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32강)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마6:19-24)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6:48

(제32강)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마6:19-24)

 

  유대인의 탈무드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물질을 다스리라! 그러면 가장 좋은 충복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물질을 그대에게 잔인한 폭군으로 다가 올 것이다.'
  천국 시민권을 가진 우리는 이 땅에다 발을 딛고 살아도 항상 천국에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물질 관에 대해서 주님이 주시는 교훈입니다. ◀제목 소개!▶

 

  돈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는 '버는 기쁨'이요, 두 번째는 '지키는 기쁨'이요, 세 번째는 '쓰는 기쁨'입니다. 그렇지요, 돈을 열심히 벌면 벌 때에 기쁨이 오고 또 그 돈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고 뿌듯합니다.
  그러나 호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어디에 가도 힘이 없고, 불안하고 배고픕니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은 돈 없으면 사람 구실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돈이 수중에 있으면 든든하고 기쁩니다. 또한 쓸 때에 기쁨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돈은 잘 써야 합니다. 바르게 써야 합니다. 옛말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써라'고 했습니다.
  ▶유대나라 어느 조그만 도시에 '모노바즈'라는 군주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 믿는 군주여서 자기의 재산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형제들이 깜짝 놀라 찾아와서는 '귀한 재산들은 이렇게 없애도 되느냐'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이때 모노바즈 군주가 아주 유명한 대답을 했답니다. '조상들은 땅에 것을 위해서 저축했지만 나는 위엣 것을 위하여 저축했으며, 조상들은 이자 없는 저축을 했는데 나는 이자 있는 저축을 했노라!' /할/
  인색한 사람들을 보면 열심히 벌기만 할 뿐 쓰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저축이란 것이 누구를 위한 저축이 됩니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일을 위해 쓴 돈은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상들은 이 세상에 저축했지만, 나는 미래의 세상에 저축했습니다.'라고 말한 군주의 말이 호감이 갑니다.
  여러분,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 적으로 쓴 돈은 이 세상에서 끝나지만 의롭게 쓴 돈은 오는 세상을 위해서 쓴 것이므로 자신을 위하여 저축한 것'과 같습니다. /믿/
  그래서 본문에서 주님은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오직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때때로 우리에게 역설적인 말씀으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땅에 쌓아두고 행복하기를 원하는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은 재산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현실은 돈이 없으면 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이웃과 갈등이 생기고, 친구의 우정이 금가고, 부모형제 간에도 재산 싸움에 재판을 하고, 또 돈 때문에 부부가 남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은 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데 돈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살벌해지면 안 됩니다.
  스코틀랜드 속담에는 '돈은 노력으로 얻고, 근심으로 지키다가, 그것을 잃으면 슬픔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많고 익살스러운 구두 수선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은행 앞에서 오랜 세월동안 구두를 수선하고 닦아주었습니다. 그는 온종일 노래를 부르며 웃음 속에 살았습니다.
  한번은 은행 간부가 구두를 닦다가 '당신은 마치 왕자처럼 살고 있는데 돈은 얼마나 법니까?' 그때 구두 수선공이 '그저 밥이나 벌어먹고 삽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 날 벌어 그 날 먹기도 바쁩니다.'라고 솔직하게 말을 했습니다.
  은행간부는 솔직한 구두수선공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은전 백 개가 들어있는 꾸러미를 그에게 주었습니다. 구두 수선공은 그 돈을 가지고 와서 금고에 넣고 잠그는데 그 돈과 함께 그의 생애 기쁨까지도 잠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날부터 그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행여나 그 돈이 어떻게 될까봐! 걱정하느라고 단잠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어느 날 생각해 봤습니다.
  돈 때문에 기쁨을 잃어버리고 식구들 간에도 공포와 불신 때문에 행복이 날아가 버린 것이 못내 안타까워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은화 100개를 모조리 끄집어내어 은행간부에게 갖다 주면서 '이 불쌍한 놈을 조금이라도 동정하신다면 당신이 주신 이 은화를 다시 받으시고, 제 노래와 잠을 들려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다시 기쁨을 찾았다고 하는 이솝우화입니다.
  여러분, 물질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감당할만한 능력이 있고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축복이 됩니다. 교만하고 완악하며 부패한 사람들은 오히려 돈 때문에 마음이 병들고 육신도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세상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먼저 성경 적인 물질 관을 알아보겠습니다.
  ⑴성경은 물질을 죄악시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물질을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다윗도, 솔로몬도 다 부자였습니다. 물질이 없이는 우리의 삶도, 우리의 선교도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돈을 많이 버십시오. 부자 되십시오, /할/ 그런데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돈을 많이 벌어라, 힘껏 벌어라,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써라'고 말했습니다.
  돈 자체는 선도, 죄도 아닙니다. 다만 잘 쓰면 선이 될 수 있고, 잘못 쓰면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
  ⑵물질을 우상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질이 우상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물질을 다스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 때문에 거룩한 주일을 놓치고 돈 버는 일에 매달립니다.
  마19:16절 이하에 예수님이 한 부자 청년과의 대화가 나옵니다. 청년이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계명들을 잘 지키라'고 하자 그 청년이 '어느 계명입니까?'
  예수님은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을 지키라고 하시자, 그 청년은 신이 나서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자, 그렇게 의기양양했던 청년의 얼굴이 갑자기 흙빛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라고 그 당시 상황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 그 청년이 물질을 바로 우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청년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신앙적으로 흠잡을 때 없는 완벽한 사람 같았으나 재물을 자기를 위하여 땅에 쌓아 두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것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떠나고 맙니다. 아브라함의 큰 보물은 이삭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우상인 사람도 있습니다. 먹는 것이, 집이, 사업이, 우상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굉장히 설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한이 맺히도록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돈을 벌어서 복수하자, 돈을 벌어서 한을 풀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돈을 복수하기 위해 버는 것도 아니고 한을 풀기 위해 버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돈 때문에 평생 고생한 사람이 한 사람 나오는데 누굽니까? 눅19장에 나오는 삭개오입니다. 그는 키도 작고, 외모가 별로 볼품 없는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돈이 있어야 행세할 수 있다고 믿고 돈을 긁어모으는 일에 악착같이 매달렸습니다. 동족을 죽이고 나라를 팔아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부지런히 세금을 거둬들이고 각종 부정부패에 손을 댔습니다. 매국노란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는 귀를 막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 그가 행복했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이 고독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불안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자 그의 첫 번째 고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눅19:8절에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의 물질 관에 대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까지 재물을 위해 평생을 살아왔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그 재물이 별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재물만을 쫓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자기에게 주어진 보물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믿/ 절대로 재물을 우상처럼 섬기지 마십시다. 많이 벌어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쓰는 성도가 됩시다. /아멘!/
  ⑶물질이 목적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어디까지나 돈은 살기 위한 수단일 뿐,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인생의 목적을 무엇이라고 소개합니까? 고전10: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결론은 나왔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할/
  ▶언젠가 크게 실패한 집사님이 간증하기를 '모두 다 망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쓴 돈 중에서 예배당 지으면서 하나님께 바친 것만이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없어질 줄을 알았다면 더 좀 많이 하나님께 바칠 것을...' 많이 바치지 못한 것은 후회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쓴 것만이 남은 것입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저축하고 있는 것이 나의 소유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했습니다.

 

  ▶19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여기 '땅'이란 이 세상을 뜻합니다. '쌓아 둔다'는 말은 저축뿐 아니고 사용(소비)까지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재물을 자기중심으로 모으거나, 저축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가리켜 '땅에 쌓아 둔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보물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누구의 것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눅12:15-21절에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밭에 소출이 풍성해지자 '내가, 내가' 하면서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땅에 보물을 쌓아 두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부요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부자의 생명을 빼앗으면 그 재물이 뉘 것이 되는 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1절에 보면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자기를 위해, 쾌락을 위해, 이 땅의 영화를 위해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입니다.

 

  ▶왜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했습니까?
  ⑴좀과 동록이 해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세상의 재물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돈이라고 하는 것은 비둘기 같아서 날아왔다가는 곧 날아가 버리는 물건입니다.
  여기 좀은 옷가지에 번식하며 망가뜨리는 것이요, 동록은 쇠붙이에 생기는 녹은 말입니다. 녹이 쓸어서 부식되면 망가지고 맙니다. 여기 좀이란 자신을 병들게 하고 죄를 범하기 쉬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물질은 인간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고 완악하게 만듭니다. 때로는 정신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은 전도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전도하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마음이 강퍅하고 교만하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 내 힘으로 살지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물질로 인하여 영혼은 불타는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정부의 고관들이 물질에 탐을 품으면 탐관오리가 되고, 선비가 돈을 알면 지식이 썩고, 예술가가 돈을 알면 작품이 썩고, 인간에게 돈이 붙으면 인격이 썩습니다. 한마디로 좀이 먹는다는 의미입니다.
  ⑵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는 곳이기 때문에 보물을 땅에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돈이 있으면 도적과 강도를 불러들이는 계기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돈이 많다고 소문이 나면 도적이 오고 강도가 오고 사기꾼이 따라 붙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기를 인색하고 땅에 쌓기를 즐겨하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날 교회를 갔다가 오니 도적이 들어와 금은 보석 현금 무려 7-8천만 원 이상의 것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그는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와서 큰 시험이 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구역 장이 알고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파출소에서 신고를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이 '파출소에 신고하지 마십시오, 심방을 가십시오, 가서 성경대로 되었으니 마6:19-20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멘 하라고 하십시오,'
  기가 막힌 구역장님이 '목사님, 도적 맞은 것도 성경대로 된 것입니까?'라고 되묻자 '하나님은 깨닫게 하시려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깨달은 구역장님이 그 가정을 심방하고 마6:19절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같이 열었었답니다.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같이 읽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그런데 도적 맞은 그 집사님이 성경 말씀을 읽다가 성령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아, 땅에 쌓아둔 보물을 도적 맞은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된 것이로구나, 그리고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도적 맞고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땅의 보화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믿음은 얻게 되었고, 하늘에 평화를 얻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하늘에 보화를 쌓은 성도가 된 것입니다. /아멘!/ 진정한 행복은 여기에 있습니다. /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보물이란 꼭 금은보화, 물질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보물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적의 군대가 한 마을을 포위했습니다. 그 군대 점령군 대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남자들은 모조리 우리의 포로로 잡아가 노예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모두 다 놓아줄 테이니 마을을 떠나라! 떠날 때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 한가지씩만은 가지고 가도 좋다'는 내용입니다.
  그러자 여인들은 금 수저, 은수저, 금목걸이, 귀걸이를 챙기어 바삐 나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은 이상하게도 허약한 몸이면서도 엄청나게 큰 보따리를 챙겨 나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여긴 검문하던 사람이 보따리를 헤쳐 보니 사람인 남자가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검문하던 군인이 자기 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대장이 여인에게 심문을 합니다.
  '이건 누구인가?' 여인이 '제 남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검문하는 대장이 '왜 명령을 어기는가? 보물을 가져가라 했거늘 어찌 사람을 메고 나가는가?' 그러면서 장수가 보따리를 올려 매려고 하자, 여인이 대답을 했습니다. '제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제 남편입니다.'
  적군의 장수는 그 여인의 지혜와 그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이 되어 '남편을 데리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는 탈무드에 이야기입니다. /할/
  이천 년 전의 보화는 옷이 가장 귀한 보화였습니다. 그래서 수7장에 아간이 외투 한 벌을 감췄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양식이 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에는 재물이 제일 큰 보물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재물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이 있습니다.
  ⑴시간이 보화입니다. ⑵건강이 보물입니다. ⑶젊음이 보물입니다. ⑷우리의 재능이 보화입니다. /믿/아멘!/
  그런데 유대인의 지침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다음에 하나님 앞에 한 번은 반듯이 서게 되는데 그 때 하나님이 꼭 물으시는 한 마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네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하여 살았느냐?'라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교육목적이라고 합니다. 우리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 물음에 대답할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할/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도적은 꼭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질병도 도적이고, 전쟁과 환란도 도적입니다. 이 땅은 좀이 먹는 곳입니다. 동록이 스는 곳입니다. 도적이 도적질해 가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20절의 말씀은 뭐라고 했습니까?

 

  ▶20절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보물을 갖지 말라! 포기하라'가 아닙니다. 그것은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고 도적이 들어올 수 없는 곳에 쌓아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⑴이 세상의 재물에 대하여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고, ⑵재물을 쓰되 하나님이 기억할 만한 일에 쓰라는 뜻입니다. /할/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하나님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은 마십시오, 돈을 많이 번 다음에는 돈을 못 씁니다. 없을 때부터 해야 있을 때도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잠시 있다 사라질 인생인데 욕심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아멘!/
  ▶1950년대 '앨버트 슈바이처'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까뮤'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슈바이처는 그 상금으로 아프리카에 가서 나병환자에게 병원을 지어주었습니다. 지금도 수백 명의 환자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뮤는 그 상금으로 파리근교에 별장을 짓고 그 별장으로 자동차를 몰고 가던 중에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대조적인 삶입니까? 여러분, 지금도 슈바이처는 젊은이들의 마음의 지주로 남아 있지만, 까뮤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잠11:24절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할/
  우리가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쓸 수 있는 모든 물질 가운데 가장 값있게 쓰인 물질이 있다면 하나님을 위한 헌금, 가난한 이웃을 위한 구제입니다.
  하늘나라에 쌓는 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나라를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오직 너희를 위하여'란 말은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되돌려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백지수표를 주십니다. /믿/
  우리는 의무적으로 쌓아야 할 보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십일조와 감사헌금, 또 건축헌금, 선교헌금 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부요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십일조를 원하고 감사헌금을 원하십니까? 그것은 우리 마음의 중심에 물질보다 하나님이 계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할/

 

  ▶21절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바로 이것이 보물(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할 목적이요, 이유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식이 군대에 가면 군인들만 봐도 마음이 뭉클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제대하면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저는 느꼈습니다.
  보물은 하늘에다 쌓아 둔 자는 마음이 하늘에 가 있습니다. /믿/ 하나님은 우리의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교회에 관심이 있는 성도는 마음이 하나님께 있는 성도입니다. 하나님께 계속 투자하십시오, 하나님께 마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이것이 믿음인데 이 믿음이 장성해서 능력 있는 믿음으로 활용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22-23절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보물에 대한 말씀이 나오다가 갑자기 눈에 대한 말씀이 나왔습니다. 보물은 땅에 쌓아 둔 사람은 마음이 땅으로 가 있으므로 심령의 눈이 어두워집니다. 마음이 하늘로 가면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땅으로 가면 눈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눈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영안이 열려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할/
  ⑴육체의 눈은 몸의 등불과 같아서 육신의 활동을 인도하는 것처럼 마음의 지혜는 믿음의 등불로 신앙생활을 지도합니다. 만일 육체의 눈이 나빠서 만물을 보지 못한다면 그 답답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마음의 지혜(신앙의 지식)가 없으면 그 영육간의 어두움은 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⑵성도가 육체의 눈만 밝고 신령한 눈이 어두우면 현실과 물질의 가치만 알고 신령한 은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합니다. 따라서 보물을 하늘에 쌓는 성도는 하나님을 보는 눈이 더 밝아질 것입니다. /아멘!/
  ⑶그래서 사도바울은 엡1:17-19절에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신령한 은혜의 가치를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24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이라고 대답 할 줄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이왕이면 둘 다라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를 찾아온 친구에게 '술을 먹겠소? 밥을 먹겠소? 떡을 먹겠소?'하고 물었더니 그 친구 대답하기를 '이왕이면 술에 밥을 말아서 떡을 안주해서 먹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사랑이란 이렇게 욕심이 많은 존재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어느 농부가 밖에서 일을 하다가 아주 기쁜 표정으로 집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지금 우리 소가 두 마리 새끼를 낳았소!' 하며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는 부인에게 '한 마리는 하얀 송아지요, 다른 하나는 얼룩송아지인데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키워서 주님 사업에 쓰고, 또한 마리는 키워서 우리를 위해 씁시다.'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어떤 소를 주님께 드리고 어떤 소는 우리가 갖느냐?'고 물었더니 그 농부는 '지금은 둘 다 새끼니까 그런 걱정말고 잘 키우기나 하자'고 했습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농부가 아주 슬픈 표정으로 부인이 있는 부엌으로 들어와서 말하기를 '우리 주님의 소가 죽었소' 그래서 부인이 '어느 소가 주님의 소이며, 어느 소가 우리의 소인지 결정하지도 않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였더니 그는 '내가 주님의 소를 하얀 소를 마음속에 결정하였는데 그 흰 소가 죽었소'라고 대답하드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냐 재물이냐'를 먼저 결정하지 않으면 항상 주님의 소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고, 한 신하가 두 왕을 섬길 수가 없으며 한 여자가 두 남편을 섬길 수가 없듯이 성도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습니다. /믿/
  여기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라고 하심은 성도가 참되신 주 하나님만 섬겨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다른 주인을 두거나 섬겨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절대자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종속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방법은 무엇일가요?
  ⑴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일 성수입니다. 중요한 인생의 원리가 있습니다. '예배 성공이 인생 성공이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보면 모두가 예배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노아나 아벨이나 모두 예배를 잘 드린 사람들입니다.
  예배는 원어는 '아바드'인데 이 말은 '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배입니다. 그렇기에 예배 성공이 인생 성공입니다. /할/
  ▶미국의 유명한 장군 '리'에게 수요일 아침에 대통령이 전화를 했습니다. 저녁 만찬에 초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리'장군은 선약이 있어서 거절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은 '나와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보다 더 귀중한 일은 없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스코트란드의 '에릭 리들'은 육상선수였습니다. 금메달 유망주였으나 경기하는 날이 주일이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는 금메달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가서 예배드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날 다른 종목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서 금메달 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개척 초기에 미국 캘리포니아는 사금을 캐러 가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룬 적이 있었답니다.
  서부로 먼저 가서 구역만 정해 놓으면 그것이 모두 자기 땅이 되고, 또 그 땅에서 마음대로 사금을 캘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거부가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이끌고 서부로, 서부로 달려가는데, 남 보다 빨리 가서 많은 땅을(모래 밭) 확보하고, 많은 사금을 캐내어 부자가 되려는 욕심으로 쉬지도 않고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다한 사람들 가운데 청교도들은 예외였습니다. 저들은 서부로 달려가는 도중에 일곱째 날 곧 주일이 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온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서부로 가던 수많은 사람들 보다, 청교도들의 걸음이 뒤떨어 졌습니다.
  그런데 서부에 도착할 즈음에는 청교도들이 절대적으로 앞서 갔고, 더 많은 땅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일에는 예배드리고 쉬어 갔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쉬지 않고 강행을 하다가 대부분의 사람들과 가축 떼들이 병이 들어 죽기도 하고, 결국 늦게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예배드리는 일이 천국에 보물을 쌓는 생활입니다.
  영국의 '롱펠로우'는 말하기를 '일요일은 그 일주일간을 한 덩어리로 묶는 황금 고리다.'라고 했습니다. 주일 성수가 그렇게 소중합니다. /아멘!/
  ⑵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주인으로 섬기는 두 번째 방법은 십일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⑴물질의 주인이 하나님 자신임을 알리고, ⑵그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의 고백이요, ⑶또한 물질 선용에 대한 맹세의 표요, ⑷더 많은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말3:10-1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할/
  ⑶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으로서 세 번째 좋은 방법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합니다. 대화가 끊어진 관계는 이미 관계가 아닙니다. 부부 사이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오는 현상은 대화가 없어집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많이 자주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⑷하나님을 섬기는 방법 중에 중요한 방법은 전도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오직 전도였습니다. 지옥 갈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는 일을 주님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하신 말씀도 전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잘 살아라' 그리고 승천하시지 않았습니다. 전도하라고 분부하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전도는 주님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현명한 판단을 선택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저는 말씀의 결론을 마6:33절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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