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1-18 “악인의 교만한 얼굴”
10: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1. 겸손과 교만의 구별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한없이 겸손한데 속에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교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2. 반면에 거칠고 교만하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사랑에 대한 목마름으로 겸손한 사람이 있습니다.
3. 교만과 겸손을 구분하는 성경의 기준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가에 달렸습니다. 따라서 겸손한 무신론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4. 그런 구별 자체가 교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독선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기준입니다.
5.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나를 기준으로 삼는 태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느 누구건 인간이 절대적 기준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6. 사실 인간의 내면은 얼마나 연약합니까? 얼마나 추악합니까? 얼마나 교활합니까? 어느 누가 선한 얼굴입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7. 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까? 기준이 될 수 없는 기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될 기준을 이웃과 공동체에 요구하는 탓입니다.
8.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악이란 인간의 ‘자기중심성’입니다. 악인들은 자연스럽게 무신론을 주장합니다. 그래야만 참 자유라는 것입니다.
9. 그러나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신의 개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입니다. 진실로 무신론이면 논쟁하지 않습니다.
10. 없는 것을 놓고 무슨 논쟁입니까? 없는데 뭘 부인합니까? 속을 보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분노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또 교만할 뿐입니다.
11. 결과적으로 절대선을 부정함으로써 악을 자처하며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악인의 기준으로 모든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12. 결국 현 위기의 뿌리는 무신론에 닿아있습니다. 오죽하면 일부 진화론자들조차 개념적인 신관 정도는 있어야 질서가 가능하다고 속내를 드러내겠습니까? 갈수록 악인의 교만한 얼굴에 절망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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