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사순절에 새기는 빚진 자의 삶! (롬 1:11-17)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3. 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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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새기는 빚진 자의 삶! (롬 1:11-17)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40일 간의 기념일'로 부활주일을 기점으로 역산해서 도중에 들어있는 주일을 뺀 40일간을 주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보내자고 시작된 그런 절기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40일일까요? 성경을 보면 40일은 경건한 삶과 관련된 상징적인 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 주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면서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모세도 40일간 시내산에서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년을 저 광야에서 훈련받았습니다.
  이렇게 40이라는 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건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한 해에 한 번은 40일 동안 절제하며 경건을 힘써 연습하자는 뜻에서 사순절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할/

  ▶그러면 사순절은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⑴자기를 보며 애통하는 기간입니다. 약4:9절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할/ 자기의 죄를 바라보고, 자기의 믿음을 바라보고, 자기의 행실을 바라보면서 '왜 나는 이러는지 몰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적인 쾌락과 즐거움도 애통으로, 근심으로 바꿔야 합니다. /아멘!/
  ▶성 프란시스 이야기입니다. 그는 조그만 죄도 아파하며 견딜 수 없이 몸부림쳤습니다. 프란시스가 하나님 앞에서 나약한 자신을 보았습니다. 바울 같이 행하려는 바 선을 행하지 못 하고 자꾸만 악을 행하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미웠습니다. 그래서 온 몸을 거의 벌거벗은 상태에서 장미 밭에 들어가 뒹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벌이었습니다. /할/
  ⑵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사순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고난,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사순절은 '오직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에 우리는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멸망에서 구원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어둠에서 광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진하게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특별히 반복되는 죄를 끊도록 자기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고난을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아멘!/
  ⑶사순절은 신앙을 훈련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회교는 해마다 라마단 기간이 있습니다. 회교도들은 해마다 라마단 기간이면 아침에 해가 뜨고 해가 질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습니다. 금욕기간입니다. 사순절에 더욱 강조해야 할 신앙훈련들이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고 기도하지 아니하면 마귀가 가까이 하게 됩니다.
  ㈁성경 묵상입니다. 특히 공관복음 예수님의 교훈의 3분의 2가 사순절에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14-17장까지 긴 예수님의 고별설교는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입니다. 사순절에 주신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뜻을 기리는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금식입니다. 40일을 온전히 금식하지 못 하면 아침 금식만이라도 하는 방법입니다. 이것도 어려우면 금요일만 아침 금식을 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 사순절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침묵입니다. 사순절은 침묵하는 절기입니다. 평소보다 말을 반 이상으로 줄이십시오. 사람들은 너무나 쓸 데 없는 말을 많이 하고 살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의 노크 소리는 조용할 때 더 크게 들리는 법입니다. 조용히 지내면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구제와 사랑을 실천하는 절기입니다. 잠19:17절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할/ ◀제목 속개!▶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고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로마에 돌아가서 세운 교회입니다. 그런 그들의 믿음이 좋고 크다는 것을 듣고 바울은 너무 좋았습니다.
  로마는 세계의 수도라서 세계의 중요 인물들이 드나들고 또 그곳으로부터 세계 각 도시로 가는 길이 나있기 때문에 로마는 선교를 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의 장소였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대해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계속 기도해 왔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세계 선교에 대한 꿈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칠 때쯤이었기에 늙은 몸으로 이제 자신의 하던 일을 정리해야 하는데도 그는 세계의 중심인 로마를 결코 잊지 않고 가려고 꿈꾸었고, 로마를 거처 그 당시 땅 끝이라고 생각했던 서바나까지 가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령한 은사를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였습니다. 바울이 서바나까지 가려고 한 것은 자기 개인에게 무슨 이익이 있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흘린 피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아멘!/
  즉, 주님으로부터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빚을 진 사람으로서 그 빚을 갚기 위해서 그의 생명이 살아 있는 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 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주님께 빚진 자였습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 로마에 가야 했고 서바나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워야 했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빚이 있습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복음 선교에 나서야 합니다. 이 일은 그 어떤 일보다 귀하고 소중합니다. 우리 모두 복음을 위해서 나섭시다. /할/

 

  ①왜 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원하는가?(11-12)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기 위함이며, 그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함이며, 믿음으로 피차 위로 받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것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행3;6절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여러분! 가장 큰 것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이름을 나누어주고 싶은 뜨거운 열망이 언제나 가득 차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사도 바울의 뜻이 무엇인가? 모든 성도들을 견고하게 세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더욱더 든든하게 세워나가고자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목적이었습니다. /할/
  그리고 '믿음으로 피차 위로 받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겸손한 모습을 우리가 여기서 본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주는 사람이고, 너희는 받는 사람이다. 나는 가르쳐주는 사람이고, 너희는 배우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주장을 한다든지 권위적인 자세를 취하지 아니했습니다.
  '그토록 깊은 신앙을 가진 바울은 나 혼자 만의 신앙은 안 된다. 나도 로마에 가서 너희와 신앙의 교제를 원한다. 내가 가는 것은 너희에게 나누어주고 너희 것을 내가 받아서 피차 신앙의 교통을 인하여 안위함을 얻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이웃과의 관계, 성도와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 교제입니다.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또 교회는 믿음의 소리를 들으려 나오는 곳이요, 믿음의 대화가 통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의도가 '내가 너희들의 믿음의 소리를 듣고, 나도 너희에게 믿음의 소리를 들려주어 서로 서로 위로를 얻고, 힘을 얻자는 뜻'입니다.
  믿음은 공동체입니다. 한 사람이 천을 좇고, 두 사람이 만을 좇습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오늘 이 자리는 서로 믿음 안에서 위로해 주고, 격려해주어 피차 안위함을 받고, 피차 세워주는 아름다운 분위기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겸손한 심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그 귀한 은사를 나누어줌으로써 서로 견고케 해주고 믿음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 위로를 받고 안위함을 받는 귀한 역사가 날마다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할/

 

  ②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원했으나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13).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증거할 때 세 번에 걸쳐 선교 여행을 했습니다. 세 번째 여행을 할 때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고린도에 머물렀을 때 로마에 교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길이 막혀 가지 못하고 편지를 쓴 것이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3차 선교 여행 중 기록된 책이고, A.D. 56-57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을 보기 원했지만 '길이 막혔도다'라고 말합니다. 길이 막힌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⑴하나님께서 막으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교회가 굶어 죽게 되었으니 바울이 이방인 교회로부터 헌금을 걷어 예루살렘 교회로 가기를 원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로마로 가는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행16:6).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아시아에 있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게도냐(유럽) 사람들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는 환상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이 마게도냐로 먼저 가는 것임을 알게 되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쪽은 막으시고 한쪽은 열어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⑵사단이 막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살전2:18) /할/

 

  ③바울은 빚진 자의 심령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14).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빚진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우리가 다 복음에 빚진 자'라는 이 고백은 기독교인들 모두가 가져야 할 심정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랑에 빚진 자요, 용서에 빚진 자요, 은혜에 빚진 자요, 복음에 빚진 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값없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빚졌다는 말은 채무자란 말입니다. 빚진 죄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빚은 무섭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이자가 불어납니다. 저희도 죄인입니다. 빚은 꼭 갚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자유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⑴빚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돈을 빌려 쓰는 경제적인 빚, 인간관계에서 성립하는 사랑의 빚, 주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복음의 빚'입니다.
  ⑵빚이란 무엇인가? 노력해서 번 것이 아닌 것은 빚입니다. 자기가 일하고 노력해서 돈이 들어왔다면 그것은 빚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카드 하나 들고 기계에 넣어서 카드 대출을 눌러서 돈이 들어왔다면 그것은 빚입니다. 나중에 갚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놀라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과 축복은 노력하고 일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빚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세 가지 복을 주십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용서해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의롭다하심을 주십니다. 천국 갈 수 있는 옷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가 있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모두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화친한 관계가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죄, 칭의, 화친. 세 가지 복은 우리가 노력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가 구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할/
  ⑶빚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갚아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 사람들에게 빚을 갚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미래 세대를 향해서 빚을 갚아야 합니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빚진 자이므로 민족이나 나라, 문화나 교육의 우월을 따지지 말고 빚을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빚을 갚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복음을 전하되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빚을 갚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자원을 사용해서 복음의 빚을 갚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입니까?/할/
  ⑷무엇에 빚진 자인가?
  ㈀우리는 죄의 빚진 자입니다. 죄의 빚은 돈으로 갚을 수는 없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죄의 빚은 돈으로 못 갚습니다. 성경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였습니다(롬5:12). 죄의 빚은 죽음으로 밖에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의 빚을 갚아주시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롬6:10절에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셨습니까? 내 죄 값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죄 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구원받게 된 것이기에 나는 내 것이 아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고전6:19-20절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할/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입니다. 바울은 믿는 사람을 박해하러 가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났습니다. 그가 주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고 보니 복음에 빚진 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빚진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에 빚진 자이기 때문에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복음을 어디까지 증거해야 합니까?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할/
  ㈂우리는 영적으로 빚진 자입니다. 사람이 육신적으로 빚을 져도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마치 죄인 같고 식욕도 떨어집니다. 또 빚을 진 가정은 웃음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면 사람들은 절망하고 자살합니다. 우리는 육신의 빚을 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롬8:12-13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할/
  영적으로 어떻게 빚을 진 것입니까? 믿지 않는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빚을 진 것입니다. 이웃에게 전도 한마디 못했다면 그것이 빚진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으로만 해결할 수밖에 없는 죄의 빚을 갚아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복음을 증거하면서 영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빚을 진자입니다. 이 빚을 갚도록 합시다. 롬13:8절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빚을 갚으면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 됩니다. /할/그렇습니다.
  ⑸우리 모두는 빚진 자입니다. 누구에게 빚진 자입니까?
  ㈀하나님 앞에 빚진 자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자연 속에 살게 하시고 시시때때로 맑은 공기를 호흡하게 하시며, 밝은 태양 빛을 받아 살게 하십니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빚진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앙 안에서 산다고 하면서도 날마다 넘어지고 쓰러지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불순종과 불 신앙 속에 살아가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심판의 날을 연기하시고 깨닫고, 회개하고, 바로 서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
  ㈁우리는 주님께 빚진 자입니다. 주님은 아무 흠도 죄도 없으신 분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여기서 대신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할 죽음을 주님께서 대신 죽어주신 것입니다. 내 죄 값 때문에 예수께서 나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속의 은혜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된 것입니다. /믿어지면 아멘!/
  ㈂부모에게 빚을 졌고, 이웃에게 빚을 진자입니다. 우리가 그저 태어나서 살게 된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희생, 이웃의 사랑 속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모릅니다. 그러나 장가가고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키우면서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에게는 내가 죽을 때까지 못 갚는 사랑의 빚을 진 것입니다.
  ㈃우리는 스승에게도 빚을 졌습니다. 이웃에게도 사랑의 따듯한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빚들을 갚을 책임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지만 그 전에는 기독교를 박해했고, 스데반 집사를 돌로 때려죽이고, 또 다메섹에 있는 예수쟁이들을 다 잡아 죽이려고 대제사장의 위임장을 가지고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은 예수를 전하지만, 얼마나 핍박했는가?' 그 빚을 갚아야겠다는 심정으로 살았고, 사도로 부르신 것은 복음을 전하라고 세우신 것인데 주님 앞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려는 마음을 가짐으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저 받은 생명, 그저 받은 하나님의 은혜, 모든 이방인들에게 다 전해야 되는데 아직 다 못 전했으니 다 전할 때까지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복음의 빚진 자입니다. 사도 바울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서 빚을 갚아야 될 줄 믿습니다. /아멘!/
  ▶빚진 자의 말씀을 받고 크게 감동을 받아 복음 전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리빙스톤'입니다. 이 말씀을 읽다가 가슴을 치면서 '내가 참으로 많은 빚을 진자로구나' 탄식했답니다. 리빙스톤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목사고시 시험을 치렀는데 설교시험에서 낙방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신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설교를 시원치 않아서 목사생활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리빙스톤이 좌절하고 있을 때, 성령의 지혜를 받게 됩니다.
  내가 설교를 잘 못하니까 지식인들에게 전할게 아니라 미개인(야만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구나! 결심을 하고 그는 아프리카로 떠나게 됩니다.
  그 당시 아프리카에 간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 아프리카 선교사들을 아무리 모으려 해도 모이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때 리빙스톤은 선교부에 찾아가 내가 목사고시에 떨어졌는데 선교사로 가고 싶습니다. 지원을 했습니다. 지원자가 없는 처지에 그 용기가 대단하다며 허락을 했는데 그 조건이 의사가 되어 의술선교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영국말로 유창하게 설교를 못하는데 아프리카 말은 더욱 못합니다. 아프리카는 동네만 지나도 언어가 다른 곳입니다. 선교하기도 무척 어려운 곳입니다. 리빙스톤은 주님 앞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봉사하고 헌신했더니 토인들은 말은 잘 알아듣지 못해도 리빙스톤의 헌신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많은 토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리빙스톤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영국으로 돌아오지 않자, '스텐리'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을 곳곳마다 리빙스톤이 지나간 자리에 예수의 흔적과 자취가 남아있는 것이었습니다.
  후에 그곳에 수없이 많은 백인 선교사가 들어왔지만 리빙스톤처럼 존경받은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어떤 백인들은 선교사로 가장하여 토인들을 잡아 노예로 팔아먹었지만, 리빙스톤은 그들의 병든 곳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입으로 빨고 하며 정성을 다했습니다. 자신의 몸은 사자에게 뜯기면서까지 빚진 자로서의 심정으로 예수의 사랑의 실천을 몸으로 보답했습니다.
  후에 영국의 지식인들은 이런 훌륭한 인물은 아프리카에 묻을 수 없다며 웨스트민트 사원에 묻었습니다. /할/
  ⑹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마음의 자세는?
  고전9: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복음을 전할지라도 뭐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까?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빚진 사람이 자랑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늘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뿐이지요. 빚진 사람은 당연히 빚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겸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는데 하나님께서 그 빚을 탕감해주었어. 저 사람은 일백 데나리온밖에 안 돼. 나는 저 사람보다 더 했어' 그래서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어떻게 하든지 도와주고 싶고, 위로해주고 싶고, 바른 길로 인도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빚진 자의 심정이 없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 정죄하기를 잘합니다. 자기가 제일인 줄 압니다. 바리새인처럼 교만합니다. 그래서 칼로 무 자르듯이 남을 잘라냅니다. 빚진 자의 심정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 빚진 자의 심정은 어떠한 것입니까?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을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빚진 사람이 빚을 갚지 않으면 책임추궁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빚을 갚아야 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에게 화가 미친다면 저와 여러분에게도 역시 화가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받은 복음을 우리도 받았습니다. 바울이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도 지금 받아 누리고 있고, 바울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우리도 역시 받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해서 그에게 화가 있다면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할 때도 역시 화가 우리에게 미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해가 됩니까?/

 

  ⑤빚진 자의 복음의 태도는? 할 수 있는 대로 전해야 합니다(15).
  어떻게 전도해야 합니까? 바울은 본문에서 할 수 있는 대로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여!'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열을 가진 사람이 다섯을 내 놓는 것은 최선이 아닙니다. 100kg을 들 수 있는 사람이 50kg만 든다면 그것도 힘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힘을 다했습니다. 지식, 물질, 건강까지도 그래서 그는 말년에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달려갈 길은 다 달렸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남은 길은 의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을 전도하기 원하십니까? 힘을 다하십시오. 부인을 구원하기 원하십니까? 힘을 다하십시오. 친구나 형제나 이웃을 전도하기 원하신다면 최선을 다하십시오. 힘을 다해 기도하고 전도한다면 반드시 그 영혼은 주께로 인도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아멘/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생애 동안에 야심을 가진 도시가 두 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아테네요, 하나는 로마입니다.
  그러나 행17장에 보면 아테네 선교가 실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철학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철학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논쟁만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아테네에서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지식을 나타내려 했다가 크게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테네에서는 교회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크게 깨달은 바울은 고린도에 가서 '십자가 외에 자랑치 않겠노라'고 작정하였고, 그대로 실천하여 고린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그 당시 왜 로마에 야심을 가졌습니까? 로마는 정치의 중심부였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부패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인구는 100만을 육박했습니다. 그런데 자유인은 10만 정도였고, 90만은 노예였습니다.
  포로로 잡아와서 모든 일을 시키고 로마인들은 편안히 앉아서 돈을 모았습니다. 편안하게 돈을 모으니 그들은 자연히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 가정이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타락하여 사랑과 공의가 매 말랐고 집은 있으나 가정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부패한 도성이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다짐하기를 부패한 로마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무기가 바로 복음이라는 것을 믿고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할/

 

  ⑥복음을 부꾸러워하지 말라!(16).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복음을 당연히 전해야 하는데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은 왜 그렇습니까? 복음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지혜를 자랑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힘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너희에게 자랑하노라'고 하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자랑하면서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할/
  바울이 거듭나기 이전 율법주의자로서 그리스도인을 심하게 박해할 때는 복음이 한없이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거듭나고 복음을 깨닫고 나서는 오직 예수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가리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유대 땅에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그러니까 결국은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비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며 예수를 깔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에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부끄럽고 안 부끄러운 것은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어떤 사람은 밥 먹다가 손님이 오면 얼른 상을 치웁니다. 상에 된장과 김치 밖에 없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일이란 아무 가치 없는 일을 함으로 부끄러운 것입니다. 허송세월 보낸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할/
  ▶그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⑴복음을 자랑한다는 뜻입니다. '모하트'는 '나는 복음을 자랑하느니라'고 주석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오면서 성경책 들고 가기가 부끄럽다고 신문지에 싸 가지고 갑니다. 예수 믿는 것이 부끄러워 식사 기도도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복음을 자랑하십시오. 나는 예수 믿는 다고 선포하십시오. 그래야 주일날 모임에서 빼 줍니다. 예수 믿는지 안 믿는지 불확실하니까 마귀가 그저 밥으로 알고 매일 시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절대 고백입니다. 주님은 마10:33절에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또 딤후2:12절에서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자신이 헬라인인 것을,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인 인 것을, 유대인들은 유대인인 것을 자랑하며 긍지를 가지고 삽니다.
  미국 어느 대학 기숙사에 세계 각국 유학생들이 모여 기숙하고 있는데 주말이면 자신의 부모들에게 전화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어로 전화를 하는 학생은 한국 학생뿐이랍니다. 조국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더 나가서 우리는 예수를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예수를 자랑하며 삽시다. /아멘/
  ⑵복음에 대한 확신이 넘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확신이 넘쳐야 합니다. 바울은 이 복음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십자가를 자랑삼아 복음을 가지고 선전포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토록 막강한 로마 제국도 복음 앞에 굴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국가로 변모해갔습니다. 복음은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힘이요, 생명의 위력입니다. 우리 모두 이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십시다. /아멘! 할!/
  ▶바울은 당시 초대 교회교인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할 유혹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에게 거리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21:23절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 말씀에 근거해서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저주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는 승리와 영광을 드러내고 오실 영광의 주님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패배요 저주를 드러낸 상징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더 이상 복음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은 거리끼는 것이 됩니다.
  ㈁헬라인에게 미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볼 때 위대한 신이 자기의 대적 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대적과 싸워 패배한 신은 더 이상 신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은 헬라인이 볼 때 그 자체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복음을 거리끼는 것으로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하여 복음을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자랑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복음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할/
  ▶사실 바울이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고백은 그 당시 상황에서 보면 엄청난 선언이었습니다. 힘의 철학에 속한 로마 사람들에게 골고다에서 힘없이 비참하게 죽어간 예수님의 사건은 아무 의미 없었고 기억조차 희미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바울이 '나는 십자가를 자랑하고 복음을 자랑한다'는 것은 대 로마제국을 향하여 선전포고하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복음이 능력이라고 외쳤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는 전적으로 권력이요, 예수만이 능력이요, 힘이라고 외쳤습니다. 로마를 상대로 한 이 말씀 한 마디는 엄청난 선언이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그의 고백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복음 안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는 말입니다. 복음 안에서 합당한 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제자답게, 성도답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예수를 믿으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자랑합시다. 사랑합시다. 외칩시다. /할/
  ▶그렇다면 복음에는 어떤 능력이 있는가?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할/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롬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할/
  구원! 엄청난 축복입니다. 사도바울은 구원 전의 인간들의 모습을 이렇게 절규하고 있습니다. 롬7;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누가 건져낼 수 있습니까?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여러분!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 주님이 건져내셨습니다. /아멘!/
  구원이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틀림없이 천국 갑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구원의 은혜가 임합니다. 뭡니까? 구원이란 자유 함을 말합니다. 구원은 자유, 즉 무엇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물에 빠졌던 사람이 구출되면 그것이 구원이요, 병이 있던 사람이 낫게 되면 그것이 구원이며, 실패한 사람이 일어서는 것이 구원이요 자유와 해방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다가 풀려났는데 그것이 구원입니다. 한마디로 어떠한 구속에서 풀려나고 건짐 받는 것이 이 땅에서의 구원입니다.
  여러분! 지금 현재도 이 구원의 능력이 있다고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믿음대로 되어집니다. /할/
 
  ⑦복음은 믿음에 이르게 하고 의인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합니다(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이 말씀은 16절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할/
  ▶그럼 의가 무엇인가? 구약에 계시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롬3;21-22절에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아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 얻는 길은 오직 믿음뿐이라고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의는 차별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6절에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의가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구원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 구약 합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할/
  그렇습니다. 빚진 자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빚진 자는 오직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사순절에 다시 한번 복음의 빚진 자의 복음의 대한 열정이 임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2012년 4월 18일 대예배설교)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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