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45강) 귀신을 몰아내신 예수님! (마 8:28-34)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6:59

(제45강)    귀신을 몰아내신 예수님! (마 8:28-34)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인 가다라 지방에 가셨습니다. 거기서 귀신이 들려 미쳐버린 한 젊은 청년을 만났습니다.
  이 청년은 어찌나 지독한 귀신이 들어갔는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자기 몸을 돌로 때리고 자기 입으로 옷을 찢고 자기 살점을 물어뜯어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청년이었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이 밧줄로 그를 묶어도 보았지만 그때마다 밧줄을 끊어버렸습니다. 또 쇠고랑을 채워 놓으면 그것도 끊어버립니다. 그 힘은 자기의 힘이 아니고 그 속에 역사하는 귀신의 힘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 누구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포기하고, 사회에서도 방치해 버린 그런 인간쓰레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버림받은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찾아가 만나주셨습니다. /할/
  무덤 사이에서 웅크리고 자기 자신을 학대하던 이 귀신들린 청년이 예수님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고 '지극히 높으신 다윗의 자손이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게 마소서' 또 간구하기를 '만일 우리를 쫓아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보내소서!'
  예수님께서 가라하시니 귀신이 나와 돼지 떼 속에 들어갔고, 돼지들이 미쳐 비탈로 내리 달려가다가 바다에 빠져 몰살당했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막5:1-20절과 눅8:26-39절에서 더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본문은 돼지 떼의 숫자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마가복음을 보면 '거의 2천 마리나 되더라'고 말합니다. 그 2천 마리 돼지 떼들에게 악령을 쫓아내서 돼지 떼들이 몰살하므로 많은 재산 피해가 생겼습니다.
  왜 하필이면 예수께서 남의 재산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이 일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한 생명의 구원은 어떤 희생보다도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으로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내용 면에 있어서도 본문에는 두 사람으로 나오는데 마가복음에서는 한 사람만 나옵니다. 이것은 어느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의 저자는 두 사람 중에서 더 병이 짙은 사람, 쉽게 말하면 귀신에 더 많이 사로잡힌 사람을 클로즈업한 것입니다. /할/ ◀제목 소개!▶

 

  ▶여기서 우리는 귀신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합니다. 귀신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는 처녀귀신, 달걀귀신, 몽달귀신, 만득이 귀신 등 한풀이하는 귀신, 익살스러운 귀신론이 있습니다만, 지금 교계에는 잘못된 귀신론 때문에 귀신이나, 사탄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겁이 날 정도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는 잘못된 귀신론이 교인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귀신은 사탄을 수종드는 영물입니다. 사탄의 하수인입니다. 귀신은 항상 복수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그 수가 많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귀신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 사탄의 존재를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처음에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천사가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고 교만해지고, 불순종함으로 사탄이 되었습니다. 악한 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계12:9절에 보면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사탄은 히브리어이고, 마귀는 헬라적인 용법인데 마귀는 '유혹하는 자, 사람을 꼬이는 자'입니다.
  사탄은 실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적 실체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서도 어떤 이는 하나님은 믿는데 귀신이나 사탄의 존재는 부인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 하나님을 대항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불 신앙을 심어 주어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신 이유 중의 하나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요일3:8).
  같은 배경에 눅8:30절에서는 귀신을 '군대'(레기온)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당시 로마의 군대는 6천명인 것으로 보아 집단적인 귀신이 들렸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귀신들도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약2:19절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으며(29절), 자기들을 무저갱 속으로 던져 넣어 심판하실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귀신이 들렸다는 개념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귀신들렸다는 말을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귀신들린 것과 귀신의 영향력에 있는 것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귀신들렸다는 것은 어떤 정신병에 걸렸다는 뜻도 아닙니다. 본문 28절의 모습은 정신병이 아닙니다. 정신병은 의학적으로 보면 여러 가지 이유를 통해서 오게 되는데 뇌에, 또는 뇌 세포에 이상이 생겨서 망상을 한다든지, 우울해진다든지, 어떤 노이로제 증상을 일으키기 마련입니다.
  물론 귀신에 의해 정신병이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정신병이 귀신으로 말미암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잘못된 교파는 병에 걸리기만 하면 귀신이 들렸다고 합니다만 이것도 잘못된 주장입니다.
  귀신들렸다는 것은 악한 영이 나의 인격 속에 들어가, 나를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귀신에게 억압되어서 귀신이 시키는 데로 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귀신의 영향권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민감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지나친 미움의 감정, 질투, 시기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 음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술과 담배에 메어 달려 그것이 없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은 귀신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할/

 

  ▶그렇다면 마귀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요일3: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일에는, 언제나 방해세력이 있습니다. 마귀는 성령의 역사를 결코 가만히 보고 있지 않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직접 공격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를 공격하여, 결국 예수님을 은30에 팔아서 십자가에 내주는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죽어야 한다고 가르치실 때, 마귀는 베드로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베드로 뒤에 숨어 활동하는 사탄의 세력을 보시고 꾸짖으셨습니다.
  사단 마귀는 오늘도 우리가 죽고 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게 될 때, 또 영적인 일들을 할 때(기도, 예배, 찬양 등) 적극적으로 방해합니다. 우리를 이용해서, 가정을 파괴하도록 못된 말을 하게 하고, 분노하고, 싸우고 속이고,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게 합니다.
  마귀는 몰래 들어와서, 우리 인격을 파괴시키고, 우리가 죄 속에 살게 만듭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단의 하는 일을 간단히 말하면, 인간들을 괴롭히다가 지옥으로 끌고 가는 일이 그들의 주 임무입니다. /믿/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가 하는 일을 아셨기에, 마귀의 일을 멸하고, 우리를 마귀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믿/
  히2:14-15절에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어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마귀로부터, 마귀의 일로부터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여기서 '자유케 한다'는 말은, 파괴자로부터 우리를 풀어준다는 말입니다. /할/

 

  ▶그렇다면 우리가 원수 마귀를 무엇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권세로 이길 수 있습니다. /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우리 모두는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아멘!/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28:18절에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할/
  인간은 누구의 권세 아래 있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집니다.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마귀 권세, 흑암의 권세 아래 있지만, 우리는 더 이상 흑암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골1:13절에서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할/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이길 수 있습니다. 막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할/아멘!/ ▶이제 차례대로 본문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28절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만하더라"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여기서 '또'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계속 능력을 행하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문둥병자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백부장의 하인도 치료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장인의 열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풍랑도 바람도 잠잠케 하셨습니다. 여기서 '또' 라고 한 것은 주님의 능력이 또 나타나신다는 예고입니다.
  '가다라'지방은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 위치한 베레아 지역의 수도로써 그곳에 인접해 있는 도시가 바로 거라사 지방 또는 데가볼리 지방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가다라'로 표현했지만 다른 복음서에서는 '거라사' 지방으로 나와 있습니다.
  본문은 포괄적으로 지명을 사용했고 다른 복음서는 그 지역을 세밀하게 표기했습니다. '예, 서울, 성동구' 이 지방은 이방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보기 때문에 키우지 않습니다.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여기 귀신들인 자의 상태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①인격이 파괴된 자입니다.
무덤 사이에 거했고, 눅8:27절을 보면 옷을 벗어 버렸고, 난폭했고, 쇠고랑을 끊었고, 소리 질렀고,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인격이 파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인격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⑴올바른 것을 생각하는 머리가 파괴되었다는 것이고, ⑵올바르게 사는 생활이 깨어져 버렸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귀신이 역사를 할 수만 있으면 한 사람이라도 더 무질서하고 방종하고 타락한 삶을 살기를 조정하는 영입니다. 눅8:27절에 보면, 오랫동안 옷도 입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옷이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수치를 가리는 것입니다.
  창3:7절에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또 창3: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그렇습니다. 옷은 예의를 나타내는 것, 신분을 나타내는 것(왕자는 채색 옷), 몸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옷을 벗어 버렸다는 것은 수치도 모르고 윤리와 도덕은 물론 예의범절이 없이 짐승과 같은 행동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②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자학하는 것, 우리의 육신도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성전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임하는 거룩한 성전인 육신을 술로 담배로 마약으로 자학해서는 안 됩니다.
  ③가정이 파괴된 자입니다. 마귀가 최초로 파괴한 가정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입니다. 마냥 행복했던 아담의 가정은 사탄이 던진 유혹 때문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사탄이 아담의 가정에 던진 유혹은 탐심입니다.
  창3:6절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기서 먹음직하다는 것은 입으로 먹고 마시는 것을 의미함이요, 보암직하다는 것은 눈으로 감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목욕하는 것을 보고 범죄 했습니다.' 지혜롭게 할 만하다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귀는 미각, 시각, 지각을 동원해서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본문의 귀신 들린 자가 어디서 살았습니까? '무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무덤은 우리나라와 같이 잔디가 있고 편편한 무덤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무덤은 돌산이나 혹은 굴입니다. 벼랑의 바위벽을 깎아내어 굴을 만들어 무덤으로 사용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방처럼 넓게 되어 있는데 그곳에 시체를 갖다 놓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은 그런 묘지들 사이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에서 버림받은 잡니다. 귀신들린 자는 무덤, 그러니까 주검이 있는 곳, 불결한 곳을 좋아합니다. 왜? 원래 귀신은 악한 영이기 때문에 더러운 것을 좋아하고 불결한 곳은 좋아하고 잔인한 것을 좋아합니다.
  ④심히 사납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 갈 수 없을 만하더라.' 마가복음에서는 아주 구체적입니다. 막5:4절에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어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귀신은 힘이 셉니다. 귀신도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주님의 권세 앞에 벌벌 떱니다. 능력과 권세는 차이가 있습니다. 8톤 트럭은 힘이 셉니다. 그러나 교통순경의 권세 앞에 꼼짝 못합니다. 서라고 하면 서야하고 가라고 하면 갑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참으로 사납습니다.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는 사람을 '미친개'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고 괴롭게 하고 때리고 물고, 상처를 내고 부수고 손해를 끼치게 합니다. 악령을 받으면 악을 행하는데 강합니다. 그러나 마귀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성령 충만한 성도 앞에는 꼼짝도 못합니다. /믿/아멘!/

 

  ▶28절은 귀신들린 자의 상태를 말합니다. 본문과 다른 복음서를 종합해 보면 귀신들린 자의 모습이 8가지를 정리됩니다.
  ⑴성격이 아주 거칠고 사납습니다.
  ⑵그를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⑶쇠사슬과 고리를 끊을만한 어떤 힘이 있습니다. 실제로 귀신들린 사람은 장정 서너 명이 붙들어도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⑷어디서나 늘 소리 지르고 돌아다닙니다. 무덤에서나 산에서나 들에서나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릅니다.
  ⑸무덤 사이에서 방황하고 배회합니다.
  ⑹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합니다. 자기 몸을 찢고 심하게 합니다.
  ⑺옷을 입지 않거나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닙니다.
  ⑻집에 거하지 않고 뛰쳐나갑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귀신 들린 사람은 본래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 눅8:35절에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 주신 후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 사람은 원래 난폭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더러운 병에 더러운 사상에 더러운 귀신에게 인격을 빼앗기고 보니 이렇게 변해버렸습니다. 귀신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29절 "이에 저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소리 질러 가로되' 여기서 소리 질렀다는 것은 예수가 무서워서 기겁을 하고 소리 지를 것을 의미합니다. 왜 귀신이 예수님을 무서워합니까?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가지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할/ 그래서 귀신들린 자들이 교회에 오면 가슴부터 두근두근 거립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기가 질려 고개를 들지도 못합니다.
  귀신들은 능력 있는 성도와 눈길을 절대로 피합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의 권세를 무서워하고 주님의 보혈을 무서워합니다. 귀신들린 자는 예수님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떱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마치 빛 앞의 어두움과 같습니다. 큰돌을 들추면 그 속에 많은 지렁이들이 있습니다. 이 지렁이들은 음침한 곳, 돌 밑에 습기 있는 곳에서 삽니다. 그런데 돌을 들쳐 냄으로 햇빛이 들어오면 지렁이들은 기침을 하고 필사적으로 도망갑니다. 귀신의 모습도 꼭 이와 같습니다.
  귀신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무서워합니다. 특히 더러운 귀신은 기도하는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능력 있는 성도를 무서워합니다. /아멘!/
  그런데 귀신들이 조롱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위선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믿음이 없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성도는 귀신의 밥입니다. 벌떼처럼, 우는 사자처럼 달려들어 괴롭게 합니다.
  행19:13절 이하를 보면 사도바울이 전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병마가 떠나고 귀신이 떠납니다. 이것을 보고 마술을 하던 유대인이 시험적으로 귀신을 쫓습니다.
  귀신들에게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는데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귀신들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는 모르겠다.'며 달려들어 옷을 벗깁니다. 성경은 이 마술 하던 자가 옷을 벗겨진 채 도망하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귀신들에게 조롱당하는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 있고, 또 하나는 '귀신을 꾸짖고 귀신을 내어쫓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할/
  ▶귀신들린 자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똑같은 내용이지만 막5:6-7절은 더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여기서 발견되는 귀한 진리가 있습니다.
  ⑴누구보다도 귀신들이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아보았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분이 세상에 오셨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알아보았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이는 메시아를 지칭할 때, 특히 신성을 가리킬 때 쓰는 칭호입니다. 약2:19절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⑵귀신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여기서 '괴롭게'란 말은 '멸망시키려고, 패배시키려고'라는 의미입니다. 요일3: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할/
  우리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볼 때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그러나 또 다시 한번 알아야 할 사실은 예수님이 오신 근본적인 의미는 '사탄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창3: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뱀의 머리통을 박살내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심으로 창3:15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 '때가 이르기 전'이라는 표현을 귀신들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귀의 최후의 날, 세상의 종말, 대 심판의 날을 보여주는 문구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끝장이 납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기 전 할 수만 있으면 삼킬 자를 찾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세상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할/

 

  ▶30-31절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보내소서 한 대"
  많은 돼지 떼가 있는 것을 보고 '만일 우리를(이 사람에게서) 쫓아내실진대 저 돼지 떼들에게로 들여보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귀신들도 사는 거쳐가 있어야 했습니다. 주로 사람의 마음속이나(마12:44), 짐승에게나 아니면 두루 돌아다니는 생활(욥1:7)을 하는데 예수님이 자신들을 그 사람의 마음에서 쫓아내려 하시니까 다음 처소인 '돼지 떼에게로 들어 갈 것이니 그것을 용납해 달라'는 뜻으로 '들여보내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귀신들이 어떤 사람이나 짐승에게 들어가 범접할 때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합니다(신28:28). 따라서 하나님은 귀신의 고삐를 잡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욥1:12).
  막5:13절에서는 돼지 떼의 수가 약 2천 마리나 된다고 했습니다. 돼지 2천 마리는 큰 재산입니다. 한 마리에 5만원씩 계산해도 1억 원이요, 10만원만 계산해도 2억입니다. 그러나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을 생각할 때 아무것도 아닙니다.
  '돼지 떼에 들여보내소서!' 귀신들이 이러한 요구를 한 이유에 대하여 두 견해가 있습니다.
  ①귀신들은 육체적인 거처를 소유하기 원했기 때문이라는 견해와
  ②그 지방 사람들의 소유인 돼지 떼를 몰살시킴으로 그 지방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미워하는 생각이 생기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견해입니다.
  유대인들은 돼지 사육을 안 합니다. 왜? 모세의 율법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레11:7-8절에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우리는 본문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2천 마리의 돼지 떼보다도 한 영혼이 귀합니다. 현대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물질주의에 있습니다. 물질을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물질의 희생을 치르면서도 참된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더 귀하게 여깁니다. 혹시 부도가 나고 재산이 풍지 박살이 났습니까? 그 과정에서 사람을 찾았다면 기뻐하십시오, 물질보다는 자신의 생명입니다.
  혹시 병이 들어 고통스럽습니까? 그래도 그 병을 통해서 예수님은 발견하였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재산 잃고 건강 잃고 지위를 잃고 모든 것 다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내 인격을 새롭게 찾고 믿음을 굳게 세우면 회복의 역사는 분명히 일어납니다. /아멘!/할/

 

  ▶32절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님이 귀신을 어떻게 쫓아내셨습니까? '저희더러 가라하시니' 창조주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거스를 그 어떤 피조물도 없습니다. 막5:8절에서는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귀신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봅니다.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예수님의 능력은 귀신도 순종하는 능력입니다.
  예수, 그분이 대체 누구시기에 그런 능력이 나옵니까? 문둥병, 중풍 병, 열병이 주님 말씀 한마디에 일순간 치료됩니다. 그처럼 무섭던 폭풍도 풍랑도 예수님 말씀 한마디면 잠잠해 졌습니다. 엄청난 능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능력은 어떤 정신력이나 최면술이나 마술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의 능력은 고도의 훈련을 통해서 나타나는 참선이나 어떤 기나 인간의 정신력을 이용한 힘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가지신 능력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우리는 '성령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시62:11절에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또 빌2:10절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아멘!/
  예수님의 능력은 땅의 능력이 아니라 하늘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국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국력은 군사력, 경제력, 정치력, 문화 정도의 의해서 평가됩니다. 나라마다 힘이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힘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도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은 국력에 의한 것도 아니고 정부가 준 능력도 투표에 의해서 생긴 능력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에 기초한 능력입니다.
  막9:1절에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 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가라 명하시니 귀신들이 뛰어 내려가다가 바다에 다 빠져 몰살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막5:9절에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여기 돼지 떼는 군대마귀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정체를 물으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 그 자체가 인격입니다. 인격 속에 그 사람의 신앙도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름을 매우 소중하게 다룹니다. 70인의 제자들의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고 기뻐하지 말라, 네 이름이 생명 록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귀신들린 청년은 자기의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군대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전케 하시는 분입니다. 본문의 기사를 다룬 복음서를 보면 귀신들렸던 그 청년이 새로워졌습니다.
  ①정신이 온전해졌습니다.
  ②옷을 입었습니다.
  ③예수님 발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구원해 주신 그 은혜가 감격해서입니다.
  ④예수님이 행하신 큰일을 전파하였습니다. 막5:20절에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할/
  귀신들린 사람이 나음을 받은 다음 예수님께서 큰일을 행하신 일을 데가볼리에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33-34절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돼지 치던 사람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가 동네로 뛰어갔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정말인가 하고 예수님께 온 것입니다.
  그들은 두 가지 사실을 목격했습니다. 하나는 그렇게 미친놈처럼 쇠사슬을 끓고 선량한 어린양처럼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장면과 또 하나는 돼지 떼 2천 마리가 몰살한 현장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보고 '예수님 떠나 주세요.'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정말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들도 무릎을 꿇고 '주님!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우리를 축복해 주십시오.'
  예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기로 간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멸하려 오신 분이십니다. 귀신은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오셨다.'고 요10:1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예수님의 권세 앞에 우리를 죽이려고 사자처럼 울부짖고 다니는 사탄의 권세는 한 길로 왔으나 일곱 길로 쫓겨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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