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박덕칠 사장과 자가용 - 단편 소설 [오승재 장로]

성령충만땅에천국 2021. 1. 9. 06:10

박덕칠 사장과 자가용 - 단편 소설

은혜 추천 0 조회 12 21.01.05 10: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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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여천댁 인자, 내 운전 솜씨 좀 어쩐가? 믿을 만 하제?”

박덕칠 사장은 자신만만한 어조로 운전석 옆에 앉은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고 말 좀 하지 말고 운전대 좀 꼭 잡으시오. 나는 지금 떨려 죽겄소.”

“아니, 한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달렸는디 그래도 못 믿겄어?”

“우리 차가 늦으니께 뒤차가 바짝 따라와서 휙휙 왼쪽으로 겁나게 달려가지 않소?”

“차는 천천히 달리는 것이 상책이여. 뒤 차는 지 사정이지 내 사정 아닌게.”

“그래도 처음 운전 배울 때는 너무 천천히 가니께 경운기가 추월하드람서요.”

“그때야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아닌가?”

그는 목이 조이고 몸이 쑤셔 목 댕기를 좀 풀려고 오른쪽 손을 떼자 차가 크게 좌우로 흔들렸다.

“오메, 나 죽네. 이게 뭔 짓이라요?”

“그런 게 혁대 좀 하란 게는.”

덕칠은 아내가 안전띠를 하지 않아 짜증스러운 듯 말했다.

“나는 갑갑해서 그런 것 못 두르요. 만규를 데리고 있제 왜 내쫓아버렸소. 돈이 아까워서 그랬지라우.”

만규는 그동안 운전기사를 해 주었던 처남이었다. 그는 사우디에서 돈을 좀 벌었다고 이것저것 벌리고 다니더니 돈은 다 날리고 자기에게 빌붙어 바람을 넣었다고 덕칠을 싫어했던 처남이였다.

“그놈은 안 돼야. 딴 야심이 있는 놈이여.”

“아이고 지 매형이 세상 물정 모르고 돈을 쥐니께, 사기당할까 봐 도와줄라고 그러는 것인디 무슨 딴 야심이 있다고 그러시오.”

덕칠은 처남을 너무 인정 없이 쫓아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녀석은 너무 아는 체하고 말이 많아서 믿을 놈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매형, 뭐 그 사람들이 매형 이뻐서 비싼 돈으로 땅 사서 내보냈겄어요? 그놈들은 도둑놈들이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몇 번 발표하더니 나라가 좀 잘살게 되자 도시개발을 하겠다고 홍수 때마다 물이 넘쳐 쓸모없던 땅을 찾아 정지작업을 했어요. 그것이 강남땅이요. 그때까지 쓸모없던 땅이었는데 이곳을 공유수면 매립지로 만들어 나라에 등록하고 거저 얻은 땅에 대형 아파트 단지를 만들어 돈을 긁어모은 거요. 그때부터 시작한 아파트 공화국의 여파가 지방까지 내려와 매형 땅도 팔리게 된 거요.”

또 말했다. 옛날에는 지주가 땅 있고 머슴 있으면 부자였는데 지금은 빌딩 갖고 아파트 가진 사람이 부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매형 이름으로 아파트 한 채를 사서 등기했으니 거기 들어가 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방이 4개나 되는 운동장 같은 것이었다. 또 격식에 맞추어야 한다고 가구를 사들이고 집들이를 해야 한다고 친구들과 친지들을 불러들였다. 아이고 돈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가 얼마나 장한 일 했는지 매형은 모를 거라고 했다. 지금은 아파트가 집 없는 서울 시민 옮겨 사는 공영 서민 아파트가 아니라 모든 중산층이나 고소득자도 선호하는 삶의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파트 분양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복부인들은 법망을 뚫고 대여섯 채씩 청약하여 분양을 받고 프리미엄을 얹어 되팔아 돈놀이하는데 무식한 사람은 아파트 분양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자기는 가족계획협회에서 발행한 ‘정관수술 증명서’를 가지고 있어 아파트 분양 우선순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참 나라가 이제는 산아제한도 하고 살기 좋은 나라 아니냐고 했다.

하루는 처남이 갑자기 덕칠을 사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매형도 사장 행세를 해야 해요. 농사를 안 지을라면 무슨 사업을 해야 하는디 무슨 무슨 실업이라고 명함을 하나 만들고 사장이 되어야지라우. 또 자가용이 하나 있어야 해라우. 매형, 아니 박 사장님은 나 하는 대로 가만히 구경이나 하고 떡이나 잡수시오.”

그러면서 어느 날 차를 하나 몰고 왔다. 그리고 자기는 자칭 사장 기사가 되어 새로 산 아파트 방 하나를 차지하고 가족까지 끌고 들어왔다.

그때부터 덕칠은 이 찰거머리 같은 처남을 내보내야겠다고 내심 결심했다. 그는 서서히 차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차 운전을 배운다는 것은 조금씩 농사꾼이 땅을 버리고 도시인이 되어간다는 뜻이었다. 농사를 훌훌 털어버리고 무위도식하는 것이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차츰 몸에 익숙해지면서 아파트 경비원들, 복덕방 사람들. 건축업자들이 박 사장님이라고 깎듯이 부르는 것도 싫지 않았고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한번은 처남이 매형 호강을 시킨다고 남해 고속도로를 달리며 여수 오동도에서 활어회를 먹고 쾌속정을 타며 고급호텔에서 머물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멋있는 게 아니었다. 아내를 데리고 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내는 지금까지 늘 땅만 파고 고생하고 살았다. 세상은 한없이 신기한 것이 많은데 바보처럼 살았던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어야 여천댁, 자네는 처남 내보낸 것이 그렇게 마음이 아픈가?”

“마음 아픈 것이 아니요. 우리는 지금 물 떠난 고기 같은 신세요, 이렇게 손 하나 까땍 않고 살아도 되는 건지 나는 지금도 도깨비에 홀린 것만 같소.”

“걱정 말어. 나도 인자, 많이 배웠응게. 나는 지금까지 고생한 자네 호강 시킬라고 지금 가는 것이어.”

“나는 옛날처럼 농사짓는 것이 마음 편하고 호강이요. 그런디 뜬금없이 무슨 여수라요? 좋은 집 놔두고. 왜 거기까지 가서 무슨 멋으로 잔다요?”

“땅 파묵는 사람은 꿈도 못 꿀 세상이 있다네. 바다에서 바로 잡은 살아 있는 활어회 묵고, 쾌속정이라는 배도 타보고, 또 밤바다가 보이는 고급 호텔 방에서 누워보면 한숨이 아니라 세상이 이렇게 좋을까 하고 절로 오금이 저리저리할 것이네.”

“아따 나는 그 침대라는 것, 허리 아파서 못 자겄습데다.”

“걱정 말어. 온돌도 있응게. 그런디 지발 신문지 깔고 똥 싸서 양변기에 버리는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돼야.”

“아따 그 말은 두고두고 쓰시는 구먼이라우.”

아내는 좀 마음이 풀리는지 남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처음 아파트를 사들었을 때 양변기에는 앉아도 변이 안 나오고 또 물이 튄다고 아내는 신문지를 깔고 변을 봐서 변기에 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신나게 고갯길을 오르고 있었다. 이차 선이기 때문에 추월하지 못하는 차들이 줄줄이 자기 뒤에 늘어선 것이 차 안 거울을 통해 보였다. 바로 뒤차는 성급하게 불을 켰다 껐던 하면서 속력을 내라는 신호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주 오는 대형 버스나 화물차가 왼편을 휙휙 지날 때마다 차가 흔들거리며 부딪칠 것 같아 그러잖아도 바른쪽에 바짝 붙어 조심스럽게 달리고 있는데 속력을 더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빌어먹을. 차가 많기는 많다. 하기야 나 같은 놈도 자가용을 갖는디, 날고뛰는 놈들이 자가용 안 가질까? 꼭 차가 있어야 쓰겄다고 산 것도 아니겠지. 사장 체면, 부자 체면, 의사 체면, 목사 체면, 교수 체면…. 체면 때문에 산 차도 많겠제. 그러나 길은 안 넓히고 차만 많아지면 어쩔 것이여.)

그는 처남의 허튼소리가 거짓말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운전면허를 땄다고 이제는 처남 대신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고 운을 떼었을 때 처남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와 지껄여 댔었다.

“세상이 미쳤소. 미쳤어. 그러나 세상이 날 배신하는 것은 괜찮지라우. 그래도 나는 매형만큼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지라우. 내가 무슨 사심이 있어서 매형 곁에 붙어 있는 줄 압니까? 나를 배신하면 안 돼요. 매형은 세상을 너무 모르요. 지금 내게 주는 월급이 아깝지라우. 그래도 생명은 더 귀해라우. 지금 운전사고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가는지 압니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같다는 것 모르시오? 남의 나라에서 비싼 부품 사 들여다가 외국에 팔지는 못하고 맨맛한 우리에게 사치를 좋아하는 것을 미끼로 월부 판매를 시작한 거요. 이년 전만 해도 승용차가 하루에 500대씩 늘던 것이 올해 들어서는 1,000대씩 늘어나요. 일 년이면 360,000대가 늘어나는데 얼마 안 가서 길은 차로 꽉 메꾸어질 것이요. 우리나라 사람이 언제 자가용 몰고 살았소? 운전 배운 지 한 달 만에 차를 몰고 나오는 사람이 태반인디 그 속에서 안 죽으면 다행이요. 매형도 이제 세상맛 알고 살 때가 되었는디 무슨 돈이 아깝소? 큰딸은 여웠고, 큰아들 한 두 해면 대학 나오제, 매형 평생 쓰고도 남을 돈 생명하고 바꾸지 마시오. 나를 내보내는 것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시란 말이오. 나라가 차를 팔면 길도 넓혀야 하는디, 외국 가보시오. 도시에 가면, 넓고 큰 외곽 도로가 팔 차선으로 시원하게 트여서 빠른 차들은 다 그곳으로 다니요. 그리고 시내는 팔 차선에서 잠깐 빠져나오면 들어오도록 되얏는디 이놈의 나라는 길은 안 넓혀서 병목이 많소. 몇 년 안 가서 차 사태가 나고 무고한 생명 앗아간다는 생각은 안 하고 한 해 앞도 제대로 못 보고 실적 위주로 살고 있소. 갑자기 돈이 많아져서 속없이 지랄하는 것이지라우. 그리고 교통질서도 법도 없어라우. 사람들 틈 사이로 걸어 댕기듯 이리저리 피해서 차를 몰고, 또 교통사고가 나도 경찰도 안 나타나요. 전화로 불러도 한 시간 이상 안 나타나는데 와서 한다는 소리가 오늘 하루에 교통사고 40건을 처리하고 다니는데 내가 뭐 쇠로 만들어졌소? 하고 되려 큰 소리요. 또 권세가 있는 놈에게 접촉사고를 당해 보시오. 경찰은 눈치 보느라 사고처리도 제대로 못 하고 다친 놈만 슬프고 억울하요. 월급이 아까워서 내보낸다면, 나 그것 깨끗이 포기하겄소. 이러크롬 생겼어도 그까짓 돈 보고 사는 놈 아니요. 누나가 불쌍해서….”

만규는 구구절절 옳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녀석을 옆에 두면 속이 울렁거리고 식상하였다. 튀어나오는 말 속에 늘 빈정대는 말이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머리는 텅 빈 것이 돈은 있어서 제대로 할지도 모르면서 듣고 보는 풍월로 아는 체하는 꼴이 아니꼽다는 투였다. 돈이면 상수지 옷맵시가 없든, 넥타이 색깔이 안 맞든, 머리를 안 감든, 양식을 어떻게 먹든 무슨 상관인가? 그뿐 아니었다. 아파트도 제가 골랐지, 가구도 제가 들여왔지, 손님도 제가 청하지, 빌딩을 짓는다고 자기가 건축업자를 만나러 다니지, 이건 처남이 사장이고 자기는 지참금 가지고 따라다니는 비서였다.

“그 처남도 일이 잘 끝나면 집 한 채쯤 사줄 생각이었다네.”

“그런디유.”

“워낙 손이 크고 허황한 처남인디 집 한 채로 물러 나겄어? 나도 독한 마음 묵고 그만두라고 한 것이여.”

“하기사 삘딩인가 무엇인가 사면 평생 놀고먹는다고 해쌌는디 나도 안 믿었어라우. 놀고 어떻게 묵고 산다요? 벼락 맞을 소리제.”

“그 말은 맞는 말이여. 손 하나 까땍 않고 사는 사람이 쇘당게. 천벌은 무슨 천벌이여. 그놈들이 더 잘 사는디. 이 세상은 돈 있는 놈이 돈 벌고 더 잘 사는 세상이여.”

이때 아내가 질겁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덕칠의 운전하는 손에 매달렸다.

“오메, 나 죽소.”

덕칠은 앞을 보았다. 고갯길에 막 올라서는데 대형 버스와 나란히 경쟁하며 역주행하며 자기 앞으로 쏜살같이 지프가 덮쳐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자기 큰 아들놈의 얼굴과 농 속에 넣어놓는 각종 문서와 예금통장과 처남, 만규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그것이 끝이었다.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눈앞에서 불이 번쩍 튀자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이었는데 큰 삽으로 떠서 쓰레기 더미 위에 던져져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덕칠의 아내는 차의 앞 유리를 뚫고 길 밖으로 내동댕이쳐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숨을 거두었으며 덕칠은 앞차와 뒤차에 처박혀 운전석을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는데 톱으로 다리를 자르고 꺼내어져 수술실에 눕혀졌다.

수술 실에서 깨어나 아내가 사망했다는 말을 듣자 박덕칠 사장은 통곡했다. 처남이 위로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내가 죽아야 하는디. 내가 죽아야 하는디. 저승에서 내가 여천댁을 어떻게 만날 거여. 내가 돈에 미쳤지. 활어회가 뭐라고, 쾌속정이 뭐라고, 고급호텔 방이 뭐라고 내가 끌고 와 저승에 보내…”

박 사장은 계속 통곡만 하고 있었다.

(19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