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목사/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히 11:1-3)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분입니다. 그렇게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저는 오늘 히브리서 11장 1절로 3절에 있는 말씀대로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에 올 때마다 언제나 들르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동구밖에서 살고 있는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의 집입니다. 일찍이 부모를 잃어버리고 남매들이 아주 인정있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지극히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주님은 그 집에 들어가서 유숙을 종종 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저 요단강 건너편 먼 곳에 계시는데 나사로가 병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가 신속히 사람을 예수님께서 보내서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으니 빨리 와서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도 3일 동안 머뭇거립니다. 예수님이 오시는지 간절히 기다리며 문풍지 소리만 나도 방문을 박차고 나가고 하던 마리아와 마르다도 오라버니를 장례 지내고 난 다음에 낙심하고 만 것입니다. 나사로가 무덤에 들어간지 사흘이 넘어서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리라”고 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위로차 그렇게 말씀하시는줄 알고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라버니가 부활의 날에 다시 살아날 줄을 믿습니다.” 그렇게 말했지 지금 살아날 것이라고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오라버니가 지금 살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저라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안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많은 유대인들이 위로 하러 왔고 구경꾼들도 와 있는데 무덤에 있는 곳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군중이 모여서 가는데 마르다와 마리아가 앞서서 가는데 어깨가 다 늘어지고 머리를 산발하고 안 먹어서 초췌하고 걸음을 뒤뚱거리고 잘못 걷습니다.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통분히 여기셨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서 죄값으로 이 죽음과 슬픔이 인류에게 다가오게 되었으니 통분히 여긴 것이고 민망히 여긴 것은 지금 살려줄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있으니까 저렇게 슬퍼한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마귀에 대해서 통분히 여기시고 지금 살아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고 있으니까 슬퍼하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셨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은 다 알고 계시면서도 감정이 계신 분입니다. 우셨습니다. 여러분이 우시면 주님도 울만한 자리는 우십니다. 여러분이 박수를 치고 웃으면 주님도 박수를 치고 웃으십니다. 주님은 대리석으로 빚어놓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와 같이 혈과 육과 감정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으로써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무덤가에 오셔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고 “마르다야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고 했습니다. 마르다가 너무 청천벽력같은 말씀에 놀래가지고서 사람들을 바라보니 사람들마다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눈에 눈물을 잔뜩 흘리면서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님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므로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무덤의 돌 옮겨놓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보고 “마르다야, 내가 네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안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못보지만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시지 우리가 믿지 아니하면 역사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도 오라버니가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더라도 하나님이 살아난다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없지만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의 문제가 있는데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으면 하나님 영광이 나타납니다. 믿지 아니하면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믿음이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살릴 줄 알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됩니다. 돌을 옮겨 놓아야 돼요. 돌문을 옮겨놓고 예수님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은 못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나와서 돌에 매달려서 돌을 옮겨놓으려니 그 큰 돌이 잘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결사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발가락에 피가 나고 그렇게 하면서도 기어코 돌문을 옮겨 놓으니까 냄새가 고약하게 납니다. 사람들은 코를 다 막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무덤 앞에 서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그 말 한마디 하시니까 죽은 나사로가 벌떡 일어나더니만 수의를 온몸에 돌린 채 그대로 걸어 나옵니다. 주님의 말씀은 창조자의 말씀인 것입니다. 죽어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가 주님 말씀 한마디에 나온 것 보십시오. 마치 예수님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다가 풍랑이 일어나서 배가 물에 가라앉게 되었을 때 주님이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람아 고요하라. 바다야 잠잠하라.” 즉시로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잠잠해졌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적인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창조적인 권능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으로 우주를 지었지 않았습니까? 빛이 있으라. 궁창이 나타나라. 모든 물은 한 곳으로 모여라. 모든 생명체가 나타나라. 해와 달과 별이 나타나라. 이것은 모두 다 주님 말씀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께서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성경은 바로 하나님이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공부하고 읽고 이 말씀이 감동되는 대로 믿으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참 놀라운 일 아닙니까? 말씀에 기록된대로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저는 하도 답답해서 늘 내 핸드폰에 겨자씨를 달아놓고 있습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도 될 것이요 능치 못한 일이 없겠다고 하기 때문에 늘 겨자씨를 들여다보고 ‘하나님 겨자씨 만한 믿음은 있지요? 내가 겨자씨 만한 믿음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내 믿음을 봐주시옵소서.’ 참 답답합니다. 믿음이 눈에 보이면 좋겠는데 안보이니까 너무 답답해요. 어떤 때는 있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없는 것 같고 사실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감정을 의지하면 믿음이 있었다가 없었다가 있었다가 없었다가 하지만 오직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서야 되는데 그것이 하나님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만이 흔들리지 않고 우리가 믿음으로 설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있으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기록하였으되 말씀에 기록하기를, 말씀을 인용하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 네 고통과 괴로움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말씀대로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 그때는 정말 믿음으로 말씀에 매달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말씀에 매달리지 못해요. 그리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살아계신 것과 그에게 간절히 찾는 자에게 복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본론>
1.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그러므로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결정적으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다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상에서부터 ‘내가 좋아하는 불고기가 나오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가 나오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짠지가 나오면 좋겠다.’ 바라는 것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그날 하루 밥상에도 바라는 것이 있는데 인생을 살면서 1년 내 혹은 10년, 20년 일어날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지요. 마음에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그 바라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해서 마음 속에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을 간절히 기도할 때 마음에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지면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실상이라면 실상은 내용입니다. 바라는 것이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도록 내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안이루어집니다. 내용이 없는데 무슨 껍데기가 일어나는 것입니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바라는 것이 믿음으로 변합니다. 저는 그냥 막연히 바랬는데 바라고 기도하고 바라고 기도하니까 나중에 ‘아~ 이것이 이루어지겠다. 이것이 내것이 되겠다.’는 마음에 확신이 생기면 이제 그때로부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상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상은 재료인 것입니다. 이루어질 수 있는 재료가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기도하고 바라니까 재료인 믿음이 마음에 이루어지고 그 믿음이 역사하기 시작해서 바라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실제적인 능력이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마음속에 바라는 것이 있지요. 그것을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마음에 믿어지거들랑 벌써 실상이 이루어진 줄 아십시오.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믿음이 나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갖고 싶은 나무의 뿌리와 같습니다. 뿌리가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는 나무가 자라나고 가지가 생기고 잎사귀가 피고 꽃피고 잎 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뿌리가 생겼다는 말인 것입니다. 뿌리가 없이 그냥 바라기만 하면은 망상이지요. 그러나 뿌리가 생기면 뿌리에서 줄기가 생기고 가지와 잎사귀가 생기고 열매 맺으면 당연한 이치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믿음은 마음 속에 뿌리인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안젤라(Angela)라는 어린 소녀는 열한 살에 신체무력증에 걸려, 걸을 수도 없었고 몸의 움직임도 극히 일부분만 가능했습니다. 의사들은 그녀가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온 전신이 무력증에 걸려서 몸을 꼼짝하지 못해요. 그러나 열한 살의 어린 소녀는 “나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걷게 되리라”는 의지를 잃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늘 자신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머릿 속에 그려보았었습니다. 항상 마음에 바라고 꿈꾸는 것이 자기가 걸어 다니는 것 바라보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꿈꾸는 것입니다. 하루는 안젤라가 침대에 누워 혼신의 힘을 다 해 자신의 두 발을 움직이려고 애쓰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움직이려고 했더니 자꾸 손을 움직이려고 하고 다리를 움직이려고 하는데 꼼짝도 안하는데 하루는 움직이려고 하는데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안젤라는 자기 침대가 움직이는 것을 발이 움직이는줄 알았습니다. 그 침대가 움직이니까 자기 감각에 발이 움직이는 줄 알고 “여러분 보세요. 내 발이 움직입니다. 발이 움직입니다.” 고함을 쳤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일어나더니만 걸음아 날 살려라고 도망을 칩니다. 그쯤에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서 침대가 막 흔들린 거에요. 그런데 안젤라는 발이 움직이는 줄 알았습니다. 침대가 흔들리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다 지진을 피해서 도망을 치는데 안젤라는 침대에 드러누워서 입이 이렇게 됐습니다. 싱글벙글.. 내 발이 움직였다고... 그래서 지진이 일어나고 돌아와서도 안젤라는 내 발이 움직였다고 자랑을 하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대답을 안했습니다. 낙심할까 싶어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말 안하고 “놀랍네. 발이 움직였다니 놀랍다.”고.. 그래서 그는 열심히 발을 계속 움직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한번 움직인 것을 느꼈기 때문에 실제는 발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착각을 했더라도 마음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경험이 왜 중요하냐. 경험이 있으면 자신이 생깁니다. 무슨 조그마한 일이라도 일을 해서 성공을 하면 그 다음 큰 일을 할 수 있는 자신이 생겨요.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해요. 여의도순복음교회 같이 목회한 주의 종들이 나가서 큰 교회를 이룩하는 것은 이곳에서 큰 교회가 세워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경험을 하면 자신이 있고 자신이 있으면 꿈이 생기고 꿈이 생기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기적이 생기는 것입니다. 경험이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안젤라는 다리가 움직이는 경험을 했다 말입니다. 지진이 그렇게 했지만 자기는 자기가 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자신을 얻었습니다. 자신을 얻어서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신이 생겨서 믿음으로 몸을 움직이고 꿈이 생기고 또 믿음이 생기고 그렇게 한 결과 2년이 지난 후, 안젤라는 드디어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목발이나 휠체어 따위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안젤라의 이야기를 기록한 글 끝에 이러한 글이 남겨져 있습니다. “생각해 보라!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일대의 지대를 뒤흔든 지진만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하찮은 병 따위를 정복할 수 없겠는가?” 바로 안젤라의 믿음이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에 일어난 지진보다 더 강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오해를 했지만 그만한 지진과 같은 믿음을 마음 속에 얻어서 자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자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신은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훈련하지 않고 자신을 어떻게 가집니까? 훈련을 해서 자기가 성공을 하는 경험을 가지면 자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만만해지죠. 그러면 자신이 생기면 꿈이 생깁니다. 더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꿈이 생기면 믿음이 생기지요. 저는 50년을 목회를 경험을 했기 때문에 군중들 앞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데는 자신이 있습니다. 열 사람이 있던 백 사람이 있던 만 사람이 있던 억명이 있던 떨리지 않습니다. 마음에 자신이 있으니까 꿈이 있고 꿈이 있으니 믿음이 있고 그렇게 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신체 무력증에 걸린 이 어린 소녀가 다시 걷기를 바라듯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처지에서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바라는 것이 이뤄질 수 있는 실제적인 능력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현실에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바라는 것이 이루어져요. 남편이 교회 나오기를 바라면 그것을 기도하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별 수 없이 나와요. 직장이 없으면 바라는 직장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믿으십시오. 믿음이 생기면 직장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바로 바라는 것의 내용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은 기도원으로 뛰어갑니다. 교회로 뛰어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바라는 바를 간절히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 들으셔서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연히 믿어져요. 일어나도 믿어지고 앉아도 믿어져요. 걱정이 사라지고 믿어져요. 그러면 그것을 강하게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믿음이 나가서 역사해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하기를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땅문서나 집문서를 손에 쥐고 있으면 안 봐도 그 집은 내 것입니다. 여러분 땅문서를 여러분 이름으로 가지고 있으면 그 땅은 여러분 것입니다. 집문서를 여러분에게 넘겨서 여러분이 가지고 있으면 그 집은 안 가봐도 여러분의 것입니다. 문서가 굉장히 중요하지요. 우리가 토지거래나 집 거래를 할 때 반드시 계약금, 중도금 지불할 때 집문서를 양도받습니다. 중도금 치르면 집문서를 양도받습니다. 집문서 없이 돈을 지불할 수 없습니다. 집문서를 가지면 그 집이나 땅은 내 것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문서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내 것으로 이루어졌다는 문서를 가지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생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부르는 것입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부르는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것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입니다. 아주 바라는 것에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는 재료인 실상이 생겨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집문서처럼 믿음이 생기면 증거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라는 것이 있을 때 반드시 기도해서 마음 속에 믿음이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히브리서 11장 3절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보이는 그 자체 스스로가 생겨나는 것 아닙니다. 안보이는 것이 보이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보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안보이는데서 보이는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만물이 자체적으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늘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만물이 진행해서 자체적으로 생겨났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만물이 눈에 안 보이는데 하나님 말씀으로 만물이 생겨난 것입니다. 안 보이는 것이 보이도록 입을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이 만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야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를 해도 안되는 일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니까 공부가 잘되어서 성공하거든. 작년도에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 고등고시, 행정고시에 많이 합격되었습니다. 그들이 다 내 사무실에 와서 말했습니다. 한 두 번 다 떨어진 고배를 마신 사람들인데 목사님 하나님께 기도 받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니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됐습니다. 걸어갈 때 뒤에 바람이 불어서 밀어주면 쉽게 걸어갈 수 있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밀어줘서 됐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다 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힘으로 안되는 것 하나님 밀어주셔서 됐습니다. 하나님 능력으로 됐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능력이 눈에 안보입니다. 그 안보이는 능력의 손이 있어서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수꾼의 경섬함이 허사라고 성을 집을 지어도 하나님이 같이 계셔야 되고 성을 지켜도 안보이는 하나님의 손길이 같이 있어야 효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보여지도록 나타난 것이 물건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도 만세전에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우리가 만세전에 택함을 받았으니까 만세전에 보셨어요. 우리 형질도 생기기 전에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서력 기원 2천년대에 한국에 살도록 하라. 이미 하나님 마음에 정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안 보이는 뜻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나타나서 눈에 보이는 우리가 되어 있어요. 여러분 나타나서 보이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인간이 되어 나온 것 아닙니다. 여러분 뒤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이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손길이 오늘날 여러분이 눈에 보이도록 태어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안보이는 능력이 얼마나 크십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안보이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안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아요. 다 내 힘으로 내 수단과 내 방법으로 내 노력으로 됐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그들 생활 속에 모셔들이지 않습니다.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전성기를 누렸던 나라와 민족을 보면, 그들이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을 때 놀라운 축복과 영향력을 발휘한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Martin Luther)에 의해 독일이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말씀으로 섰을 때, 독일은 번창하여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나치 시대에 독일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인간적인 시각으로 온 유럽을 전쟁에 휘몰아 넣었을 때 독일은 망하고 만 것입니다. 영국도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여왕이 되면서 제일 먼저 성경 말씀에 의지하며 말씀으로 나라를 통치했을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온 세계에 식민지를 가진 강국이 된 것입니다. 미국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이주한 청교도들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제일 먼저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며 온 세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건국 300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요 세계에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5천년 역사동안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했습니다. 가난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1950년 6월 25일 6.25사변 이후에 나라가 초토화 되었습니다. 그랬는데 너무나 놀라운 것은 60년 이내에 우리나라는 잘사는 20개국의 하나가 된 것입니다. 원조 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나의 생애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학생시절에 우리나라가 다시 재기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 나라에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겠는가. 모든 것이 캄캄했습니다. 그런데도 안 되는 일이 돼요. 넘어져도 뒷머리가 깨지지 않고 오히려 뒷머리가 살이 붙고, 엎드려 지니까 코가 깨진게 아니라 코가 커져서 더 보기 좋게 되고 합동하여 유익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잘사는 민족이 된 것은 이 나라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와서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천만성도가 넘는 한국의 국민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그 배후에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처럼,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우리의 흥망성쇠도 우리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달렸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건방진 소리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보이는 것은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 있고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역사하는 것이니까 모든 보이는 것은 그 배후에 안보이는 믿음이 있어서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역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보이는 것은 믿음으로 된 것이지 자기 스스로 된 것이 아닙니다.
2. 믿음을 어떻게 얻나?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믿음을 얻을 수 있는가?
내 마음 속에 어떻게 하면 이 믿음을 얻고 강하게 할 수 있는가? 그런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하나님이 분량대로 믿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3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어떠한 사람에게는 큰 분량의 믿음을 주었어요. 그래서 큰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조그마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조그마한 고난 밖에 헤어나가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큰 사람의 믿음 흉내내다가 박살이 나는 것입니다. 뱁새 황새 따라 못간다고 오늘 많은 목사님들이 믿음으로 교회를 크게 짓는 것이 아니라 “아이 내 동기 동창인 그도 큰 교회 지었는데 나도 못할 것 무엇이냐.” 은행에 가서 빚내고 있는 것 다 담보로 넣고 큰 교회 지어놓고 교인은 안오고 박살이 나서 두 손들도 말았습니다. 분량을 뛰어 넘어서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기 믿음의 분량을 알아야 돼요. 안 믿어지는 것은 하지 말아야 돼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내 안 믿어지지 않는대로 될지어다가 아닌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것을 행하면 안돼요. 믿어지는 것을 행해야 돼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 자리에 믿음이 없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크고 적은 차이는 있어도 믿음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이 믿음의 선물을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9절에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다시 성령을 주시는데 어떠한 사람에게는 특별히 성령이 믿음의 은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주님을 믿고 구원받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어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믿음은 말씀을 들으면서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 속에 믿음이 생겨요. 오늘 여러분 마음속에 믿음이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저의 설교를 듣고 난 다음에 믿음이 살아서 일어날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이라는 보약을 먹으면 믿음이 생겨나요.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천지가 없어져도 내 말은 안없어진다니까 그 말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천지가 없어지면 내 말도 없어지리라. 그러면 그것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빽이 너무 크다 말입니다. 천지가 없어져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한다. 그러니 그 말씀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으니 말씀을 읽을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원수
그러나 항상 우리 믿음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원수 마귀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경계해야 돼요. 못 믿도록 마귀는 훼방을 하는데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다”
마귀가 절대 우리에게 좋은 일 안해 줍니다.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16장 17절처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계속 귀신을 쫓아내야 돼요. 계속.. 여러분에게 비정상적인 생각이나 감정이나 마음이 생기면 꼭 귀신이 그럽니다.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귀신이 쫓겨나가게 돼요. 비생산적인 시험이나 환난이 다가오면 가정에서 귀신을 쫓아내야 돼요. 그래야 여러분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학교에 가면 젊은이들에게 무신론을 가르쳐서 하나님과 영적인 것을 부인하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 공부를 많이해서 지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리석어서 그런 것입니다.
요한이서 1장 7절에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요.
유대인의 성경 탈무드에는“귀신 들린 사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설명했는데 첫째, 귀신이 들어가면 한 밤중에 돌아다니려고 한다. 이는 이 세상의 방탕한 풍속을 좇는 자들을 말합니다. 많은 범죄는 밝은 낮보다는 주로 밤에 일어납니다. 신랑이 심히 밤에 돌아다니기를 원하면 귀신들린줄 아십시오. 자식들이 밤늦게 돌아다니면 반드시 귀신이 끌고 다닙니다. 좌우간 신랑이나 신부나 자식이나 저녁에는 일찍 들어와야 돼요. 특별한 사유없이 밤에 돌아다니면 귀신에 끌려서 문제를 일으키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로, 귀신이 들어가면 무덤가에서 삽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이 무덤가에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무덤은 절망을 의미합니다. 꿈과 소망을 갖고 내일을 바라보기 보다는, 낙심하고 포기하며 자살까지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오면 자꾸 마음을 무덤가에 갖다 놓습니다. 낙심하고 절망하고 자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셋째, 귀신 든 사람은 옷을 찢습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옷을 벗으려고 합니다. 미친 놈 뭐 저고리 다 벗어버리고 빤스 다 벗어버리고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놈 많지 않습니까? 수치를 몰라요. 귀신이 들어오면 부끄러운 줄 모른다구요. 염치가 없어지고 체면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회가 부도덕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예절과 도덕을 다 버리고 양심까지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넷째, 귀신들린 사람은 좋은 것을 주어도 곧 부수어 버립니다. 사랑을 주어도 그 가치를 모르고 감사도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아주 염치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 주어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거짓말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며, 질병에 걸리게 합니다. 또한 살인하게 하고 자살하게 하며,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고 폭력을 일삼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우리 믿음의 원수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 하도록 할 뿐 아니라, 믿는 자도 실족하여 믿음이 떨어지도록 훼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부정적인 환경과 감각이 우리에게 믿음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환경이나 감각을 살려 놓으면 믿음을 빼앗아 갑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마 14:29~32)
베드로가 물위로 잘 걸어갔는데 바람과 바다를 보고 겁이 났습니다. 마음에 공포심을 갖다주는 것은 마귀입니다. 겁이 나니까 믿음은 사라졌습니다. 물에 빠지지요. 주님은 오시면 믿음을 주시고 마귀가 오면 공포심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공포심을 우리가 일으키는 곳에 가지 말아야 됩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에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의심이 들어오는 곳에 우리가 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4.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은 우리 보고 “너 노력한대로 될지어다. 너 공부 많이 한대로 될지어다. 너 잘난 대로 될지어다.”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케이스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니 믿음이 얼마나 우리 운명을 좌우하는 큰 요소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야 말로 실상의 청사진입니다. 장차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냐. 지금 마음 믿음에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꿈꾸고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때 청사진을 찍지 않습니까? 집도 기계도... 그 청사진이 여러분의 꿈과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꿈과 믿음을 보여주세요. 여러분 미래를 말씀해 드릴테니까.
마태복음 8장 13절에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하인이 중풍에 걸려 있는데 예수님을 찾아와서 백부장이 “우리집에 오실 필요없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말씀만 한마디 하시옵소서.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주님이 “이만한 믿음을 내가 본적이 없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인이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에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스로보니게 여자 말입니다. 딸이 귀신들려서 죽게 되었는데 이방인이라 예수님 때 이방인을 축복할 때가 아닙니다. 자식에게 줄 떡을 개에게 안준다는데 스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맞습니다. 옳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개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와~ 내가 봐도 이 여자 대단한 여자입니다 여러분. 그런 지혜가 어디에서 생깁니까? 자식에게 줄 떡은 개에게는 안준다. 그러면 “아니 안고쳐 주면 안고쳐 줬지 나를 개라구요? 당신 누구요? 당신은 개 아닙니까?” 이렇게 달라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센스가 있습니까? 결혼하려면 센스가 있는 여자하고 결혼해야 돼요. 너무 무딘 여자하고 결혼하면 아주 골치가 아파요. 센스가 있어요. “예 옳습니다. 개들도 어린아이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습니다.” 예수님 감탄을 했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그러니 그 딸이 당연히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적은 믿음은 적은 실상을 가져오고, 큰 믿음은 큰 실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적은 실상을 가진 사람은 적게 이루어지고 큰 실상을 가진 사람은 크게 이루어집니다. 꿈과 믿음, 이것이 우리 인생의 근본 재산입니다. 누가 무어라고 말해도 꿈과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여러분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우리는 너무나 아직 믿음에 대한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있으면 태산이 옮겨진다는데 왜 가난하게 살아요? 왜 병들어 살아요? 왜 고통당하며 살아요? 믿음만 있으면 세종도시 충청도에서 옮기는 것 저런 문제도 국회에서 기도만 하면 해결될 것 아닙니까? 우리의 생각하기에 믿음이 없어요. 주님이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문제 오케이다 해결이다. 그러니 얼마나 우리가 믿음이 없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야 돼요.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리라”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능히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뉴욕의 베스 이스라엘 종합병원의 프레드 엡스타인(Epstein, Fred) 박사는 신경외과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박사인데 그가 쓴「내가 다섯 살이 되면」이라는 책은 매우 유명합니다. 그 책에는 그가 실제로 병원에서 겪었던 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하루는 병원 응급실에 나오미라는 이름의 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혼수상태로 들것에 들려 왔습니다. 뇌 속에 있는 종양 때문에 동맥이 파열되어 뇌출혈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살릴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모범적으로 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잘 되어 나오미는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뇌수술을 했기 때문에 아이는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눈과 코만 살짝 드러내 놓고 있을 뿐 다른 것은 안보입니다. 그런데도 나오미의 두 눈은 생기가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매일 자기를 진찰하러 들어오는 엡스타인 박사에게 자기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불가능한데도 그 꿈을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제가 다섯 살이 되면 줄넘기 하는 법을 배울 거예요.” 다음 날은, “선생님, 제가 다섯 살이 되면 두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거예요.” 다음날에는 “선생님, 제가 다섯 살이 되면 오빠처럼 만화책도 읽을 거예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자기가 네 살 밖에 못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족들도 다 나오미는 네 살밖에 못살고 자기도 네 살밖에 못사는 것을 의사가 말해 주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네 살에 죽는다고는 절대로 안해요. 다섯 살이 되면 줄넘기를 배우고 뜀뛰기를 배우고 무엇을 하겠다. 믿음과 꿈을 가진 소녀인 것입니다. 다른 것 다 없습니다. 다른 의학적인 과학적인 희망과 소망이 없는데 그 소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꿈과 믿음인 것입니다. 꿈과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 꿈과 믿음을 말을 해야 돼요. 사람이 꿈과 믿음이 있으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차원의 영성이 살아난 것입니다. 이 소녀는 사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말한 거에요. 네 살에 죽을 사람이 자꾸 다섯 살을 이야기합니다. 다섯 살이 되면 이런 것 할 것이요.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어린 소녀는 절망하지 않고 매일 희망의 싹을 피우기 위해 몸부림 쳤습니다. 의학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 후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서른이 가까이 된 지금도 어느 가게의 점원이 되어 활기찬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네 살에 죽을 애가 서른까지 지금 살고 있어요. 그러한 꿈과 믿음과 신앙고백을 가지면 120살은 살 거에요.
여러분, 우리 인생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의 환난의 바람이 불어올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네 살짜리 꼬마 나오미가 죽음 앞에서도 희망의 줄을 붙들고 믿음으로 희망을 말하며 기적이 일어나 승리를 굳힌 것 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믿음으로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희망찬 내일의 청사진을 그리고 희망을 고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사차원의 영성을 살리십시오. 꿈과 믿음과 생각과 말이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꿈꾸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태어날 때 빈 손 들고 응아하고 울고 태어났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생겨날 꿈과 믿음과 생각과 말이 우리의 미래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한대로 됩니다. 여러분들이 꿈 꾼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은대로 돼요. 여러분이 말하는대로 돼요. 쉽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마세요. 쉽게 부정적인 꿈을 꾸지 마십시오. 쉽게 나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없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쉽게 파괴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저주하거나 욕하거나 탄식하는 말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항상 믿어야 돼요.
로마서 12장 2절에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여러분 꿈꾸고 뜻을 따라서 믿고 생각하고 말하면 참 기막힌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상주셔요. 하나님은 상을 주셔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그런 것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 바라는 것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꿈꾸고 믿는 것입니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예수 향기 날린다. 나는 끝까지 꿈꾸고 믿는다. 그러면 하나님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민족의 특성이 그런 특성이 있습니다. 굉장히 괴로울 때도 내일이 좋아질 것을 꿈꾸고 믿는 특성이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큰 기적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받은 줄로 믿고 뒤로 물러가지 말라. 하루 열 두번도 더 물러가는 사람 있어요.
「가슴 뛰는 삶」,「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를 쓴 강헌구 씨는 전 세계 40여개 도시에 비전 스쿨을 세우며 매 순간 목표와 비전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내가 도달하려는 높이까지만, 나는 성장할 수 있다. 오직 내가 추구하는 거리까지만 나는 갈 수 있다. 오직 내가 살펴볼 수 있는 깊이까지만 나는 볼 수 있다. 오직 내가 꿈을 꾸는 정도까지만 나는 될 수가 있다.”
19세기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나의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의 삶이 강해지고, 나의 믿음이 약하면 약할수록 나의 삶이 약해진다.”고 했던 것입니다.
미국의 강철 왕 카네기는 “큰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두 배나 더 높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꿈과 비전을 품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반드시 하나님은 따라오면서 자꾸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구약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사들, 다윗 왕 등 모두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3절로 34절 우리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오늘도 오늘날도 여러분 믿음을 통하여 이와 같이 크고 작은 기적이 매일같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일어나게 됩니다. 절대로 환경이 여러분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믿음이 그 모든 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만 하고 오늘 끝마치겠습니다. 오늘 내가 설교를 너무 길게 하는 것 같아...
뉴멕시코의 한 흑인 가정에서 지병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어머니가 열두 살 난 아이의 손을 잡고 유언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랠프야, 너에게 물려줄 것은 한 가지도 없구나. 그러나 엄마의 말을 잊지 말아다오. 아무리 괴로워도 믿음으로 살아라. 그리고 엎드려 기도하라.” 랠프는 1년 사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할머니에게 맡겨졌고, 갖은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최고의 교육을 마쳤습니다. 인종차별과 가난 속에서 수십 번 학교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위기마다 어머니가 최후로 남긴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믿음으로 살면서, 어려울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믿고.. 소년은 마침내 대학을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UN에 들어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큰 활약을 했습니다. 비록 흑인이었지만 흑인으로서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탔습니다. 그가 바로 랠프 번치(Ralph (Johnson) Bunche) 박사인 것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삶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놀라운 승리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현실의 고통 가운에서도 마음에 품은 꿈과 믿음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우리 교회가 그 영광을 체험하게 되고 온 우리 민족이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덩어리입니다. 쓰레기통의 쓰레기가 아닙니다. 왜, 고양이나 개가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꿈꿀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불가능이 가능케 되고, 없는 것이 있게 되고, 죽은 것이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주여 세 번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주여! 주여! 주여!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진실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만군의 야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을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운행하시어 역사하시고 성령으로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여! 영광받아 주시고 높임받아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찬양과 존귀를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높임받아 주시옵소서! 찬양과 존귀를 받아 주시옵소서.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여! 찬양과 존귀를 받아 주시옵소서. 높임을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여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니여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찬양과 존귀를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높임을 받아 주시옵소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높임을 받아 주시옵소서. 영광받아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신유기도>
몸이 아프신 분은 아픈데 손을 얹구요. 그 다음 가슴에 손을 얹져 주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너희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하신 하나님! 오늘 예수의 이름으로 아픈데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고쳐 주시옵소서. 병든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고쳐 주시옵소서. 죄를 지었으면 용서해 주시고 고쳐 주시옵소서.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너희 모든 질병은 떠나 갈찌어다. 떠나가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예수 이름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고침을 받을지어다. 우리 아버지여 마음에 평안을 주시옵시고 용기와 담력을 주시옵소서. 꿈과 믿음을 주시옵소서. 뒤로 물러가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전진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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