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5:1-22 “주를 의지하는 까닭”
25: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1. 내가 당해야 할 만한 일로 당할 만한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야 받아들이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일들은 고난 축에 들지 않습니다.
2. 세상은 그런 일을 자업자득이라고 말합니다. 일차적인 원인제공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냥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요.
3. 그러나 정말 선의를 가지고 열과 성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보상은커녕 억울한 일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불의의 고난입니다.
4. 사방을 둘러보아도 내 편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사람이 없고 설혹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한들 믿어줄 사람조차 없습니다.
5. 마치 덫에 빠진 것만 같습니다. 목에 올가미가 걸린 것 같습니다.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 외에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6. 다윗은 이때 다시 ‘나의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것과 ‘나의 하나님’을 부르는 것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더 강한 느낌입니다.
7.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시편 22편의 절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를 부르짖습니다. 극한의 고통입니다.
8.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사실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수치를 겪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9. 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십니까? 왜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십니까? 왜 예배당 위에 여전히 십자가를 세웁니까? 이 이유 때문입니다.
10. 예수님이 우리가 겪어야 할 모욕 대신 수치를 겪으셨고, 예수님이 원수들을 무릎 꿇게 하시고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11. 따라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 성도가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사는 것은 결코 수치가 아닙니다.
12. 우리가 수치스러운 것은 예수님을 주인이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세상이 의지하는 것들을 의지하고 세상의 것들을 갈망하는 삶입니다.
주님. 세상은 수치를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조차 그들을 닮지 않게 도와주소서. 제발 수치를 모르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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