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평화회담 - 단편 [오승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1. 1. 29. 11:45

평화회담 - 단편

은혜 추천 0 조회 12 21.01.11 14: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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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회담

 

 

 

의류 재활용 매점에는 여러 가지 의류들이 격자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이 매점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하여 운영되는 곳이었다. 헌 옷을 깨끗이 빨아, 걸어 놓은 것이어서 하나의 ‘아나바다(아껴 입고, 나누어 입고, 바꾸어 입고, 다시 입는)’ 매장이었다. 아까운 옷을 버리는 사람이 많아서 전화 연락만 받으면 가져와 세탁해 걸어 놓고, 싼값으로 나누어 입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이 와서 만져보고 그냥 갔지만, 가끔 사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아침 9시면 열어서 저녁 5시에 닫고 일요일에는 쉬는 매점이었다. 간판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집』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게가 문을 닫고 어두워지면 옷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옷의 효용 가치를 따져 이 옷 저 옷 둘러보던 사람들의 살 냄새가 가시면 이제는 옷들이 스스로 자기를 입고 있던 주인을 대신하여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육을 떠난 영들이기 때문에 자기주장을 거침없이 말했고 따라서 고성으로 끝나는 토론이 많았다. 이날 밤은 몇몇 지도자들이 모여 평화회담을 하자고 제안하고 모이는 자리였다. 이 나라가 시끄러운데 종교계도 시끄러워 종교계라도 서로 보듬고 지내보자는 모임이었다. 사실, 이 옷걸이에는 교수가 걸쳤던 옷, 목사, 신부가 걸쳤던 옷, 스님, 유학자가 걸쳤던 옷, 깡패가 걸쳤던 옷, 부잣집 마님의 옷으로부터 술집 아가씨의 옷까지 가지각색의 옷이 걸려 있어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기에는 안성맞춤인 자리였다. 한편 의견의 통일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는 평화회담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성토대회였다.

 

평화회담 참석자 중의 하나인 가죽점퍼는 제일 말이 많았는데 머지않아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종말론 자였다. 종말론으로 그는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인간들이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게 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 세상에 만연한 우상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믿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었다. 우상을 찍고 부수고 불태우며 가루를 만들지 않으면 인류의 구원은 기대할 수 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히스기야 왕이 어떻게 나라를 구했는가? 여러 산당(山堂)을 제거하고 그곳에 모셔놓은 주상(鑄像)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분향하던 모세의 놋뱀을 부수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앗수르왕, 산헤립의 군사 185,000명을 무찌른 것이다. 이 나라에는 지금 얼마나 많은 우상이 득실거리고 있는가? 누군가가 이들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 그는 사실 추운 겨울날 밤 전기톱과 망치를 가지고 초등학교에 가서 단군상 목을 쳐서 떨어뜨린 장본인이었다. 그에게 단군상은 하나의 우상이었다.

유학자가 걸쳤던 개량 한복은 외국 문물에 의해 한국의 전통과 문화가 망가져 가는 것을 통탄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으로 반만년 전통을 가진 문화민족이다. 그런데 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며 사대사상을 심어 놓았고 특히 일본은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려고 창씨개명(創氏改名)하고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주장하여 자기의 문화를 이식하려 했으며 우리의 국부 단군을 섬기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고 민족혼을 말살하려 했다. 내 생각으론 우리가 살길은 우리 민족이 모든 외래 종교를 배격하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단군왕검을 모시고 단결하는 길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이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이고, 불교가 말하는 자비가 아니겠는가? 사실 나는 단군을 섬기는, 즉, 대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유언서 정감록에도 단군 신령이 유불선 3대 종교를 단군의 신령으로 통합하기 위해 부활하여 오셨다고 쓰고 있다. 그가 바로 한얼님이시다. 그러나 사직공원과 초등학교 등에 360개의 단군상을 만들어 세운 것은 대종교가 한 일이 아니다. 서울시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워 준다는 명목으로 시작한 것을 한문화 운동 연합회에서 이어받아 민족통일을 기원해서 세운 것이다.

가죽점퍼는 이 말을 듣고 분개하였다.

기독교는 외래 종교가 아니고 그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민족혼에 호소하는 국수주의도 좋지만, 단군 신령이 부활했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다. 그가 부활하여 딱딱한 돌멩이가 되어 앉아 있다는 말인가? 사람이 옮겨다 놓으면 그 자리에서 한 치도 옮겨 앉을 수 없는 돌멩이가 어찌 부활한 신령이란 말인가? 이는 우상이다. 상천 하지에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다. 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가 없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사역(救援事役)이 완성되려면 이 지상에서 모든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다. 기독교의 신만이 참 신이며 그분은 오래 참고 있으나 이 지상에 하나님이 원하는 믿는 자의 수가 차면 재림하셔서 온 세계를 심판하시되 예수를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의 보좌에서 천년왕국을 누릴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입었던 까만 치마가 초롱초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님이 한 분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여호와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 이 셋이 다 하나님이라고 한다. 어떻게 세 사람이 한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안 믿으면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꺼지지 않은 유황불에 떨어진다고 신자를 위협하여 믿게 하고 있다. 지금은 문맹자가 없고 교육수준이 높아진 우리나라 사람이 그런 유치한 말에 넘어갈 사람이 없다. 지옥이나 영원한 심판은 없다. 여호와의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은 모두 멸절된다.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세상의 지도자들은 다 기복신앙으로 신자들을 유혹하는 마귀다. 이 마귀들로부터 양들을 구원해 내야 한다. 인류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144,000명과 여호와를 전하는 여호와의 증인들 즉, ‘다른 양’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다시 가죽점퍼가 끼어들었다.

너희들은 이단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영혼의 불멸도 믿지 않으며 몸과 함께 영혼도 죽는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너희가 만일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 너희 죄는 사함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내 집 문전에 만일 전도하러 왔다면 나는 너희들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까만 치마가 치받았다.

너희들이 마귀의 자식들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는데 기독교는 해의 신을 섬기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살인하지 말라고 십계명을 외우면서 사람을 죽이는 전쟁터에 나가 싸운다. 우리 형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때문에 7년간이나 형무소(교도소)를 전전하고 살다 나온 사람이 많다. 그들은 출소 후에도 전과자, 군 미필자로 취직도 할 수 없다. 군에 가면 차라리 미필자 생활보다 더 편하다. 그런데 왜 병역을 거부하는가? 국가의 명령과 여호와의 명령이 상충할 때는 신앙을 지켜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고자 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어떠냐? 박해가 있다면 바로 피해서 마귀의 명령을 듣는 자들이다.

스님이 걸쳤던 도포가 말했다.

사실 기독교는 자기를 되돌아보고 살필 필요가 있다. 나는 외국 사람으로 신학교를 나온 기독교인인데 한국에서 참선 수행을 하려고 나왔다. 선(禪)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 것이다. “예수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답을 얻기 위해 이곳에 나왔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와서 발견한 것은 기독교인은 일반적으로 말을 너무 가볍게, 그리고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성경을 읽으시오. 예수를 믿으시오. 예수만이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전철 안에서 자기 안방에서처럼 외치는데 나는 그들이 정말 성경을 읽고 진리를 알고서 이렇게 외치는지 묻고 싶었다. 나는 신학교에서 성경과 해석을 전공하면서 성경을 많이 읽었다. 그러나 진리에 도달하지 못해 이곳에 와서 선 수행을 하고 있다. 안다는 것은 결국 모른다는 것이다. 진리는 밖을 향하는 것이 아니고 내 내부로 파고들어 나를 변화시킨다. 한국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고 과격하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내가 머무는 절에 와서도 몇 번이나 방화했다. 분명 무언가 기독교를 잘 못 믿고 있다. 세상에서 학자로, 실업인으로, 회사원으로, NGO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모아놓고 구약의 율법을 가르치며 교회 조직에 충성하라고 우민화(愚民化) 정책으로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고 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제자들을 훈련 시켜 세상으로 내보내 각자 맡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분의 음성을 따라 살라고 하셨다. 주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보여주신 삶의 본을 보여 주변 사람들로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가르치셨다. 교회 안에 가두어두고, 교세만 자랑하지 말고 ‘생명의 강물’로 세상으로 흘려보내야 한다. 깊이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내 친구는 미국에서 한국 전쟁이 난 6월 25일, 한국에서 LA에 기증한 ‘자유의 종’에서 시작하여 미국 독립 기념일인 7월 4일까지 캘리포니아 사막에 세운 태고사 평화의 종까지 도보로 걸으며 세계 평화와 한국의 통일을 기원하면서 걸었다. 이렇게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상에 나가 주께서 주신 소명대로 일하는 일꾼이 없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예수는 누구이고 나는 어떤 부름을 받았는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천주교 신부가 입었던 옷깃이 없는 검은 제복이 말했다.

도대체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지상에 오셨을 때는 인류의 구원만을 생각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부활 승천하여 하늘 위에서 자신이 창조한 온 우주의 구원을 생각하고 계신다. 즉 우주 만물이 에덴동산 시대로 회복되기를 바라고 계신다. 공기가 오염되고 물이 썩어가고 하늘에 구멍이 나고 있는데 기독교가 다른 종교 죽이기만 해서 대승적 견지에서 구원이 완성되겠는가? 우리 추기경이 불교방송에 나가 우리나라 국보인 팔만대장경에 호의적인 발언을 했다고 욕만 하면 되겠는가? 절에서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걸었다고 웃기는 일이라고 외면해야만 하는가? 기독교 학교에서 석탄 축하의 현수막을 걸었다고 꼭 비난해야 하는가? 목사와 승려들이 친목 축구경기를 하기로 서로 약속했는데 당일에는 목사가 교인이 무서워 배신하고 경기를 못 했다면 그것이 꼭 좋은 일인가? 서로를 아끼고 존경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물론 각 종교가 각각 오르는 길이 다를 뿐 정상에서는 같이 만난다는 뜻이 아니다. 각각 다른 신이 있는 다른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할지라도 굶주린 사람과 병든 자를 돕고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는 일에는 하나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청년이 입었던 진 바지가 말했다.

나는 무신론자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각각 주장하는 말이 일리가 있는데 잘 들어보면 그 주장들이 억지가 섞여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정당한 논리를 주장할 때 자기가 믿는 경전을 참이라고 가정하고 시작하는 일이다. 그것은 안 믿는 사람에게는 설득력이 없을 뿐 아니라 허위다. 신앙의 세계와 이성의 세계를 한 공간에서 혼돈하고 있는 꼴이다. 누가 삼단논법에서 A이면 B이다. B이면 C(‘이다’가 아니고)임을 믿는다. 고로 A이면 C이다. 라고 결론을 내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겠는가? 오늘 이 모임은 남을 탓하지 말고 “내 잘못이요.”를 말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 모임은 혈연 공동체도 아니요, 신앙 공동체도 아니요, 민족 공동체도 아니요, 이 순간은 평화를 추구하는 공동체이다. 따라서 사랑하고, 용서하고, 포용하고, 오래 참는 미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천주교 신부님은 굶주린 사람과 병든 자를 돕고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는 일에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얼님, 하나님, 하느님, 여호와 또는 어떤 비슷한 이름이 되었건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없다면 그들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교리에 저촉되지 않은 일들, 예를 들면 운동경기, 음악회 등을 다양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죽점퍼가 다시 말했다.

나는 어떤 종교와도 협력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또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다른 종교를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학, 두루미와 돼지를 뒤섞어 놓자는 이야기와 같다. 또 많은 이견을 덮고 오믈렛처럼 가짜 평화를 위장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개량 한복이 다시 말했다.

오늘 우리는 서로 모여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을 참고 용납한 것은 이 모임에 희망적인 열매를 기대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가죽점퍼는 말도 많고 독선이 심해 참으로 견제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그를 빼고 우리가 무슨 평화회담의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는가? 우리의 모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가죽점퍼의 요구를 최대한으로 수용해서 결의문이라도 하나 채택하자.

옷들은 오랜 논의 끝에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하고 회담을 끝냈다.

 

1. 우리는 각 단체가 각각 다른 이념으로 뭉쳐 있는 것을 인정한다.

2. 독선으로 다른 단체를 와해시키기 위해 소모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

3. 누가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인가를 두고 싸우지 않는다.

4. 무엇을 하든 그곳에 사랑이 없으면 광장의 소음이라는 것을 믿는다.

5. 각 단체의 이념을 저해하지 않는 활동과 교제를 최대한 지원한다.

 

너무 오랜 토론으로 어느새 새벽 동이 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는 각각 자기 옷걸이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오래 입은 옷은 아무리 잘 세탁했다 할지라도 입었던 사람의 몸에 밴 냄새는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진리는 그 냄새를 벗어버릴 수 없는 한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없고 편파적인 객관적인 진리- 혹 개인의 의견일 수밖에 없다.

가죽점퍼는 결의문에는 동의했지만 돌아서면서 불만이 가득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이를 안 믿으니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다고 말하며 그는 이 종교 비빔밥을 자기는 도저히 먹을 수 없다고 실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