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20212 예배의 회복 (삼하 6:16~23)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0. 14. 07:55

120212 예배의 회복 (삼하 6:16~23)

성경본문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한 언론기관에서 우리나라 역사학자 10명에게 우리의 역사 속에 100명의 위인을 선정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인물은 세종대왕이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의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왕입니다. 왕권과 신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유교정치를 펼친 임금이죠. 압록강 두만강 경계를 확정 짓는 4 6진을 개척했고 요즘 새롭게 전 세계 언어학계에서 주목 받는 한글을 창제한 임금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세종은 당대에 누구보다도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그는 침식을 잊어가면서 공부하고 나라를 다스렸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40대가 됐을 때에는 온갖 병을 다 가지고 있었어요. 도저히 정무를 볼 수 없을 만큼 당뇨부터 시작해서 많은 병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렇게 세종대왕이 화려한 정치, 문화의 꽃을 피운 데에는 그 뒤에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래 전에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를 보시지 않았습니까?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일으켜 세우는데 앞장 선 사람이죠. 그 손에 많은 피가 묻었습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두 번이나 왕자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배다른 동생도 죽이고 형도 내쫓고. 왕권을 차지한 다음에는 왕권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 왕비의 동생들, 민씨 4형제를 다 처형합니다. 세종에게 왕위를 넘긴 후에 세종이 당시 영의정의 딸과 결혼했는데 심온이라는 영의정을 밀어내죠. 나중에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태종 이방원이 죽을 때 드라마에 그런 장면이 나오죠. 임금이 된 세종을 보면서 이 모든 악업은 이 애비가 다 지고 갈 테니 부디 주상은 이 나라를 잘 이끌어주시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도 이와 똑 같은 이야기가 나와요. 그게 다윗과 솔로몬이에요. 마치 솔로몬이 세종대왕과 같이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었다면, 다윗은 태종 이방원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지요. 다윗이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바치겠습니다. 이게 내 소원입니다그랬더니 하나님이 뭐라고 그러셨어요. 아니다. 그 성전은 네 아들이 짓도록 해라. 너는 준비만 해라. ? 네 손에 너무 피가 많이 묻었다. 사실이에요. 다윗은 나이 서른에 왕이 됐고 40년간 마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지략이 뛰어난 군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생각이 깊은 정치가이기도 했어요. 때로는 가차없이 칼을 휘두르기도 했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 하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영적인 암흑시대를 겪고 드디어 그들의 왕국을 이루는 지난한 역사 속에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피할 길 없는 피비린내 나는 가시밭길이었어요.

그러나 태종 이방원과는 또 다른 면이 있었어요. 다윗에게는 비밀이 있었어요. 그는 시인이었고 노래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었어요. 이미 다윗은 젊은 시절에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붓잖아요. 너는 앞으로 하나님이 택한 왕이 될 것이다. 그날 이후로 그는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 철천지원수가 되어 싸우다가 블레셋에게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잖아요. 6.25때 어느 부대는 대패해서 부대기를 빼앗겨서 아직까지 부대기가 없대요.

그런데 빼앗겼던 법궤를 20여 년 만에 되찾아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블레셋에 어마어마한 심판과 저주를 내렸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놀래서 그 법궤를 이스라엘 경계의 어느 마을에 밀어 넣었죠. 그래서 블레셋과 이스라엘 경계의 어느 한 마을에 법궤가 20년 동안 보관되어 있었잖아요. 그 법궤를 모셔오는 것이죠. 그 장면이 오늘 나와 있어요.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모셔 들이면서 다윗이 그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있어요. 다윗은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부터 죽는 그날까지 우리와 똑같이 삶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남다른 비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어요.

시편 2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에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성경 말씀이 무엇입니까? 대부분이 다 시편 23편이에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얼마나 평안합니까? 왜 이런 노래를 짓고 이것을 가슴에 품고 살 수밖에 없었는가? 사무엘하 512절에 보니까 왕위에 오른 이후에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왕으로 삼으신 것과 우리나라를 지킷고 높이시는 것을 내가 아노라.” 나 잘나서 왕이 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붙들어 세우셨다는 고백이죠.

다윗은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348절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교회를 출석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분석한 내용이 있는데요, 20대는 교제를 하기 위해서. 예쁜 아가씨 꽁무니를 따라온 거예요. 30대는 뭐 좀 신령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40대는 새로운 소속감을 얻기 위해서. 50대는 명예를 위해서. 세상에서 이만큼 했으니 이제 슬슬 교회에 나가볼까. 60대는 먹는 재미로. 70대는 장례식 준비를 위해서. 실제로 그렇잖아요. 서울의 큰 교회는 나이 들어서 등록하는 분들이 많다잖아요. 가족들이 등록시키는 거죠. 돌아가시면 교회묘지에라도 모셔야지. 여러분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또 동기야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되요. 백악관 옆에 있는 교회는 주말마다 골치가 아프대요. 대통령이 출석을 하다보니까 밤낮 전화가 온대요. “이번 주에는 대통령이 오십니까?” 대통령이 오시면 나도 나가겠다는 거죠. 담임목사가 하도 골치가 아프니까 이렇게 대답을 한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오시는지 안 오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늘 나오십니다.” 여러분 누구를 만나러 왔습니까?

2차 대전 때 독일 히틀러 압제 밑에서 투쟁하다가 순교했던 본 훼퍼목사는 찬양대도 단음으로 노래하라고 했어요. 아름다운 화성을 붙이고 표현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그러다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예배할까봐. 본 훼퍼가 이런 얘기를 한 것은 독일의 수많은 교회들이 히틀러 치하에서 히틀러를 칭송했거든요. 그런 배경 속에서 나온 것이죠. 하나님을 똑바로 예배해야 나라가 바르게 될 터인데 화려한 것, 아름다운 것만 찾는구나 하는 거죠.

우리가 예배 중에 헌금특송을 할 때 박수를 안 치는 이유는 다른 때는 몰라도 예배 때만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기 때문이죠. 사람을 높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특송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자기의 기교를 드러내려 해서는 안돼요. 기도 많이 해야 되요. 기도하며 준비해서 온전한 마음으로 찬양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이사야서 428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거예요. 또 오늘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데는 아주 신비한 의미가 있어요. 십자가 은총을 붙드는 거예요. 흔히 다윗의 장막이라고 말해요. 원래는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만든 장막 속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었어요. 대제사장이 1년에 딱 한번 들어가는 가장 거룩한 곳, 지성소에 법궤가 있었어요. 어지간한 사람은 법궤를 볼 기회도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빼앗겼다가 되찾아온 법궤를 지금 사람들이 메고 옵니다. 다윗이 준비한 장막 속에 법궤를 모시는 거예요. 사람들 눈앞에 법궤가 다 드러나 보이는 거예요.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한 법궤를 직면하게 되는 놀라운 순간을 맞이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다윗이 그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지만 어떤 것을 예배합니까. 우리를 위하여 펼치신 하나님의 십자가 구원을 주목하며 예배하는 거예요.

다윗이 왕이 된 후에는 모든 것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다 해결되어서 평안했습니까? 아니요, 용의 눈물은 정작 그때부터였어요. 왕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고 서로 죽이는 일들이 있었어요. 왕이 되었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여전히 환란과 풍파였어요. 지위가 높아져도 권력이 있어도 돈과 명예와 부가 주어져도 인생의 문제해결은 아니에요. 다만 환경이 변한 것뿐이에요. 밖으로는 쿠데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죄는 다윗 내면에 있었어요. 간음을 저지르기도 했어요. 강한 군대를 자랑하고 싶은 교만한 마음이 드러나 하나님께 야단을 맞았어요. 심판을 받았어요. 이게 우리의 모습이에요. 우리는 죽는 날까지 지극히 불완전해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너무 불완전해요. 예배 중에 참회의 기도를 해요. 저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거 나올 때마다 참회의 기도를 하다니 참 부끄럽다.’ 아니요, 모자라는 거예요. 그것보다 더 뼈를 깎으면서 참회의 기도를 해도 모자라는 거예요. 우리는 그토록 연약해요.

그러나 다윗의 위대한 점은 하나님이 잘못을 지적하실 때, 그 죄를 책망하실 때에 즉시 회개했다는 거예요. 죄를 짓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회개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살아도 언제든지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셔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회개의 복음을 들려주시는 거예요. 늘 십자가 은총 아래에 나아오도록 하시는 거예요.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손 씻잖아요. 아무리 피곤해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를 닦잖아요. 깨끗이 씻어야 해요.

예배의 부름순서가 있어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하나님이세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자격도 없는 우리들을 초청하시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너무 더러워요. 그래서 먼저 참회의 기도를 드리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가 십자가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렇게 참회의 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거예요. 사죄선언을 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복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이렇게 사죄선언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 우리가 정결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사도신경으로 사도들이 했던 것 같이 신앙고백을 하는 거예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우리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심을 고백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성스러운 교회, 공회가 하나님의 은총임을 고백하고 마지막으로는 성도된 우리들에게 주시는 약속, 죄를 용서하시는 것과 우리의 몸이 다시 살 것과 영원히 살 것을 고백하는 거예요.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지 몰라요. 우리가 목욕하면 시원하잖아요. 때를 다 벗겨낼 수 있어서. 얼마나 몸이 시원합니까?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께서 부르시잖아요.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에요. 내게로 나아오라는 초청이에요.

아버지와 아들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입니다. 아버지가 투덜거립니다. “야 오늘 설교가 그게 뭐냐? 찬양대는 또 그게 뭐냐?” 그랬더니 아들이 씨익 웃더니 아버지, 겨우 천원 헌금하시면서 뭘 기대하세요?” 여러분, 우리 모두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되요.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소망을 주셨어요. 우리는 여기에 응답하는 거예요.

다윗이 춤추고 노래했다고 했잖아요? 그랬더니 다윗의 아내, 사울 왕의 딸 미갈이 그걸 보고 얼마나 부끄러워합니까? 다윗이 기쁨에 넘쳐 집에 와서 가족을 축복하려고 하는데 그 앞에서 하는 말, 한 나라의 왕이 저 미천한 것들, 계집종들 앞에서 몸을 다 드러내고 그게 뭐냐고? 그때 다윗이 뭐라고 합니까? 내가 계집종들 앞에서 춤춘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춤춘 것이다.

여러분, 전심으로 응답해야 되요. 우리가 예배 중에 찬송하잖아요. 이 찬송은 우리를 부르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앞에 응답하는 거예요. 찬송을 온 힘을 다해서 불러보세요.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겠어요? 우리가 은혜 받으면 기뻐 찬송을 하지만 똑똑한 사람은 반대로 그 은혜를 맛보기 위해서 찬송하는 거예요. 그 가사를 생각하면서 찬송을 하면 은혜가 내 마음에서부터 솟구쳐 오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셔요.

이런 우스개가 있어요. 목사님이 신뢰하는 집사님이 주일예배에 안 보이는 거예요. 어떻게 된 건가? 알고 보니까 예배 안 드리고 골프 치러 간 거예요. 목사님이 짐짓 화가 났어요. 다음 주에 집사님을 불렀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집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제 얘기 좀 들어보십시오. 제가 교회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골프장에 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하도 괴로워서 그 다음 주엔 한번 골프장에 가봤습니다. 그랬더니 몸은 골프장에 있는데 마음은 교회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몸과 마음이 나뉘니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래, 목사님이 지난 번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지. 몸과 마음 중에 마음이 교회에 가 있는 게 낫겠지하고 골프장으로 나가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배자를 찾으세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우리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셔요.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느냐?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으로 감동되고 기록되고 보존된 말씀이 강단을 통해서 증거될 때 성령의 감동 속에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거예요.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주목하면서 예배드리는 거예요. 그 사건 속에서 오늘 나를 만나시는 거예요.

다윗이 나이 칠십에 눈을 감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하 23 1절에서5,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고 해요. “높이 세워진 자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하나님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며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여 너는 아침에 돋아 오르는 햇빛 같고 비가 온 후에 땅에서 움터 오르는 풀과 같구나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렇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내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도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이런 가정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