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강) 온유한 자! (마 5:5)
나쁜 짓을 계속해서 부모의 속을 썩이는 아들이 아버지 앞에 불러 왔습니다. 몇 번이고 계속 주의를 주고 타일러 보았어도 여전합니다. 아버지는 그 아이를 데리고 아무 말 없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조상의 산소 앞에선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가르친 것은 조상께 백배 사죄하고는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아들은 자기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참회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밝아졌고,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아들이 한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도 말썽 꾸러기였습니다. 밤낮 사고를 저질러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매섭게 생긴 회초리를 꺾어든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놓고는 그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바지를 걷어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다리를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갑작스런 광경에 놀란 아들이 마루로 뛰어 나가면서 외쳤습니다. 뭐라고 외쳤을 까요?
'엄마! 아빠가 이상해! 아빠가 돌았나봐! 빨리 와봐-' 요즘 자식들 교육시키기가 굉장히 힘들어졌습니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안 될 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암부르스' 감독은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성자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할/ ◀제목 소개!▶
오늘 우리는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황금률인 팔 복 그 세 번째 복 앞에 섰습니다. 산상설교에 나타나고 있는 여덟 가지 축복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크리스천이 소유해야 할 여덟 가지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성품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1-4복까지는 '인간이 하나님에게 대해 가져야 하는 성품'을 나타내고, 5-8복까지는 '인간이 인간에 대해 어떤 성품을 가져야 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산소에다가 수소를 더하면 물이 되는 것처럼 '마음의 가난'에다가 '애통'을 더하면 '온유한 마음'이 됩니다. /할/ 그러니까 마음이 겸비하고 죄에 대해 아파하고 애통하며 회개하면 성품의 변화가 오는데 '온유한 자'로 바꿔지게 됩니다. /아멘!/
▶어느 집사님이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법'이란 책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포악한 개라도 이 방법으로 훈련을 시키면 아주 온순한 개가되고 잘 길들여진다는 그런 비법을 상세하게 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 섬광처럼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급하고 고약한 남편의 성격'을 이 책으로 길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책이 말하는 대로 조금이라도 잘했을 때에 열심히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또 뭘 좀 잘하면 보상도 주고 또 남편의 머리와 목을 부드럽게 만져주고 꾸준히 이렇게 인내로 그 훈련 과정대로 실시한 결과 아주 큰 성공을 거두어서 쾌재를 불렀습니다.
강아지 훈련시키는 방법이 이렇게 남편을 딴사람 만들 줄 몰랐습니다. 너무나도 효과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개 훈련 법'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단 두 주일만에 이 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장롱에 넣어둔 이 책을 남편이 발견한 겁니다. 그리고 그만 화가 나서 자기를 강아지 취급했다고 해서 전보다 더 포악한 못된 남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헬라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네 단계로 사람들을 나누어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려서는 겸손하라' 어린 사람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또 '혈기가 왕성한 젊은 때에는 온유 하라'고 했습니다. '장년이 되어서는 공정 하라' 욕심이 지나치기 쉬운 나이입니다. 그런고로 공정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늙어서는 신중 하라' 잘못하면 주책 소리를 들으니까 잘 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할/ 인도의 무저항주의 간디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자기의 생활의 철학으로 삼고 영국의 300년 통치를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습니다. 역사가들은 간디를 가리켜서 '인도는 간디 한 사람을 얻음으로써 영국으로부터 300년 식민지 생활의 수모에서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간디의 무저항 정신은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온유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세상은 강한 자가 다스립니다. 세상의 강한 힘 세 가지는 '금력, 권력, 수력(수의 함, 여론의 힘)을 3대 힘'이라고 합니다.
현대는 힘을 숭배하는 시대입니다. 힘이 있는 자는 존경을 받고 힘이 없는 자는 버림을 당하는 것이 현대인의 철학이요 삶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는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의 진리를 매력 없는 것으로 낮추어 버립니다.
예수님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 말에서 '정치적인 압제, 경제적인 빈곤, 사회적인 혼란'에서 그들을 해방시키는 강한 힘을 가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적인 개념과는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1. 온유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쉽게 온유를 '연약하다.'로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온유는 잘 다스려진 인격, 잘 길 드려진 인격, 조절된 인격, 잘 훈련된 인격을 말합니다. 한문으로는 따뜻한 온, 부드러운 유,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길들여짐'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자메이카에 가서 선교하는 선교사가 그 나라 원주민들을 놓고 '온유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라고 가르치면서 '당신들의 말속에 온유라는 말을 무슨 뜻으로 해석합니까?'하고 물었더니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사나운 물음에 대하여 부드럽게 대답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더랍니다. 선교사가 여기서 많은 것을 배웠답니다.
아주 격한 말로 네게 질문해 올 때 내가 아주 부드럽게 온유하게 대답하는 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그런데 여기(온유)까지 오기까지는 자신과의 긴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듬어진 인격입니다. 이것은 훈련된 성품을 말합니다.
또 헬라어로는 '프라우스'라는 말로 '짐승을 잘 길들여서 주인이 하라고 하는 대로 하게 한다.'는 뜻이 있는 말로써 문자적으로 '부드럽고 순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길들인 동물은 명령에 잘 순종하고 고삐를 이끄는 대로 잘 따라가는 훈련된 동물입니다. 말하자면 잘 통제할 수 있는 동물입니다. 고삐를 끌어도 말 안 듣고, 차고 물고 야단치면 그건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입니다.
어린아이가 끌어도 잘 끌고 갈 수 있는 순한 소나 말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앞에 자기를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곧 온유한 자입니다. /아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누구나 화를 낼 줄 안다. 그러나 온유한 자만이 정당할 때 정당한 방법으로 정당한 사람에게 정당하게 화를 사용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고대에 헬라 문화권에서는 온유(프라우스)란 말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①열(혈기)이 막 오를 때, 그래서 얼굴빛이 벌겋게 되었을 때, 이 열을 진정시키고 나면 '프라우스' 즉 온유로 열은 다스렸다고 쓰여졌습니다.
②사나운 짐승 즉 예를 들면 코로 1톤까지 들을 수 있는 코끼리가 서커스단에서 얌전히 길들여져 있을 때 '프라우스' 온유로 길들여져 있다고 사용했습니다.
③거친 장점들이 군에 입대하여 주는 대로 먹고 때리는 대로 맞고, 시키는 대로하게끔 길들여져 있는 상태를 '프라우스' 온유로 길들여져 있다고 사용하였습니다.
▶온유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⑴부드럽고 온유하다는 것 ⑵관용, 관대한 마음을 가지는 것 ⑶자제 즉 '셀프 콘트롤' 자기가 자기를 억제할 수 있는 것 ⑷인내, 오래 참는 것, ⑸겸손함입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의 속력은 무서운 교통사고를 일으킵니다. 실로 온유한 사람은 자기의 모든 능력, 성격, 생각,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는 온유한 사람은 폭력으로 복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기만이나 순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권력이 있으면 그 권력으로 사람을 흔들어 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절대 그런 세상 적인 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과 용서와 이해와 관용으로 다스립니다. /할/
유럽의 영웅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한 힘이 있는 사람이었으나 말년에는 비참하게도 외로운 섬에 유배되어 쓸쓸히 죽어갔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에 두고 '나는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한 것 같았으나 망했고, 예수는 사랑으로 망한 것 같았으나 그는 결국 승리했다.'고 말했습니다.
2. 성경에 보면 온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①참으로 온유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온유의 절정은 십자가 사건입니다. 로마의 군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붓고 저주를 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자기를 못 박고 침을 뱉은 그 사람들을 혼내줄 능력이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원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그의 뜻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이고 이 길만이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기에 그 십자가를 피하지 아니하시고 감당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가리켜 600년 전부터 이사야 선지가가 예언하기를 사53: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 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할/ 바로 예수님의 온유한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마11:28-3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소 하셨습니다. /아멘!/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온유에 대표적인 분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하면 마음의 변화, 인격의 변화 성격의 변화가 일어나 온유한 자로 바꿔집니다. 여러분 믿음이 자랄수록 마음이 온유해집니다.
②모세를 보겠습니다.
원래 성미가 급하고 화를 잘 내는 다혈질의 사람입니다. 그는 그 성질로 애굽에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 그가 40년 광야에서 많이 깨어졌지만 출애굽의 영웅이 되어서도 그의 혈기가 죽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루는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시내 산에 올라가 40일을 금식하면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없는 사이 금으로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고 춤추고 난리가 났습니다.
화가 난 모세는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 판을 금송아지 우상에 내리 던졌습니다. 그래서 돌 판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고 죄를 범했다 해도 하나님의 율법이 새겨진 돌 판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그는 경솔했습니다. 성격이 급했습니다. 화를 잘 냈습니다. 과격했습니다. 한마디로 온유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피나는 회개를 했습니다. 그는 믿음이 정상으로 성장되었습니다. 그 뒤 민12:3절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친히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민12장에서 보면 모세가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왜 비난을 받은 지 아십니까? 모세가 구스 여인을 첩으로 얻었기 때문입니다. 구스는 에디오피아 아프리카 족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이 검둥이입니다. 그러자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화를 냈습니다. '세상에 어디 여자가 없어서 검둥이 여자를 데리고 사느냐?' 또 자기 형 아론도 미리암과 함께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인종차별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미리암과 아론의 반대와 비방 속에서도 모세는 아무 소리 않고 침착하게 행동을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를 대신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미리암과 아론을 불러서 책망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미리암을 쳐서 문둥이가 되게 해 주었습니다. 아마 그때 하나님의 심정은 '미리암아! 너의 얼굴이 하얗게 그렇게 잘났느냐? 네 올케 까만 것이 너 보기에 그렇게 흉하더냐? 그러면 내가 네 얼굴을 더 하얗게 해 주마, 네 얼굴에 꽃을 그려 주겠다!' 아마 그런 심정이 아니셨는지 모릅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미리암 얼굴에 문둥병이 들었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자기 누나가 문둥병이 걸렸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그래 까불다 잘됐다. 하나님의 종을 무시하더니' 하면서 고소하게 생각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먹지도 아니하고 호소했습니다. '하나님! 원컨대 그를 고쳐주옵소서!' 이런 모세가 약한 자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고 사는 자입니다. 강퍅한 애굽 왕 바로 앞에 가서 당당히 싸워 이겼던 사람입니다. /할/
③요셉을 통하여 온유를 봅니다.
그는 형들의 질투 때문에 부모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애굽으로 팔려가 그곳에서 죽도록 고생하고 모함을 받아 결국 감옥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세어주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형들과 다시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형들은 바로 이 총리대신이 자기들이 그렇게 질투했고, 미워했고, 죽음으로 곳으로 내몰았던 동생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무서워하고 떨었습니까? 이때 요셉은 창45:5절에서 그의 형제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리고 8절에서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온유입니다. /아멘!/
3. 누구 앞에 온유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온유한 자가 됩니까?
①하나님 앞에 온유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유는 ⑴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노아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어느 날 노아에게 '세상 사람의 죄악이 관영하므로 내가 사람 지은 것을 한탄하노라. 이 세상을 물로써 심판하고자 하니 너는 방주를 지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그 말씀을 들은 노아는 곧 가족과 함께 방주 짓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노아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으로 회개하고 방주 짓는 일에 협력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며 멸시했습니다. 노아가 방주 짓는 일에 100년을 소모했어도 심판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묵묵히 120년에 걸쳐 방주를 완성을 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홍수의 멸망을 당했으나 노아의 8식구는 구원을 받고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의 최고의 덕목은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믿/
⑵하나님의 섭리에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따르는 자입니다. 어떠한 불행이 닥쳐도, 재난이 닥쳐도, 실패가 오고, 슬픔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온유한 사람은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유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이웃을 원망하고 자포자기에 빠집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봅니다.
욥이 그런 사람입니다. 욥1:1절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모든 것을 잃었지만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셨다가 하나님이 가져가시니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②이웃에 대한 온유가 있어야 합니다.
온유는 대게 상대적인 뜻이 많습니다. 먼저 이웃에 대한 성도의 자세는 ⑴부드러워야 합니다. 말에도, 행동에도, 모든 표정에도 부드러워야 합니다. 인기 있는 정치인들은 표정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늘의 스타입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만큼 상대방을 불안하게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가는 곳마다 평화와 질서는 사라집니다. 약1:20절에서 야고보 장로님은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으로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거나 당황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배운 온유함으로 이웃에 대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불안을 심어주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⑵이웃에 대한 참는 것도 온유입니다. 성날 일이 있고, 괴로운 일이 있고, 중상하고 모략 하여도 참습니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무시당하는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사람들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무시할 때도 있습니다. 속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참으십시오, 참을 때 온유해 집니다. 온유의 다른 이름은 인내입니다. 참으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약1:4절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고, 또 히10:36절에서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할/
⑶이웃에 대한 관용의 마음도 온유입니다. 주님은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쳐죽인 사람들까지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악은 악으로 갚는 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악을 선으로 갚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벧전3:9절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하심이라' ▶우리는 사랑의 원자탄을 쓴 손양원 목사님을 잘 압니다. 6.25 직후 자기 아들 둘을 죽인 빨갱이 청년을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감옥소에 가서 탄원을 해서 풀려나게 했고, 자기의 양자로 삼아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누가 줍니까? 하나님이 주십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행위야말로 이 세상에서 성도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며 자랑입니다.
⑷죄를 범한 자에게도 온유해야 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갈6:1절의 말씀을 보세요!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세상 사람들은 죄진 자에게 돌을 던집니다. 주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도 용서하셨습니다. 돌을 들고 서 있는 관중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먼저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저 여인을 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나와 보라고 하세요. 사람들은 자기의 허물과 죄를 대단히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면서도 이웃에 대한 죄는 결코 용서하지 않습니다. 온유한 자는 모든 허물을 덮어주는 자입니다.
⑸우리는 공동체의 하모니를 위하여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하지 못한 자가 공동체 즉 단체에 들어오면 그 단체가 깨어집니다. 바울은 교회 공동체의 생활원리를 엡4:1-3절에서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아멘!/ 하나가 되는 데에 중요한 것은 온유한 태도입니다. 온유한 자는 양보가 있고, 이해가 있고, 협조가 있고, 열심히 있고, 희생과 봉사가 따릅니다.
참 행복한 교회 성도들이여! 성령으로 하나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관과 부서가 하나로 똘똘 뭉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서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③우리는 우리 자신 앞에 온유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잠4:23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또 잠14:29절에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온유는 셀프컨트롤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억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혈기가 날 때 그것을 억제해야 하고, 분이 날 때 욕심이 날 때, 고통이 날 때 참아야 합니다.
잠언을 쓴 솔로몬은 '큰 성을 빼앗는 자 보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큰 용사'라고 했습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귀한 신앙의 덕목이요, 인격의 품위입니다. /믿/
1997년 4월 23일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조용필씨가 16번째 앨범을 내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는 소리를 힘으로 내 질러서야 속이 후련했습니다. 발악을 하듯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나 사십이 넘어서 깨달은 것은 지금 내가 편하게 노래해야 듣는 사람도 평안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조용필씨가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온유하고 평안해야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아멘!/
알렉산더 대왕이 실패한 원인은 술에 잔뜩 취해 있을 때 친구가 조언을 하자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고 칼을 뽑아 친구의 목을 쳤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인생을 실패로 몰아넣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존 칼빈은 '온유는 부드러운 태도로 살며, 박해에 대하여 쉽게 노하지 않으며 원수를 보복하지 않으며 고통과 모함에 대해 깊이 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느 때 온유해 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입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둘 다 죄를 범했습니다. 둘 다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들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책망을 들었고, 다윗은 나단 선지자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지 않았고, 이를 갈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온유함으로 받아 통곡하여 회개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다윗을 향해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온유함이 생깁니다.
⑴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온유함이 생깁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온유가 있습니다. 성령의 결과는 온유요, 온유의 뿌리는 성령입니다. 모세, 바울, 베드로는 살인했거나 살인 미수 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온유해졌습니다.
온유를 다시 한 번 정리하겠습니다. 온유는 약한 것이 아니고 비겁한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모든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고 억제하며 절제하며 성령의 능력 앞에 길들임을 받은 자입니다. /믿/아멘!/
⑵온유한 자가 가장 강한 자입니다. 잠16:32절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온유한 사람이 훨씬 더 강한 사람입니다. /믿/
장로교의 대부인 칼빈은 온유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가장 온유한 선지가 칼빈'이라는 책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칼빈은 완벽주의자요 강직한 사람입니다. 제네바에다가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거룩한 성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완벽한 도시를 만들려고 그는 정치가들의 힘을 빌어서 그 나라를 바로 다스리려고 했습니다. 물론 술도 담배도 없고 창녀도 없는 깨끗한 도시, 거짓과 불의가 용납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만들려고 뛰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을 처형해야 했고 심지어는 화형에 처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네바를 깨끗한 도시로 만들어 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다 보니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너무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의회에서 결의 해 가지고 칼빈을 추방해 버렸습니다.
칼빈은 추방당해서 아무 말 없이 '스트라우스부르크'라고 하는 곳에 갑니다. 그곳에 가서 자기 친구가 목회 하는데 가서 얹혀서 거기서 조용히 지내면서 그저 저술을 하면서 지내려고 했습니다.
3년이 지난 다음에 제네바 시는 엉망이 됐습니다. 다시 모든 사람이 타락하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없어 의회는 많이 의논하다가 '칼빈 선생님을 다시 모셔 오십시다. 제네바로 모셔 오십시다!'하고 결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의회 대표가 가서 칼빈 선생님께 '다시 가십시다'하고 말할 때 칼빈은 '그러지요' 하고 나섰습니다. 친구는 말렸습니다. '야 이 친구야 정신나갔냐? 의회에서 결의하고 추방할 때는 언제고 이제 또 초대한다고 가느냐?'고 쓴 소리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 같으면 안 갑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하나님의 부름이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필요하다면 가야지' 하고 다시 제네바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온유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자기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인간적인 격정 같은 것은 다 불식하고 오로지 주님의 뜻에 조용히 순종하기 위해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거기에 온유함에 있습니다.
⑶'온유하다'라는 말속에는 '배움의 자세가 되어 있음'이란 의미도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듣고싶어하는 마음, 듣는 마음, 배우는 마음'을 가르치는 겁니다. 여러분 항상 '자기의 연약함과 무지함을 알고 나는 꼭 배워야하고 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온유한 자입니다. 가만히 보면 자기 잘났다고 하는 사람 은 남의 말은 잘 안 들고 자기 말만 내세웁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발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마음을 열고 잘 듣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4. 온유한 자가 어떤 복을 받습니까?
①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이것은 내가 가서 땅을 빼앗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능동적으로 차지한다는 말이요, 수동적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⑴여기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의 그 원어적인 개념은 '땅(여기서 땅은 삶의 현장)을 내 소유로 삼고 그것을 즐긴다'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온유할 때 내가 만나는 사람을 온유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교만하면서 상대방을 온유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내가 먼저 온유하면 내 주변사람이 다 온유해집니다. 그러면 나의 소유가 내 것이 됩니다. 여기가 내 나라가 됩니다. 나의 주권이 확장됩니다. /할/
그런고로 온유한 자는 근심이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많이 가지고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온유한 자만이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높은 권좌에 있는 순간 불안합니다. 걱정과 근심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온유한 자는 높은 권좌에 있어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것이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소유 자체가 복이 아닙니다. 소유를 복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그것을 축복으로 누릴 수 있는 길은 온유함에 있다는 말입니다. /아멘!/
▶통계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카네기 공과 대학'에서 일만 명을 상대로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성공하는 비결이 어디 있느냐? 지식이냐 기술이냐?'를 물었더니 기술과 지식은 15%밖에는 안 된다고 대답했고, 85%는 인간성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의 '온유한 마음'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통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에서 '많은 사람이 해고당하는 이유?'를 조사했는데 '지식과 기술'이 아니라 100%가 그 사람의 잘못된 인간성, 즉 그 사람의 잘못된 성격으로 인하여 해고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온유함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는 권세를 누린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스리는 즐거움, 정치적 욕망에 대한 충족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이 다스리는 행복을 인간이 교만함으로 인해서 이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⑵또한 여기서 '땅을 차지한다'는 말은 영적으로 곧 '가나안 땅'을 의미하는데 우리들의 가나안은 저 영원한 천국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온유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많은 시련을 통해서 내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다듬고 가꾸고 배우고 익혀서 온유한 성품에 도달하면 그리할 때에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그에게 허락하십니다. /할/
⑶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는 말은 '네가 그 땅에서 범사가 다 형통하게 잘 된다'는 말입니다. /할/
②또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지도를 받습니다.
시25:8-9절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시37:11절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할/ 땅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화평과 즐거움까지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시37:11절에서는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할/
'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10강) 심령이 가난한 자! (마 5:1-3) (0) | 2011.10.17 |
---|---|
[스크랩] (제11강) 애통하는 자! (마 5:4) (0) | 2011.10.17 |
[스크랩] (제13강)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 5:6) (0) | 2011.10.17 |
[스크랩] 위대한 신앙위인 38인의 이야기/클라랜스 라킨-4 (0) | 2011.09.09 |
[스크랩] (제53강) 기독교란 무엇인가? (롬 16:17-27) (0) | 2011.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