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창세기 강해(32) 재확인되는 하나님의 언약과 보증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06

6. 재확인되는 하나님의 언약과 보증 - 개명과 할례(창 17:1-27)

창세기 17장은 아브람의 일생에 있어서 중대하고 획기적인 전환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아브람이 99세 때, 사래가 89세 때 일어난 일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미 그에게 약속된 언약을 재확인해 주시고 그 보증으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개명해 주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할례를 명하셨고, 아브람이 할례를 시행했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세 번째로 언약을 확인시킬 때 아브람이 이를 믿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신 바 있다(창 15:6). 그 보증으로 쪼갠 고기 사이로 타는 횃불이 통과하는 횃불 언약의 보증을 주신 바가 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1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그 언약신앙에 대한 연약으로 애굽에서 데려온 여종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는 실수를 범했다. 그러나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시종여일하게 살아있었고 유효하였다.

1) 다시 확인되는 하나님의 언약
아브람에게 재확인되는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람이 99세 되는 때라고 하였다(창 17:1). 이스마엘이 출생한지 13년이 경과하였고, 그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면서 받은 약속의 때로부터 24년이 지난 시점이다. 아브람과 사래가 노쇠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기록이다.
(1) 아브람에게 언약을 재확인시켜 주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났다.
창세기 17장 1절에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였다.
여기 하나님은 ‘엘 솨다이’(yD'v laE')이다. 엘(laE')은 ‘능력있는 하나님’을 뜻하고, 솨다이(yD'v)는 ‘전능자’를 의미한다.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극히 강한 자’를 뜻함이다. 말하자면 ‘절대자’로 나타나신 것이다. ‘절대자’란 ‘대립되거나 비교될 수 없는 존재, 아무 것에도 제약받음이 없고 의존하지도 않고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존재’를 뜻한다. 의지의 자유, 의지 적용의 자유, 의지 성취의 자유이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창세기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예컨대 이삭이 야곱의 장래를 약속해 줄 때(창 28:4)나,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왔을 때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이었다(창 35:11).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의 강자로 나타났다. 또 야곱이 애굽에 곡물을 사러 아들들을 두 번째 보낼 때 베냐민까지 함께 딸려 보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 43:14)고 한 경우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임종을 앞둔 야곱에게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문병을 갔을 때, 그 아비 야곱이 옛날에 자신이 루스에서 만난 하나님을 간증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났다고 하였다(창 48:3).
이런 경우는 모두가 인간편이 약하거나 위태롭거나 결정적인 도움이나 간절한 소원이 필요할 때 나타나신 하나님이었다.
지금 99세가 되어버린 아브람, 노쇠한 아브람, 죽은 자와 방불케 된 아브람, 자식의 생산이란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사라로부터의 자식의 생산을 포기할 시기에 이른 아브람에게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남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브람과 사래의 육체는 약하고 또 믿음도 약할 때였다. 이때 하나님은 전능한 자로 나타났다. 여기에 아브람의 소망이 있고, 미래가 있고, 재기가 있다. 바로 오늘의 아브라함의 자손된 우리에게도 모든 경우에 마찬가지이다.
(2) 재확인된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가?
창세기 17장 2절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라고 하였다. 4절에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라고 하였다. 7절에도 ‘언약’이라고 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 말들은 ‘언약을 둔다’, ‘언약을 준다’라는 뜻이다. 이때 아브람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경외와 예배와 순종의 표시였다.
어떤 언약인가?
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열국의 아비가 된다고 하셨다.
창세기 17장 4절에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고 하였다. 6절에는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고 하였다. 17장 2절에서도 이미 자손번성의 축복을 확인하였다.
‘열국의 아비’란 육적으로 이스라엘인, 이스마엘인, 에돔인 등의 아비가 된다는 말이다. 영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아비가 된다는 말이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하였다.
자손의 번성을 하나님의 큰 축복으로 말하고 있다.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창 17:6)고 하였다.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왕국으로 발전되며, 그 자손에서 다윗과 솔로몬 같은 왕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것은 영적 의미로 저들 자손 중에서 머리가 되는 종교(구원)의 축복이 포함된다.
이 축복의 예언은 이스마엘에 대한 예언과 차이가 있다. 열왕의 축복은 이스라엘 왕자를 가리킨다. 이스마엘 자손에게서는 ‘방백’이 나오고(창 17:20), 에서로 이어지는 에돔인에게는 족장이 나온다고 하였다(창 36:40).
더 나아가 창세기 17장 16-19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때가 되어 얻을 아들을 예언하고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로부터 1년 이후에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이며 예언이었다.
② 땅(기업)에 대한 약속이다.
창세기 17장 8절에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였다.
자손의 번영과 더불어 지경 곧 국토의 축복을 아울러 약속하였다. 이러한 축복은 처음도 아니고, 새것도 아니고, 변경되어 수정하거나 보완된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약속된 언약의 재확인이다(창 12:2-3, 7, 13:15-18, 15:18-21).
③ 하나님 자신은 아브람과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하였다.
창세기 17장 8절 하반절에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였다.
실로 놀라운 장면이다. 오늘 본문은 아브람에게 네 번째로 나타내신 하나님 자신의 언약의 확인이다. 그런데 이 언약확인의 서두에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마지막에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한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 아브람과 그 후손들이 들어있다. 알파와 오메가 속에 아브람과 그 자손이 받을 축복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시작도 하나님, 약속 실현도 하나님, 그 마침도 하나님 자신이시다.
참으로 인류와 역사는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감이다(롬 11:36). 그러므로 세세토록 영광이 그에게만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는 하나님 자신의 약속 선언은 첫째, 그는 세세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뜻이다. 둘째, 그 언약의 영원성, 불변성, 확실성, 성취성, 만족성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그 백성들이 받을 영생의 기업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영생이시다(요 14:6). 그리고 영생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소유한 자는 영생을 소유하는 것이 된다.
여기에 아브람은 엎드렸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요구는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것이었다.

2) 언약 확인에 따르는 두 보증
(1) 첫 번째 보증이 개명(改名)이다.
창세기 17장 5절에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고 하였다.
아브람(!r;b]a')은 ‘높은 아버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이다. 다신교와 우상숭배 세계 속에서의 이름이었다. 육을 중심으로한 이 세상적인 욕망의 이름이었다.
아브라함(!h;r;b]a')은 ‘열국의 아버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새 세계의 조상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17장 15절에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고 하였다.
사래(yr'c;)는 ‘공주’, ‘여주인’이라는 뜻이다. 사라(hr;c;)는 ‘열국의 어미’라는 뜻으로 역시 ‘왕들의 어미’를 뜻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가 된다는 것이었다. 실로 엄청난 축복의 보증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증적 언약의 의미가 무엇인가?
① 적자(이삭) 약속에 대한 결정적인 보증이다.
언약실현에 따르는 하나님 자신의 보증으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하라고 명한 것이다. 언약 실현의 표로 새 이름을 주신 것이다.
②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가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획기적인 새로운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지금 이 두 사람은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창 17:17)라는 자기 자신의 망상에 머물고 있다. 약속받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소망이 희미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런 경우에 하나님은 저들을 찾아오시어 언약의 축복을 재확인하고 개명을 명함으로 새로운 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획기적인 삶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다.
③ 더 좋고, 크고, 높고, 많고, 깊은 미래적 소망을 일깨워주는 내용이 있다.
성경에 보면 야곱(붙잡은 자)을 이스라엘로 개명하였다(창 32:28). 시몬을 베드로(게바)라고 개명하였다(요 1:42). 사울을 바울로 개명하였다(행 13:9). 모두 다 옛것에서 새것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미래적 소망이었다. 육에서 영으로의 성화를 의미하였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악인에서 의인으로 이름이 바뀌어졌다.
④ 더 중대한 것은 그 이름의 내용대로 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머니라고 함으로 영적 믿음의 조상됨을 알려줌이다.
그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계대)라고 함으로(마 1:1) 만민의 구주가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지 않았던가!
이렇게 아브라함을 새로운 축복의 궤도로 진입시키고 있다.
(2) 두 번째 보증은 할례언약이었다.
아브라함 가정에 하갈의 가출 사건이 있은 후 13년이 흘렀다. 이스마엘은 13세로 소년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13년 간 아브라함은 번창했고, 이스마엘을 향한 그의 소망은 더 깊어지게 되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래에게 다시 전에 약속했던 언약을 상기시킬 필요를 느끼셨던 것 같다.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네 번이나 언약을 반복했다(창 12:1-3, 7, 13:14-17, 15:5-21).
그런데 본 장에는 ‘언약’이란 말을 무려 13번이나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야 한다. ‘내 언약’으로 표현된 것이 9번(창 17:2, 4, 7, 9, 10, 13, 14, 19, 21)이고, ‘영원한 언약’으로 표현된 것이 3번(창 17:7, 13, 19)이고,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이란 말이 1번(창 17:11) 나타난다. 그래서 창세기 17장은 언약의 장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언약을 성취시키기 1년 전인 99세 때, 이렇게 ‘언약’이란 말로 완전히 포위를 하셨다. 하나님은 그를 ‘언약’이란 울타리로 완전히 덮어 버렸다. 그야말로 언약 안에 있는 아브라함이었다. 재확인하고 또 재확인하는 하나님의 언약의 확인이다.
그 언약 확인에 따르는 2대 보증이 개명이었던 것이다.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을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으로, 사래(여주)를 사라(열국의 어미)로 개명하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두 번째 보증이 할례이다(창 17:9-14).
① 할례란 무엇인가?
‘할례’란 히브리어 ‘물’(lWm)에서 온 말로 그 뜻은 ‘주위를 둥글게 베어내다’라는 뜻인데, 17장 11절에 ‘양피(陽皮)를 베다’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남성 성기의 끝부분인 귀두를 덮고 있는 표피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의학에서는 이것을 ‘포경수술’이라고 이름하고 있다. 바로 17장 11절에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고 하신 말씀이다.
② 할례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사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것이다.
이 할례는 당시 애굽, 아람, 이디오피아, 베니게, 에돔, 암몬, 모압 등지에서도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행위는 미신적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그리고 그 자손과의 특수한 관계를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17장 10절에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고 하였다.
③ 할례의 대상은 누구인가?
먼저 아브라함 자신이고, 다음은 아브라함의 후손된 모든 남자이고(창 17:10), 이방인 중에서 돈을 주고 자기의 소유로 산 남자는 예외없이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셨다(창 17:12).
④ 할례의 시기는 언제인가?
창세기 17장 12절에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에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 이삭이 태어나자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게 하였다(창 21:4). 야곱과 그 자녀들도 모두 할례를 받았다(창 34:14-15). 출애굽했던 모든 이스라엘이 다 할례를 받았다(수 5:5). 모세시대에 와서 모든 남자아이는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신명(神命)으로 법제화하였다(레 12:3). 이 법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대대로 할례를 받았다고 선지자들은 말하고 있다(렘 9:25-26, 겔 44:7, 9). 그래서 이스라엘을 할례 백성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저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날 때는 할례 없는 백성이라고 책망을 받았다.
⑤ 할례의 본질적 의미
첫째 의미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선민) 사이에 맺은 언약의 외적 표징(sign)이다.
창세기 17장 11절에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고 하였다.
그것은 혈통적 종족의 표징이 아니라 언약의 표징이었다. 그 확실한 이유는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손뿐 아니라 종들과 종들로부터 태어난 모든 남아들과, 돈주고 산 남자 자손에게도 할례를 명했기 때문이다(창 17:12).
다시 말하면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대상이 된 모든 자에게 나타내는 외적 성별의 표징이었다. 구원계획 아래 들어있는 모든 남자들에게 해당된 것이다.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는 외적 인침이 할례였다. 곧 선택받은 백성의 표징이다.
둘째 의미는 성별의 표식이었다.
곧 언약 밖에 있는 자와 언약 안에 있는 자를 구별시키는 성별의 표식이었다.
창세기 17장 14절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고 하였다.
셋째 의미는 언약의 백성된 자에게 필수적인 것이었다.
창세기 17장 13절에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라고 하였다.
더 확실히 말하면,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이스라엘의 거룩한 공동체의 성원이 안 되는 것이다. ‘언약이 너희 살에 있다’고 하였다. 이스라엘이 할례의 흔적을 볼 때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기하게 될 것을 말함이다.
넷째 의미는 성결과 정결의 의미이다.
그것은 부정과 죄의 부패로부터 구별시키는 표식이었다(J. Calvin). 조상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원죄와 자신의 자범죄로부터의 갈라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말하고 있다(신 10:16, 렘 4:4, 겔 44:7, 롬 2:29).
다섯째 의미는 구약의 할례가 신약의 세례를 나타내는 예표가 되었다.
예수의 피로 죄에서 깨끗하게 되고 세상과 불신앙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고 거룩한 공회(교회)의 일원이 되는 신약의 세례를 구약의 할례에서 이미 보여주고 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구약의 할례가 ‘원죄의 절단’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필로(Philo)는 ‘정결의 증진’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라피드(Lapide)는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표’라고 하였다. 칼빈(Calvin)은 ‘육신의 죄와 더러움을 제거하는 상징’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자연현상인 무지개로 언약의 표징을 삼았다(창 9:13). 아브라함에게는 할례로 언약의 표징을 삼았다(창 17:10-14). 모세시대에 와서는 율법으로 표징을 삼았다(출 34:27-28).

3) 언약에 따르는 할례시행-아브라함의 순종(창 17:22-27)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재확인하고 두 가지 보증을 주신 이후에, 아브라함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창 17:22). 아브라함은 즉각적으로 순종하였다.
창세기 17장 23절에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생장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양피를 베었으니」라고 하였다.
‘이에’, ‘이 날에’라는 말은 아브라함의 즉각적인 순종, 감심적인 순종을 가리킨다.
① 아브라함 자신이 양피를 베었다. 그때 그의 나이 99세였다(창 17:24). 난지 8일이 아닌 99세 때 할례를 받은 것이다. 특수한 경우이다.
② 그 아들 이스마엘도 양피를 베는 할례를 받았다. 13세 때이다(창 17:24).
③ 또 그 집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자와 돈을 주고 사들인 남자들은 모두 예외없이 할례를 받았다(창 17:23, 27).
이 짧은 본문에 양피를 베었다(창 17:23, 24, 25), 할례를 받았다(창 17:26, 27)는 말이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완전한 순종, 확실한 순종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은 25년의 세월 동안 언약이라는 사슬로 아브라함을 묶었다. 그 언약의 내용은 ① 적자, 곧 후손에 관한 것이었다.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었다. ② 명예에 대한 축복이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고 하셨다. ③ 물질, 땅의 축복, 곧 기업에 대한 축복이었다. 그것은 영원한 천국기업에 집중되었다. 그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었다.
이 언약에 흐르는 중심 맥은 바로 그의 후손을 통한 메시야적 구원이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였다. 바로 이것은 신구약을 하나로 묶는 위대한 구속언약의 특성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언약에 대하여 자주자주 연약해졌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언약을 한번도 보류하거나 변경하거나 취소하거나 연기한 일이 없으셨다. 그 큰 이유는 원래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완전했기 때문이다. 그 완전한 언약은 아브라함 편에서 일어나는 모든 연약을 능히 처리하고 관용하였다. 하나님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타는 횃불의 응답으로 보증하였고, 개명으로 보증하였고, 할례를 통하여 보증하였다.
언약 그 자체는 환경이나 시간에 따라 변하거나, 약해지거나, 쇠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이 늙어도, 죽은 자와 방불하여도 하나님의 언약 그 자체는 늙거나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고, 신실하고, 확실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소망이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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