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84강) 성전 세를 내신 예수님! (마 17:22-27)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7:30

(제84강)      성전 세를 내신 예수님! (마 17:22-27)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면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대만큼 사는 사람. 기대 이하인 사람. 기대 이상인 사람'이 있습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아 게임에서도 그렇습니다. 금메달을 기대하였는데 금메달을 따는 선수가 있습니다. 금메달을 기대하였는데 동메달도 못 따고 실망을 안겨 주는 선수가 있습니다. 메달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도 같습니다. 기대이하인 사람이 있습니다. 삼손이 이에 속합니다. 삼손은 대단한 장수였습니다. 맨 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를 집어 들더니 1,000명을 죽이는 장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가 블레셋의 손아귀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주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생 들릴라에 빠져서 결국은 눈이 빠져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기대이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기대 이상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엄청난 일을 한 기대 이상의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나는 오늘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기대 이상의 사람이 되는 주의 영이 임하기를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멘!/
  기드온이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기드온은 농사꾼이었습니다. 밀농사를 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삿6:12). 그리고 이스라엘의 적 미디안을 쳐부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기드온은 못 한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이 하리라'(삿6:16). /할/
  기드온은 농사꾼이 총사령관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나가 싸웠습니다. 겨우 300명 용사를 데리고 나가 싸워 크게 승리했습니다. 누구도 기드온이 나라를 구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또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해냈습니다.
  사명이 그렇게 귀합니다. 사명을 만나면 기대이상의 사람이 됩니다. 어떤 일에 사명을 받고 그 일을 기어코 이루려고 애쓰면 그 사명 만한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기대이상의 사람이 되는 비결입니다. '내가 사명을 받으면 사명은 사명만큼 나를 길러 줍니다.' /할/
  ▶우리나라 이 승만 초대 대통령도 그렇습니다.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가난한 선비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3살에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배재학당에 입학을 했습니다. 여기서 서양의 민주주의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혁운동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1898년 개혁운동이 정부 반란 운동이라는 오해로 모두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온갖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손발을 묶어 놓는 감옥이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다른 동료 한 명과 탈출하다 붙들려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같이 감옥에 있던 동료들 중에 많은 이들이 이미 죽었습니다.
  어느 날 몰래 들여온 신문을 보고 그는 기절할 뻔하였습니다. 자기 사형 날자가 발표 된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죽음뿐이었습니다. 석방되는 죄수에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자기 아버지에게 연락하여 배재에 다닐 때 읽었던 '성경을 넣어 달라'고 부탁을 하자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옆에 있는 간수는 손발이 묶여있는 이승만에게 성경을 읽어 주었습니다. 다른 죄수는 간수가 오는가 감시해 주었습니다. 그가 성경을 듣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승만은 통곡을 했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 감옥에서 전도하기 시작했고, 같은 방에 있는 죄수들을 모두 예수를 영접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넓은 감옥으로 그는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 방에 있는 죄수들도 모두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고, 그들이 함께 이승만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형에서 종신형을 감형되었고, 드디어 1904년 민영환의 도움으로 7년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석방된 후 그는 미국으로 가서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도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승만은 감옥에서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민족을 향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나라를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이 그를 대통령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사명은 사명을 만난 사람을 기대이상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할/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기대 이상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제목 소개!▶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22-23절은 예수님께서 장차 일어날 십자가 사건을 예언하신 것이고, 24-27절은 성전 세를 내신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22-23절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갈릴리에 모일 때에' 주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약 38Km 떨어져 있는 높은 산 '헬몬산'에서 변형되셨던 사건이 있었고, 또 산에서 내려와서는 귀신들린 어린아이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 지역은 팔레스틴 북단지역으로서 당시 헤롯 안디바가 통치하던 곳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복음 전도 기지인 갈릴리 지역으로 조용히 복귀하셨습니다.
  막9:30절은 똑같은 배경을 설명한 곳인데,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 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곳은 예수님이 고향처럼 여기시던 가버나움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오셔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수난에 대한 예언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무슨 말씀인가?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리라는 예언을 지금 하고 계십니다. /할/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장차 십자가를 지실 것을 예언한 내용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⑴마16장에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시몬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난 다음, 예수님께서 장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서 고난을 당하고 마침내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흘만에 다시 부화해서 사망권세를 이기자고 반복해서 강조하셨습니다.
  ⑵그리고 오늘 본문인 변화산 사건 이후에 말씀하셨고,
  ⑶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러한 예언을 반복적으로 하실 까요?
  ⑴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준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들 젖을 뗄 때에 갑자기 떼지를 않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양육해 왔던 제자들을 놓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해서 승천하실 텐데 이런 것들은 제자들이 혼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⑵십자가의 구속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고, 제자들에게도 밖으로 십자가의 고난이 올 것을 대비하여 준비하자는 뜻입니다.
  ⑶예수님의 예언의 신실 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예언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를 제자들로 하여금 기억케 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지금까지 가르쳤던 모든 말씀이 하나도 거짓됨이 없이 모두 다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제자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준비입니다. 평안할 때에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평안할 때 준비하지 아니하면 환란이 올 때에 감당을 못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모습을 보세요! '심히 근심하더라'입니다.
  엉뚱한 대답으로 질문자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을 가리켜서 동문서답(東問西答)이라 합니다. 묻는 사람은 동쪽을 묻고 있는데 응답하는 사람은 서쪽을 대답하고 있더라는 그 말입니다. 이런 일은 질문자와 답변자 사이에 서로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종종 발생합니다.
  둘 중 어느 한쪽이 잘못될 경우 동서문답식으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의 질문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대문에 대답하는 자가 잘못 알아듣고 이상한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질문자는 정확하고 바르게 질문했어도 답변하는 사람의 이해력이 부족해서 서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질문자와 답변자 사이에 존재하는 생각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이해의 차이, 신앙의 차이 등이 벌어져있으면 있을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주님은 제자들에게 인류의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그 말씀의 깊이를 알지 못하고 '심히 근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믿고 따랐던 스승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무력하게 죽어버리면 장차 우리들의 진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더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근심한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별로 없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역시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에게 부활의 영광은 기다립니다. /아멘!/
  이제 24-27까지는 '성전 세에 대한 교훈'으로써 예수님이 친히 성전 세를 내셨습니다.

 

  ▶24절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여기 가버나움은 갈릴리에서 상당히 큰 도시로써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선교의 센터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곳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반 세겔 받는 자'는 세금 징수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전 세에 대하여 알아봐야 합니다. 출30:11-16절을 보면 온 유대의 남자는 20세가 지나면 다 성전 세를 내야합니다. 그 액수는 반 세겔입니다.
  한 세겔은 당시 로마 돈으로 네 드라크마로 네 데나리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보통 하루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입니다. 반 세겔은 이틀 동안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여기 '반 세겔'은 다른 말로 '성전세'라고도 말합니다. 성경 난하 주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반 세겔은 성전세로 바치는 금액이라'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저 반 세겔 하면 성전에 들어갈 때 입장료를 받듯이 입장세를 그 당시에 바치고 있었는데 '반 세겔, 성전 세' 이렇게 같은 뜻으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에 바쳐야 하는 것은 1년에 반 세겔입니다. 그러니까 이틀 동안 일한 정도의 수입은 1년의 성전세로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모아서 성전의 유지비, 복구비, 관리비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헌금이나 혹은 예배 때 드리는 헌금은 말 그대로 헌금입니다만 성전 세는 의무 금입니다. 성전 세는 가난하고 부하고 차이를 두지 않았습니다. 가난하니 조금 내고 부하니 더 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도 내야하고 부해도 내야하는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 금입니다.
  우리에게도 납세의 의무가 있습니다. 세금은 다른 말로하면 조세입니다. '조세란 국가, 또는 공공단체가 일반 경비를 지출한 목적으로 재정권에 의하여 국민으로부터 강제로 징수하는 금전, 또는 재화이다.'라고 사전에는 정의해 놓고 있습니다.
  ▶조세의 종류에 대해서도 참고삼아 알아보겠습니다. 크게 몇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⑴국세와 지방세가 있습니다.
  ⑵직접세와 간접세가 있습니다.
  ⑶소득세와 수익세, 재산세, 유통세, 소비세, 당세가 있습니다.
  ⑷인세와 물세와 행위세가 있습니다.
  ⑸일반세와 목적세가 있습니다.
  ⑹경상세와 임시세가 있습니다.
  ⑺비례세와 누진세가 있습니다.
  ⑻내국세와 관세가 있습니다. ⑼독립세와 부가세로 나누어지는데 본질상, 겹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방위세, 교육세, 법인세, 양도소득세, 상속세, 자산재평가세, 부당 이득세, 특별소비세, 주세, 증권거래세' 등등 깜짝 놀랄 만큼 세금의 종류도 많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 납부 액이 세계에서도 알아줄 만큼 많이 걷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아는 공지의 사실입니다. 이렇게 걸어간 세금이 얼마나 국민을 위하여 바르게 써지는 지도 우리 국민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성전 세를 이야기하다가 우리나라 조세도 한번 알아보았습니다. 당시 성전 세는 빈부귀천 없이 모두가 반 세겔씩 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의무 금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출입한다면 적어도 성전에서 '이틀 동안 일한 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
 
  ▶다시 24절로 돌아가 보십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성전에 자주 드나드셨는데 아마 그냥 통과하신 것 같습니다. 이 반 세겔의 성전 세를 내시지 않고 예수님께서 그냥 통과하고 또 제자들도 통과하고 이렇게 하는데, 오늘따라 이 징수원이 아마 예수님에게 직접 나타나서 가로막고 말씀드리기는 좀 두려웠던지 제자를 붙잡고서 시비조로 말을 합니다.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당시에 바리새인, 서기관도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굉장히 기분이 상해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에 가장 인기가 있었고, 권위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증거하시고 활동하신 후부터는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자기들에게서 떠나서 예수님께로 갔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그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모를 하고 트집을 잡으려고 올무를 만들었습니다.
  먼저 저들은 예수님께 안식일에 관한 논쟁을 걸어왔습니다. 여러 번에 걸쳐서 예수님과 안식일에 관한 논쟁을 했습니다만 도무지 예수님께 흠잡을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성전 세에 관한 시비를 걸어온 것입니다. /할/

 

  ▶25절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너희 선생도 성전 새를 내야 되지 않느냐?' 하면서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사실 세금 내는 것은 별로 기쁜 일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세금은 꼭 내야 하는 것인데도 늘 빼앗겼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기분 좋게 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세금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환영받지를 못합니다. 당시 삭개오가 매국노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런 것은 지금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당시에도 똑같았습니다.
  '너의 선생도 세금을 내야 되지 않느냐?' 이런 물음에 베드로는 자신 있게 '우리 선생님도 세금을 내신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쭈어 보지도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들어왔습니다.
  베드로와 반 세겔 받는 자의 대화를 들으신 예수님은 베드로가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도 세금을 바치고 대통령 아들도 세금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옛날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던 군주제도에서는 임금이나 왕자, 공주가 세금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답이 뻔한 물음은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 물음 속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은 심문하실 때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을 때는 침묵을 깨뜨리고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빌라도의 말을 긍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오늘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공자, 맹자, 석가, 소크라테스, 마호멧과 같은 성인들 중에는 한 분이라고 우기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은 나사렛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 잘못 알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함을 신성모독이라 하여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이 땅에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아멘!/
  행4:12절에 보면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할/
  ▶우리는 예수 관이 바로서야 합니다.
  ⑴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까?
  ⑵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믿습니까?
  ⑶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영생함을 믿습니까? /할/ 주님의 질문을 받은 베드로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6절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타인에게이니이다.' 고대왕권정치에서는 왕이 자기 아들에게 세금을 받을 것이 아니고 타인에게 받았습니다. 이 고백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의 신앙이 왔다 갔다 함을 발견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예수님이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까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만약 베드로에게 성전은 하나님의 것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성전 세 바칠 의무가 우리 주님께 있을 리가 없다고 이미 판단하였다면 성전 세 받는 그 사람 앞에서 '이거 보시오, 이 성전이 누구를 위한 누구의 성전입니까? 하나님의 것이 아니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삶, 예수님을 보고 성전 세를 내라는 말이 웬 말이요?'
  세상 임금이 관세와 정세를 아들에게서 받소? 타인에게서 받지? 당당하게 자신 있게 면박을 했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내신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잠깐 망각했나 봅니다. 예수님은 그것은 바로 깨우쳐 주시기 위해 베드로에게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물으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베드로야! 너는 내가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잊고 있었구나!' 이런 말씀이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성전에 주인 되신 자기를 알려주시기 위해 그렇게 물으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타인에게니이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나서 제대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아들의 세를 면하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예수님 자신의 계시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 왕의 왕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임을 성전 세를 받으신 분이지 내실 분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의 왕이요, 메시아임을 분명하게 재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록 우리가 땅에 살지만 하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자기 신분에 대한 정체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할/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조명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위해 세금을 내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성금을 내야 하느냐'라는 문제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면세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세금을 안 내시겠다는 뜻입니까? 지금 본문의 초점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본문의 초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데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예수님이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더러는 모세, 더러는 엘리야라고 하더이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여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이것이 관심입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신앙이 약간 흔들립니다.
  그래서 '그리하면 아들들이 세를 면하리라' 즉 하나님의 아들은 성전 세를 내지 않게 되어 있다는 것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계십니다. /할/
  세상 임금들이 자기 아들에게는 세를 받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에 집에 들어가는 것이니 세를 바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성전 세는 모든 유대인들이 내야 했지만 특별히 면제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성전 봉사를 수행하는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전세가 면제되었습니다. 선지자로 인정될 때에도 역시 면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면 성전의 주인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당연한 권리를 공공연하게 무시하고 일개 평범한 사람처럼 취급하기로 작정한 유대인들의 간계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성전 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27절에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내야 한다고 재미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27절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우리는 본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정직하게 세금을 내야하며 국민의 신성한 의무를 지켜야 함을 보여줍니다. 군대에는 가야하고 세금도 내야하고 법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성전세를 주라 하십니다. 의를 이루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눅17:1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하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도 그리하셨습니다. 주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하여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마3:15)고 하시면서 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선 성전세를 받는 자들에게도 이와 같이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의롭게 행동하셨습니다. /할/ 그렇다면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를 오해하지 않게, 시험에 들지 않게 이끌어 준 의무가 있습니다. 사랑의 의무입니다. 자기 직무에 성실한 성전세 징수원을 실족케 하기 싫어서 예수님은 '저희에게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성전세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부당한 요구였지만 유대인들의 적개심을 일으키지 않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전 세를 내는 방법은 예수님의 선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물고기 입에 성전 세를 준비해 놓으심으로써 예수께서는 자신이 천지를 창조하고 삼라만상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명백히 드러내셨습니다. 감추어졌던 그의 신성이 물고기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우선 베드로가 확신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통하여 이 이야기는 온 제자들에게 마침내 많은 사람들에게 펴져서 그들에게 주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임을 확신시켜 주였을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교만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가혹하게 나무라셨지만 성실한 성전세 징수원들을 동침해 주셨습니다. 그의 직무수행에 협조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겸손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까?
  ▶나폴레옹이 산책을 하는데 어디선가 '영차, 영차'하며 무슨 일을 하는 소리가 나더니 '첨벙'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기압을 넣는 소리도 납니다. 그곳에 가보았더니 공병대 소위가 지휘하여 사병들이 물 속에서 무거운 돌을 건져 올리다가 힘이 부족하여 돌이 물에 첨벙하고 빠져 모두 물벼락을 맞았습니다.
  이때 언덕 위에 서 있던 그 지휘관을 사병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기압을 줍니다. 이 광경을 본 나폴레옹이 가서 그 사병들의 일을 도와 마침내 그 돌을 건져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때 그 지위관인 소위가 나폴레옹에게 '그대는 군인인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네, 그렇습니다.' '계급은 하사인가?' '좀 더 높습니다.' '그럼 중사인가? ' '좀더..' '상사인가?' '좀더..' '그러면 소위인가?' '좀 더' '그러면 중위입니까?' '좀더..' '대장님이십니까?'
  그러자 그는 보초병도 깨우지 않고 대신 보초를 섰다는 나폴레옹이 원수인 것을 비로소 깨닫고 그 소위는 그 앞에 엎드려 떨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때 나폴레옹은 '서서 호령과 욕설만 하는 것보다 사병들을 도와주는 것이 어떤가?' 하고 준엄하게 훈계했다는 일화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의 당당한 권리조차 크게 양보하시면서 복음전파와 구속사역 성취에 충성을 다하신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아서 나의 고집을 양보하고 충돌을 피하며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27절을 보면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이적 사건입니다. 복음서에는 베드로와 관련한 이적이 참으로 많습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게 하여 고기를 많이 잡게 역사 하신 일과 물위를 걷게도 하셨습니다.

 

  ▶오늘 사건도 베드로와 개인적으로 관련된 이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⑴세금을 내기 위해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얘기입니다. 공짜로 하지말고 남의 돈을 훔쳐서 세금 내지 말고 노력해서 일해서 세금을 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어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고기 잡으러 가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학교 선생이었다면 다른 방법으로 명령했을 것입니다. 학교 선생은 칠판과 분필 속에서 자기 삶을 설계했습니다. 전기공은 자기 기술을 통해서 야구선수는 방망이와 야구공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아주 생생하고 실제적인 교훈입니다.
  ⑵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입을 열면 거기서 한 세겔을 발견한다고 했습니다. 가끔 고기를 잡아 보면 뱃속에서 별것이 다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의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고기 세계까지도 다스리시는 주관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물고기를 몰아주시고 흩어주시고 능력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물의 세계도 주님의 능력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주관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순종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도 아멘입니다.
  본문의 이 사건을 주님 자신을 위해서 행하신 유일한 기적입니다. 마태복음에서만이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돈을 사용한 유일한 기적입니다. 물론 베드로를 돕기 위한 기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꼭 필요한 액수만큼만 고기 입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의도를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 예수님을 믿으면 오늘도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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