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강) 선택받은 열두 제자! ① (마 10:1-4)
선택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국민으로부터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선택받은 것도 축복입니다. 서울 시민으로부터 시장으로 선택받은 것도 축복입니다. 초등학교 한 교실에서 급장으로 반장으로 선택받은 것도 축복입니다.
한 남자에게 선택받은 처녀의 기쁨도 큽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의 선택을 받은 자입니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이 자녀로 세워주셨습니다. 대통령의 자녀도 끗발이 대단합니다. 재벌 자녀들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삽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할/
본문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혼자 일을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제자를 선택하셔서 훈련시키십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 가장 중요한 사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론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는 사역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큰 사명은 '십자가를 지는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피 흘림이 없이는 인류를 구원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제자를 양육하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삼년 동안 열두 사람을 택하여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구약 교회의 대표적인 것도 12지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열두 제자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열둘은 3과 4를 곱한 수입니다. 3은 하늘에 숫자이고, 4는 땅의 숫자입니다.
하늘의 숫자와 땅의 숫자를 합치면 7입니다. 7은 완전 숫자입니다. 3과 4를 곱하면 12가 됩니다. 12는 선택 수입니다. 구약의 12지파, 신약에 12사도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합치면 24, 계시록에 보면 24장로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3년 교육을 이론 교육이 아닌 실제 주님의 삶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12제자 양육을 위해 그의 전 생애를 쏟으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수천 명에게 설교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은 일대 일로 만나 구원과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대중과 개인에게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항상 마음을 주었던 대상은 열두 제자입니다. 본문을 차례대로 보겠습니다.
▶1절"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1절은 면밀히 보면 9:37-38절에서 이어지는 문맥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그리고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추수할 일꾼들도 뽑았습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선교사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12제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12제자들은 교회를 세워 개척자가 되어 지금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교회가 우뚝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소명'이 나오고, '선택받은 제자들에게 능력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①제자란 예수님에 의해서 선택하고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시니' 하나님이 불러주신 것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교인, 신도라고 합니다. 교인보다 더 중요한 성경 적인 말은 성도입니다. 성도라면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은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란 군대의 지원병같이 자기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서기관이 '주여! 당신이 어디로 가든지 나는 당신을 따르겠나이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거절이 있어야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원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신 자들입니다.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신 것입니다.
요15: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할/
▶주님이 어떤 자들을 선택하셨습니까?
⑴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을 선택할 때에 여러 가지를 봅니다. 외모를 본다든지 학벌을 본다든지, 가문을 본다든지, 사회적 지위를 본다든지, 과거의 경력을 본다든지, 이력서를 참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어떤 조건을 보시지 않고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불러주셨습니다.
당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습니다. 당시에 매국노로 지탄받던 세리 마태도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열심당원 애국자였던 가나안 사람 시몬도 불렀습니다. 그들 모두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⑵그러니까 은혜로 선택받은 것입니다. 사람이 선택받는다는 것은 여럿 중에서 골라 뽑히는 행위인데 거기에는 무엇인가 기준이 있습니다. 학벌이 좋다든지, 공로가 많다든지, 능력이 많다든지, 하는 법인데 예수님이 제자들은 선택한 기준은 전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은혜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택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선택받은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고, 지식이 많고, 힘이 세다고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 무조건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것입니다(고전15:10).
②선택받은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는 권능,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목자로, 권사로, 여 집사로, 집사로, 평신도로 불러주시고 불러주신 다음에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권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막3:14-15절을 보세요!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능력을 받고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안 받은 것 같이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이름은 세상에서 제일 큰 위력을 가진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금은보화를 소중한 재산으로 섬깁니다. 부동산을 최고의 가치로 압니다. 또 자녀들의 출세를 소중한 재산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의 재산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계22:13절에 '나는(예수님)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이름은 처음과 마지막이 되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이름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또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름의 권세가 크고 위대하십니다.
행4:12절을 보세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할/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증거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왜 오직 예수인가?
⑴그 분의 '존재의 유일성' 때문입니다.
히13: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산 종교가 있고, 죽은 종교가 있습니다. 생명을 주는 종교가 있고, 주지 못하는 종교가 있습니다. 교주가 살아 있는 종교가 있고, 교주가 죽은 종교가 있습니다. 교주의 무덤이 없는 종교가 있고, 무덤이 있는 종교가 있습니다.
다른 종교의 교주들은 어제는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존재하십니다. /믿/
⑵'구원의 유일성'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구원이라는 단어가 구약에서 400회, 신약에서 150회, 도합 550이나 나옵니다.
베드로는 '천하인간의 그 어떤 이름으로도 구원은 결코 불가능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하셨습니다.
⑶'능력의 유일성'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풍랑도 잠잠케 하셨습니다. 권세를 쥔 자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만 살리는 일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를 살리신 분입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요1: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⑷'사랑의 유일성' 때문입니다.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이 사랑을 엡2:4절에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밥이나, 옷이나, 돈이나, 몸을 주는 사랑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사랑은 생명을 주는 사랑입니다. 누가 나를 대신 죽어줄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거기에는 조건도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그 큰사랑 때문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석가, 공자, 마호메트, 문선명'이가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도 다 죽어서 무덤에 있고, 앞으로 무덤으로 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왜 오직 예수인가?
⑴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오직 예수입니다.
이 땅에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마다 교주가 있습니다. 공자도 석가도 자기가 신의 아들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⑵예수님만이 인간을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오직 예수입니다.
공자도 석가모니도 모하메드도 맹자도 다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들의 도덕적인 가르침은 대단히 훌륭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책임지고 대신 죽어 준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 죽어 주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속죄의 죽음입니다.
⑶예수님의 피만이 속죄의 효능이 있기 때문에 오직 예수입니다.
요일 1:7절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세례 요한도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⑷그 분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오직 예수입니다.
시115:12-13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대소 무론 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또 삼상2:6-7절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할/
우리는 위인들을 존경합니다. 그 이름들을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의 사상이 우리의 생각에 새로운 활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이 남긴 말씀과 업적들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위인보다도 더 위대한 이름이 '예수'입니다. /믿/
⑸우리에게는 예수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름이 갖는 귀한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름 속에 그 분의 인격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 많은 재벌의 이름이, 어느 학자의 이름이, 정치가의 이름이, 배우의 이름이, 로마의 황제의 이름이, 큰 의미가 있는 줄로 착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연예인들의 이름과 사생활까지 환하게 알고 있다고 대단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 이름 속에 보면 좋지 못한 스캔들만 있습니다.
영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의 첫 번째 무기는 말씀이고, 두 번째 무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초대교회의 제일 위대했던 이름은 로마 황제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세계를 뒤흔들던 제일 위대한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나폴레옹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칼로 망했으니 예수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오사마 대통령의 이름이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이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무너져 버리고 잊어질 이름들입니다. 김대중씨도, 노무현씨도 다 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은 2천년 동안, 아니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영원불멸의 이름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멘!/
⑹베드로가 가장 크게 사용한 무기가 바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입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를 바라보며 '우리를 바라보라' 그리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할 때, 걸었습니다. 뛰었습니다. 춤을 추었습니다. 그 앉은뱅이가 너희들 앞에 섰다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10).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 큰 무기가 있습니다. 이제 질병으로, 저주로, 곤고함을 당하는 사람에게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의 무기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할/
⑺초대교회의 예수의 이름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습니다.
행4:30절에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이름입니다. 오늘도 이 역사는 계속됩니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할/
⑻그 이름 앞에 다 굴복 당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행9:22절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사람이 굴복하는 이름, ㈁세도가들이 굴복하는 이름, ㈂세상 권세 자들이 굴복하는 이름, ㈃악령들이 굴복하는 이름입니다. 바로 이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능력의 이름입니다. /할/
이러므로 바울은 빌2:9-11절에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세우셨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도 모든 무릎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고 외쳤습니다. /할/
이 이름은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가 있습니다. 닫으면 열 자가 없고, 열면 닫을 자가 없는 그분께서 그 이름을 저와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아멘!/
이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이름 앞에 모였습니다. '너희가 네 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라' /할/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곧 저와 여러분의 능력입니다. 믿음의 사람의 최고의 무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를 대적하고 악한 영의 권세를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를 일꾼으로 선택하신 하나님, 우리를 일꾼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이미 권능을 주셨고, 또 권능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권능을 받았습니다. 의심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권능을 주신 것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주신 자에게는 열매를 찾으십니다. 심으신 다음에는 거두어들이십니다. 많이 주신 자에게는 많이 찾으시고 적게 주신 자에게는 적게 찾으십니다. 우리는 달란트 비유를 잘 압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추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우리 1절에서 귀한 교훈하나를 붙들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셨다는 소명의식이 우리에게 있느냐를 확인해야 합니다. 여러분, '나는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까?' 자신에게 먼저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자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묻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고 부름 받은 사람들이기에 누구에게 대가를 바라고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제자란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집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 될 자격이 없는데 아무 능력이 없는데' 하고 낙심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훈련시키시고 제자를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12제자를 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학벌도, 사회적 지위도 별 것 아닙니다. 그렇다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12제자 대부분 갈릴리 촌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12제자를 분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⑴영적 이해력이 둔한 자들이었습니다. 마15:15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천국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가 되었으면 그 정도는 알아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주여! 이 비유가 어려워서 알아들을 수 없으니 쉽게 설명하여 주십시오.'
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친구들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왜 오셨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겠다고 말씀하시니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하며 막았습니다.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했으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⑵겸손할 줄 몰랐습니다. 막9:33-34절에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쌔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갈 때, 제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제자들 중에서 누가 크냐? 누가 으뜸이냐?' 하는 것을 가지고 논쟁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⑶제자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마8:26절에 바람과 바다를 꾸짖기 전에 제자들을 꾸짖었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끝까지 예수님 곁에 낳았던 사람들은 연약한 여자들이었습니다.
⑷비겁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이나 부인한 자가 바로 예수님의 수석 제자 베드로였습니다.
⑸그들은 능력이 없었습니다. 귀신들린 어린아이의 귀신을 쫓지 못했습니다. 아이 아버지가 할 수 없이 예수님께 가서 호소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귀신을 쫓지 못하더이다.'
그런데 이처럼 부족한 자들을 주님이 선택해 주셨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현재로 보시지 않고 미래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할/
우리는 둔해서 현재만 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미래를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들의 현재의 모습을 보시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한번 보십시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도 못했고,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영적으로 둔하고 믿음이 없고, 교만하고 헌신도 죽 꿇듯 변덕을 부리는 우리인줄 잘 아시지만 그래도 우리 주님은 인애를 가르침을 통하여 당신의 제자를 만드시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 이대로를 보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거목들을 보고 우리를 부르신 줄 믿습니다. /할/
당시 제자들도 엉성했지만 앞으로 변화될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자 그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불 세례를 받고 나자 능력의 종, 충성의 종이 되어 교회들을 세워나갔습니다. 그들 모두 예수님을 위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2절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여기서도 제자를 사도로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란 '사명을 주어서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란 '보내심을 받기 위해 선택된 사람'입니다. 어떤 사명을 주셨습니까?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주었습니다. '너희는 온 세계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그러니까 '복음증거의 사명, 선교의 사명, 전도의 사명'을 주었습니다.
이 사명을 우리에게도 준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행복한 교회도 올해에는 전도 특공대를 훈련시켜 전도하는 교회가 되십시다. /아멘!/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제자들도 이 사명을 받았고,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사명을 주신 줄 믿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 가운데 불쌍한 이웃을 돕고 구제하는 일도 귀합니다. 친교도 귀하고, 봉사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생명운동을 일으키는 그러니까 전도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전도하는 교회는 부흥됩니다. 전도하는 성도는 영혼이 살고 범사가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제자로 보냄을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교회에서 말씀교육, 신앙교육, 잘 받아서 기도로 능력 받고 생명으로 무장해서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행1: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무슨 말인가? 성령 받고, 능력 받아 세상으로 나가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먼저 가정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동네 이웃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3-4절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자라"
2-4절까지는 12제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속에는 세 그룹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으로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입니다. 두 번째 그룹으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으로 '작은 야고보, 다대오, 시몬, 가롯유다'입니다.
이 시간은 첫 번째 그룹에 속한 제자들 중 베드로만 한번 조명해 보겠습니다.
①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요1: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게바는 당시 사용하고 있는 아람 방언입니다. 이 게바란 말이 헬라어로는 베드로요, 반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시몬이라는 인물은 게바라는 이름을 받기에 그리 합당한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원래 다혈질로써 아주 급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감동을 준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이지적이고 지성적인 면은 없었지만 감정적이고, 행동적인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고 행동한 적이 없는 단순하고 충동적인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실수와 허물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사람은 자기의 허물과 실수를 잘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이런 솔직하고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는 사람을 쓰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감정, 허물, 실수를 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감정을 솔직히 표현한 제자입니다.
②성경에서 그의 기록을 몇 가지만 알아보겠습니다.
⑴한번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충동적인 베드로는 담대하게 '주여! 나를 물 위를 걷게 해 주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 오라'고 명하시니, 베드로는 단순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냥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물 위를 걸어가던 베드로는 자기가 물 위를 걷고 있다는 기적 앞에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물 속에 빠지고 맙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그에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어찌하여 처음 믿음을 계속 갖지 않았느냐?'는 말씀입니다.
처음에 믿었던 그 믿음, 그 단순한 믿음만 가졌다면 계속 걸었을 텐데 왜 처음 믿음을 좇지 않느냐는 예수님의 책망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베드로의 처음 믿음처럼 단순해야 합니다. 이것, 저것 생각하고 따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고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물 위를 걷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의심하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⑵베드로가 밤새워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한 날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일 기분 나쁜 것은 자기의 전공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목수가 어부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칩니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순종했더니 놀랍게도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할렐루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렇게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권위 앞에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솔직 당백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솔직 담백한 사람을 쓰십니다. 감추지 마십시오, 자기의 부족을 인정하고 시인하십시오,
⑶예수님께서 체포당했을 때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리서 따라갔습니다. 왜? 가까이 따라갈 용기도 없고, 도망가자니 마음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다행이 예수님이 풀려나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뛰어 가고, 위기가 생기면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회주의자입니다.
이렇게 따라가다가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뛰어나가 통곡을 하고 회개한 자가 베드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쓰십니다.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나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 변화되었는가? 주님의 말씀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말씀대로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 도가 모여 힘써 애써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 세례를 받고 그 후부터 베드로는 본질적으로 변화되어갑니다. 요1:42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보시고 '너는 반석'이라고 하신 말씀이 적중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의 변화된 모습이 소개되었습니다. 기도로 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된 자를 치료했습니다. 설교 한 번에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어 실질적으로 교회를 세운 자입니다.
그의 마지막 죽음은 우리가 잘 아는 로마에서 핍박이 심하므로 성도들이 베드로로 성밖으로 빠져나가게 주선을 합니다. 당시 베드로가 없으면 교계의 큰 타격이 온 것 같아서, 그가 성 밖으로 빠져나가 불타는 로마 성을 바라보고 있을 때 부활의 주님이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깜짝 놀란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네가 버리고 온 로마 성에 가서 십자가를 지려고 간단다.' 깜짝 놀란 베드로가 다시 로마 성에 가서 로마 병정들에게 붙잡혀 순교를 당하는데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라, 그러나 나는 주님이 십자가에 바로 지고 가셨기에 나는 그분을 따라갈 수 없다. 나를 거꾸로 십자가에 처형시켜라'고 했습니다.
'오리겐'이라는 초대교부가 쓴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나는 감히 주님이 매달려 돌아가신 십자가의 모습 그대로 죽을 수 없다. 나를 꺼 꾸러 매달라 죽여주십시오.' 그는 매달려 죽으면서 주님을 찬양하며 순교의 길을 갔다고 오리겐을 말했습니다.
이 베드로의 죽음은 우리 주님께서 요21:18-1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그러니까 그의 죽음을 미리 예언해 놓으신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석 제자로 선택받았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의 복음을 전한 기록 세 가지가 나옵니다.
㈀행1장 유대인들에게 본격적인 복음전파의 문을 열었습니다.
㈁8장에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10장 이방인 고넬료라는 집에 가서 전도하는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이방인들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 모두 베드로처럼 주의 복음을 위해 선택받은 제자들입니다.
딤후4: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 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아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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