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30) 2) 바울의 신앙경주③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4:22

" 바울의 신앙경주③"

빌립보서 3장 12~16절
석원태 목사


  3) 바울의 신앙경주(2)(빌 3:12-16)

  첫째, 바울의 신앙 경주는 그 주체가 그리스도 예수였다.

  둘째, 바울의 신앙 경주는 미래지향적이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했고, 13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라고 했고, 14절 하반절에 「좇아가노라」고 했다.
  신앙 경주는 결코 멈춤이 없는 전진만 있을 따름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① 결코 현재에 머물고 있어서는 안된다. ‘얻었다 함도 아니고’,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했다. 또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라고 했다. 그의 신앙 경주는 미완성의 현재임을 말하고 있다.
  ② 또한 과거에 집착해도 안된다고 했다. 빌립보서 3장 13절에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라고 하였다. 그는 과거의 업적(오직 한 일)들,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린다고 하였다.
  이 본문이 말하는 바울의 과거적 업적은 그가 유대교의 아들로 있을 때의 업적들을 말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된 후 주를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한 십자가의 수고들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결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쌓아 올린 복음 사역의 빛나는 업적들을 자기의 남은 신앙 경주를 중단시킬 이유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모든 크리스천들에게는 실로 지난 날의 충성의 업적들이 많이 쌓여 있다. 그러나 그 과거의 업적이 현재의 신앙 전진을 막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과거의 신앙 업적은 크신 주님의 축복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큰 감사의 힘이 된다. 오히려 그 큰 감사의 힘은 오늘의 신앙 전진에 기폭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결코 과거의 신앙 업적을 자랑만하고, 회상만 하면 안된다. 그것을 감사의 힘으로 만들어 현재의 전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고기 가마를 회상하다가 가나안 진군에 타격을 받았다(출 16:3). 결코 우리의 신앙 경주는 소망을 과거에 두지 아니 한다.
  뿐 아니라 사람이 과거에 잘못한 것만 생각하여 현재의 신앙 전진을 방해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회개하지 않고 용서받지 못한 증거가 된다. 과거의 실수와 범죄를 회개하면 그것이 곧 현재의 신앙 전진에 새 힘이 되는 것이다. 회개만 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용서하시고, 재기와 재생의 힘을 주신다.
  그래서 미가서 7장 18-19절에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라고 했다.
  이사야서 1장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과거의 좋은 업적을 크게 감사하고, 과거의 모든 허물들은 회개함으로 그것을 현재의 신앙 전진에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 바로 과거의 공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과거의 허물은 회개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의 신앙 전진에 힘이 된다. 달리는 경주자가 뒤를 돌아보는 것은 바로 패인이 된다. 그러므로 과거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③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 3:13) 좇아가야 한다(빌 3:14). 앞에 있는 것이란 결승점이다. 경주자에게는 앞에 있는 결승 테이프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야 한다. 코로는 산소를 마시고, 머리는 앞을 향하고, 몸은 굽히고, 골인 지점을 향하여 전력 질주하는 것이다. 여기 ‘좇아간다’는 말은 결승점을 향해 달려 거의 쓰러지게 된 경주자의 최후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금년(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 대회에서도 모든 육상 경기자들이 최후 결승점 앞에서 몸을 아예 던져버렸다. 바로 그런 상태를 말한다. 무슨 일에든지 성공과 축복의 비결은 앞에 있는 자기 목표를 향하여 좇아가는 자기 전력 투구에 있다.

  셋째, 바울의 신앙 경주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

  빌립보서 3장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다.
  좇아가는 신앙 경주는 확실한 푯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 푯대, ‘스코포스’(skopo,j)는 신약에서 여기만 나오는 것인데, 고전어에서는 사적(射的, 사격의 목표물), 또는 도덕적, 지적 목표를 뜻한다. 경주장의 결승점을 말한다(히 12:1, 2, 고전 9:14). 그리스도인의 푯대는 ‘하늘’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장차 받을 상급’이다. 교부 익나티우스(Ignatius)는 ‘성도의 상급이란, 그들이 받을 썩지 않을 면류관’(딤후 4:8)이라고 했다.
  그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주어지는 의의 면류관이다(딤후 4:7).
  존 파운즈(John Pounds)는 구두 수선공으로 번 돈으로 수백 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즐거움에 살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세상이 몰라주는 선행이었다. 그는 하늘나라의 상급을 즐거워했다.
  교부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달리는 자는 관중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그들을 돌아봐서는 안 된다. 오직 푯대만을 향하여 달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1-2절에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다.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은 실로 대단했다. ‘하나의 꿈’, ‘하나의 세계’란 주제는 실로 의미하는 바가 크고,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었다. 중화주의 사상의 세계 정복의 야망을 비쳐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적으로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제시한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나라 통치에 도전하는 슬로건이었다.
  어쨌든 세계적인 축제였다. 특별히 우리나라가 금 13개를 획득하므로 세계 올림픽에 참여한 이래 최고의 결과를 기록했다. 은·동메달을 다 합치면 31개였다. 204개국 1만여 명의 선수들이 정말 감동의 드라마를 기록했던 세계적인 축제였다.
  우리 선수들은 이러한 결과를 나타내어 세계 7위의 성적을 획득했다.
  그 결과 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물론이요, 우리 모두가 기뻐했다. 귀국 후 선수들은 정말 국민적인 환영을 받고, 대통령의 만찬 환영을 위시하여 각계각층의 축하를 받았으며, 저들을 격려하는 포상금이 주어졌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었다. 2012년에 개최국으로 지목된 영국은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의 환영을 대대적으로 벌임으로써 올림픽 개최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모든 선수들에게는 예외 없이 목표를 향한 결사적인 훈련이 있었다. 저들에게는 확실한 푯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금메달 획득’이란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로 크리스천의 신앙 경주에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얻기 위하여 좇아가는 것이다. 그 상급은 금세에서는 축복이고, 내세에서 받는 상급이다. 그것은 착하고 충성된 종들에게 주어지는 극치의 보상이다.

  넷째, 바울의 신앙 경주는 결코 완전주의는 아니었다.

  빌립보서 3장 15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고 했다.
  여기 ‘온전히 이룬 자들’이란, ‘성숙한 신자들’을 뜻한다. 킹 제임스 역본(The King James Version)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번역했다. 이른바 완전주의자들을 지목했다. 빌립보 교회 안에는 ‘신앙에 있어서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결코 이 세상에서 완전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무슨 일에든지 달리 생각지 말고, 앞에서 말한 달리고 있는 경주자의 자세를 견지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다시 너희에게 경고하고 책망하실 것이라고 했다. 여기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빌 3:15)고 함은 거짓 교사 뿐 아니라 ‘완전주의자들’도 경계의 대상이 된다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하는 교훈이 된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16절에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에서의 신앙 경주는 그 어디에 결승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신앙의 성숙은 성화와 정비례하나, 신앙의 완전은 영화와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의 신앙 경주는 신앙의 전진을 말하고 있다. 그 경주는 그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에게 붙잡혀 달리는 것이다. 그 경주는 미래지향적이고, 확실한 목표인 푯대 곧 상급이 있다. 그럼에도 결코 이 세상에서는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 ‘온전을 향하여 계속 질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16절에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고 결론지음으로 신앙의 경주에는 이 세상에서 결코 완전주의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