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08 성령의 약속 (갈 3:10~14)
성경본문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용규 선교사의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보면 그분이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원에 유학했을 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지만 하버드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려니 너무 어렵고 힘들었던 거예요. 어느 날은 학교를 가려고 길을 나섰는데 ‘차라리 지나가는 저 트럭이 나한테 와서 좀 부딪혔으면... 그러면 합법적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공부를 피할 수 있을텐데’ 라고 까지 생각을 했대요. 그러니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마지막 졸업식 날 졸업식장에 앉아있는데도 사무처 직원이 와서 어깨를 톡톡 치면서 당신은 서류 착오로 잘못 졸업자로 올라갔다고, 당신은 아니라고 할까 봐 너무나 두려웠대요. 순간마다 하나님을 붙들 수 밖에 없었다고 얘기합니다. 하버드대학원에만 그런 어려움과 불안이 있는 건 아니죠.
제가 중학교 1학년 입학을 했을 때 키가 138cm이었으니까 땅에 붙어 다녔죠. 성격도 굉장히 소극적이고 여러 가지 저만의 고민들이 있었어요.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런데 영어수업을 들어가니 완전히 공포의 영어수업이에요. 시골학교 애들이 전혀 공부를 안 하잖아요. 1학년에 들어와서 처음 영어를 공부하는 거니까 기초를 잘 잡아줘야 되겠다는 게 선생님의 불 붙는 마음이었어요. 문제는 방법이죠. 시골 애들은 말을 안 들으니까 그때 그때 가차없이 매를 때려서라도 정신이 번쩍 나게 해서 공부를 시켜야 된다. 첫 시간부터 틀리면 그냥 30cm자로 막 뺨을 때립니다. 비명이 터지는 거예요. 1년 동안 모두들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는 전혀 안 무서웠어요. 저는 영어시간이 천국이었어요.
6학년 겨울방학 때 이제 졸업만 남겨 놓고 중학교 갈 일만 남았잖아요. 어느 날 제 친구가 와서 하는 말이 “우리 큰누나하고 결혼하려고 하는 어떤 아저씨가 자꾸 나보고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영어 가르쳐 줄 테니까 와서 공부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나 혼자 공부하냐. 너도 같이 하자.”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그래? 노느니 공부할까?” 꼬맹이 처남한테 잘 보여 어떻게 하든지 결혼하려는 아저씨가 열심히 가르친 거예요. 두 달 동안 중학교 1학년 영어책 절반을 공부하고 들어갔어요. 그러니 뭐 옆에서 얻어터지고 비명 소리가 나도 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오히려 선생님이 물어보면 잘 대답하거든요. “어이고 이 녀석 잘 하네.” 그러니까 다른 친구들이 저를 어떻게 보겠어요. 아무도 저한테 졸업할 때까지 찍 소리 못했어요. 제가 착해서 권력을 남용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만 어쨌든 저에 대해서 함부로 하는 애가 없었어요.
더 중요한 건 초등학교 때는 그렇게 공부를 잘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졸업할 때 겨우 한 번 우등상 받아 봤죠. 그랬는데 중학교 가서 차원이 달라진 거예요. 선생님들이 잘 한다고 하고, 내친김에 조금 열심히 했는데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죠. 그랬더니 선생님들마다 저를 알아봐주시니 제가 어떻게 그런 처지에 공부를 안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이 이래저래 공부하게 되고 국어선생님도 시도 못쓰는 애를 데려다가 시를 가르쳐 주신다고 하고 웅변대회에 나가보라고 하고, 바빠진 거에요. ‘위대한 탄생’인 거예요. 아주 유약하고 소극적이었는데 선생님들이 격려해주고 이뻐해주고 칭찬해주고. 여러분 그렇게 학교 다니면 학교 다니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십니까? 제가 물론 3학년 때 그만 방심해서 고등학교 시험은 떨어졌지만. 한 두 달 먼저 공부하고 시작한 중학교 시절 3년이 행복했어요. 제가 뭐 똑똑해서 준비한 게 아니었어요. 은혜였어요.
오늘 성경말씀을 읽어보니 율법은 하나님 말씀이에요.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이런 말씀들은 로마서 7장 12절 말씀 같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말씀, 참 좋은 말씀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그 말씀을 나에게 비춰보면 나의 잘못이 다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만 어떻게 되었느냐? 율법의 저주가 되어버렸어요. 어떻게 우리가 완벽할 수 있어요? 그러나 율법과 모든 계명은 항상 바르게 지켜야 되요. 그렇게 지킬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러므로 율법 앞에서는 아무도 의로울 자 없는 거예요. 율법 앞에 모든 사람이 허물이 다 드러나는 거예요.
여기서 조심해야 되요. 착각하면 안 되요. 율법을 지킬만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바리새인이었어요. 그래서 실패한 거예요. 율법의 저주라고 했어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죄인이에요. 죄인은 죄값을 치러야 되요. 끝내는 그 죄값으로 죽어야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율법의 저주라는 거예요. 그래서 잘못하면 어떻게 돼요? 사단이 우리를 자꾸 공격해요. ‘너는 이런 것도 지키지 못하니 죽어 마땅한 존재야. 너는 죄인이야.’ 이 공격을 우리가 이기지 못하는 거예요. 이 율법의 저주로부터 누가 우리를 구해줄 것인가? 철 모르는 아이를, 어떤 선생님이 열정을 다해 두 달 영어를 가르쳐주어서 그 아이의 중학교 시절을 천국으로 바꿔놨던 것 같이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실 분이 필요해요. 그런데 할렐루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여러분, 속량(贖良)이라는 단어, 어려운 단어에요. ‘몸 값을 치르고 종을 자유인으로 풀어주셨다.’ ‘양’이라는 말은 양인(良人)이란 말이에요. 종이나 노비가 아니고 일반 백성이란 말이에요. ‘속’이란 것은 돈을 대신 갚아준다는 말이에요. 예수님이 자기의 목숨을 대신 내어주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우리를 죄와 율법의 저주와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여러분 이게 구원이에요. 이걸 아셔야 되요.
인생의 문제가 뭡니까?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몰라요. 그런데 예수님은 선지자 중에 선지자에요. 내가 곧 길이요,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길을 가르쳐 주셔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제사장이에요. 우리는 길을 알지 못하니까 가는 곳마다 부딪히고 실수하고 잘못하게 되요. 그 죄값을 치러야 되요. 결국 율법의 저주에 걸려 죽어야 했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시고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어요. 제사장이 되셨어요. 그리고 이제는 왕이 되셨어요.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셨어요. 우리 인생의 친구가 되시고 신랑이 되셔서 우리와 동행하신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는데 아브라함의 복을 주셨다고 해요.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죠. 원래 아브라함은 바벨론 갈대아 지역에 살던 사람이에요. 그 아버지는 전설에 의하면 우상장사였다고 해요. 그저 그러고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그를 불러내셨어요. 아브라함은 잘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몰아서 하나님을 따라갈 수 밖에 없도록 인도하신 거예요. 그래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지켜주시고 소돔 고모라 전쟁 속에서도 지켜주셨어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아브라함은 점점 자기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생각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다가 드디어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불안에 떨고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 내시죠. 사막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면서 눈을 들어 저 밤하늘의 별을 보라. 나는 너의 보호자다. 네게 한 번 약속한 것을 영원히 지킬것이라’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했어요. 아브라함이 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하나님 말씀을 믿었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믿는 걸 보시고 너무 좋아하셨어요. 그러면서 ‘너 참 잘했다’, 의롭다고 하셨어요.
여러분, 성경에서 ‘의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는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도덕적으로 온전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을 따라가면 도덕적으로도 건강하게 되요. 그래서 겉보기에는 도덕적으로 온전한 의인이 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결과로 드러난 거예요. 성경이 말하는 의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에요. 누구라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면 복의 근원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뜻하신 일들을 그의 인생을 통해서 이루어 가셔요.
가장 아름다운 모델이 예수님이잖아요. 예수님은 로마제국 시대, 가장 가난한 시대, 사회적 차별과 온갖 부조리와 부정 부패가 가득한 그 땅에서 태어나 사시면서도 하나님과 열려 있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응답 받았고 말씀의 권세를 행사했고 십자가까지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 믿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셔요. 그래서 자녀들도 잘 되고 기업도 잘 되고 다 잘 되게 되어 있어요. 혹 순교자같이 자기 때에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반드시 그 후대를 통해서 이루어져요. 자기 살아생전에 모든 일이 다 잘되는 것을 보고 세상 떠나는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지만 아직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중이고, 그러기에 가시밭길이 있고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 흔들리지 아니하고, 우리 주님같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모든 사람이 오해하고 비난하고 제자들은 도망 가버린 상황 속에서도 ‘다 이루었다’ 이렇게 말하고 떠날 수 있다면 이건 정말 너무나 멋있는 인생이에요. 그래서 우리 역사 속에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은 시간이 갈수록 빛이 날 수 밖에 없어요. 살아생전에 아름다운 것은 하나도 얻지 못했지만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다가 갔기 때문이죠.
여러분, 예수님 같이 자유인으로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해요. 그러려면 계속 말씀을 들어야 되요.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나는 거예요. 우리에겐 힘이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말씀의 권세가 있어요. 말씀은 하나님이라고 했어요. 그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에요. 성경은 기록된 말씀이에요. 말씀을 계속해서 들을 때, 말씀의 능력이 잠자고 있는 내 영을 깨워요. 연약해진 내 영을 강하게 해요. 세상의 사고에 매여있던 나의 생각을 새롭게 바꾸어요. 이미자 노래를 들으려면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어야 들릴 것 아니에요. 축구경기를 보려면 TV채널을 맞추어야 될 것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고방식과 내 사고방식이 달라요. 말씀을 통해서 주파수를 맞추는 거예요.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주신 복이 뭐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깨닫도록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거예요.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영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어요. 그분이 바로 성령이세요. 거룩한 영이세요. 요한복음 14장 16절에 예수님이 ‘내가 이제 십자가에 죽고 하늘나라로 돌아가면 너희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리라’ 그런 말씀을 하셔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또 다른 보혜사’라는 것은 서로 질적으로 다른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여기 테이블이 있고 저기 의자가 있다. 이건 서로 다른 거죠. 사과가 있고 또 다른 사과, 이건 본질적으로 똑같은 거죠. 또 다른 보혜사란 말은 뭐냐? ‘보혜사’라는 말은 ‘은혜로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선생님’이란 말이에요. 예수님도 보혜사에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은혜의 말씀으로 지켜주셨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가신 다음에 대신 오신 분이 누구냐? 성령님이에요. 그분도 보혜사에요. 선생님이에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선생님이에요. 그분이 하시는 일은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깨닫게 하셔요.
여러분, 이 안에 내 인생의 해답이 있어요. 내 문제의 응답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기록된 말씀이 내게 주신 말씀이 되게 해요. 창세기 15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다’ 그런 표현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개인에게 말씀하신다. 기록된 모든 말씀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죠. 우리가 헬라어로는 이것을 ‘로고스’의 말씀이라고 해요. 그러나 내게 주시는 말씀을 ‘레마’의 말씀이라고 해요. 우리가 늘 말씀을 듣잖아요. 우리가 기도하면서 말씀을 들을 때에 오늘 내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이 내 마음에 부딪히게 하시고 깨닫게 하셔요. 그게 바로 레마의 말씀이에요. 내게 주시는 말씀이에요.
또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레마의 말씀을 주시니까 기다리기도 해야겠지만 그것을 바꾸어서 더 넓게 생각하세요. 오늘 강단에서 선포되는 모든 말씀은 바로 나를 위해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음으로 받으면 그게 다 나를 위한 말씀으로 바뀌는 거예요. 제가 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가르치던 여학생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공부를 안 해서 선생님들이 걱정을 했어요. “잘 할 수 있는 친구가 왜 저럴까?” 아마 집안에 어려운 일들이 많으니까 그랬겠죠. 그러더니 마음을 잡고 공부하기 시작하는데 3학년 때 공부하는 것을 보니까 역시 그 아이는 수업이 시작되면 점점 몸이 책상 앞쪽으로 나와요. 다른 아이들은 피곤해서 자꾸 몸이 뒤로 물러가는데. 제가 가르치면서도 ‘참, 열심이다.’ 탄복했어요. 결국 나중에 서울대학에 갔어요. 짧은 기간이지만 집중하니까. 모든 말씀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세요.
우스개로 ‘내가복음’이라는 게 있어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외에 다섯 번째 복음인데 내 귀에 즐거운 것만 듣는 게 내가복음이에요. ‘이런 말씀은 참 좋아’ 하면서 줄 치는 말씀. 지난 주에도 말씀 드렸지만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은 그런 태도를 아주 분명하게 야단쳐요. 그런 식으로 말씀을 가르고 편식하지 말고 차라리 이제까지 줄 안 친 말씀을 주목해서 보라. 네 귀에 단 말씀만 받으려 하지 말고 모든 말씀을 받아라. 생선 먹을 때 애같이 살만 발라먹으려고 하지 말고 뼈고 살이고 그냥 와그작와그작 다 씹어 먹으라는 거예요. 모든 걸 받으라 이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입으로 시인하고 감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세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제가 전도사 시절에는 서울의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님 밑에서 3년을 배웠어요. 박종순 목사님은 전통적인 한국 목회를 가장 깔끔하게 펼치신 분이에요. 전도사가 전 교인을 상대로 설교할 기회가 있겠어요. 거의 없죠. 어쩌다 한 번 주일저녁에 설교를 했더니만 설교 끝난 다음에 교우들이 와서 그러시더라고요. “어쩌면, 전도사님 설교하는 모습을 보니까 박종순 목사님하고 똑같아요.” 그게 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죠. 박 목사님을 3년을 쳐다봤는데 안 닮으면 그게 이상하죠? 닮게 되어 있어요.
한 10년 후에 하나님께서 어떤 기회를 주셨냐 하면 이번엔 압구정동 소망교회의 곽선희 목사님에게 가서 부목사로 섬기게 됐어요. 제 친구 목사가 곽 목사님 3박4일 세미나에 한 번 와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난 저 목사님 밑에서 딱 석 달만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저는 4년이나 있었어요. 많이 배웠죠. 목회가 무엇인가를 배웠어요. 그런 복을 누렸어요.
제가 신학공부를 하고 전도사나 부목사로 있을 때에는 자기 주제를 몰라서 배움이 그렇게 소중하고 귀한 걸 몰랐어요. 눈 뜨고 보긴 보고 듣긴 들었습니다만 뼈에 새기진 못했어요. 정작 현장에 나가서 단독 목회를 6년 하는데 그런 고생이 없었어요. 하나님이 절 훈련시키신 거죠. 광야로 내 몬 거죠. 피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한 번 정신 못 차리면 3년이에요. 시험에 한 번 떨어지면 3년이죠. 3년을 피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을 찢으면서 기도했어요. 동서남북 다 막혔어요. 딱 하나 숨구멍 같이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IMF가 터져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교회도 추락하는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 전혀 예기치 않게 눈물로 3년을 기도하는 저를 갑자기 소망교회로 옮겨 주셨어요. 그리고 4년간 목회를 다시 배우며 뼈에 새겼어요. 두 번 다시 피눈물 나는 목회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여러분, 신앙생활은 다른 것 없어요. 말씀을 잘 듣는 거예요. 순종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파쿠오’에요. ‘휘포’ +’ 아쿠오’ 에요. ‘아쿠오’는 듣는다는 말이고, ‘휘포’는 아래라는 뜻이에요. 마음을 낮추고 듣는다는 말이에요. 말씀을 집중해서 들으면 깨닫게 되어 있고 정말 깨닫는 사람은 순종하게 되어 있어요. 어설프게 듣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는 거예요. 어설프게 듣기 때문에 그 못된 자아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는 거예요. 여러분 인생을 가장 가로막는 원수가 누군지 아십니까?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아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정답을 가르쳐 드릴께요.
여러분 인생을 이제까지 막아 온 최대의 원수는 여러분 자신이에요. 여러분의 자아, 여러분의 고집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하나님의 은총을 댐 같이 막고 있는 거예요. 새해를 맞았어요. 새 주일을 맞았어요. 새 날을 맞았어요. 새 아침이에요. 딱 하나 남았어요. 마음문을 여세요. 아직도 그렇게 천년만년 살 것 같이 그렇게 살겠어요. 아니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거예요. 유창하게 기도할 필요 없어요. 솔직하게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다 들으셔요. 정확하게 응답하셔요. 이 약속을 붙들고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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