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6:13-24 “알아주어야 할 사람”
16: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1. 사람들은 너나없이 사방을 향해 ‘나 좀 봐달라’고 몸짓합니다. ‘나 좀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안 알아줘서 많은 사람들이 속을 끓입니다.
2.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 말미에 뜻밖에 ‘이 사람들 알아 주라’고 부탁합니다. 그 사람들 자신이 알아달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3. 문제 많은 교회 이야기를 듣고 그 문제와 어떻게 씨름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준 바울이 이 사람들의 신앙을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4. 알아주라는 것이 띄워주라는 말도 아니고 자랑해주라는 말도 아닙니다. 누군가를 알고자 한다면 그를 본받아 배우려는 목적이어야 합니다.
5. 그런데 지금은 알아 달라는 사람들 대다수는 보고 또 보아도 배울 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워서는 안될 반면교사들이 대부분입니다.
6. 바울이 알아주라는 사람들은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닙니다. 스데바나는 바울이 세례를 주었던 사람으로 고린도 소식을 가져온 사람입니다.
7. 그를 알아주라는 이유는 그가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믿음에 굳게 서서 성도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8. 브드나도와 아가이오는 여기서 밖에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브드나도 이름의 뜻은 행운인데, 당시 해방된 노예둘의 흔한 이름입니다.
9. 아가이오도 ‘아가야에 속한다’는 뜻이어서 아가야에서 노예로 일하다 자유를 얻은 성도로 추측할 뿐입니다. 스데바나 권속으로 봅니다.
10. 그런데 이들이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지체 높고 목소리가 컸던 사람들이 아니라 이들이 진실한 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11. 아이가 투정하는 것은 쳐다봐 달라, 알아달라는 전형적인 행동입니다. 어른들이 불평하고 비난하는 것도 그 뿌리는 곧 ‘인정욕구’입니다.
12. 구원은 그 욕구로부터 풀려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기는 것이 불편하지 않고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섬기는 자가 사실은 선생입니다.
주님. 낮추시는 분도 높이시는 분도 주님입니다. 사람들 때문에 낮아졌다고 우울하지 않고 사람들 때문에 높아졌다고 우쭐대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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