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목사/보이지 않는 능력 (히 11:1-3)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보이지 않는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물처럼 흔히 쓰는 전기, 눈에 보입니까?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류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기 없이 살아갈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 문명한 세계 속에 전기는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보면 그 조밀한 기계도 전기로 움직입니다. 또 공장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들도 전기가 그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전기를 흔히 쓰면서도 전기를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느끼는 이 영적인 능력도 이 전기와 같이 눈에 안보입니다.
<본론>
1.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님
성경은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적 존재는 물질자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강단은 물질입니다. 그러나 강단은 강단 그 자체로써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 원료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세계가 보이지 않는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 한번 따라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지금 우리가 보는 이 교회도 스스로 물질이 연합되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어서 이 교회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끌어당기므로 이 자리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에도 보면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가고 난 다음에 보이는 빛이 생겨났습니다. 궁창이 생겨나라고 말할 때 예수님의 말씀은 눈에 안보였지만 하늘의 궁창이 윗하늘 아래하늘로 갈라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느끼는 모든 힘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이 현실세계를 만들어서 지배하고 다스리고 만들어 나가는 것을 깨달아 알면 우리들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다스리고 창조하는데 굉장한 능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기 전에 유럽은 황무지와 같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이 들어가고 난 다음에 우리 아시아보다 1,500년 가까이 먼저 복음이 그들을 깨우쳤습니다. 일의 근원을 알고 근본적인 힘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에 충만하자 구라파는 놀라운 문물이 앞선 나라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한가지입니다. 우리 어릴 때만 하더라도 정말 발전하지 못한 황무한 나라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 짧은 세월 동안에 세계에서 이름을 나타내는 나라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오자 그로 말미암아 직접, 간접으로 우리가 변화를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변화를 주는 힘은 어떤 것이냐 하면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씀인 것입니다.
2. 보이지 않는 창조적 힘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은 눈에 안보입니다. 여러분, 조용기의 생각을 보실 수 있습니까? 안보이지요? 그러나 안 보이는 생각이 저의 속에 있습니다. 꿈도 안보이지요? 각 사람이 그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는데 그 꿈도 안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도 안보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지만 믿음이 보이는가. 안보입니다. 말도 안보입니다. 우리가 입술을 통해서 행하는 말, 음향은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내용은 안 보이는 것입니다. 생각은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우리 마음속에서 지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그에서 나온다고...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 속에서 나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꿈도 그렇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그러므로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고 꿈이 있는 백성들 중에도 꿈을 크게 꾸는 백성이 더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믿음이 있으면 실상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적은 믿음은 적은 결과를 큰 믿음은 큰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말은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으니 혀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고 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입에서 나가는 말이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창조적인 능력을 그 배후에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씀을 다스리면 우리 인생을 다스립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늘은 땅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육체에 대하여 하늘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늘처럼 우리 육체를 다스리는데 마음을 다스리면 육체와 환경을 우리가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어떻게 되었느냐. 마음은 생각과 꿈과 믿음과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말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축가가 먼저 설계도를 보고 그대로 집을 짓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 먼저 우리 생각을 들여다 보시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보시고 믿음을 보시고 우리 입술의 고백을 들으시고 난 다음에 내 생각대로 꿈꾼 대로 믿음대로 입술의 고백한대로 되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운명과 사주팔자를 탄식하지만 실제는 우리 속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각이고, 하나님의 꿈이고, 하나님의 믿음이고, 하나님의 창조적인 선언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37절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과 우리가 어디서 만납니까?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육신적으로 만나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납니까? 생각으로써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떻게 만나서 대화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서 우리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 생각이 받아들여서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꿈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꾸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꿈을 주시면 우리가 그 꿈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은 믿음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고 같이 따라가면 믿음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시각으로써 만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냄새 맡을 수 없어요. 하나님 손으로 만져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서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믿음이 없는데요.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3. 우리의 삶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믿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목구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처럼 믿음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믿음이 안보이기 때문에 사람이 믿음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사용되면 자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여러분 생애 속에 굉장한 확신을 주시고 생활에 자원을 주셔서 신념을 가지면 무엇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믿으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번에 제가 LA에서 집회하는데도 사람들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어떤 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까? 굉장히 대답하기 어렵지만 그러나 굉장히 대답하기 쉽습니다. 제가 늘 대답하는 말이 그 말입니다. 내가 당신 손에 계란을 쥐어 줄테니까 그것을 가지고 바위를 한번 쳐 보십시오. 어느 것이 깨어집니까? 그야 계란이 깨어지지요. 아니올시다. 우리 믿는 사람은 계란으로써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집니다. 그런 무식한 소리를 어떻게 합니까? 믿음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식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기적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계란으로 바위가 깨어져야 하나님의 역사지, 계란만 깨어지면 그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똑같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이란 것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기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기적이 나타나요. 기적이 안 나타나면 믿음이라고 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 몸에 있는 뾰루지 하나가 기도하고 나아도 기적인 것입니다. 약 발라 낳으면 보통 사람이 다 하는 것이니까 특별한 것 없지요. 그러나 뾰루지 하나라도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그냥 기도했는데 나아버렸으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고 적은 기적이 믿음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말인 것입니다. 말은 우리가 하루에 오만가지 말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아무 힘이 없지 싶어도 말이 굉장히 힘이 있습니다. 사람 혀를 보십시오. 혀에 뼈가 있습니까? 날름날름 사용하는 혀가 뼈가 없어도 혀가 뼈를 꺾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 원수를 말 한마디로 죽이지 않습니까? 혀는 뼈가 없어도 사람의 뼈를 꺾는 힘이 있습니다. 혀는 큰 불과 같아서 도시를 태우는 그런 역할을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에너지가 바로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내 사주팔자를 고칠 수가 있는가. 내 환경을 어떻게 하면 변화시키고 다스릴 수 있는가. 사람들은 환경을 다스림 받기 위해서 정초에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인간적인 종교를 가지고와서 그 해 복을 받으려고 하는데 복은 바로 땅이 하늘을 다스리는 것같이 여러분 마음이 여러분의 인생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그에게서 나느니라. 그러므로 내 마음만 내가 잘 다스리고 마음을 잘 이끌어 나가면 나의 삶의 변화와 발전을 내가 스스로 이끌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을 우리가 다스리면 거대한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방출하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만들어집니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생명의 근원이 거기서 나와서 사물을 변화시키고 사물을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뭐가 나오는가 우리가 살펴보아야 되는데 끊임없이 긍정적인 생각.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산다. 행복하다. 기쁘다. 승리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나오고 긍정적인 꿈을 꿔 희망찬 꿈이 가득하고 긍정적으로 믿고 긍정적으로 말하면 그 에너지가 나와서 여러분 그대로 환경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한 대로 꿈꾼 대로 믿은 대로 말한 대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안 살펴봐서 그런데 지금 조심해서 살펴보면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생애 속에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구나 갈보리 십자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와 허물을 다 담당했습니다. 일생에 지을 죄와 허물을 우리 것을 당신의 것으로 끌어안고 몸 찢고 피 흘려서 청산해서 다 없애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요, 거룩한 사람이요, 성령을 모신 사람인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바라보고 어떤 생각이 나느냐 모든 허약과 질병이 예수님이 청산했다고 하시므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고침을 받고 건강을 얻게 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고 고침을 받은 자기를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자매님 한 분이 암에 걸려서 사형선교를 받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자기 옛날에 아주 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 모자를 쓰고 아주 멋진 모습을 포즈로 담은 사진을 많이 복사를 해서 응접실에 화장실에 부엌에 침실에 벽에다 붙여놓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 병들어 죽을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써붙여 놓았습니다. 들어오면서도 웰컴하고 웃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고 헬로우~ 하고 자기 이름 부르고 방안에 앉아서도 자기를 보고 헬로우~ 참 좋은 날입니다. 자기 이름 부르고... 완전히 건강한 자기 모습이 자기 마음속에 꽉 들어찼습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그의 암도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생각으로 자기 운명을 바꿀 수가 있으니까요. 참으로 재밌는 이야기가 아들, 딸 둘을 키웠는데 별 볼 일 없는 아버지이지만 아들, 딸이 늘 교훈을 받을 수 있는 글을 응접실에 붙여 놓았었습니다. 그 글에 뭐라고 써 놓았냐면 꿈은 아무데도 없다. 현실에 중심을 잡고 살라고 꿈은 아무데도 없다. 그렇게 써붙여 놓았는데 맏아들은 나와서 매일같이 그를 보고 꿈은 아무데도 없다. 꿈은 아무데도 없다. 까짓 인생일생 추풍낙엽같이 떨어지는 것이니까 그대로 적당히 살면 된다. 꿈은 아무데도 없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와서 그것을 쳐다볼 때마다 온갖 데에 꿈이 있다. 어디가도 꿈이 있다. 그 아버지가 하는 말이 야 이놈아, 꿈은 아무데도 없다. 이 땅에서 적당히 살면 된다. 아니요. 꿈은 천지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똑같은 구절을 맏아들은 바로 읽어서 꿈은 아무데도 없다고 매일 읽었고 둘째 아들은 꿈은 온 천지에 어디를 가도 있다고 말했는데 세월이 흘러가서 20년 후에 동일한 집에 방문해서 아들들이 어떻게 사는가 보니까 맏아들은 꿈은 아무데도 없다는 맏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노숙자가 되어 있어요. 노숙자. 홈리스가 되어 있고 둘째 아들은 찾아가니까 대학교수가 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에 꿈이 아무데도 없는 사람은 노숙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꿈이 어디 있는지 있으면 그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마음에 생각에서부터 출발해서 꿈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믿음으로써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믿음을 사용하면 믿음이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은 우리 입술의 말로 죽고 사는 것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는 것은 말이 나타내는 큰 기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범하게 말하지만 어떠한 사람은 말을 늘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나는 힘이 없다. 나는 못산다. 나는 안된다. 나는 못났다. 나는 빽도 없다. 나는 재산도 상속받지 못했다. 자꾸 없는 것을 말하므로 없는 것들이 친구 여기있다고 태산같이 많은 것들이 모여오는 것입니다.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있는 것을 바라보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사랑도 있고 희망도 있고 꿈도 있고 은혜도 있고 축복도 있다. 모든 것이 있다. 있는 것을 바라보고 말하는 사람은 그런 것들이 야 우리 친구 여기 있다고 들어오고 없는 것조차도 있게 만들어 주시는 역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면 그것이 눈에 안 보이는 능력이 되어 그대로 삶의 환경과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가 거기에서 있고 거룩함이 있고 치료가 있고 형통과 영생이 십자가에 있습니다. 있는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고 그러면 그 십자가에서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모든 기적이 여러분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그냥 데코레이션으로 목에 걸고 다니고 팔찌를 만들어서 팔에 끼고 다니지 마시고 여러분 십자가를 마음속에 매달아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를 통해서 생각이 달라져야 돼요. 사람이 무엇을 보든지 보고 난 다음에 생각이 달라진 것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오. 매일같이...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이 허물과 죄가 용서받고 질병과 저주가 사함을 받고 천국영생을 얻게 된 그것을 사연을 생각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꿈을 꾸고 나는 십자가의 은혜로 저런 사람이 되었다고 꿈을 꾸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이루어진 줄 믿습니다. 믿고 입술로 고백하고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다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것이 여러분 속에 가득한 에너지가 되어 밖으로 나타나서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변화되면 가정과 환경과 국가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 가득한 것이 마음 밖으로 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운명은 여러분의 머리가 좋아서 이루어지는 것보다도 공부를 많이 해서 이루어지는 것보다도 여러분의 마음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이 여러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사람의 삶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희망찬 꿈을 안고 있으면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소신껏 믿음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나가면 그 사람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하는 사람 허풍쟁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지나고 보면 말하는 것이 일관성 있게 말을 하는 사람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볼 때 겉사람을 보고 쉽게 판단하지 마시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시고 그 사람을 사용하면 틀림없이 사람을 선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와 거룩함과 치료와 형통과 영생을 생각하면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꿈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안보이는 하나님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대화를 하고 하나님과 함께 일을 꾸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에너지를 방출하면 환경에 파괴와 절망을 만들어 오는 것입니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못살겠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좌절, 낙심, 미움, 원한을 늘 말하면 정말 참 절단강산이 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심리학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기록한 것을 보면 우리가 듣는 말 중에 85%가 부정적인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못한다. 안된다는 말을... 우리가 하는 말도 75%가 전부 부정적인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부정적인 말을 듣고 말을 하면서도 그래도 이정도 잘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만큼 여러분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이시고 저주를 내리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복을 줄 수 있도록 여러분 그릇을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릇이 있는 거지는 얻을 수 있어도 그릇이 없는 거지는 얻어먹지도 못한다고 말합니다. 담을 데가 없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잠언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말이 나를 얽어매고 붙잡아 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우리가 가는데 우리를 얽어매고 붙잡아 훼방을 놓으면 우리가 그 사람과 같이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이 우리를 얽어매고 붙잡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로써 우리가 자유와 해방을 얻고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생명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12절 한번 따라 읽으세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있는 자는 더 주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아버리겠다. 하나님께서 있는 자에게는 더 가지라고 주시고 없는 자는 있는 것조차 내놓으라고 빼앗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분 스스로 없다는 말 하지 마세요. 없는 것을 보지 말고 있는 것을 찾으십시오. 사람은 없는 것을 찾으면 어디가든지 없는 것이 꽉 들어차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있는 것을 찾으면 있는 것도 굉장히 많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에너지가 되어 끊임없이 밖으로 나오고 있어요. 환경과 미래를 만드는 원인이 바로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아름다운 미래로 변화되는지 그렇지 않으면 처참하게 되는지 그것이 여러분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짓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 중에 가장 두드러진 형상이 무엇입니까? 창조로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세계를 만드시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 속에서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꿈으로 믿음으로 말로써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의 운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굉장한 것입니다. 환경과 미래를 만드는 것이 바로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로 23절에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 모든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힌다. 교도소에 와서 앉아있는 사람 환경이 나빠서 앉아있지 않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와서 그로 하여금 안에 앉아있게끔 만들어 준 것입니다. 속에 것을 정결하게 하면 절대로 몸이 정결한 몸이 되어서 교도소 밖에 있지 안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그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마음에 가득한 생각과 꿈과 믿음이 입술의 말을 통해서 밖으로 나와 그런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원망할 필요 없어요. 자기 자신이 자기의 삶의 덩어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아멘을 하지만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믿음도 그렇습니다. 엄청난 역사를 가지고 오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무엇이 달랐습니까? 여러분, 똑같이 주무시고 똑같이 잡수시고 똑같이 생활하셨는데 제자들은 물질 위주로 살았고 예수님은 기적으로 산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산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믿음으로 사람들을 복 받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자유롭게 만들고 평화롭게 만들고 치료받고 건강하게 만들었습니다.
4.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믿음의 힘
마가복음 11장 12절로 14절에 보면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 몸속에 들어와 계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모든 의식주 생활을 해야 되고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므로 기적으로 의식주 생활을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배가 고픈 것은 사람으로서 아침밥을 안 잡수셨기 때문에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밑에 가보니까 무화과 때가 아닌지라 무화과 없어요. 그래서 주님 그냥 지나가실 것인데 기회를 이용해서 제자들에게 교훈을 가르치려구요. 이 세상의 인간은 인간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믿음을 사용하면 기막힌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참 나무를 보시더니만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말라. 그래서 제자들이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주님도 저렇게 화를 낼 때가 계시네. 나무가 열매 없다고 생벼락을 맞았어요.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다음날 지나가다 보니까 바짝 말랐거든 장난 아니에요. 만일 주님이 나무를 보고 말했을 때 다행이지. 자기들 보고 말했으면 바짝 말라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와~ 굉장하다. 베드로가 주님, 주님 어제 주님께서 열매 없다고 저주한 무화과나무가 말랐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씀이 얼마나 능력있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시기를 너희들도 이 산더러 명하려 저 바다에 건너가라 말하고 산입니다. 여러분 태산을 옮겨 가라고 할 것은 여러분 힘으로는 안되지요. 불도저가 있어도 안될 것인데...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하고 그것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 엄청난 창조력이 여러분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이 틀림없이 아이구, 주님같이 큰 믿음이 있어야 될 것인데 그 믿음 없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겨자씨 알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오케이다. 큰 믿음 필요 없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해도 된다. 여러분 겨자씨가 얼마나 적은지 알지요? 저는 오랫동안 겨자씨 경험을 내 마음에 확신을 시키기 위해서 겨자씨를 유리병에 담아서 그래서 몸에 가지고 다녔습니다. 매일같이 보고 이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제가 늘 시인을 시켰는데 모든 씨앗 중에 제일 작습니다. 모든 씨앗을 100으로 치면 겨자씨는 제일 적은 중에 100번째인 것입니다. 100번째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믿음이 100분의 1밖에 없고 100분의 99는 의심입니다. 100분의 1은 의심이고 100분의 1은 믿음이니까 뭐하겠느냐 했는데 주님은 1% 믿음이면 충분하다. 99% 불신앙하고 1% 믿음만 있어도 산이 옮겨간다고 말했었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내게 1%의 믿음만 있으면 태산 같은 문제도 물러간다. 보통이 아니지요. 한 번 더 따라 말씀하세요. 내가 보통이 아니네. 그런데 자꾸 잊어버립니다. 오늘 또 잊어버렸네. 사랑하는 자여 찬송을 안 부르고 시작했어요.
♬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이게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1%의 믿음만 보면 주님께서 지나가지 않으시고 그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우리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꾸 잊어버리니 그렇지. 꼭 기억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로서 1%의 믿음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0절로 24절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쉽게 보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내가 당해보면 안 쉽다 말입니다. 자꾸 의심이 생기고 잊어버리고 나중에는 손털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최자실 금식기도원에 가서 하루 밤새도록 기도하고 내려오면 100날을 인간의 지식과 총명과 모략으로 꾀를 내어서 도모해서 안되는 것이라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내 문제는 나의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물 건너 가버린다. 그러니 평안하지요. 주님이 여러분에게 쉼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기도하며 산다는 것은 굉장한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의 힘이 얼마나 강합니까? 그 믿음이 겨자씨 열 알 쯤 되면 어마어마하겠지요?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것 정말 너무하잖아요? 주님 좀 과장했지요? 못할 것이 없다구요?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떻게 합니까? 조용기가 말한 것은 안 믿어도 좋아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 일어나서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하면 믿어야 되겠어요? 안 믿어야 되겠어요? 믿어야 되지. 그러니까 생각해 볼만해요. 날보고 자꾸 기복신앙 전한다고 하지 말고 조용기 목사 말을 들어보고 싫든 좋든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십시오. 저도 많이 고민하고 생각 많이 해보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이 과연 기복신앙을 증거했는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제가 따라가면 가는 곳마다 꿈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유와 해방을 주었습니다. 주님이 묶어 놓고 결박당한 채 버림받은 사람을 그냥 두고 안 갔습니다. 주님은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주시고 눌린 자에게는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주시고 꿈을 주시고 자유를 주시고 해방을 주신 이가 주님이신데 무엇으로 그렇게 하느냐. 생각을 바꿈으로 희망을 가지므로 믿음으로 입술의 긍정적인 고백을 통해서 자유가 오고 해방이 오고 꿈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왔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오늘 올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것은 앉아서 철학이나 신학적인 토론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의 박물관에 들어있는 예수님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 그 날에는 너가 내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여러분이 계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행한 것도 자기가 행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왜 아버지 앞에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고 가셨기 때문에 이루기 전에 보다도 더 큰 일을 내가 너를 통해서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좀 배짱을 가지십시오. 네 입을 넓게 열라. 네가 채우리라. 아니지요. 내가 채우리라. 주님과 함께 살면 여러분 참 기대하지 않은 놀라운 일이 생겨날 것입니다. 오늘부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환자는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열두 해를 피를 흘리면서 살았으니까 빈혈증도 말로 다 할 수 없고 많은 위로와 치료를 받았으나 고침 받지 못하고 집은 식구들과 같이 못사는 것은 불결한 병이 걸리기 때문에 동구 밖에 나가서 천막을 치고 혼자 살았어요. 아무도 그를 도와줄 자가 없었습니다. 어떤 친구가 와서 예수를 만나면 살아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혈루병 앓은 여자는 절망에서 소망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나도 예수 믿으면 고침 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생각이 부정적에서 긍정적이 되고 그날부터 꿈을 가졌습니다. 나는 예수님만 오면 옷에 손만 대면 낫는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대를 걸고 믿었습니다. 하루 종일 자기보고 말한 것 너는 옷자락이 손만 대면 낫는다.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낫는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앞을 지나갔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 있는 사람을 찾아서 앞을 지나가신 것입니다. 혈루병 앓은 여자가 가서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서 그 옷자락에 손을 대니까 나았습니다. 눈 깜박할 사이에 나았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그 여자보고 말했습니까? 여자여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시니 편안히 가라. 예수님이 네 믿음이 고쳤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여러분의 믿음이 예수님의 능력을 여러분 인생 속에 가지고 올 충분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설교를 듣든지, 이 설교를 들어서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낮잠 자면서 괜히 헛된 꿈 꾸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아주 맵시있는 꿈을 꾸십시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믿는 것은 그냥 믿으면 돼요. 여러분 보통 믿는 것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동쪽에서 해가 뜰 것을 믿잖아요. 그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돼요. 우리는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언제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입술로 중얼거리면 여러분 생활 속에 하나님의 기적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사람이요 우리의 삶과 환경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못하는 사람 아닙니다.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에 여러분을 변화시키는 힘이 지금 있습니다. 여러분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슴을 치시는 것입니다. 아이구 답답해라. 지금 교회 나온지 몇 년이나 되었느냐? 주님10년째 됩니다. 10년이나 된 놈이 고작 그 믿음밖에 없느냐? 그러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변화를 받아서 새사람이 된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삽니까? 어떤 생각을 집중적으로 생각합니까? 원수가 벼락맞기를 늘 생각하고 삽니까? 전셋집을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기를 그것을 집중적으로 생각합니까? 여러분이 집중적으로 생각할 것은 갈보리 십자가를 집중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이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서 나의 일생을 다 청산했기 때문에 다 이룬 십자가를 생각하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어떤 꿈을 꿉니까? 나는 꿈 안꿉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소원이 꿈입니다. 소원은 우리 보통 사람이 말할 때 쓰는 것이고 조금 고급적으로 말할 때 그것을 꿈이라고 말을 붙이는 것입니다. 아예 여러분 꿈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고급적으로 귀찮거든 소원으로 바꾸십시오. 무슨 소원이 있습니까? 소원 있지요? 친구 만나서 밥 한 숟가락 얻어먹을 것이면 그것도 소원입니다. 적은 것도 소원이면 꿈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집중으로 가지면 그것이 꿈이 되는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소원이 꿈인 것입니다. 나쁜 소원을 하면 안돼요. 좋은 소원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여러분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심하지 않고 믿느냐. 그냥 자꾸 의심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죽으면 죽으리다하고 한번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바라보고 믿고 말하면 없는 인생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에너지가 여러분 속에서 나와서 여러분의 바깥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로 12절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읽을테니까 여러분께서 귀를 기울여 들으십시오. 내가 빨리 읽을테니까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믿음 때문에 이렇게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 기록한 것은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야곱처럼 사라처럼 살 수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여러분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어진 것은 원료가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교회도 나무나 시멘트나 철근이나 이 나무가 원료가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 원료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만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 지어졌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매 이루어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냐. 우리에게 다가올 때 생각을 통해서 다가오고 꿈을 통해서 다가오고 믿음을 통해서 다가오고 입술의 말로써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이야기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을 만나서 주님이 대화시켜서 여러분 삼차원의 인생을 사차원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경을 읽어라. 성경을 통해서 나와 말하자. 기도해라. 성경을 통해서 꿈이나 환상을 같이 나누자. 그리고 말씀을 마음에 외워라. 믿음으로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입술의 고백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입술을 고백하라. 주님이 항상 여러분과 대화하기를 원하시고 계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복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원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인 형상과 모양대로 복구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다 청산해서 옛사람을 새사람으로 변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은 새사람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어서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과 같이 꿈을 꾸고 하나님과 같이 믿고 하나님과 같이 말하므로 좀 놀라운 사람들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변화되면 나라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굉장히 귀중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도 귀중하고 우리 조국과 민족에게도 귀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오셔서 이제부터 나와 함께 살자. 안 보이는데 어떻게 같이 삽니까? 생각을 통해서 나와 같이 살자. 성경을 읽어서 내 생각이 네 생각이 되고 네 생각 내 생각이 되도록 하나가 되자. 그리고 꿈꾸지. 내 생각을 받아서 꿈을 꿔라.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면 성령은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주고 늙은이에게는 꿈을 준다. 마음속에 소원이 생기고 바라봄이 생기니까 소원으로 바라보는 것이 꿈이다. 그리고 한번 믿어 보는거야. 나와 더불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했으니 한번 믿어보는 거야. 그리고 큰 소리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나는 건강하다. 나는 축복받았다. 나는 승리한다. 나는 전셋집으로 이사간다. 단독집을 살 수 있다. 말을 해보는거야. 그러면 나와 같이 사는 것이 되는거야. 예수를 종교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함께 믿게 되는거야.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다 말고 할 수 있다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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