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새 사람 되세요 - 단편 [오승재 장로]

성령충만땅에천국 2021. 1. 9. 06:13

새 사람 되세요 - 단편

은혜 추천 0 조회 3 21.01.06 10:4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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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의 엄마 경희는 1980년 말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이사하기 전 일 년도 더 된 때의 일이다.

그녀는 그때 있었던 몸이 오싹했던 체험이 생각날 때마다 치가 떨리는데 그것보다도 그녀가 스스로 더 놀란 것은 그 무서운 순간에도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대담했던가 하는 것이었다. 누구를 닮아 그렇게 겁이 없었던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경희네 집에는 그녀가 언니라고 부르는 두 친구가 놀러와 있었다. 각각 여섯 살 그리고 다섯 살짜리 딸을 데리고 왔었는데 그들의 처지는 모두 남편들이 직장에 나간다는 것과 딸 하나씩을 두었다는 것, 그리고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 때문에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었다. 또 슬기네 집은 남편들이 직장에 나간 뒤 그들이 모여 놀기는 안성맞춤인 곳이기도 했다. 경희네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도 아니고 경희 부부와 다섯 살 난 슬기뿐이었다.

아파트가 당첨되어 옮겨 가기 전 적당한 집이 없어 급히 짐을 구하다 보니 좀 어울리지 않게 걸려든 약간 큰 집이었다. 오래된 집이었지만 건축업자가 살려고 지은 당시만도 훌륭한 양옥집이었다. 집주인의 말마따나 15년이 넘는 집인데도 구석구석 튼튼했다. 현관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응접실이 양식 화덕과 함께 있었고 그 뒤쪽에 침실, 오른편 남쪽 양지바른 곳에 넓은 안방, 그 뒤엔 식당과 부엌 이런 식이어서 지금도 쓸모 있고 손색이 없는 양옥집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양옥집의 장점이 이 마을에서는 이 가옥을 오히려 쓸모가 없는 집으로 만들고 있었다, 건축업자의 예상과는 달리 이 마을은 개발되기는커녕 큰 도로변에서 빗나가 있어 샛길투성이여서 이제는 서민들의 마을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그 속에 끼어 있는 이 양옥은 꼴불견이었다. 이런 집은 하숙을 치기도, 셋방을 내주기도 아주 적절하지 못한 구조였다. 그래서 집값도 쌌다. 그러나 경희네에게는 안성맞춤인 집이었다. 경희네를 매일같이 찾아오는 두 엄마와 딸들에게도 둘도 없는 안식처가 되기 때문이었다. 애들은 응접실로, 침실로 뛰어다니며 소꿉장난을 했고 세 여인은 양지바르고 넓은 안방에 앉아 고스톱도 치고 마을에서 들은 이야기도 옮기고 또 자기 나름대로 목소리를 높여 즐기는 가십으로 남편들을 직장에 보낸 무료한 한낮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런 놈들은 아주 사형 집행을 해서 길거리에 전시해야 해. 국회의원들은 그런 놈 사형시키는 법은 안 만들고 뭐 하는 거야. 어떻게 하면 다시 차기 국회의원이 되나? 어떻게 하면 정권을 잡고 권력을 휘두를까? 있는 놈 편을 들어야 정치 자금을 더 뽑을지, 없는 놈 편을 들어야 민심을 얻고 표를 더 받을지, 이러고 있으니 아유 분통 터져.”

다음은 경상도의 큰언니가 포문을 열었다. 포문의 발단은 작은 언니가 어디선가 듣고 온 이야기 때문이었다. 도둑맞은 어떤 집이 다음날 전화를 받았는데 점잖은 ‘도’ 씨 아저씨의 말씀이 목걸이도 가짜, 팔찌도 가짜, 반지도 가짜니 그럴 수가 있느냐고 머지않아 돌려주러 갈 테니 현금을 준비해 놓으라는 당부였다 한다. 너무 어처구니없고 기가 찬 부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뭐야 잡놈아,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도둑놈한테 진짜 준다더냐? 이번에 또 올 때는 평생 감옥살이할 각오하고 와라 이 썩을 놈아.” 이렇게 쏘아붙인 모양이었다. 도 씨가 그냥 있을 리가 없다. 온갖 상스러운 욕을 해대고 딸 단속이나 잘하라고 했다 한다. 수화기를 놓자 그 여인을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고3으로 과외를 다니는 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하룻밤도 편히 자지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과외 하는 딸을 차에 태우고 가고 왔는데 한 달도 넘는 어느 날 방심하고 있을 때 딸이 사라졌다. 일주일 만에 문 앞에 동댕이쳐진 딸은 온몸에 문신하고 병신이 되어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법도 법이지만 이거는 민생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내무부가, 아니 직접적으로는 경찰이 제구실을 다 못하고 있는 기라요. 데모 말리라 카니 손이 딸리제. 내 보기로는 적당히 실적 보고하고 정 맞지 않고 넘기며 살고 있는 기라요. 신문에 크게 난 사건이나 상부 명령이 있으면 책임 면할라꼬 뛰지마는 마을 도둑은요 귀찮은 기라요. 또 경찰이 누굴 잡았다 카면 다 자기 힘이 아니고 시민제보에 의한 긴데 제보하는 시민도 챙피하거나 보복 무서버서 누가 요즘은 감히 신고하겠노? 또 TV 같은 것을 보면 유흥업소나 깡패단이 걸리면 경찰은 먼저 잡는 체하고, 다음 봐주고 놓아주고. 지들끼리 한 패거리니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아이요.”

이야기를 몰고 온 작은 언니가 한마디 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 부재에 있어요. 문교부는 먼저 대학 입시 제도부터 개선해야 해. 세상에 머리 좋고 돈 있는 자식만 잘 되라는 법 있어?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교육이 무엇이야. 시험 잘 보는 병신 만드는 교육 아니고 뭐야? 머리 없고 돈 없는 자식은 그 지겨운 과정을 거치고 대학 가고 직장 갖고 결혼까지 할 수 있겠어? 돈 있으면 대학도 그냥 들어갈 수 있데. 지금 거리의 불량아들은 다 이 지겨운 경쟁 대열의 낙오자들이야. 돈 없고 머리 못 따라가도 정직하고 올곧은 마음 하나로 살 수 있고, 기술이 있으면 대학 나온 사람보다 그 분야에서는 더 대접받고 인정받으며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야?”

경희도 끼어들었다.

“언니 그러나 우리 부모에게도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애들을 사랑한 나머지 돈 달라면 돈 주지. 욕심부리는 대로 장난감 사주지. 이기면 용돈 주고 지면 벌주지. 떼쓰고 고집부려도 귀엽다고 웃지. 그러니 애들이 세상에 나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빗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얼라들이 와 욕심을 부리겠노. 다 사회에서 배워오는 기라. 문화공해, 뭐 불량만화, 장난감 권총, 음란 비디오, 성폭행, 폭력 영화, 음담패설이 뒤범벅된 외설 잡지 …. 아이들이 크면서 배워오는 기 이런 것뿐 인기라. 내가 집안에서 단속한다 카지만 아이들이 크면 우째 밖에서 하는 일까지 단속하겠노. 나라는 이런 단속부터 해야 한데이. 아래 애 아빠캉 영화보러 갔다가 기절할 뻔 안 했나? 영화가 음란 신과 부수고 죽이고 하는 장면을 그리기 위해 이야기를 숫제 그기 맞춰 짜 놓은 기라요.”

“한마디로 이것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야. 거리에서 술 마시고 소리 지르고 주먹질하며 돈을 뿌리고 다니면 그것은 나쁜 사람이 하는 짓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오히려 힘센 사람들을 동경하고 그에게 아부하며 자기도 하루 사이에 벼락부자가 되어, 돈 뿌릴 생각만 한다구. 극도의 개인주의 배금주의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단 말이야. 이건 한마디로 민족성의 문제야. 내 편 아니면 적이고, 아부하지 않으면 짓밟고. 용서란 눈을 씻고 봐도 없고 원수는 대를 물려 갚고 못 먹는 호박은 찔러버리고….”

“언니 민족성은 너무하는 것 아니유?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우. 한 교회가 길거리의 불량아 한 사람씩만 책임져 주었으면 하고 말이유. 밤에 옥상에 올라가 십자가 불빛을 세어보면 적어도 30개는 셀 수 있다고 하지 않아유? 기독교인이 천만이라는데 한 교회 교인이 평균 200 명이라면 50만 교회가 되는데 길거리에서 한 교회가 50만 명의 불량아만 책임져 주어도 어떻겠어유?”

“천사 같은 소리 하네. 교회가 선한 체 거드름 피우는 것 빼고 이름 안 나는 고생 자처하는 것 봤어? 돈 벌어 목사, 전도사 먹여 살려야지, 교회 건물 올려야지 계절 따라 교인들 놀러 다녀야지. 관광지에 교회 차 안 서 있는 것 봤어? 놀이터마다 찬송 꾼들 없는 데 봤어?”

이때 갑자기 꽝 하고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경희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방문 쪽으로 갔다. 작은 언니가 그녀를 붙들었다. 그렇게 함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마을은 행인이 드문 호젓한 골목이었다. 엄마를 부르는 애들의 겁에 질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문을 열었다. 키가 큰 복면의 사나이가 짧은 칼을 들고 서 있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애들이 어머니 품으로 기어들었다.

“소리 지르지 말고 구석으로 가.”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화투짝과 담요가 널려 있는 방안을 한번 둘러 보더니 소리쳤다.

“잘들 논다. 누가 주인이야?”

“나요.”

경희는 손을 번쩍 들며 앞으로 나갔다. 사나이는 놀란 듯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칼을 한번 휘둘렀다.

“거기 서 있어. 누가 상 줄라고 부른 줄 알아?”

그러더니 담요를 나머지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라고 말하며 담요 위로 머리통을 밟았다.

“돈 내놓아. 시간 없어.”

“우리는 돈 놓고 쓰지 않아요. 자기앞 수표를 써 드릴까요?”

경희는 딸 슬기를 꼭 껴안고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뭐야? 누가 지금 장난하자고 그랬어?”

“정말이에요. 보여 드릴게요.”

그녀는 농 서랍 문을 열어 서랍을 빼 보여주었다. “이 봉투에 넣고 쓰는 돈이 전부예요. 반지라도 드려요?”

“염병할. 재수 없게.”

그는 신경질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 돈 주고 저 핸드백 열어봐.”

“그건 제 것이 아니데요.”

“아이고 복통 터져. 지금 니것 내것 가리게 돼 있어? 이리 가져와.”

그는 핸드백 안을 뒤져 돈을 꺼내고 방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또 지갑 없느냐고 소리치며 담요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놀란 듯이 큰 언니가 고개를 숙이고 핸드백만 들어 올려 진상하고 있었다. 그는 그 안의 돈을 뺏지만, 무척 불만스러운 듯이 방바닥에 동댕이쳤다.

“빌어먹을. 돈 좀 가지고 다녀라. 알았어?”

아무 말도 없자 다시 강조했다.

“대답해봐 알았어?”

세 사람이 합창하듯 ‘예’라고 대답하자

“신고하면 알지? 나는 목숨 걸고 다니는 놈이니까.”

하고 재빠른 몸짓으로 사라졌다. 세 사람은 얼마 동안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겁에 질려 있던 애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들을 달래노라니 좀 마음이 진정되었다.

“슬기 엄마는 그래도 용터라. 나는 마, 담요 속에서도 가슴이 떨려가.”

“어떻게 하지. 신고해야겠지?”

둘째 언니가 말했다.

“언니 나는 싫어요.”

경희가 황급히 말했다.

“신고를 안 한다는 것은 이 마을이나 도둑을 위해 다 나쁜 짓이야. 경찰은 이 마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해. 그리고 그놈은 더 큰 죄를 짓기 전에 붙들려 벌을 받아야 해. 수표를 드릴까요? 반지를 드릴까요? 이건 도둑을 동정하고 기세를 올려 주는 짓이야. 신고 안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런 일이 있은 지 두 달이 지났다. 경희는 가끔 그 도둑을 생각했다. 수표를 주겠다, 반지를 주겠다고 말한 것은 위협에 질려 얼결에 한 말이었지만 자기는 그것이라도 달라고 하면 아까운 생각 없이 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무의식중이었지만 가난하여 그런 짓을 하게 되었다는 그를 인정해 주고 누군가가 그를 사랑해 주고 돌봐 주면 새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믿고 싶었었다. 사람의 천성은 태어날 때 선하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두 달 전에 절도하던 놈이 잡혔으니 와서 대면하고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가슴이 다시 마구 뛰기 시작해서 그 사람은 복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대면해도 확인할 도리가 없다고 거절하며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또 전화가 왔다. 사건을 종결지어야 하는데 그때 들고 있었던 칼이라도 확인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는 그때 일을 회상하고 싶지 않은데, 없었던 것으로 해 줄 수 없느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죗값을 치르고 나면 다시 새사람으로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는 간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는 갑자기 경찰 세 명이 쇠고랑을 채운 범인을 데리고 집으로 밀어닥쳤다. 현장검증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범인을 본 경희는 깜짝 놀랐다. 범인이 너무 어려서였다, 솜털 같은 콧수염이 약간 검어져서 징그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앳된 나이였다. 경찰 세 사람이 자기네를 대신해서 그때 있었던 일을 재현하고 있었다. 경희는 범인이 말한 대로 그저 그랬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희는 저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을까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검증이 끝나고 떠날 무렵 경희는 곁에 있는 경찰에게 범인의 나이가 몇이나 되느냐고 물었다.

“만 열아홉입니다. 소년 범죄자도 아닙니다.”

어쩌자고 저렇게 되었는가? 그녀는 다시 측은한 생각이 들어 뒤통수를 얻어맞고 끌려가는 범인 곁으로 바싹 다가가 말했다.

“이제 갔다 오면 새사람 되세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화들짝 놀라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해. 무슨 자격이 있어서. 그를 아끼고 사랑하기나 했나? 그를 위해 기도하길 했나? 나쁜 짓은 다 하면서 남에게 선한 체하고 설교는 잘하는 못 된 기독교인이라고 기독교인을 싸잡아 욕보이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좋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힐끗 돌아보는 범인의 눈에서 비수같이 싸늘한 걸 느꼈다. 그를 끌고 가던 경찰은 말했다.

“쉬 나올 수 없을 겁니다. 강도, 강간 등 오십 회가 넘는 놈입니다.”

범인은 아무 말 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조카 또래의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