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강) 마음이 청결한 자! (마 5:8)
칼타코의 성녀 '마더 테레사'수녀가 '다르질링'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삼류기차이기에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사람들은 바글바글하고 술 취한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온통 시장 바닥 같은 분위기였는데도 불구하고 테레사 수녀는 조용히 묵상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세미 하게 들려 왔습니다. '테레사야! 여기에서 5마일만 가면 50만 명의 거지들이 길거리에서 나서 길거리에서 살다가 길거리에서 죽고 있다. 너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살아 있을 때에는 잠자리를 주고, 죽으면 무덤을 주거라.' 테레사는 주님의 이 음성을 듣고 바로 그곳으로 떠나면서 그의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주님! 나는 오늘 밤 어디에서 잘지 모르고 떠납니다. 주님! 나는 내일 아침 무엇을 먹을지 모르고 떠납니다. 주님이 떠나라고 하셔서 떠나니 지금부터 내 일생 주님이 책임져 주시옵소서!' 그리고 칼타코에 들어가 많은 일들을 하면서 주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아멘!/
하나님과 만나면 거룩하여 집니다. 거룩해 지면 하나님과 관계가 이어집니다.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대통령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기차안도 됩니다. 광야도 괜찮습니다. 가시떨기 나무 앞에서도 좋습니다. 모세가 가시 떨기 앞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거룩은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곳이 거룩입니다. /할/ '신을 벗으라'는 말에는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를 버림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과 목적과 방향을 버리라고 할 때 '신발 벗어!'라고 말을 한답니다. 또한 '나 요즈음에 힘들어'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말하기를 '신발 벗고 하나님께 맡겨' 그런 답니다.
그러니까 신발을 벗는다는 말은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를 버림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80세에 신발을 벗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민족 혁명을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가서 자기 의지대로 살았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네 생각대로 살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살아. 네 생각을 포기해. 신발 벗어' /할/ 나의 지금까지의 삶을 버리면 거룩의 관계가 생깁니다. 가시떨기 앞 땅덩어리가 거룩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을 버리는 상태가 거룩입니다. /할/ 거룩해 지면 내 마음이 청결해 집니다. ◀제목소개!▶
▶오늘 우리는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황금률인 팔 복 중 그 여섯 번째 복 앞에 섰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할/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 복의 핵심은 마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도 마음입니다. 애통하는 것도, 온유한 것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도, 긍휼히 여기는 것도 모두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머리가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슴이 청결한 자라고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머리는 학자들의 영역이고 가슴은 뜨거운 행동 철학자들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은 또 육체가 청결한 자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의사들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은 행위가 청결한 자라고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는 도덕가들의 영역입니다. 기독교는 이 모두를 다 포함하지만 그 이상의 것입니다. 곧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마음은 전 인격으로써 마음의 변화가 없이는 행동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삼상10:9절을 보세요!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세울 때 하나님이 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종교를 생각할 때 '사람의 마음을 점차로 바꿔 나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는 것에서부터 시작'입니다. /아멘!/
하나님께로부터 새 마음을 받았던 사울은 그 새 마음을 관리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고 당신 마음에 합한 자를 찾으셨습니다. 그때 찾은 사람이 누군가하면 바로 다윗입니다.
처음에는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엘리압이라는 큰아들을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 여호와는 외모를 보지 않고 그 마음에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때 다윗이 벳세바에게 넘어져서 나단선지자에게 책망을 듣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 뒤 그의 기도제목이 이렇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시51:10절에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여기 '정한 마음'은 '순결한 마음, 깨끗한 영을 지닌 마음'을 말합니다. 사람이 가장 인간다울 때가 언제냐 하면 '순결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입니다.
깨끗한 마음에서 바른 생각이 나옵니다. /믿/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으려면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깨끗하면 내 마음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게 됩니다. 그러면 '내 생각, 내 판단, 내 생활'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 상태를 가리켜서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은혜가 충만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영국의 수상 처칠 경이 급한 용무가 있어서 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앞에 신호등이 나타났습니다. 붉은 불이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까 차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사에게 그냥 달리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막 나가려고 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교통순경이 나타났습니다. 처칠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교통순경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가짜요! 영국의 수상이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을 리가 없소. 그러니 당신은 가짜요!' 처칠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시인했습니다.
'맞소, 나는 가짜요!' 그리고 난 뒤에 처칠은 자기의 책임을 끝까지 다하는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교통순경을 승진시키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통순경은 자신이 승진하는 것을 거부해 버렸습니다. 자신은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했기 때문에 승진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당당합니까?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군도 이와 같이 떳떳해야 될 줄 압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밭을 깊이 기경해야 합니다. 호10:12절에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마음의 밭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져야합니다. 거만한 마음이 낮아져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굳어져 있는 마음이 감사와 찬송의 마음으로 바꾸어져야합니다. 선입관과 편견의 마음이 넓은 마음으로 바꾸어져야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꾸어져야합니다. 마음속의 쓰레기와 잡초를 다 뽑아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쟁기로 우리의 마음의 밭을 갈아엎으면 아무리 단단한 마음의 밭이라도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방망이입니다. 어떤 반석도 깨뜨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만 들어가면 아무리 단단한 마음도 부서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입니다. /할/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암 제임스'는 '사람은 자기 마음의 자세를 바꿈으로써 그 인생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고, 복된 삶을 살고, 기적의 삶을 살려면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욕심이 가득 차 있고, 미움이 있고, 시기가 있으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사랑이 넘쳐나고, 믿음이 있고, 소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창조적인 삶을 살 것입니다. 변화 받고, 새로워지고, 기적적인 삶을 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리모델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고후6:13절에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하늘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평할 때 '마음이 좁다, 응졸하다, 인색하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넓은 마음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넓은 마음이 큰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넓은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⑴'포용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용서하는 마음이고, 치우치지 않은 마음입니다. 치우치거나 편견을 가지면 남을 포용할 수가 없습니다.
⑵'섬기는 마음'입니다. 신앙생활은 섬김입니다. 목회도 섬김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주의 종들을 섬기고, 지도자들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섬김에 본을 우리 예수님이 마지막 성찬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막10:45절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⑶'큰 믿음의 마음'입니다. 시119:32절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 가리이다'
왕상3:4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등극한 솔로몬은 임금으로 즉위하자마자 첫 번째 한 일은 기브온 산장에 올라가서 일천 번제를 드리면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영화도 주셨습니다. 그런 후에 또 한 가지 더 주신 것이 있는데 바로 '넓은 마음'입니다.
왕상4:29-30절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할/
신앙생활은 마음공부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옛 말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란 지, 정, 의를 움직이는 근원을 마음이라 합니다. 마음을 성경에서는 중심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즉 마음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 마음을 우리가 지키고 다스려야 합니다.
잠4:23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저금통장만 지키고, 돈만 지키고, 자리만 지키지 말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⑴근심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요14: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⑵죄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죄보다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죄를 마음에서 척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미 마음에 품으면 죄인 것입니다.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죄로부터 지키기 바랍니다.
⑶마귀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으로 무장하면 마귀는 꼼짝 못합니다. 성령 충만해야만 마음을 마귀로부터 지킬 수 있습니다. /믿/
▶오늘 본문의 말씀은 언뜻 보면 평범하고, 단순한 것 같지만 실은 그 깊이와 넓이를 측량할 수 없는 엄청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의 청결'은 '거룩이라는 말과 동일어인데 이 거룩이라고 하는 주제는 성경의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에서 광범위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창3장에서 타락한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등지고 축복의 동산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또 최초의 인간의 자식이었던 가인은 그의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이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죄가 죄를 낳는 인간역사의 출발입니다.
창4:23-24절에서 가인의 5대 후손인 라멕의 고백을 보자!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여러분! 가인을 위해서는 벌이 칠 배였고, 라멕을 위해서는 벌이 칠십 칠 배였다고 한다면 과연 오늘 우리를 위해서는 벌이 몇 배겠습니까? 칠백 배, 아니 칠천 배가 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후로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죄악의 역사와 살인과 미음의 역사로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레멕의 사건 이후에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노아의 홍수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고, 그 심판 후에는 불행하게 인간은 바벨탑을 쌓으므로 하나님께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창12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모세와는 사람을 통해서 한 집단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해 한 국가를 선택하셔서 그 혈통을 통해 구원자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주제는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다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 어떻게 인간이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러한 구약의 배경에서 이해하면 은혜가 됩니다. 사실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은 굉장히 충격적인 말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배경을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비결 즉, 열쇠를 우리에게 던져 주셨습니다. 그 열쇠가 무엇입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할/
①청결한 마음은 어떤 뜻인가?
청결이라는 원어 '카타로스'는 '깨끗하다, 순수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은 때묻고, 더러운 옷을 세탁해서 깨끗하게 받든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옷처럼 죄로 물들기 쉽고, 때묻기가 쉽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늘 씻어내야 합니다. /할/ 여러분, 지옥과 천국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입니까? 지옥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곳이요, 천국은 언제나 하나님의 뵙고, 하나님으로부터 넘쳐 나오는 사랑과 은혜와 무한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는 곳이 가장 큰 인간의 불안입니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절망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여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렘17:9절을 보세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또한 사59:1-2절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죄가 이만큼 무섭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죄는 물든 마음을 씻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밖에 없습니다. 청결이란 보혈로 씻김 받은 마음입니다. /할/
②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그 당시 종교적인 형식으로 완벽했던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십계명과 구약의 율법들을 확대 해석하여 탈무드를 만들었고, 성경에 없는 것까지 조목, 조목 해석을 해서 어떻게 완벽하게 행동하고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를 평생연구한 사람입니다.
또 그들은 안식일에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죄의 범위를 규정지었습니다. 예를 들면 물건을 어느 정도 이상 들어 올리면 노동으로 간주되고 죄가 되었고, 몇 발자국 이상 길을 걸으면 죄가 되었고, 바느질도 세 번 이상은 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변명이 '완벽 주의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내면세계에는 말할 수 없는 불결함과 부패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꾸짖었습니다.
눅11:39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그리고 마23:27절에서는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고 신랄하게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섭게 사람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 즉, 마음'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은 변해야 합니다. 사람은 겉이 번지르하고 깨끗하면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청결함은 사람의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보다 더 본질적인 마음의 동기라는 점입니다.
③그러면 마음이 무엇입니까?
마음은 감정이 아니라 인격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란 그 인격의 중심이 깨끗하고 모든 행위의 근원이 순수한 사랑입니다.
요3장에서 예수님은 니그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고 하셨습니다. 또한 5절에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거듭나는 길은 사람의 지성, 세상의 교육, 어떤 물질적인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다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성령 님뿐입니다. 성령 님이 오시면 새 마음이 잉태됩니다. /믿/
▶여고 동창회에 나간 여자들이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한 여자가 '애들아, 우리 집에 며느리가 잘 못 들어온 것 같아! 어떻게 된 애가 오전에는 운동한다고 수영장에 가지, 오후에는 미장원에 가고, 동창들 만나서 수다나 떨지, 집구석에 붙어 있는 적이 있어야지, 살림을 하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며느리 흉을 잔뜩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얘기 저런 예기 한참 주고받다가 다시 그 아주머니가 입을 열어 말합니다. '애들아, 우리 딸은 정말 시집 잘 갔어. 신랑 잘 만나서 오전에는 수영장에다 에어로빅에다, 오후에는 미장원에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너무 너무 재미있게 살고 있단다.'
마음은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빨강색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색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는 것처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보면 세상이 사랑스럽게 보이고 미움과 증오의 마음을 가지고 보면 세상이 저주스럽고 추하게 보입니다. /할/
④청결한 마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⑴말 그대로 '깨끗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몸에 있는 눈은 하루에 한 2만 5천 번 정도 깜빡거린다고 합니다. 깜빡거리면서 눈물샘에서 나온 깨끗한 액으로 안구를 계속해서 씻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먼지 하나라도 남아 있지 않도록 깨끗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밝게 만물도 보고 사람도 보고 글도 보는 것입니다. 청결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 눈을 이런 식으로 닦는 것처럼 깨끗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⑵나누어짐이 없는 진실된 마음, 하나된 마음입니다. 마6:24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순결의 정신은 일편단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의 돈과 명예가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된다면 그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있다면 그것은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약4:8절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순결은 일편단심 한마음입니다. 춘향이의 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불결의 문제는 두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한 남편과 살면서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으면 두 마음을 가진 불결한 잡니다. 남자도 마찬가지로 한 아내와 살면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있다면 두 마음을 가진 불결한 사람입니다. 청결한 마음이란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입니다. 철학자 '키에르 케골'은 본문의 청결한 마음을 '우리의 의지가 한 대상만을 향하여 드려진 마음'이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구약성경에 가나안 땅에 대하여 거룩한 환상을 가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가르쳐 '온전히 주님만을 쫓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청결은 '카타로스'라는 원어로 이 원어를 사용한 단어를 보면, ㉠키질하고 채를 쳐서 모든 티를 깨끗이 제거해 버린 알곡에 대하여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무능한 군인은 빼버린 정예군대에 사용했습니다. 즉 기브온의 3백 용사들입니다. ㉢물 타지 아니한 순 포도주에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합금 되지 아니한 순금에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어떤 성도는 '하나님, 오늘 점쳐보니 안 좋은 일이 생긴답니다. 돌보아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런 성도는 청결한 성도가 아닙니다. 불결한 성도입니다. 청결한 성도는 '가라지가 자라지 않은 알곡 밭, 악이 뿌려지지 아니한 선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믿/
⑶청결하다는 말은 정직하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말은 그 사람이 정직하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신용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용 있는 사람과 거래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가 정직하지 못하고 말에 책임이 없다면 큰일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갈 때까지 갔어도 정직한 사람은 대접을 받고 일정을 받게 됩니다. 마5: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아멘!/
⑷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청결한 마음입니다. 시119:104절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할/ 악을 어떠한 모양이라도 버리는 마음입니다. 죄를 미워하므로 죄를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는 그 마음이 청결한 마음입니다. 구약성경에 다니엘을 평하기를 '뜻을 정하여 하나님을 잘 섬긴 자'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무슨 뜻을 정했습니까? 죄를 안 짓기로 작정했다는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도전하고 거스르는 만화와 풍토 속에 이방나라 바벨론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죄를 안 짓기로 작정했습니다. 이것이 청결한 마음입니다.
⑸청결한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히브리어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마음을 가지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청결하신 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님을 닮을 수 있습니까? 모방일까요? 아닙니다. 모방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이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우리 죄를 담당하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실 때 성령 님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 속에 주의 영을 주십니다. 겔36:26절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할/
성경은 마음을 '개량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도덕은 '그 마음을 고치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음을 고친다고 고쳐집니까? 죄로 망가진 우리의 마음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더러운 마음을 토해버리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주께서 우리 마음속에 새로운 마음을 부어 주십니다. /믿/
⑤왜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까?
⑴인간 마음이 더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롬1: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입니다.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 머리가 싹싹 돌아가던 사람들이라 해도 영적인 사건에 부딪히면 어두워집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가장 먼저 타락한 것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아 선지자는 렘17:9절에서 말하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했고, 솔로몬은 그의 잠언서 4:23절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한 신학생이 입이 통통 부어 있습니다. 교수가 '왜 그렇게 입이 부었느냐?'고 물었습니다. 학생이 대답하기를 '이 놈의 입이 실수를 해서 제가 크게 망신을 당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주먹으로 입을 쥐어박았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교수님이 '이봐요, 그 입이 무슨 죄가 있냐? 쥐어박으려면 당신의 마음을 쥐어박아야지'
마음이 더러워져서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마15:19-20절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주님은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마음의 청결함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대기오염, 물 오염, 환경오염, 심지어 마약오염, 성 오염으로 뒤덥힌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더러운 마음의 오염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청결한 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⑵청결한 마음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결되지 아니한 마음과는 교제하지 않으십니다. 히12:14절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살전4:3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⑶청결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벧전1:15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시73:1절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니'
⑥어떻게 해야 우리가 청결해질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어떻게 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청결한 마음이 무엇이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⑴주님의 보혈로만이 가능합니다. 거룩한 보혈의 샘이 갈보리 산에서 터졌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렸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뿌려졌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죄를 씻기는 것은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 침례교회 목사인 '로버트 로우리'는 찬송가 184장에서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라고 찬양했습니다. /아멘!/
우리는 그 보혈의 능력을 화학적인 성분으로 분해할 수도 없고, 철학적인 지성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과학자들처럼 몰라도 됩니다. TV의 회로를 몰라도, TV 원리를 몰라도 틀 수 있다면 되는 것처럼 우리가 보혈의 피에 뛰어 들기만 하면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믿/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세척시키는 세탁제입니다. /아멘!/
⑵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사1:18절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어느 주일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얘들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보신 단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우리는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단다.'라고 말하자, 그때 열심히 주일학교에 참석해서 말씀을 배운 꼬마가 손을 번쩍 들더니 '선생님 아니에요, 하나님이 볼 수 없는 것 하나는 있어요' 주일학교 선생이 깜짝 놀라며, 그게 뭔데 그러자 그 꼬마는 '예수님의 피 아래 있는 내 죄는 볼 수가 없지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진리입니다. 바울은 롬8: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⑶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집니다. 딤전4:5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할/ 기도가 참 중요합니다. 다윗은 범죄하고 나서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야곱은 간사하고 부정하며 불결한 자입니다. 그러던 그가 얍복강 나루터에서 평생에 가장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영혼을 쏟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스라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할/ '월리암 부드'는 '기도할 때 당신은 거기에 생사가 달려있는 것처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런 기도는 역사가 일어나고 응답이 빨리 옵니다. /할/
⑦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을 복은 무엇입니까?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아십니까? 모세도 하나님을 뵙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빌립도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산에 오르셨는데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영광스럽게 변화하셨습니다. 그 옷은 무엇으로 빨아도 더 이상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눈이 부셨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도 만났습니다. 영광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좋았던지 '내려가기 싫어요, 여기에다 초막 셋을 짓고 오래도록 살아요'라고 외쳤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선한 것을 보기 때문에 복되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것을 보기 때문에 복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⑴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동행). 누가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까?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해서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창39:2-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⑵교제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는 교제입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아멘!/
⑶하나님의 형상을 마음에 이룬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제일 많이 쳐다보는 사람을 닮습니다. 부부가 닮는 이유는 밤낮 쳐다보며 살기 때문입니다. 시17:15절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주의 형상을 보면 주를 닮습니다. 해바라기는 해만 봅니다. 주바라기는 주님만 바라보는 자입니다. /할/ 시인 테니스는 '나의 마지막 소원을 주님을 부끄럼 없이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
⑷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본다.'고 할 때 이 '본다'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가 또 하나 있는데 '안다'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안다.' 즉, '하나님을 본다'와 '하나님을 안다'는 이 두 말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엡1:17-19절에서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그가 사랑하는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아침이고 저녁이고 그 차가운 돌 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은 '하나님이여,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에베소 교인들에게 허락하셔서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예수님 알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성령을 더 알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자가 능력자입니다. /믿/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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