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중에 길!
눅 3;3-6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눅 3;3-6)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갔었습니다. 길거리 모퉁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도(道)를 닦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대속죄일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통곡의 벽 광장에 거적을 깔고 앉아 성경을 보며 기도하는 이들이 즐비하였습니다. 대속죄일을 앞두고 10일 전부터 길거리에 앉아서 저렇게 기도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신적이고 영적인 도(道)를 닦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다니는 길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길중에 가장 사연이 많은 길은 경부 고속도로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입니다. 최장의 고속도로입니다. 이런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 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물동량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도로는 미개국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항구인 부산으로부터 우리 나라 최대 도시인 서을을 연결 시키는 고속도로 건설이 불가피하여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한 경험은 현대 정 주영 회장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태국에 고속도로를 건설하였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정 회장에게 경부 고속도로 건설 계획서를 준비시켰습니다. 정 회장은 5만분의 1 지도를 손에 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미친 듯이 다녔습니다. 한 달 가량은 아예 길거리에서 살았습니다.
드디어 1968년 2월 1일 첫 발파음이 울리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 닦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정 주영 회장은 참 어려운 위치였습니다. 공기도 단축하여야 했습니다. 국가도 이익이 되어야 했습니다. 기업도 이윤이 남아야 했습니다. 길도 잘 닦아져야 했습니다.
길거리에서 회의를 하였습니다. 차안에서 잤습니다. 현장에서 결재를 하였습니다. 목에 디스크가 걸렸습니다. 도로를 닦는 인부들은 정 회장님 차만 보아도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늘 차를 타고 돌아 다녔습니다.
집에 가서 잔 날은 한 달에 한번 정도였습니다. 추우면 겨울인줄 알았고, 더우면 여름인 줄 알았습니다. 총칼만 없었지 전쟁을 방불케 하였습니다. 1969년 9월 11일 착공한지 590일만에 경부 고속도로 428 km가 완성되었습니다. 추풍령에 있는 기념비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 재원과 우리나라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건설 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길>
길은 문명발달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로마는 길이 비로 엉망이 되었을 때 길을 닦았습니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 온 노예들이 길을 닦았습니다. 만일 길이 망가지면 그 길을 만든 노예를 사형시켰습니다. 그래서 2천년 된 길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비가 와서 길이 질퍽할 때 자기만 빠지지 않게 겨다를 발달시켰습니다.
이런 길들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길중에 길은 무슨 길일가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어도 되지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닦지 못 하면 영원한 지옥이요, 영원한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주의 길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주의 길은 바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길중에 길입니다.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주의 길은 원어로 <텐호돈 큐리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왕도(王道)라는 말입니다. 왕이 가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천국가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길이라고 다 길이 아닙니다. 지방도가 있고, 국도가 있고,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주의 길은 영적인 길이요, 길중에 길입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잘 닦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확실한 비결을 요한이 제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1.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낮은 곳을 돋우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메꾸어야 할 골짜기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골짜기가 있지 않습니까? 어느 누구와 아직 메꾸지 못 한 골짜기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사이에도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골짜기가 있지 않습니까?
아담과 하와 사이에는 골짜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하와에게 와서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습니다. 하와는 아담에게 따먹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골짜기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과 사이에 골짜기가 생겼습니다.
마귀는 헬라어로 디아볼로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틈, 골을 만드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마귀는 골짜기가 만듭니다.
신천지가 그렇습니다.
성경공부를 한다고 사람을 끌어 들입니다. 그리고 기성 교회의 안 좋은 것만 지적합니다. 목사들의 비리들만 들추어 냅니다. 그래서 자기가 나가는 교회 목사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게 골짜기를 만듭니다. 그래서 목사와 골짜기를 만들고, 교회와 골짜기가를 만들어 그 교회를 떠나게 합니다. 교회를 파괴시키는 데 전력을 다 하고 있는 마귀집단입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에는 골짜기가 없어서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사이에 골짜기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욥은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 22;21)
서 정주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죽을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 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누구에게나 골짜기가 있습니다. 부자 청년, 세상적으로 말하면 소위 출세한 청년이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그 부자 청년은 재산이 많아서 슬픈 기색을 하고 돌아 갔습니다. 그 청년에게 골짜기는 물질의 골짜기입니다. 다 평탄한 데 구제가 없습니다. 인색하였습니다.
나만 장군은 국방부 장관이었습니다. 재산도 있었습니다. 지위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좋았는 데 병의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문둥병자였습니다.
우리 교인들 골짜기가 있습니다. 전도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의 요인이 전도에 있지 않고 건물과 우리 교회 분위기에 있습니다. 전도 때문에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주의 길을 닦으며 골짜기를 메꾸라는 말은 당시 서기관들에게 주는 책망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율법 연구에만 몰두하고 행동이 없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이들을 보고 골짜기를 메꾸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골짜기를 메꾸어야 합니다.
2. 산을 낮추어야 합니다.
산은 높은 곳입니다. 산이 있어서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산은 교만을 의미합니다. 교만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왕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천국가는 길에는 산을 깍아 평탄하게 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가 조심하라”(고전10;12)
솔로몬도 말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느니라”(잠 29;23)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1;2)
사울은 다른 사람보다 머리만큼 크다고 말했습니다. 죽을 때 머리가 잘려서 죽었습니다. 교만한 것만큼 깍아집니다. 올라간 산만큼 깍아야 길이 됩니다.
고 상돈 산악인은 우리나라 사람중에 히말라야 산에 제일 먼저 오른 사람입니다. 산에 갔다가 산에서 죽어서 제주도 1100 고지에 묻혀 있습니다.
나는 지난 주에 어떤 여성 모임에 강의하러 갔습니다. 일을 하려고 하는 데 200만원이 필요하다고 하며 특별히 1만원씩만 헌금하자고 회장이 간절히 호소하였습니다. 나는 감동이 되어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모자라는 금액은 다 내가 채우고 가리라.”
그런데 내 옆에 앉아서 헌금하는 회장은 1,000원을 지갑을 꺼내 헌금하였습니다. 얼마나 실망하였는 속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 모임은 희망이 없다.”
나는 끝나고 나서 얼마나 모자라는 지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그러실 것입니다. 모자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채우시려고 하다가 우리가 너무나 인색하면 외면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여 집사가 있었습니다. 이간질시키기는 데는 천재요, 말을 만드는 데는 수재요, 말을 보태는 데는 귀재였습니다. 그 교회는 항상 그 집사 입 때문에 시끄러웠습니다. 본인도 자신을 잘 알기에 고민도 많이 하였습니다. 기도도 많이 하고 울기도 엄청 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다가 하나님 앞에 심판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근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견디다 못해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가 혀를 잘라서 제단에 바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혀는 제물로 바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집사님은 집으로 돌아와서 혀를 잘라 자기 집 개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자기 개가 자기 혀를 씹어 먹는 모습을 본 후 평생 벙어리로 살았습니다. 습관화된 자기 죄를 이겨보려는 처절한 결단으로 자기 습관을 고쳤습니다. 산을 송두리째 깍아 버리는 결단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세례 요한이 산을 깍으라고 외치는 것은 바리새인들을 향한 외침일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서기관을 비난하면서 자기들이 최고라고 교만하였습니다. 자기들만이 하나님 뜻대로 사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골짜기를 돋우고, 산을 낮추어야 합니다.
3. 굽은 것을 곧게 하여야 합니다.
옛날에는 곡선이 아름다웠습니다. 옛날 길은 지형에 따라서 꼬불꼬불 만들었습니다. 비포장 도로로 마차가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모습은 환상적인 낭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길은 될 수 있는 대로 직선이어야 합니다.
미국 텍사스를 달릴 때 느끼는 것은 한 시간을 달려도 광야에 꾸부러진 길이 없습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직선입니다.
춤도 그렇습니다.
옛날의 춤은 곡선이었습니다. 아리랑 춤은 지금도 곡선 춤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춤은 직선 춤입니다. 디스코가 그렇고 트위스트가 그렇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각진 춤을 춥니다. 굽은 길을 곧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 김 영철 권사님이 양구에서부터 우리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사갈 때만하여도 3시간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산에 터널을 뚫었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 반이면 됩니다.
굽은 길은 곧게 하여야 합니다.
천국가는 왕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굽으면 안 됩니다. 마음이 굽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마음이 굽으면 생각하는 것이 삐뚜러지게 됩니다. 생각이 삐뚜러지면 말하는 것이 남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굽은 길이 아닙니다. 곧은 길입니다.
같은 사건도 정상적인 사람은 이렇게 보는 데 비정상적인 사람 마음이 굽은 사람은 저렇게 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 목사님의 <근심을 이기는 비결> 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 목사님이 자기 아들이 목사가 된다고 할 때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얘! 아들 하지야! 네가 목사가 된다고 하는 데 목사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 지 모른단다. 목사가 빨간 넥타이를 매보아라. 교인들은 바람났나 봐 그런단다. 그렇다고 까만 넥타이만 매보아라. 우리 목사 장래식만 다니나 보지 한단다. 목사가 택시를 타보아라. 사치해! 돈을 어떻게 당할라고 하뇨? 그렇다고 뻐스만 타보아라. 우리 목사 촌스러워! 목사가 설교가 길게 해보아라. 우리 목사 태엽이 너무 길어! 설교가 짧아 보아라. 우리 목사 요즘에 공부 안 하나봐. 목사가 심방만 해보아라. 우리 목사 할일 되게 없구먼! 그렇다고 심방을 안 해보아라. 요즘에 심방 안 하고 무엇하뇨? 목사가 다른 교회 설교하러 많이 나가봐라.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할려고 하뇨? 그렇다고 다른 교회 설교하러 안 나가봐라. 인기가 되게 없나봐.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 해봐라. 무능해! 그렇다고 교회가 부흥되봐라. 물량주의자야 라고 말한단다. 그러나 은혜가 충만한 사람들은 반대로 말한단다. 목사가 빨간 넥타이를 매면 세련됬어. 까만 넥타이만 매면 경건해. 택시타면 바쁜가보지? 뻐스를 타면 검소하셔. 설교가 길면 은혜 줄려고 애쓰셔. 설교가 짧으면 피곤하니까 우리보고 빨리 들어가 쉬라고 하시는 구먼! 심방만 많이 하면 부지런 해! 심방을 안 하면 무슨 일이 있나봐! 다른 교회 설교하러 많이 가면 사명이 크셔. 안 나가면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는 구먼. 교회를 부흥시켜면 능력이 있어. 교회가 부흥이 안 되면 우리 책임이야라고 말한단다. 사실은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단다. 너는 교인들을 성령충만 하도록 기도 많이 하여야 한다.”
그렇습니다.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해석이 중요합니다.
소심한 사람은 생각이 깊어서 좋습니다.
사교성이 적은 사람은 정직하여 좋습니다.
느린 사람은 실수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질투심이 많은 사람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여 좋습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겸손하여 좋습니다.
덥적대는 사람은 시원하여 좋습니다.
항상 장점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출생상처>라는 말을 합니다. 누구나가 어머니 태에서 나올 때는 상처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생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사람마다 상처 투성이입니다. 상처가 아물기 전에 또 상처가 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상처나게 하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남에게 상처를 일수록 더욱 사랑하여 주어야 합니다.
매사를 어둡게만 바라보며 비정상적인 생각과 삐뚜러진 말을 하는 사람은 정말 무서운 병에 걸려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이 굽은 사람입니다.
“저 사람 참 구제 불능이구나! 배냇병신이구나!”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일수록 사랑하여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말을 듣는 사람이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에 굽은 길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 자랑은 성막 쎄미나입니다.
얼마 전 사모 성막 쎄미나를 마쳤습니다. 모두 은혜받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모님 한 분이 말했습니다.
“나는 들을 것이 없어 실망했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칭찬에 인색한 여자였습니다.
장미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장미를 보면서 가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사실이지만 안 좋은 것만 보는 삐뚜러진 사고방식입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 집을 샀습니다. 대지 50평이었습니다. 집은 낡았습니다. 축하하여 주려고 몇 명이 초대받아서 간 적이 있습니다. 집을 둘러 보았습니다. 나는 이 곳 저 곳을 보면서 좋아서 말해 주었습니다.
“집사님! 축하해요. 월급 생활에 어떻게 이렇게 비싼 집을 샀어요. 알뜰살뜰 살림을 잘 했네요. 집사님 땅값만도 5억이 넘지요? 지금부터 다시 돈을 보아서 집을 다시 지어요. 축하해요.”
그런데 같이 갔던 집사님 한 분이 찬물을 끼얹으면서 말했습니다.
“왜 이런 썩은 집을 샀어?”
그 좋은 분위기를 뒤집어 놓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당신은 앞으로 심방갈 때 안 데리고 다닌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마음에 굽은 길이 있는 사람입니다.
곧게 펴야 합니다.
사실로 보지 말고 믿음으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로 보지 말고 내일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굽은 길이라고 할 때에는 사두개인들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하늘나라를 부인하였습니다. 천사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활도 없습니다. 오직 현세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을 공격하였습니다. 항상 말을 아프게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런 길로는 천국에 갈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4. 험한 길을 평탄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늘 가는 길은 험한 길이 아닙니다. 평탄하게 닦아야 합니다. 험한 곳을 그대로 두면 차도 달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도 제대로 보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평탄하게 하여야 합니다.
길에 장애물이 깔려 있습니다. 제대로 갈 수가 없는 길입니다. 울퉁불퉁하여 언제 사고날지 모르는 길입니다. 좋을 때는 좋은 데 한번 화나면 무서운 사람입니다.
“화나면 무서워요.”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길은 좋지 않은 길입니다. 항상 좋아야 좋은 것입니다. 언제 폭팔할지 모르는 불안이 싸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종려 나무 가지를 꺽어 들고 옷을 길에다 깔며 예수님을 환영하던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3일 후에는 외쳤습니다.
"예수 십자가에 못 받으시오.”
한 입에서 단 물과 쓴 물이 같이 나왔습니다. 언제 변할이지 모릅니다. 험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어거스틴이 마니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어거스틴을 가르친 선생님이 안토니우스입니다. 그는 경건하고 한결같은 분이었습니다. 안토니우스가 한적한 곳에 묵상하며 하나님과 조용히 교제할 때였습니다. 어거스틴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이 적적한 곳에서 책 한 권도 없이 어떻게 지냅니까?”
안토니우스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이 모두 나의 책입니다.”
모든 것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영안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험한 길을 가진 마음에는 성령이 들어 오시려고 하다가도 우회전합니다. 축복이 들어오다가도 죄회전합니다. 은혜가 오다가도 뒤로 돌아갑니다.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하여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험한 길이라고 할 때에는 당시 이스라엘의 왕 헤롯을 두고 말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항상 거친 사람이었습니다. 비국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길중에 길은 천국에 가는 길입니다. 천국가는 길을 닦는 법을 세례요한은 우리에게 제시하여 주었습니다.
1.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2. 산을 낮추어야 합니다.
3. 굽은 것을 곧게 하여야 합니다.
4. 험한 길을 평탄하게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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