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20205 성령과 육체 (갈 3:1~9)[살인마 고재봉이 구원 받은 뒷이야기]/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0. 12. 18:31

120205 성령과 육체 ( 3:1~9)     

성경본문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963 10월 강원도 인제 전방부대 대대장 관사에서 잠자던 일가족 6명이 피살됐습니다. 수사 끝에 범인이 잡혔습니다. 그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재봉입니다. 당시 대대장 관사에서 일하던 사병이었죠. 그는 10살에 엄마를 잃고 15살에 아버지를 잃었고 키가 160㎝가 채 안됐다고 합니다. 목소리도 여자 같았다고 합니다. 가난 속에서 자라난 그에게는 탐식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합니다. 관사를 드나들면서 이 일, 저 일을 거들던 중에 아마도 부엌에 있는 음식이 눈에 띄니까 집어 먹었겠죠. 1963년도 군대라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가정부에게 발각됐습니다. “이 도둑놈!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없어진 거 다 네가 가져갔구나.”  하는 말에 부끄럽기도 하고 격분하면서 옆에 있는 도끼자루를 들고 위협을 했어요. 입 다물라고. 그러나 결국 그것이 발각돼서 그는 6개월간 육군형무소에서 형을 치르게 됩니다. 출소해서 다른 부대로 배치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원한을 잊지 못하고 갚으려고 탈영을 하게 되고 대대장을 죽이겠다고 다시 쫓아간 거죠. 어느 날 관사에 들이닥쳐서 사람들을 죽이게 된 것이죠. 그러나 알고 보니 이미 그 대대장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고 다른 대대장과 그 가족이 와서 자다가 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게 그 유명한 살인마 고재봉 이야기입니다.

그는 3개월 만에 사형언도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건이 당시 신문에 보도되면서 모든 국민들을 경악하게 합니다. 그때 대한성서공회의 직원으로 성경을 가지고 전도를 하던 안국선 집사라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도 이 뉴스를 듣고 끔찍함에 몸을 떨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기도하는 가운데 십자가의 강도 같은 불쌍한 청년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흔듭니다. 네가 가서 그에게 복음을 전하라. 석 달만 복음을 전하라. 좀처럼 내키지 않는 걸음이지만 순종하고 교도소에 찾아가서 면회신청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누구길래 이 끔찍한 살인범을 면회하려고 하는가. 조사를 마치고 한참 걸려서야 첫 면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1963년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면회를 하게 된 것이죠.

과연 그를 대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요. 드디어 만났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데 먼저 성경을 읽습니다. “제가 성경을 한 구절 읽어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것임이니라쭉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형제여, 형제도 죽고 나도 죽고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죽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고재봉이 얼굴을 번쩍 들더니 예수를 믿으면 사형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형제여 내 말을 들으세요. 세상 사람은 누구나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먼저 죽느냐 조금 뒤늦게 죽느냐 그 차이일 뿐입니다. 나폴레옹도 죽었고 역도산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들으십시오. 성경에 보니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달려 죽어가던 강도가 마지막 순간에 당신이 당신의 나라에 들어갈 때 나를 기억해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 마지막 순간에라도 예수님을 붙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왔습니다.

이제 주기적으로 면회를 갑니다. 그런데 면회절차가 복잡했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추운 겨울에 하루 종일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면회가 다 끝날 시간이 돼서야 들어갔습니다만 면회를 거절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허탕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머니에서 신약성경을 꺼내 넘겨주면서 이것을 꼭 전해주시고 한번 읽어보라고 해주십시오.”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연락이 왔어요. “죄수가 당신을 면회하기를 원한답니다.” 쫓아갔습니다. 면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신약성경을 꺼내는 걸 봅니다. ‘성경을 좀 읽어봤나 보구나.’ “어디 얼마만큼 읽었습니까?” 그랬더니 5번을 읽었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내팽개쳤는데 하도 심심해서 뒤적거리다가 마침 요한복음 316절을 보게 된 거예요. ‘그래, 그때 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지.’ 다시 성경을 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만지셨어요. 성경을 계속 읽게 됩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만났을 때 이야기합니다. “이것 말고 큰 책도 있죠? 저도 어렸을 때 동네 교회를 다녔습니다.” 신구약전서와 찬송가를 넣어줬어요. 그가 드디어 성경에 빠져서 읽기 시작합니다. 새벽에 형무소 담 너머로 교회 종소리와 함께 찬송소리가 들려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어릴 때에 교회에서 사람들이 부르던 그 찬송을 기억합니다. ‘내가 어려서 동네 교회를 다닐 때에 진작 예수를 알았더라면 이렇게 무서운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는 말씀을 읽다가 예수를 영접하고 기도해요. 기도하다가 방언을 체험해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 깊은 은혜를 주셔서 어느 날 천국과 지옥을 다 보게 됩니다.

안국선 집사를 다시 만납니다. 얼굴이 벌써 환해졌어요.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만 공소도 포기했어요. 형무소에 집어넣었던 대대장에 대한 원한도 다 잊었어요. 자기가 잘못 죽였던 가족의 노모에게 참회의 편지를 보냅니다. 간수장에게 부탁을 합니다. 사형수 독방이 아니라 다른 방으로 옮겨주십시오. 그곳에서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며 자기에게 임하신 주님을 전도하기 시작해요. 서울구치소에서 그 당시 2천 명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무려 1800명에게 전도를 합니다.

범행 3개월 만에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마지막 순간에 총살을 당하는데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는가?” 그때 요한복음 316절을 암송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것 임이니라.” “더 남길 말이 없는가?” “이제 제가 찬송을 부를 터이니 찬송을 다 부르고 웃을 때에 쏴주십시오.” 마지막 찬송이 바로 인애하신 구세주여입니다. 눈물로 시작됩니다. 그 찬송을 다 부르고 나서 눈 앞에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불쌍하게 살면서 악행을 저지르다가 십자가의 강도같이 마지막 석 달 동안 복음을 듣고 하늘의 놀라운 비밀을 경험하고 웃으면서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것이 살인마 고재봉에 얽힌 뒷이야기입니다.

저는 가만히 생각해봤습니다. 이런 짓궂은 물음을 던져봤습니다. ‘그가 비록 세상에서 단 하나의 낙도 누리지 못하고 정말 불쌍하고 비참한 인생으로 살았지만 마지막에 하나님을 만나 큰 은혜를 경험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째, 그는 세상의 법이나 교회가 말하는 율법에 있어서 철저한 실패자였어요. 자타가 인정하는 거예요. 부인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지 않고서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둘째, 사형수로 끝났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만약에 감형을 받고 세상에 나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요즘 감옥에서 예수 믿고 회심하고 심지어 헌신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서 나왔지만 세상의 거친 세파에 휘둘리다가 또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자책이 되고 절망이 되고 덕이 되지 못했던 예가 너무나 많잖아요. 하나님께서 그의 목숨을 걷어가기로 작정하시고 길을 막아놓으셨기에 하늘로 향해 열린 문밖에 없었기에 은총으로 마무리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이 하버드대학 졸업식에서 한 말이 있어요. “자기가 적당히 성공하고 살았더라면 아마 오늘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이 삼십이 되어서 인생 중간결산을 해보니 그는 어린 아이 하나 딸린 이혼녀였고 정부보조로 더운 물도 나오지 않는 아파트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글을 쓸 공간이 없어서 카페에 차 한 잔 시켜놓고 유모차에 애를 재워놓고 글을 써야 했던 절박한 순간이 있었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대충 알고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이 제일 신앙생활 하기 어려워요. 그러기에 때때로 고난을 주시는 거예요. 고난이 필수예요. 왜 이렇게 우리가 변하지 않을까? 뭔가 열심을 내기 이전에 우리 생각 속에 잘못된 것이 있지 않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다지도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일까?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선교사로 레슬리 뉴비긴이 있습니다. 그분은 1909년 생인데 1998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90세로 20세기를 살았던 분이고 선교학자예요. 이분이 1974년에 35년 동안 인도선교사로 사역하다가 자기 고향 영국으로 돌아갔을 때 깜짝 놀랐어요. 자기가 35년 동안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역했던 인도보다 자기의 고국인 영국은 그 사이에 더 이교도 사회로 변해버린 거예요. 사회와 문화가 다양해지면서 다원화 사회가 됐어요.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변화죠. 그러나 덩달아서 종교다원주의가 됐어요.

여러분, 종교다원주의라는 것은 모든 종교는 진리에 이르는 다양한 길이라는 주장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독선이라고 말해요. 그런 게 종교다원주의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선교사로 영국을 떠날 때에 영국은 기독교국가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나라였는데 35년 만에 돌아와 보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독선일 뿐만 아니라 무식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거죠.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적대적인 사상의 뿌리는 어디에 있느냐? 이런 것을 인본주의라고 말하죠. 인본주의라는 것은 이성으로 모든 진리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방식, 자연과 성경을 통해서 자기를 드러내셨다. 자연을 이성적으로 연구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해가면 결국 인간과 우주와 생명이 무엇인가를 본질적으로 알 수 있고,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경은 혹시 도움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보충자료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으로 성경을 파고 들어갈수록 그 안에 모순과 부도덕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인본주의죠.

그러므로 성경은 개인의 영혼문제를 다루는 것이고 내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니까 그것을 믿겠다고 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신념이니까. 하지만 학교 같은 공공영역에서 그것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 개인의 가치로는 인정할 수 있지만 객관적 사실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오늘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고린도전서 211절에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영, 성령만이 아신다 이 세상은 자기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신다그 누구도 지혜로워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자기를 보이시는 거예요.

그 좋은 예가 바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에요. 원래 아브라함은 기독교 전설에 따르면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의 아들이었어요. 전혀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을 알 가능성이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내셨어요.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어요. 멀리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셨어요. 그 여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의심하고 흔들리고 주저하고 망설이는 아브라함을 끌어가면서 믿음의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세상의 원리와 규칙과 이치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거부하는 몸짓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 하나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회의하다가 받아들이고 또 한걸음 나가게 되요.

창세기 156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것을 의롭다 하셨어요. ‘의롭다 하신다는 말음 잘했다고 인정하신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를 잘했다는 거예요. 세상의 원리와 이치로는 믿을 수 없어서 망설였어요. 주저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말씀을 듣고 마음을 열고 믿었더니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시면서 잘했다고 하셨어요. 이것을 칭의라고 하는 거예요.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정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구원의 사건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이 의인이에요. 그걸 받아들이고 따라나갈 때 그의 삶은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의인이에요.

그리고 오늘 말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누렸던 복을 세상 만민이 누리게 될 것이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해결책임을 깨달을 때.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시키셨다. 율법의 저주, 무슨 말입니까? 오늘 세상은 성공시대예요. 성공여부로 인간을 판단해요. 인간의 본질적인 고유한 가치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아요. 성공한 사람을 우대하는 것이 바로 율법이에요. 인간 이성이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것이 바로 이거예요.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율법이에요. 이게 율법의 저주예요.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일본 전자업체들이 몽땅 다 어마어마한 적자를 냈대요. 일본 신문에서 삼성에 대패했다는 표현을 썼다는 거예요. 몇 십 년 전만하더라도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오늘은 우리가 이렇게 기분 좋은 소리를 듣지만 이것도 잠깐이에요. 세상이 언제 어떻게 변할는지 아무도 장담할 자가 없어요. 이게 바로 율법의 저주예요. 누가 언제까지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하겠어요? 언젠가는 물러날 때가 올 거예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나를 따르는 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죄를 범하는 사람은 모두 다 죄의 종이다. 그러나 아들이 자유케 하면 자유하리라.” 이게 바로 십자가 복음이죠. 우리가 살아갈 때 가진 것이 없어도 하늘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 속사람을 온전케 하고 새롭게 하고 강건하게 하죠.

요즘 세상은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게 사람들의 신념이잖아요. 부끄럽습니다만 연합중보기도회를 우리 교회에서 몇 번 모였는데요, 그때마다 아이패드를 가지고 성경찬송을 찾으니까 편리하고 좋아요. 그런데 눈감고 기도하려니까 아이패드가 자꾸 신경 쓰이는 거예요. 누가 집어갈까 봐. 자연히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 부자가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사람만 나타나면 돈 빌리러 온 게 아닌가 하고 맘 편하게 사람을 대할 수가 없잖아요.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죠. 그러나 우리 삶을 온전케 하는 은혜와 비밀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주시는 것이죠.

성경이 말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 여기서 말하는 육체라는 것은 몸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모르고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노력들, 인간의 이성, 마음대로 표출하는 우리의 감정, 자기 노력과 피땀 흘려서 살아가는 의지, 이런 걸 송두리째 다 묶어서 육체라고 표현해요. 또는 육신이라고 표현해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시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다 응답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으로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언제 나를 부르시더라도 천국 갈 수 있는, 그것을 알기에 믿음으로 그 천국을 오늘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비밀이에요. 예수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우리의 특권이에요. 축복이에요. 여러분의 권리를 뺏기지 마세요. 당당하게 요구하세요.

이건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하신 거예요. 예수 이름으로 구하는 자에게 내가 반드시 응답하리라. 여러분의 행위에 달린 게 아니에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사람에게 주신 권리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세요.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 여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