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35강) 기도가 기적의 통로입니다! (마 7:7-1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6:51

(제35강) 기도가 기적의 통로입니다! (마 7:7-12)

 

  한 소녀가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서운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서워서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그만 그곳에서 무릎 꿇고, 눈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호랑이 앞에서 저 좀 살려주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무엇이든 들어준다고 했는데 저 좀 도와주세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호랑이가 다가오는 것 같더니 아무소리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하다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것 보니 호랑이가 나를 물지 않았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눈을 떴더니 글쎄 자기 옆에 호랑이가 무릎 꿇고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야! 하나님은 역시 놀랍구나! 어떻게 기도하는 호랑이를 다 만나게 하셨을까?' 정말 감사해서 '할렐루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호랑이가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하나님! 저에게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믿거나 말거나/할/
  ▶앵무새를 훈련시켜서 파는 상점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축복 받으세요.' 이렇게 말을 가르쳐 비싼 가격에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집사 댁은 부부 싸움이 심하여 앵무새가 밤낮 그 소리를 듣고 살았습니다. '이 놈아, 이 년아' 목사님이 심방을 갔더니 앵무새가 반갑다고 하는 소리가 '이 놈아, 이 년아'그럽니다. 같이 간 사모님과 함께 욕을 먹었습니다. 창피를 당한 목사님이 '김 집사! 이 앵무새 없애. 손님 올 때마다 이럴 터이니 얼마나 창피한가?' 그 때 김 집사가 '정 들어서요' 못 팔겠다고 하다가 '좋은 수가 있어요. 목사님 앵무새를 일주일만 빌려 주세요' 그래서 목사님이 앵무새를 빌려 주었습니다.
  일주일 후에 목사님이 앵무새를 찾으러 갔더니 목사님 앵무새가 목사님을 보자 뭐라고 했겠습니까? '이 놈아, 이 년아'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을 본받고, 본받아야 할 것을 안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나라 속담에 '흉보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흉보는 것 같은 데 어느 덧 그 것을 배워서 그대로 합니다. 구박받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흉보면서 자기가 시어머니가 되면 며느리를 구박합니다. 군대에서도 그렇습니다. 선임이 졸병을 괴롭힙니다. 졸병은 선임을 못 된 놈이라고 흉보면서 자기가 선임이 되면 졸병을 괴롭힙니다.
  신앙생활이란 본받을 것을 본받고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을 본받지 않는 생활입니다. 기도하는 좋은 본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 소개!▶

 

  오늘 본문을 '바클레이'는 '기도의 헌장'이라고 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것은 다 같은 표현입니다. 기도에 대한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란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찾는 것입니다. 닫힌 문을 여는 것입니다.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축복의 문을 두드리라! 건강의 문을 두드리라! 행복의 문을 두드리라!' 다 같은 기도의 표현입니다. 그저 '한번 구하라 그러면 되지 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반복하셨을까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강조 법입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또 강조하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믿/
  또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있습니다. '너희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 구하는 이마다 얻고, 찾는 이가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 하나님의 두 번씩 반복되는 약속이요 장담입니다. 하나님이 '너희가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응답할 것이다. 이루어 질 것이다.'라고 장담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이고 기도는 기도입니다. 당장 어려우면 옆집 아줌마한테 하소연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지를 못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약속해주고 계시는데 여러분이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악한 아버지라도 자식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계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너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눅11:3절은 이것을 성령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축복이든 물질의 축복이든 사업의 축복이든 구하는 자에게 반듯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 목사님은 기도에 대하여 말하기를 '기도 없는 영혼은 마치 그리스도 없는 영혼과도 같다.' 그리고 '기도는 어쩌다 생각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의 일과이고, 습관이며, 날마다 해야 할 신성한 노동이며, 삶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헬렌 켈러'는 '앞문이 막히고 옆문이 막히고 뒷문이 막힐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신다.'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믿음이 죽으면 기도가 끊어지고 기도가 끊어지면 믿음이 죽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할/
  예수님은 6절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분별력을 가르쳐 주는 말씀으로서 특별히 영적 분별력을 갖지 못하면 아무리 귀한 신앙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개나 돼지에게 발로 밟히고 더럽힘을 당하고 만다는 진리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은 참으로 놀라운 신앙의 비결하나를 말씀해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특권하나를 허락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요15:16절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할/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실존을 확실히 믿는 성도만이 할 수 있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믿음이 있는 자는 기도하고 믿음이 없는 자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든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기도하는 족장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영도자 모세! 불의 사자 엘리야, 눈물의 선지 예레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민족을 위해 에스겔은 기도했으며, 조국을 향해 하루 세 번씩 기도한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기도하며 나라를 다스린 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그의 생애에 기도로 무장한 제자였으며 사도바울은 아라비아에서 3년을 기도하였고, 그의 권면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주님은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막1:35절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또 눅22:39절 이하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손수 기도의 모범이 되신 예수님께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기도의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7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여러분, 오늘 본문이 주는 주님의 메시지가 얼마나 영감이 넘치고 소망이 가득 찬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주의 종이 붙들면 위대한 능력을 받을 것이요, 이 말씀을 학자가 붙들면 위대한 학문을 낳는 것입니다. 예술가가 붙들면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또한 과학자가 이 말씀을 붙들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캐내게 될 것이며, 사업가가 이 말씀을 붙잡히면 반드시 성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본문은 마치 세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구하는 것이 한 단계요, 찾는 것은 그 것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가는 것, 문을 두드리는 것은 찾는 것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가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러니까 삼중적 기도방법입니다.
  ⑴첫 번째 단계는 '구하는' 단계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사람은 누구나 그 마음속에 무엇인가 필요로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은 갖고자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소원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소원이 아무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믿/
  '구하라!' 이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거지가 배가 고픕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밥을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하는 것입니다. 줄 테면 주고 말 테면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구하라고 명하십니다.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1: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할/아멘!/
  솔로몬이 다윗 왕의 뒤를 이어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고 도저히 아버지 다윗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 앞에 지혜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3천번제를 드린 기도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구한 지혜는 물론이고 그가 구하지도 않은 부귀영화 장수까지 그에게 주었습니다. 얼마나 수지맞았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면 지혜를 주십니다. 세상 살아가는데도 뭐니, 뭐니 해니 지혜가 보배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기도하면 힘을 주시고, 기도하면 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아멘!/
  그런데 주님은 무턱대고 기도하면 응답을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 모두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 안에 있는 성도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주 밖에 있는 성도는 무엇을 구해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또 기도하고 의심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약1:6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믿음이 귀합니다. 믿음이 역사를 일으킵니다.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할/ 마21: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런데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약1:6-7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본문에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여기 '구하라'는 '간청한다, 부르짖는다,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약속입니까? 주님의 약속합니다. 구하라고 명령하시고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바로 알 것은 '주시는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주십니다.
  ▶독일이 통일을 이루기 전에 그 나라도 분단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동독과 서독이 서로 벽을 쌓고 왕래가 끊겼습니다. 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도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믿/
  여기 '주실 것이요' 이 말씀은 즉각 주실 수도 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주실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시간에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할/
  ⑵두 번째 단계는 찾는 단계입니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구하는 것이 앉아서 요구하는 기도라면 찾는 것은 애타게 그것을 위해서 여기 저기 찾아다니면서 구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결혼반지나 약혼반지 혹은 은행통장이나 아주 귀중한 시계, 카메라, 아니면 핸드폰을 잊어버렸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합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애타게 찾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는 심정이 바로 본문의 찾는 단계입니다. /아멘!/
  ▶미국의 어느 50대 목사님이 자기가 배운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냈는데 보내는 곳마다 거부를 당했습니다. 하도 출판사마다 거부를 당해서 목사님이 화가 나서 그 원고지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었습니다.
  자는 동안에 그 부인이 몰래 그 쓰레기통을 회수해서 남편 몰래 그 쓰레기통을 통째로 안고서 조그마한 출판사에 가서 의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출판사 사장이 출판이라는 것은 찍어봐야 알지 찍기 전에는 모른다고 한번 찍어 보자고 그래서 그 책을 찍어서 냈는데 놀랍게도 그 책이 3천만 부나 팔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노먼 빈센트 필' 목사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책입니다. 끝까지 출판사를 찾고 또 찾는 노력이 있어서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만일 중도에서 포기해 버렸더라면 안 될 것입니다. 구했으면 찾아야 됩니다. /아멘!/
  '적극적 사고방식'을 쓴 '노만 빈센트 필' 목사는 '누구든지 매일 아침 15분만 기도하면 인생에서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할/
  성경을 보면 한 여인이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리고 동물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았다고 눅15:8절에 말씀하십니다. 신앙이란 얻는 것 뿐 아니라 찾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마치 값진 보석이나, 진주, 또는 천국 열쇠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렘29:12-13절에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애인을 찾고, 중년들은 돈을 찾고, 노인들도 명예를 찾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인생의 의미는 애인도, 돈도, 명예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데 있습니다. /믿/
  여러분 근본적인 인생의 갈증, 불안, 근심, 걱정이 어디에서 옵니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디서 왔습니까?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합니까? 이 인생의 근본문제는 하나님 없이는 절대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대상28:9절에 보면 다윗이 솔로몬에게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다윗 임금이신 아버지에게 이런 귀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솔로몬이 그 후에 그의 잠언 서에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외쳤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기에 그들을 하나님은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은 만나지 못한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열심히 수십 년 간 교회에 왔다 갔다 하고 설교를 듣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했지만 하나님은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 형식적인 성도가 많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찾으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만나주십니다. 기도하다가 음성으로 만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다가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은 말씀 속에서 만날 수가 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는 '너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믿/
  ⑶세 번째 단계는 두드리는 단계입니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여기서 '두드린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러 가다가 어린애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빨리 병원에 가야 합니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습니다. 등에 없고, 단숨에 병원 앞에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병원 문이 닫혔습니다. '진료는 9시부터'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때 그 어머니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 9시부터 문을 연다니 커피나 한잔 마시고 정신 좀 차리자!' 그르겠습니까? 아닙니다. 

  문을 두드리며 있는 힘을 다해서 '내 아들 좀 살려 달라'고 외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삼 단계의 문을 두드리는 단계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특징은 한번 두드리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두드리라'는 것은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성공의 문이 열릴 때까지 열심히 문을 두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엘리사를 찾아가서 눈물을 철철 흘렸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가 있을 동안에는 아람 왕이 아무리 군대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쳐들어와도 엘리사가 미리 '어디로 왕이 군사를 보내어서 지키십시오. 어디로 아람 왕이 쳐들어옵니다.'하고 알려 주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지킬 수 있었는데 이제 엘리사가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엘리사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왕이여, 마병이여, 군대여 떠나면 어떻게 합니까?' 눈물을 흘리니까 엘리사가 요아스 왕에게 '왕이여, 활과 화살을 가져 오십시오.' 활과 화살을 가져오니까 동쪽 창문을 열어 아람을 향해서 창문을 여니까 손에 안수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화살을 먹여서 창문 밖으로 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아스가 힘껏 화살을 당겨서 싸악 쏘니까 화살이 동쪽으로 날라 가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아람을 쳐서 멸망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화살 한 뭉치를 주고서 이것으로 땅을 치라고 했습니다. 요아스 왕이 한번 치고 두 번 치고 세 번 치고 허리를 툭툭 치고 일어나니까 죽어가던 엘리사가 벌떡 일어나서 고함을 쳤습니다. '왕이여 왜 세 번만 치느냐? 다섯 번, 여섯 번을 쳐야지! 아무리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더라도 왕이 아람을 치겠다는 의욕이 있어야 되지 않느냐! 세 번 치고 그만 두었다는 것은 안 되지 않느냐. 장차 왕은 아람 왕을 세 번 이기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부터는 아람 왕에게 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이 약속을 주셔도 그 약속을 실천할 의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서 아람을 치겠다고 약속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화살을 들고 땅을 쳐라. 아람을 멸할 때까지 치겠다는 열심과 정열을 보여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모든 일에 열심히 없으면 하나님이 열심 없는 그런 사람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믿/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갈수록 사람들이 한탕주의로 일확천금을 노리며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큰 병폐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두드리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열릴 것'이라고 하신 것은 그 분이 '열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멘!/
  우리 이 시간에 회개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문이 열리고 전도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8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본문의 말씀은 7절의 확인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명하신 주님께서 본문에서는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연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자에게 주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믿고 행동하는 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 찬 책입니다. 그 약속은 일획일 점도 변함 없이 다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환상적인 약속이라 할지라도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으로 유명한 데일 카네기는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하지 않는 말 세 가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없다'는 말하지 않고 '잃어버렸다'는 말하지 않고 '한계가 있다'는 말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없다'는 말 대신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잃어버렸다'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께서 회복시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 능력은 이것 밖에 안 된다고 한계를 설정하기보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래서 기도가 기적의 통로가 됩니다. /믿/아멘!/
  그러면 이처럼 우리가 담대하게 '구하고 찾고 두드릴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아멘!/

 

  ▶9-10절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예수님은 우리가 이처럼 간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의 응답자로써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보여주십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도선생도 도적질하여 자기 자식에게 공부시키고 학용품을 사줍니다.
  모든 부모들의 심정은 자기는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에게는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주님은 '너희 중에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을 예로 들었습니다.

 

  ▶11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악한자라도' 인생은 선한 것같이 보이는 자도 다 악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악한 자라도 심지어 도선생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식에게 도적질 가르치는 부모가 없고, 도리어 너는 앞으로 정직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여기서 '하물며'는 강조형으로 육신의 부모도 그러한데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희랍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벽의 여신 '오로라'가 죽을 운명을 타고 난 '티토누스'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때에 '제우스신'이 '오로라'에게 '애인에게 줄 선물을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자, 오로라는 '영원히 죽지 않게 해달라'고 해서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늙어도 죽지 못하기 때문에 선물이 저주가 되었습니다. '늙지 않게 해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상 나쁜 것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를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 잘 아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임을 믿고 기도한 다음에는 받은 줄 믿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누구십니까? 바로 우리가 믿는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기도의 대상을 바로 알고 기도해야 능력이 나갑니다. 왜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하십니까? 이 소리에 세상 사람들은 빈정댑니다. 예수쟁이들은 할아비도, 그 아비도 그 자식도 무조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서 촌수가 헷갈린다고 빈정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지으신 만 유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래서 '주여'라고 부릅니다. 주 '아도나이'라는 말은 '나의 생명의 주인'이라는 성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①능력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늘에 계씬 하나님이란 뜻은 계시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우주에 충만하다는 뜻이요,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알파가 되시고 오메가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분입니다.
  ②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씀 속에는 우리는 잘못하면 때리고 벌만 주는 무서운 아버지가 아니라 용서하는 아버지, 기다리는 아버지, 위로하는 아버지, 그리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치료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믿/
  ③그분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물며' 그러므로 구할 때는 반드시 좋은 것으로 유익한 것을 주신다는 이 확신을 끝까지 믿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같은 말씀은 눅11: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최대의 축복은 성령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든 자의 응답도 가난한 자의 응답도 절망하는 자의 응답도 성령이십니다. 7절은 이렇게 바꾸어 읽을 수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성령을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성령님을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성령님을 만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5장에서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할/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은 굉장히 귀합니다. 이 말씀은 성경 66권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율법이란 모세의 오경을 말하는 것이며, 구약의 12선지 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의 요약이란 뜻입니다.
  마22장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제일 큰 계명입니까?' 예수님은 37-40절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율법과 선지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는, 이 말씀을 따르면 하나님의 다른 모든 명령들도 지키게 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교훈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도덕과 윤리의 기본이라는 말입니다. 마5:17절에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여기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여기 '강령'은 '요청, 요약'입니다. '그러므로'는 접속사인데 11절과 12절을 연결시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여기 '그러므로'는 11절과 접속이 아니라 1-5절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12절은 1-5절의 연속되는 설명입니다. 비판하지 말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들보를 먼저 빼어라, 그리고 본문 12절을 상고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소극적인 것입니다. 이제는 형제를 비판하는 것은 뛰어 넘어 적극적으로 네 형제를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곧 네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의미가 살아납니다. 


  ▶본문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⑴이 말씀 속에 중요한 뜻은 참된 신앙이란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랑과 섬김의 대상, 즉 대접하는 대상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웃은 남편일수도, 아내일수도, 형제일수도, 친구일수도, 성도일수도 동네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이웃의 모두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인 것입니다. 목사님들도, 권사님도, 평신도도, 우리는 계급으로 만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섬김의 대상입니다.
  ⑵'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언뜻 보면 이 말씀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고 사랑 받기 위해서 이기적인 생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먼저 대접하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대접이란 관심과 사랑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웃은 미움의 대상, 시기의 대상, 무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마음을 열고 조건 없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아멘!/
  ⑶이 말씀 속에는 우리는 채권자가 아니라 채무자라는 것을 보여준 우리 모두는 복음의 빚진 자입니다. 복음의 빚은 졌으면 그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할/
  ⑷먼저 나 자신이 바른 양심과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도 남을 대접하라.' 이 말은 '양심이 바로 된 사람이 되라.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알고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⑸자기의 배려를 넘어서 타인을 배려하라는 말입니다. 남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바로 대접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할/
  ▶어느 부흥사에게 들은 감자사건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결혼 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가 싸움을 했습니다. 감자를 설탕에 찍어 먹어야한다는 신부와 고추장에 찍어먹어야 한다는 신랑의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진 것입니다. 우리 가문은 조상 대대로 감자를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는 신랑의 말에, 신부가 '당신 집안은 조상 대대로 웃기는 집안이다.'는 맞대응이 화근이 되었다. 그 날 밤 신랑신부가 각자 다른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신랑 어머니가 '그럼 우리 집안이 웃기는 집안이면 뉘네 집안은 울리는 집안이냐?'며 급기야는 양가의 전면전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이혼하고 말았답니다.
  그래도 이혼 전에 전문가에게 한번이라도 진단을 받고 헤어지자, 누가 옳은지? 하고는 서울의 유명한 대학교 식품영향학과 교수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 교수가 하는 말이 '글쎄요? 누가 옳은지 모르겠네요. 우리는 조상 대대로 감자를 소금에 찍어 먹었소.'라고 대답을 하더랍니다. 또 친구들에게 이 감자이야기를 했더니 '우리는 감자를 김치하고 먹는데'하고, 또 다른 친구는 '우리는 조상 대대로 감자를 아무 것도 안 찍고 그냥 먹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감자를 '토마토케첩은 어떻고 마요네즈는 어떠한가!' 사소한 일로 마음 상하고 상처 주고 서로 간에 장벽을 쌓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다 상대방의 배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그것을 깨닫게 해 주고 계십니다. /할/
  ⑹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이 사랑과 섬김의 생활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야 합니다. 자기가 싫고 귀찮은 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자기가 좋은 것은 상대방도 좋을 것입니다. 자기 입장에서 주장하면 모든 것은 풀리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으로 가야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주시고, 만나고, 열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가 기적의 통로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할/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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