한 일도 아니고 잠시 떠돌다 돌아온 사람한테 중죄 판결을 추가할 필요는 없으며, 감금 조건 관련 처벌규정으로 다루면 족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 검사들의 필독서로 지정돼야 한다. 교과서처럼 수사, 기소, 판결, 처벌 등 4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게다가 생생한 현장 사례가 가득하다. 지난해 조은석 전 검사장이 펴낸 <수사감각>이 ‘대한민국 검사 처세술’이라면, 이 책은 검찰개혁의 철학을 제시한 지침서이자 교본이다. 서두에 인용한 칼럼 제목은 ‘윤석열 스타일은 바뀌지 않는다’(강철원 당시 한국일보 기획취재부장, 현 사회부장)이다. 여기에는 ‘보스 기질이 넘쳐 자기 식구만 챙긴다’ ‘언론 플레이의 대가이자 무죄 제조기다’라는 언급도 있다. 그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겠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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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73754.html#csidx09a83ce46ce066d99cff2f636442e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