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창세기 강해(34)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그 사람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07

7.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그 사람들(창 18:1-19:38)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75세가 되었을 때 나타나 그를 소명하셨고, 86세 때 나타나 축복의 언약을 주셨다. 그리고 99세 때 나타나서 그에게 이미 약속된 언약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보증으로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 개명하였으며 할례를 명하셨다. 아브람은 순종함으로 그때부터 아브라함이 되고, 그와 그 가족들은 할례 있는 자들이 되었다. 이것은 아브라함 생애에 또 하나의 중대한 은총의 표징이었다.
그 사건이 있었던 그 해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셨다. 그때는 ‘세 사람’의 형태를 취하고 나타났다.
창세기 18장 2절에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고 하였다. 4절에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라고 하였다. 5절에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라고 하였다. 8절 하반절에는 「그들 앞에 진설하고… 그들이 먹으니라」고 하였다. 16절에는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라고 하였다.

1) 먼저 그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러 왔다(창 18:1-19).
(1)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람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창세기 18장 1절에는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라고 하였다.
여기 ‘마므레’는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창 13:18, 14;13)이다.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31km 지점으로 아브라함이 오래 머물렀던 거주지였다. 아모리 사람 마므레는 이 지방의 추장으로서 이 지역을 관할하는 소유주로 아브라함에게 특별히 이곳을 기증한 것 같이 보인다(창 13:18, 14:13, 24, 35:27).
때는 오정(정오)이었다. 수풀 아래 장막을 치고 살았던 아브라함은 식사 후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장막문 앞에 앉아 있었다. 이때 갑자기 사람 셋이 아브라함의 맞은편에 나타났다.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저들은 아브라함에게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 앞에 나타난 이 세 나그네에게 최고의 사랑과 친절을 베풀었다.
① 먼저 자원적인 친절과 겸손을 나타냈다.
창세기 18장 2절에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라고 하였다.
② 그 다음 뜨거운 사랑의 호의를 표현하였다.
창세기 18장 3-4절에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라고 하였다.
③ 그리고 자원적인 사랑의 행위를 베풀었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급히 떡을 굽게 하였다(창 18:6). 그리고 짐승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종들에게 주고 명하여 맛있게 요리하라고 하였다(창 18:7). 그리고 버터와 우유와 종들이 만든 요리와 구운 떡을 저들 앞에 진설하고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그때 그들이 먹었다고 하였다(창 18:8).
이러한 아브라함의 처사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1-2)고 하였다.

여기 아브라함에게 ‘사람 셋’으로 나타난 정체가 누구인가?
① 여호와께서 자기를 나타내신 한 방편이었다.
창세기 18장 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고 하였다.
② 세 사람의 모양으로 자기를 나타내셨다(창 18:2).
③ 갑자기, 돌연히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내셨다(창 18:2).
그 세 사람 중에 한 분은 여호와 자신이고, 두 사람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천사였다는 해석이다. 그 증거는 ⓐ 아브라함이 그 세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내 주여」(아도나이,yn;doa})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 더 명백한 증거는 그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브라함과 사라와 대화하는 장면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13절)라고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 18장 17절에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라고 하였다. ⓓ 19장 1절에 보면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라고 하였다. 저들은 18장에 나타난 천사로서 소돔성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때는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던 여호와께서는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 더 확실한 것은 그 분이 아브라함과 사라와 대화할 때에 그 분의 신적 전지성과 전능성이 나타남이다(창 18:13, 14).
④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기 인격을 초자연적으로 나타내는 계시행위이다.
그가 인격적 신이시기 때문에 사람으로 나타나사 아브라함과 교제하시고 그에게 축복을 전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⑤ 그는 아브라함의 융숭한 대접을 받아 아브라함이 준비한 음식을 먹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어떤 학자는 먹는 흉내를 낸 것뿐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먹었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에 속하는 일이다.
(2) 아브라함에게 축복하러 오셨다.
① 그 첫째 축복은 명년 이 맘 때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18장 10절에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라고 하였다(창 18:14).
② 둘째 축복은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18장 18절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다.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이룩될 우주적 메시야 왕국을 이름이다. 천하만민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였다고 하였다(창 18:19). 그 강대한 나라는 신약 교회 왕국으로 성취되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성취될 영원한 메시야의 왕국을 가리킨다. 정말 여러 번 반복된 축복언약의 확인이다.
(3) 하나님의 축복 약속에 대한 사라의 태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실 때, 사라는 뒤쪽 장막문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창 18:10). 이때 사라는 속으로 웃고 이르기를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창 18:12)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라의 생각은 11절 말씀대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이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기를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창 18:13)라고 하였다. 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4)고 하였다. 그러나 사라는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고 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라의 ‘숨은 불신앙’과 ‘숨은 신앙’의 양면을 보게 된다.
① 사라의 숨은 불신앙
창세기 18장 12절에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라고 함에서 나타났다.
사라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에 대해서도 인정하였다. 벌써 그런 수준은 훨씬 넘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불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의 입장을 더욱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주인 아브라함이 노쇠하고 이미 경수가 끊어졌다는 사실에 힘을 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성이다. 범죄한 인간편에는 항상 불가능, 불만족, 낙망으로만 가득 찬 것이다. 이렇게 사라는 ‘아들’만은 안 된다고 하는 숨은 불신앙을 가졌다.
② 사라의 숨은 신앙
반면에 사라에게는 ‘숨은 신앙’도 있었다.
하나님은 속으로 웃고 자포자기하는 사라를 책망하였다. 그리고 사라에게 기한이 이르면 기어이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창 18:14). 그때 사라는 두려워서 웃은 것을 승인치 아니하였다고 하였다.
사라가 두려워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녀에게 말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줄을 사라가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바로 그 마음은 믿음의 소산인 것이다. 사라는 내심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그녀의 두려움은 정말 아들 주시기를 바라는 일종의 경외적 흥분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1절에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고 하였다.
(4)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사람’에서 보여진 구속 계시의 빛
① 예수 그리스도의 도성인신(道成人身)과 부활의 몸에 대한 예시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사람인 아브라함과 교제하심은 장차 그의 후손으로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도성인신 곧 화육강세를 예시한 것이 된다(창 18:2, 4, 5, 8, 14, 18).
그가 아브라함과 사라가 대접한 음식을 먹은 것은(창 18:8) 어떤 인간적인 생리적 욕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과 가까이 접촉하고 그에게 축복을 계시하는 수단으로 나타낸 초자연적 역사인 것이다. 이것은 장차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잡수심으로(눅 24:30, 43, 요 21:13-15) 그의 부활을 입증하는 것에 대한 예시인 것이다.
② 인간의 한계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개입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노쇠와 경수가 끊어진 자신 앞에서 생산의 한계상황을 직감하였다(창 18:11). 자신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다. 그것이 저들이 약해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앙했던 근거가 되었다. 이때 하나님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0, 14)고 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 자신의 직접적인 섭리와 간섭을 의미하고 있다. 여기 ‘돌아오다’라는 말은 ‘권고하다’, ‘방문하다’라는 뜻으로 인간이 만난 문제해결을 위하여 당신이 정하신 시간에 직접 개입하신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이 만난 모든 문제를 때가 찰 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해결하시는 섭리의 최절정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③ 하나님의 전지한 속성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사라로 말미암아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실 때 사라가 속으로 웃고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라고 했던 말을 다 듣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창세기 18장 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라고 하였다. 이 말에 사라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면서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자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고 다시 못박았다(창 18:15). 바로 하나님 자신의 전지한 속성을 드러내고 있는 장면이다.
당신께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사람을 알되 모든 사람을 알고, 모든 사람의 속에 있는 것까지 다 아시는 전지하신 주이심을 예시하고 있다(요 2:25). 하나님은 자신의 전지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강세와 대속사역에서 최절정으로 나타냈다. 예수는 하나님을 알았고, 자신의 장래를 알았고, 우리의 미래를 알고 인도하셨다.
④ 하나님의 전능하신 속성이다.
창세기 18장 14절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노쇠하고 사라는 경수가 이미 끊어진 상태였으나, 하나님 자신에게는 노쇠나 단절이 없다. 인간이 약할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 되시는 순간이 아닌가! 하나님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전능하심을 이미 수없이 보여주었고, 아브라함은 그것을 체험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 때 그에게 나타나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창 17:1)고 확실하게 자신을 소개하였다. 바로 그 하나님의 전능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의 죄와 사망을 대속과 부활로 해결하지 않았던가!
구약에서는 여러 시대, 여러 모양으로 말씀(계시)하시던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계시)하셨다(히 1:1-3). 그것은 구속계시의 최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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