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창세기 강해(29) 아브람에게 재확인되는 언약②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03


4. 아브람에게 재확인되는 언약(창 15:1-21)

창세기 12장부터 14장까지는 아브람의 생애의 제1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부르심을 받아 고향을 떠나고 가나안 영역에 거하게 된다. 그 후 가나안의 기근을 이기지 못하여 애굽으로 내려가는 연약을 보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오게 된다.
가나안으로 올라와 조카 롯과 이별을 한 아브람은 헤브론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재확인 받는다. 얼마 후 조카 롯 때문에 예기치 못한 전쟁을 치름으로 새로운 성화체험의 단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그의 생애의 제1기는 끝맺게 된다.
본문인 창세기 15장은 아브람 생애의 제2기에 접어드는 때라고 할 수 있다. 75세 때 부름을 받았고(창 12:4), 85세 때 하갈을 취했고(창 16:3), 86세 때 이스마엘이 출생했다는(창 16:16) 성경을 볼 때, 15장에 나타나는 아브람의 나이는 아직 85세 이전이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세 번째로 확인해 주시는 언약의 보증을 보게 된다. 첫 번째 언약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실 때였고(창 12:1-3), 두 번 째 언약은 조카 롯과 헤어진 후에(창 13:14-17) 하나님이 그를 다시 찾아와서 헤브론 동맹의 사인을 주셨다. 세 번째 언약의 확인이 여기에 나타난다. 15장 1-6절에 후사(씨)에 대한 재보장, 15장 7절과 18-21절에 가나안 땅 곧 기업에 대한 언약의 보장, 15장 8-17절에 언약에 대한 보증(제단의 제물)이 나타난다.

1) 후사(씨)에 대한 언약의 재보장(창 15:1-6)
(1) 언제 재확인된 언약인가?
창세기 15장 1절에 「이 후에…」라고 하였다.
시간적 표현이지만 사실상 아브람 생애에 새로운 전환기를 암시하고 있는 말이다. 그것은 ① 조카 롯을 구출한 이후였다. ② 조카 롯을 잡아갔던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의 후환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③ 늙도록 자식이 없었으므로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하나님은 아브람 생애의 중요한 시기마다 그의 인생 한가운데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2) 누가 누구에게 재확인한 언약인가?
언약의 당사자는 하나님이시다. 창세기 15장 1절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라고 하였다.
여기 ‘이상’은 ‘비전’ 곧 ‘환상’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이상 중에 사람을 찾아오실 때 잠자는 중에나, 아니면 외부적인 지각과 함께 관계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아브람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이상이 밤중에 잠자는 중이었는지, 외적인 지각 작용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5절에 나타난 장면을 볼 때 밤에 본 환상인 것 같다. 사울에게는 다메섹 도상에서 외적인 지각 중에 환상으로 계시되었고(행 9장), 사무엘은 잠자던 중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계시를 받았다(삼상 3장). 이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인간에게 자기를 게시하는 사실상 초자연적 역사이다.
(3) 어떤 하나님으로 나타났던가?
① 안전과 평강의 하나님으로 나타났다.
창세기 15장 1절에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고 하였다.
지금 아브람의 상태는 전쟁을 치른 후였다. 그리고 무자(無子)함으로 인한 어떤 고독(?) 속에 있을 때였다. 아브람의 경우 영육의 기력이 약해져 있었던 경우인 것 같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 아브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공포에 싸여 있는 상태였던 것 같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때 하나님이 그에게 안전과 평강의 주님으로 찾아오셨다. 그리고 「너는 두려워 말라…」고 하신 것이었다. 조카 롯을 구원하는 전쟁 중에 찾아오신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이셨다(창 14:22).
② 아브람의 방패이신 하나님으로 나타났다.
창세기 15장 1절에 「나는 너의 방패요…」라고 하였다.
여기 ‘방패’란 ‘덮어줌’이라는 뜻이다. 곧 ‘하나님의 보호’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이는 하나님 자신께서 친히 아브람을 책임지는 궁극적 보호자임을 자처하시는 말이다. 여기에 아브람의 소망이 있고, 미래가 있고, 살맛을 느끼게 하는 생미(生味)가 있는 것이다.
③ 아브람의 지극히 큰 상급이신 하나님으로 나타났다.
창세기 15장 1절에 다시 말하기를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였다.
여기 ‘상급’이란 ‘갚아 줌’이라는 뜻이다. 이는 물질적 보상을 의미하고 있다. 그는 앞서 조카 롯에게 기름진 땅을 양보하였다. 전쟁 승리 후에도 그는 전리품을 모두 소돔 왕에게 되돌려주고, 자신이 전쟁을 치르는데 소용된 전비(戰費)조차 계산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에게 하나님은 상급(갚아줌)을 약속하신다.
그렇다면 ‘두려워 말라’는 말씀은 아브람의 정신적, 영적 상태에 해당되는 메시지이다. ‘방패’는 아브람의 육신적 신상에 관한 메시지이다. ‘상급’이란 말은 물질적 축복의 보상에 관계되는 메시지가 된다.
이는 하나님 편에서 아브람을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강력한 맹세의 의지이다. 여기에 타율주의 종교의 특색이 있고, 활로가 있는 것이다. 완전히 아브람을 책임진다는 하나님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경우 아브람에게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고, 사랑할 수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4) 재확인된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아브람에게 후사를 주시겠다는 언약이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아브람의 인생됨과 연약을 또 보게 된다. 창세기 15장 2절에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라고 하였다. 3절에도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종의 몸에서 태어날 자를 가리킨다.
엘리에셀은 다메섹 출신의 사람으로 아브람 가정의 신실한 청지기였다(창 24:2-9). 고대 사회에서 후사가 없을 경우 그 주인의 재산을 충실한 종에게 양도하는 풍습이 있었다.
아브람은 앞서서 두 번이나 약속된(창 12:1-3, 13:14-17)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앙 하고 의심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말하기를 ‘나는 무자하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상속자에 대해서 궁금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몸에서 난 상속자를 포기하면서까지 자기의 상속자는 다메섹 엘리에셀이라고 하나님께 항변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러한 아브람의 모습에서 그의 신앙생활이 일진(一進), 일퇴(一退)함을 볼 수 있다. 13장에서의 조카 롯과 나누어짐에 있어서나 14장에서의 전쟁과 그 전쟁 후에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참으로 높은 그의 신앙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승리 후에, 축복받은 후에 그의 연약을 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인생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브람은 약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이나 목적이나 언약은 결코 약하지 아니했다. 오히려 아브람이 약할수록 더 강하게 나타났다.
창세기 15장 4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하였다. 이렇게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언약)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라고 하였다. 이는 아브람의 의심과 불안을 깨뜨려 주기 위함이었다.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변할 수 없음을 숙지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가능한 미래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미 창세기 12장 2절과 13장 16절에서 아브람에게 예고된 약속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재확인은 흔들리는 아브람, 동요하고 있는 아브람, 의심하고 있는 아브람을 다시 정돈하고, 안돈시키고, 미래를 확신하게 하는 힘이 된 것이다.
(5) 재확인된 언약에 대한 보증(창 15:5)
창세기 15장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였다.
그래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브람이 석연치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이런 경우 아브람은 수동적이고 피동적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늘을 우러러 보라고 하였다. 뭇 별들을 보라고 하였다. 그것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자기 언약을 확신시켜 주기 위한 하나님의 실물 교훈이요 또 보증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동원하여 보증으로 삼은 것이다.
그것은 권능의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① 창조의 권능 ② 통치의 권능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을 아브람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③ 그리고 무수한 아브람의 자손, 별같이 빛나는 아브람의 자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는 아브람의 무수한 영적 자손을 예언하는 약속이 된다(롬 4:12, 16). 이렇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실물로 교수하셨다.
(6) 언약에 따른 아브람의 믿음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였다.
다시 한번 아브람은 성화의 단계로 진보하게 된다. 하나님은 기어이 아브람에게 승복을 받아냈다.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 자신의 끈질긴 역사의 결과였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라고 하였는데, 여기 ‘믿다’라는 말 ‘아만’(@m'a;)은 바로 ‘아멘’의 어근이다. ‘아멘’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굳게 확신한다’라는 뜻이다.
① 창세기 15장 6절의 말씀은 몇 가지 그 믿음의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로, 아브람이 여호와 자신을 믿었다는 말이다.
두려워 말라고 하시던 평강의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이다. 아브람의 방패이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이다. 아브람의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이다(창 15:1). 자신을 아브람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실존 자체를 믿었다는 뜻이다.
둘째로,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는 뜻이다.
아브람의 믿음은 하나님 자신으로 말미암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인 말씀으로 말미암았다. 창세기 15장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라고 하였다. 4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라고 하였다.
아브람은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 믿음이 생긴 것이다. 다메섹 도상의 사울도 예수의 음성을 듣고 녹아지고 깨어져서 믿음이 생긴 것이다(행 9:4).
그 음성이 기록하신 말씀으로 우리에게 왔다. 그래서 이 성경은 아브람을 위시한 수많은 선진들이 들은 하나님의 음성인 것이다. 공중에 나타난 음성은 그 시간에 한번 들려오고 사라졌으나, 그 음성의 내용을 기록한 성경은 수천 년을 두고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문서는 정확하고 오래가고 힘이 있고 권위가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상거래 행위에 있어서도 말보다는 기록이 유력한 경우를 얼마든지 본다. 예컨대 채권자는 돈을 빌려주고, 채무자는 그 돈을 언제 얼마의 이자와 함께 원금을 갚겠다고 약속한다. 그것을 말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차용증서를 주고받음으로 만족한다. 후일에는 당시에 주고받은 말보다는 그 기록문서가 상대방에게 모든 말을 대신하는 힘을 가진다. 이렇게 서로의 음성을 기록해둔 문서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다. 여기 ‘들음’이란 하늘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을 기록한 그 말씀을 듣는다는 뜻이다. 그 음성을 기록한 주체 역시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 음성을 기록한 말씀(성경)을 들음이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똑같은 효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 아닌가?
셋째로, 그 말씀의 미래적 약속까지를 믿는다는 뜻이다.
지금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자기의 자손들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셀 수 없이 많아지리라는 내용의 말씀을 들었다. 그때 아브람이 이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고 하였다.
그는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즉 자신의 육신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셀 수 없이 많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계획하신 장래 모든 시대의 그의 영적 자손을 망라하고 하신 내용으로 받고 믿은 것이다. 15장 5-6절은 바로 오늘 우리 시대를 위한 예언이었다.
그렇다면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운동 시대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구약시대 아브람도 그리스도 시대의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하였다.
② 그리고 아브람의 믿음의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라고 하였다.
여기에 ‘의’, ‘체다카’(hq;d;x])는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사실상 무죄상태의 인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범죄 이후에 모든 인간에게는 의(義)가 전무했다(롬 3:10). 그러므로 인간의 의는 하나님의 칭의에 의해 성립되었다. 예수의 구속운동에 의해 성립된 의이다(롬 3;23).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의가 우리 것이 되어진 것이다. 그것은 믿음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아브람은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보내어 주신 하나님의 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 본문에 ‘여기시고’라는 말 ‘하솨브’(bv;h;)는 헬라어로 ‘로기조마이’(logivzomai)로 번역되었다. ‘전가하다’, ‘인정하다’라는 뜻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런 것으로 간주해 주다’라는 뜻이다. 바로 여기에 예수의 구속 은총의 공로가 개입된 것이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였다.
아브람은 실제로 의롭지 않지만은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 들어있는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브람은 신약에 나타날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의로 여기셨다’는 말은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의로 간주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하여 로마서 4장 5절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하였다.
(7) 결론적 교훈
①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 언약의 재확인은 성화의 촉진이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내용의 초점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성화과정에 다시 그에게 약속된 언약을 재확인 시켜주고, 동요하고 있던 그의 믿음을 확신시켜 주는 사실을 보게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약속한 축복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
② 타율주의 종교, 곧 계시종교는 하나님 편에서 인생을 찾아오신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인생은 언제나 언약 안에 있으면서도 약하여지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언약 안에 있는 인간을 찾아오신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信), 망(望), 애(愛)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의 언약 그 자체는 언제나 완전하고, 풍성하고, 불변 부동이기 때문이다.
③ 하나님의 언약은 미래적 약속이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항상 미래가 확실하다. 아브람에게 재확인된 언약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셀 수 없이 무수한 자손’에 관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고 살 수 있게 된다. 어두운 데서 밝은 빛을 보고 나아가게 된다. 여기에서 저기로, 육에서 영으로, 세상에서 하늘로 향하는 미래적 소망의 걸음이다.

2) 가나안 땅 곧 기업에 대한 언약의 재보장(창 15:8-21)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아오셨을 때, 절대로 공수로 오지 않으셨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가지고 오시지도 않으셨다. 이미 그를 소명하셨을 때 약속한 것들을 재확인하고, 재설명해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처음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언약이 너무 완전하고 확실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15장 7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고 하였다.
이 땅의 기업에 대한 언약은 이미 그에게 약속한 것에 대한 재확인이었다. 그것은 물질적 자원에 대한 축복이었다. 창세기 15장 18-21절에는 아브람이 언약으로 받은 땅의 지경을 설명하고 있다. 저 나일강에서 유브라데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판도였다. 이것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와서 성취되었다(대상 13:5, 왕상 8:65). 그리고 여로보암 2세 때 가서 동편의 판도만 성취되었다(왕하 14:25).
그리고 창세기 19-21절에서 아브람 자손의 기업이 될 가나안의 원주민 10부족을 소개하고 있다.
중대한 교훈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기업의 땅을 재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후손에 대한 언약, 자손과 기업 곧 땅에 대한 축복 언약의 재확인이었다.

3) 언약에 대한 보증 - 횃불언약의 체결(창 15:17-18)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후손에 대한 언약을 재확인할 때가 시간적으로 밤이었다(창 15:1-6). 그리고 기업의 땅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할 때는 낮이었다(창 15:7-11). 그리고 다시 그 언약에 대한 보증을 받을 때는 밤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창 15:12-21).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러한 언약을 재보증할 때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였다(창 15:6). 하나님은 이를 의로 여기셨다고 하였다. 그 다음에 기업의 땅을 다시 재확인해 줄 때 아브람은 하나님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창 15:8)라고 질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아브람의 질문을 두고, 그가 또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는 연약에 빠졌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가 믿은 믿음에 대한 증거를 하나님께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사사시대에 기드온도 한 바 있다.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삿 6:17)라고 하였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여호와 살롬의 표징(삿 6:24), 여룹바알의 표징(삿 6:32), 양털을 적신 이슬의 표징(삿 6:36-40)을 가지고 응답해준바 있다. 그 결과 기드온은 미디안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원한바 있다.
그래서 칼빈은 이것을 ‘의심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의 증거’라고 하였다. 마틴 루터는 ‘허락의 확증을 바라는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어거스틴과 케일은 말하기를 ‘그의 믿음의 증진을 위한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1) 이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 언약 성취의 보증을 위하여 몇 가지 지시를 하고 있다.
①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을 잡아 그 중간을 쪼개어 마주 대하여 놓으라고 하였다(창 15:9).
②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각각 마주 대하여 놓으라고 하였다(창 15:9). 새들은 쪼개지 않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마주 대하여 놓았다(창 15:10). 아마 너무 작아서 쪼갤 수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상대로 하신 계약체결의 의식이다. 쪼개어진 고기를 마주 대하여 놓음으로 계약을 불이행할 시에 이처럼 쪼개고 말 것이라고 하는 엄숙한 서약이행을 내포하고 있는 의식이다. 여기 ‘쪼갠다’는 말 자체가 언약(베리트,tyriB?)이란 말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준행하였다(창 15:10). 그때는 이미 해가 져서 어둠이 들기 시작했고, 그 순간 하나님은 아브람을 깊이 잠들게 해버렸다(창 15:12). 그는 깊이 잠들어버린 상태에서 캄캄함이 임하므로 두려움을 느끼는데, 그 순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메시지를 주신다.

(2) 횃불 언약시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다시 주신 메시지
① 아브람 자손의 미래에 대한 메시지였다.
첫째, 장차 아브람 자손이 400년 동안 애굽 땅에서 이방의 객이 되어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창 15:13). 실제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고난을 받았는데(출 12:40, 갈 3:17), 여기서는 그 대략을 설명한 것이다.
둘째, 그러나 하나님이 애굽을 열 가지 재앙으로 징치한 후에 아브람의 자손들이 다시 해방을 받아 많은 축복 속에서 승리의 출애굽을 할 것이라고 하는 예언적 메시지였다(창 15:14).
셋째, 다시 본문 창세기 15장 16절에 보면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라고 하였다. 아브람이 100세 때 아들을 낳은 것을 표준하여 400년 간을 4대라고 표현한 것 같다. 이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고난의 기간을 말하고 있다.
② 아브람 개인에 관한 메시지였다.
창세기 15장 15절에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라고 하였다. 이 말은 아브람 자신은 그 자손들의 세계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아브람은 더 좋은 영혼의 고향 곧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영적이다. 아브람의 조상들은 가나안 땅에 묻힌 일이 없다. 아브람 자신이 가나안에 처음으로 묻혔기 때문이다(창 25:9-10). 그는 가나안에 처음 묻히는 조상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람의 자손에 대한 미래적 비전을 예시해 줌으로, 아브람이 미래를 바라보고 내일(來日) 속에서 살게 하였다.
이러한 메시지는 지금 아브람과 하나님 사이에 횃불언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제단 위에 제물을 쪼개어 놓고 하나님의 자기 응답으로서의 보증의 사인(sign) 곧 횃불이 임하기 전에 아브람을 깊이 잠들게 해 놓고 주신 미래적 메시지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그 메시지가 끝났을 때는 해가 져서 어두울 때였다. 갑자기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창 15:17)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 풀무라는 말 ‘타누르’(rWNT')는 일종의 불을 담기 위해 만든 둥근 형태의 항아리를 말한다. 일종의 화로이다. 이 풀무에 연기가 난다는 것은 지극한 고난의 상징이었다. 또 ‘타는 횃불‘이 나타났다. 연기나는 풀무에 나타난 불이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의 임재와 보호, 인도를 말하고 있다. 동시에 악도들에 대한 진노의 심판을 나타내는 불이기도 하다.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창 15:17)고 하였다. 이는 아브람과 맺은 언약 곧 후사와 기업의 땅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가시적 보증으로 나타난 사인이다. 이는 아브람과 하나님 사이에 서로 맺은 쌍무계약이 아닌 일방적 계약(편무계약; 片務契約)임을 알려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아브람의 신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걸고 친히 주도적으로 그 계약을 성취시켜 나가시겠다고 하는 행동적 입증인 것이다.
하늘의 별 같은 무수한 자손, 땅의 티끌 같고 바닷가의 모래알 같은 그 아브람의 자손 그리고 그 자손들이 받은 기업에 대한 약속성취를 하나님 자신 편에서 일방적으로 주도하며 성취해나가겠다는 징표였다.
그 횃불은 타고 있는 불, 살아있는 불, 재물을 태우는 불, 쪼개어진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불, 초자연적인 불이었다. 곧 하나님 자신의 임재의 한 형태였다. 캄캄한 밤중에 연기나는 풀무 가운데 타는 횃불이 나타나서 그 쪼개어진 고기 사이로 이동하여 지나감으로, 그 불을 받은 제물은 모조리 태움을 받았다. 곧 응답을 받고 만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횃불언약의 체결이었다.
그 후에 다시 하나님은 아브람과 그 후손들이 받을 기업의 영역을 재확인해 줌으로 아브람의 믿음을 성화시켜 주고 말았다. 이러한 본문에서 우리는 횃불 언약의 특성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3) 횃불 언약의 특성
① 타율주의적 주권언약이었다(창 15:9).
곧 하나님 편에서 나타내신 언약의 체결이다. 하나님 편에서 아브람에게 언약체결에 필요한 준비 곧 제물을 지시하였다. 연기 나는 풀무에 나타난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감은 바로 언약성취의 주권적 당사자가 하나님 자신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창 15:17)
② 선택적 언약이었다.
하나님 편에서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이다(창 15:9). 그 아브람을 하나님 편에서 부르셨고, 그에게 축복의 언약을 약속하였다(창 12:2-3, 13:14-18, 15:1-7). 하나님은 자신 편에서 언약을 체결하고, 진행하고, 성취하셨다. 모든 것이 온전히 하나님 주권적이다. 여기에 선택받은 자들의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 것이다.
③ 피로 맺은 희생의 약정이다(창 15:9-10).
곧 죽음을 두고 맹세된 약정이었다. 여기에 아브람이 받은 언약성취의 보증이 되기 위하여, 3년 된 암소와 3년 된 암염소와 3년 된 수양이 쪼개어져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리는 희생이 매개되었다. ‘3년’의 ‘3’은 완전과 거룩을 상징하는 수이다. 바로 이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리에게 약속된 구속언약의 성취와 보증을 위하여 대신 십자가 위에서 희생의 피를 흘리신 구속언약에 대한 예표가 되는 것이다(요 1:29, 벧전 1:19).
④ 선민 구원계시였다.
‘연기 나는 풀무’는 장차 애굽에서 고난 당할 선민의 고난을 상징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풀무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다」(신 4:20)라고 하였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사 48:10)고 하였다.
그 고난의 연기 나는 풀무 속에 타는 횃불이 솟아났다. 이 타는 횃불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에게 친히 나타내시는 자신의 초자연적 구원을 계시하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친히 고난의 현장에 임재하사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인도해 가실 사실을 가리킨다. 그것이 바로 저 광야 구원여로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 구름기둥, 불기둥의 정체였다.
출애굽기 13장 21-22절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행하는 길에서 이것을 친히 보았다고 하였다(출 40:38). 광야 40년의 저들 행로는 100% 이 구름기둥, 불기둥에 의해서 좌우되었다. 낮에는 그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었다.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행진이 시작되었고, 구름이 떠오르지 아니할 때는 발행하지 아니했다고 하였다(출 40:34-37). 성경은 이 구름을 가리켜 ‘여호와의 구름’, ‘여호와의 불‘이라고 하였다.
참 신기한 하나님 자신의 초자연적 거동이었다. 바로 신약에 나타내실 ‘구원의 불‘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예표였다. 타는 횃불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곧 연기 나는 풀무에서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다.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 자신께서 계약체결의 결성자로서 홀로 책임을 지고 나간다는 뜻이 아닌가?
⑤ 횃불언약에 수반되는 요구는 믿음이었다.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횃불언약의 표징을 주신 것은 아브람의 믿음에 대한 보증으로 주신 것이다.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였다. 그 후 아브람은 그 믿음에 대한 보증을 요구하였다(창 15:8). 그 요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횃불이었다. 그 결과 아브람의 믿음은 더 강화되고 성화된 것이다.
⑥ 이 언약은 아브람만 위함이 아니고 그의 후손인 우리를 위한 언약이었다.
로마서 4장 23-24절에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고 하였다.
아브람은 쪼갠 고기 사이로 나타난 하나님의 횃불을 보고 믿었지만, 오늘 우리는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쪼개어 친히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성취의 확증(요 19:30)을 받고 믿게 되었으니 이것은 은혜 위에 은혜의 축복이 아닌가!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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