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목사 성경칼럼 (Facebook)

고린도후서 1:1-11 “위로받고 위로하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2. 7. 7. 13:48

고린도후서 1:1-11 “위로받고 위로하다”

1: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1. 우리가 이유를 모른 채 받는 호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사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이 이유 없이 베풀어주시는 호의를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은혜의 이유입니다.

3.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성품이야말로 어떤 이유보다 분명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고난은 어떻습니까?

4.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채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와 관련된 일로 받는 고난이라면 어떤 것보다 분명합니다.

5. 사도 바울이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 고난의 이유와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은 여러분의 위로와 구원 때문입니다.”

6. 바울은 자신의 고난이 십자가의 고난과 불가분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7. 그러나 그는 고난 받을 때마다 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위로의 의미도 분명합니다. “우리의 위로도 여러분의 위로를 위함입니다.”

8. 그렇다면 고난과 위로의 공식이 분명해집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위로에서 흐르는 구원의 섭리가 거스를 수 없는 큰 물줄기가 됩니다.

9. 구원의 역사가 흘러가는 곳마다 고난과 위로가 함께 흐릅니다. 사도들의 고난은 성도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위로로 고난을 이깁니다.

10. 이번에는 고난을 이긴 성도들의 위로가 뒤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이 겪는 고난에 주어지는 위로가 됩니다. 고난과 위로의 순환입니다.

11. 악순환이 아니라 선순환입니다. 그리하여 고난이 있는 곳마다 위로가 있습니다. 고난이 클수록 신기하게도 더 큰 위로를 경험합니다.

12. 바울은 그러나 고난과 위로의 선순환이 구원의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는 까닭은 곧 성도들이 합심해서 드리는 기도 때문임을 밝힙니다.

주님. 성령님이 위로의 영이시기에 저희가 욱여쌈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클수록 더 큰 위로를 부어주시기에 또 새 힘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