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20129 연약함을 자랑하리라(고후12:7-13)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5. 25. 20:45

120129  연약함을 자랑하리라 (고후 12:7~13)

성경본문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에 가시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때에 강함이라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사도의 표가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1985 나이 사십의 장주석 사장이 있습니다. 그는 좋은 대학교 상대를 나와서 기업의 회장 비서로 일하는 인정받는 똑똑한 사람이죠. 그러다가 자기 사업을 하게 됩니다. 승승장구 사업이 확장되고 펼쳐집니다. 사업이 되니까 하루 온종일 바쁜 거예요. 늦게 까지 손님들을 상대하고 술을 마셔야 되고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와야 됩니다. 어느 ,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요. 참다가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갔어요. 마땅히 병명이 나오질 않아요. 급속히 기운이 떨어지면서 나중에는 의식을 잃었어요. 그리고 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했지만 도저히 병명이 나오지 않아요.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집으로 왔어요. 죽는 날만 기다리는 거예요. 식물인간이 됐습니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죠. 그리고 며칠 후에 놀랍게 의식이 돌아왔어요. 의식은 돌아왔는데 말을 못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때는 사람은 영락없이 죽은 사람이에요. 삐쩍 말라서 몸이 오그라드는,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인데 정작 본인은 의식이 시퍼렇게 돌아왔어요. 주위에서 이런 저런 하는 것을 듣습니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는데 말은 마디도 나오지 않아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니까 위로하러 왔던 사람들이 이런 저런 던지는 것을 듣습니다.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를 이야기하고 탄식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장모님도 지나가고 이야기를 듣게 되요. 소용이 없어요. 그런데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아내를 향해서 속이 터져라 외치건만 전혀 그것이 전달되지 않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 10개월 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요. 10개월을 몸부림 끝에, 이제 이상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 뒤늦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되요.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서원을 지키지 않느냐?’ 가만히 생각하니까 지난 하나님께 서원했던 일이 기억나요. 어린 아들이 시골 처가에 갔다가 뜨거운 솥물에 빠졌어요. 건져냈지만 이미 너무 심한 화상을 입어서 병원에 달려갔지만 이미 소용이 없다. 죽을 밖에 없다. 소식을 서울에서 듣고는 부리나케 병원에 쫓아가서 아들을 살려내라고 소리소리 지르다가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을 살려주시기만 하면 내가 목숨까지도 하나님 앞에 내어놓겠습니다.” 그랬는데 놀랍게 하나님이 아들을 살려주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급할 때는 엎드려서 아들만 살려주시면 내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돌아오겠노라고, 모태신앙으로 어린 시절에 교회를 다녔지만 젊어서 교회를 떠나서 하나님을 등지고 살던 그를 하나님이 부르시던 싸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서원을 뱉고 하나님이 아이를 고쳐주셨건만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에게 하나님이 식물인간 10개월 만에 그것을 깨닫게 해주신 거예요. 그것을 기억하고 그가 통곡을 합니다. 놀랍게도 메마른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옵니다. 가족들이 놀랍니다. 눈물 방울 흘리지 않고 죽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죠.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너는 이제 요나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끝까지 가다가 허리가 부러지고 되돌아 서게 요나죠. ‘너는 내가 보내는 곳으로 가라.’ 이런 은혜를 체험하고 말문이 열렸어요. 아내가 깜짝 놀랬죠. 그러나 그는 말이 열리기 무섭게 여보, 나를 기도원으로 데려다 줘요.”

그래서 그가 젊은 시절 한두 가봤다는 부산의 양산 감람산 기도원에 갑니다. 곳에 가서 시체 같은 사람이 집회 뒤에 누워가지고 하루 종일 집회시간에 말씀을 듣습니다. 모든 말씀이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요. 통곡을 하면서 말씀을 듣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말씀이 어떻다 하는데 맞죠. 여러분의 이성으로는 맞아요. 그러나 그것은 틀린 거예요. 이유 없이 말씀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여야 되요. 음식이 있는 , 중요하죠. 그러나 그것보다 입맛이 좋아야 되요. 드러누워서 3개월 동안 기도원에 있을 때에 모든 말씀은 귓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예요.

 그러면서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제야 밥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시체 같았던 몸에 살이 붙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드디어 그가 베트남 선교사의 소명을 받고 떠납니다. 1990 마흔다섯의 나이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붙들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안수를 받고는 90년에 떠나요. 그가 이십여 20 초반에 파월장병으로 가서 싸웠던 나라에 하나님이 다시 선교사로 보내는 거예요. 그러나 때는 수교하기 전이었어요. 그래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어서 신발회사의 현지 지사장 직함을 만들어서 신발을 잔뜩 가지고 들어갔어요. 그러나 외국인이 나타나자 공안이 따라붙어서 호텔 밖에도 나갑니다. 모든 허가를 받아야 되요. 사람하고 접촉하는 것도 허가가 있어야 되요.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나 그가 신발 판매를 핑계로 대고 시장조사 한다고 여기저기 둘러보니 베트남이 아직 전쟁 끝난 전쟁의 후유증에서 회복되지 못했어요. 가보니 온통 거지에다가 환자 천지에요. 그런데 사람들을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그에게 뜨거운 마음을 주셨죠.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10개월이나 식물인간으로 죽어갈 밖에 없던 나를 살리셨던 하나님, 불쌍하고 가난하고 사람들, ‘ 주님! 저들을 고쳐 주십시오.’ 붙는 마음을 견딜 없어서 환자에게 다가가서 자기를 따라 붙는 공안에게 내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도 되겠느냐 했더니 공안이 그러라고 합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말로 환자를 붙들고 , 하나님. 사람을 고쳐주십시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병자를 고쳐주신 거예요. 공안의 눈이 이만해진 거예요. 동네 사람들의 눈이 이만해진 거예요. 그렇게 시작되어서 가는 곳마다 환자를 고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한국에서 사랑의 병원이라고 하는 선교단체와 연결이 되어서 베트남의 구석구석 마을에 가서 병원을 세워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좋은 일을 하지만 공산주의 정권에서는 계속 그를 의심합니다. 무려 7번이나 감옥에 갇혀요. 자신이 건강이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옛날 멋있고 건강한 모습이 아니에요. 회복되었지만 눈은 실명 상태고 나머지 눈도 희미해요. 강직성 척추염에 걸려서 목도 맘대로 구부러지지 않는 그런 자기 안의 질병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그리로 보내셨어요. 그가 공안의 불시 검문을 받고 감옥에 끌려갈 때마다 마음에 그래, 내가 가족을 데리고 오지 않기를 정말 잘했지. 내가 끌려가는 모습을 가족이 본다면 아픔을 어떻게 견딜까.’ 별난 사람이기도 해요.

그런 위기 속에 하나님의 은혜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놀랍게도 그는 침대에서 자지를 않아요. 아예 나무 관을 짜서 속에 들어가서 자요. 나는 이미 죽은 몸이다. 나는 이미 죽었었는데 하나님이 내게 일을 하라고 생명을 주셨으므로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날마다 나무 관속에 들어가서 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마음으로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고백을 해요. 놀라운 일이죠.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는 또한 가족의 희생이 있어요. 사람이 회복되고는 베트남으로 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불편한 몸으로 공부하고 기어코 수교도 되지 않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베트남에 몸을 던지고 ,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이제 나는 죽었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다시 살아난 몸이요. 하나님이 나를 베트남으로 가라  하셨소. 그러니 이제까지 고생한 당신에게 미안하지만, 아들과 함께 당신 스스로 살아가시오.” 그리고는 베트남으로 훌쩍 떠나갔어요. 그런 남편을 이해할 있겠어요? 이해할 없죠. 아내에게는 한이 됐죠.

그가 얼마나 미쳤던지 거기 가서 그렇게 해요. 그를 통해서 예수 믿고 훈련 받는 베트남의 목사를 비롯해서 그를 만나던 사람들도 이상하게 생각해요. ‘한국에 가족이 있다는데 어떻게 여기서 이러고 있지?’ 자기들을 위해서 헌신하지만 이해되지 않아요. 때로는 사람들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런데도 집에 생각을 하는 거예요. 다들 이상하게 생각해요. 그도 그제야 내가 이러다가는 되겠다. 우리집을 찾아가야 되겠다.’ 가보니 재개발 되어서 변해버렸어요. 물어 물어 어느 아파트를 찾아 두리번 거리는데 도저히 수가 없어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청년이 지나가길래 물어봅니다. 청년이 자기를 가만히 들여다 보다 이런 말을 합니다. “혹시 아버지 아니세요?” 아들이었어요. 언젠가는 한국에 가서 모처럼 집에 들렀습니다. 그랬더니 왠걸 호랑이 같던 마누라가 그날은 일인지 어서 오라고 하면서 둘째가 서울대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으니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그래도 몹쓸 남편이지만 기도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일이에요,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 서울대 미대 합격하면 합니까? 하나님, 떨어지고 나중에 베트남 선교사로 오게 해주세요.” 아내가 뒤집어졌어요. 그렇게 기도하고는 도망 나와버렸어요. 떨어졌어요. 다음에 한국에 갔는데 부릅니다. “여보, 당신이 기도한대로 아들이 떨어졌수다. 그래서 올해 재수해서 홍대 미대를 본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똑바로 기도해주세요.” 기도합니다. 일이에요.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홍대 미대 가서 합격해봐야 합니까? 떨어지고 베트남 선교사로 오게 해주세요.” 이게 자기가 기도한 아니에요. 아버지가 이렇게 기도할 있겠어요? 그리고는 도망왔어요.

세월이 흘러서 떨어지고 떨어지고 삼수를 해서 대학을 들어간 아들이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어요. ‘아버지, 내가 이제 베트남에 가겠습니다.’ 찾아왔어요. 아무 하고 아들이 아버지가 하는 일이 뭔지 주간 같이 다니는데 이런 고생이 없는 거예요. 주간의 선교여행을 마치고는 부자가 앉아서 말합니다. “아버지, 도대체 아버지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중학교 엄마와 우리를 내버려 두고 베트남에 가셔서는 지금까지 20년이 되도록 도대체 하시는 겁니까? 나는 아버지 같이 원망스러운 사람이 없어요. 병든 엄마를 내버려 두고 이게 도대체 하는 겁니까? 내가 아버지하고 결판을 내려고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난 주간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보고 이제야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아버지 같이 훌륭한 사람이 없습니다. 엄마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 이것도 이해할 없는 일이지만 아버지가 나라 사람들을 위해 들어와서 이렇게 피땀을 쏟으면서 하는 또한 나는 정말 길이 없습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끌어 안고 이야기합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들이 자리에서 베트남 선교사로 헌신을 결단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서는 나무판으로 아들을 위해 관을 짜줘요. “한국에 들어가서 준비하고 와라.” 아들은 떠나갔어요. 아버지는 말합니다. “ 아들이 곧바로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이끌어 주셔야만 가능한 것이지 내가 가겠습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분명 하나님 앞에 서원했기에 언젠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뜨거운 마음으로 돌아올 날이 있을 믿습니다.”

여러분, 이런 아름다운 희생은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고결하고 아름답지만 사실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희생을 같이 나눠야 하는 거예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기도와 이해와 용서와 기다림이 없이는 어려운 거예요. 이렇게 붙는 마음으로 사역하는 사람들이 가장 무거운 빚을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죠.

저는 <정글에 천국을 짓는 사람> 장요나 선교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을 제가 조금은 이해할 같아요. 그러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이에요.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사도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을 우리가 읽을 있어요. 오늘날 사도바울을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사도라고 이야기하면서 영어로 이름 짓는 사람마다 ‘Paul’이라고 짓는 사람이 많아요. 오늘날 사도바울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죽은 이후에요. 살아있을 당시에는 전혀 달랐어요. 특별히 사도바울이 세운 고린도교인들이 사도바울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고린도교회는 열심과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마는 놀랍게도 사도바울을 깨끗한 마음으로 용납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잘못된 지도자들에게 휘둘려서 사도바울을 비판합니다. 사도바울의 마음에 못을 박았어요. 고린도후서 11장을 보면 사도바울이 쓰라린 마음을 펼쳐놓고 자기의 고난을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이런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닙니까? 사도바울을 사도가 아니라고 시비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제자가 사도지 사도바울이 무슨 사도냐?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습니까? 내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사도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이 글은 너무너무 썼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글솜씨를 귀하여 여기셔서 여기 성경에 실리게 했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말은 못했다고 해요. 말은 어눌했다고 해요. 답답했던 모양이에요.

그리고 사도바울은 결정적으로 질병이 있었어요. 그게 무슨 질병이었는지는 알지 못해요. 학자들은 아마 안질이거나 눈병이거나 심지어는 간질이 아니었느냐고 까지 얘기해요. 어떤 질병이던지 너무 그를 힘들고 괴롭게 했기에 사도바울 자신도 자기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 앞에 번이나 기도했어요. 그렇게 기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자기의 질병을 위해서 번이나 기도할 정도로 그는 고통을 당했어요. 놀랍게도 고린도교회를 섬길 사도바울은 교회에 짐을 지우지 않으려고 자비량선교를 했어요. 자기가 벌어가지고, 또는 다른 교회에서 후원을 얻어서 고린도교인들을 섬겼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그것까지도 시비거리가 되요. 너무 기가 막혀요. 사도바울이 아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해요. 그러나 고린도전서 9장을 보면 이런 표현을 씁니다. ‘여러분 나는 베드로사도 같이 - 베드로는 아내를 데리고 다녔어요. 부부가 같이 교회를 순회하면서 - 대접을 받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오히려 내가 여러분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이런 것을 주장하지 아니하고 양보한 것이 여러분에게 부끄러움이 되고 잘못이 되었습니까?’ 사람이 이상하죠. 밉게 보면 잘하는 짓도 미워요. 사도바울이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외모만 봅니까?’ 사도바울은 대머리였어요. 대머리에다가 곱슬머리에다가 매부리코에다가 등이 굽었고 그리고 깊은 질병이 있었어요. 외모로는 너무 볼품이 없는 사람이고 말을 못했대요. 여러분 마음을 넓히십시오. 여러분 마음을 열고 우리를 영접해주십시오.

그러다가 하도 말을 들으니까 사도바울이 자기 속에 숨겨져 있는 신비한 비밀을 얘기해요. 고린도후서 12 첫머리에 이렇게 말하죠. ‘내가 어쩔 없이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야 되겠습니다. 14 전에 나는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천국에 갔었습니다.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때 보고 들은 받은 계시가 너무 커서 나는 그때 받은 계시와 언약과 약속을 힘입어서 오늘도 험한 선교의 여정을 달리고 있습니다. 39대씩 매를 맞는 것을 5번이나 맞았고 곤장을 맞았고 3번이나 바다에서 배가 파선이 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고 채찍을 맞고 자지 못하고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모든 고난을 하나님이 주셨던 놀라운 계시와 은혜로 감당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받은 온갖 박해와 고통보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세운 고린도교회 여러분들의 몰이해, 비판, 그것만큼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하도 고린도교인들이 고통을 주니까 이렇게 말해요. ‘하나님, 내가 질병 때문에 수치를 겪고 고난을 겪는 것이니 이것 고쳐 주십시오.’ 번이나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오히려 내가 몸의 아픈 질병을 끝내 고쳐주지 않는 것은 네가 천국을 경험하고 받은 계시가 너무 크고 네가 손을 뻗어서 기도할 때마다 사람이 고쳐지는 능력이 너무 커서 역시 사람이기에 어쩔 없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무너지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을 네가 겪지 않도록 몸에 육체의 가시를 심어놓은 것이다. 네가 약한 그것으로 인하여 나의 능력과 나의 은혜가 너에게 넘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았어요. 자기의 연약함이 선교의 걸림돌인 알았는데 하나님의 계산은 그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약함 때문에 자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있었어요. ‘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여러분, 사람마다 연약함이 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연약한 부분이 은혜의 통로에요. 사람은 자기 잘난 때문에 넘어져요. 그리고 자기의 연약한 부분으로 인하여 마음이 낮아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요.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여러분 나를 부분적으로나 육신적으로 보지 마시오.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제가 말씀 드렸던 소금장로 김수웅장로님은 교회에서 서른여덟에 장로가 됐어요. 그러니 얼마나 앞장서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에요. 말도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장로가 얼마 되지 않아서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됐어요. 이제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어느 갑자기 일어나지를 못하는 거예요. 주저앉아 버렸어요. 다리에 문제가 생겨서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어요. 병원을 찾아갔는데 고칠 길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얼마나 울부짖고 기도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고쳐주시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주일날 예배를 가는데 부인이 말합니다. “여보, 아이를 택시를 태워서 교회 정문에 내린 다음 한참 걸어서 계단을 올라가서 예배실에 가야 되는데, 장로가 장애를 가진 아이를 업고 가는 사람들이 보면 은혜가 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얼굴을 모르는 내가 애를 업고 갈께요.” 그리고는 아내가 밤낮 아들을 업고 예배에 참석해요. 그가 그런 고백을 합니다. 그가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그의 가정을 가장 가까이서 알면서 위로할만한 주위에 있는 성도들이 들리게, 들리지 않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예수를 믿으면 축복을 받는다고 하는 장로집안에 장애인이 말이야? 뭔가 틀림없이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어서 저럴 꺼야. 같으면 내가 저거 고쳐달라고 고쳐주실 때까지 금식하고 회개할텐데 그러지 않는지 모르겠어.” 그가 비수가 되어서 찌르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 안에서 절대 다른 사람 말하지 마세요. 정말 내가 사람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지 않는 한은 사람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는 거예요. 절대 말하지 마세요. 정말 그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해야 말이 있다면 성령께서 지혜를 주셔서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말을 주실 거예요. 외에는 말할 것이 아닙니다.

해방 전에 평안도의 교회에서 있었던 실화에요. 교회가 어렵게 목사님을 청빙해왔어요. 아주 젊은 공부 목사님이 왔어요. 교인들의 기대가 부풀었어요. 한창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교회 청년 하나가 화장실에 갔어요. 예나 이제나 노크를 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노크도 하고 문을 열었는데 거기에 목사님이 앉아 계신 거예요. 얼마나 민망했겠어요? 볼일을 보고 있는데 문을 열었으니.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목사님이 거기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거예요. 교회가 발칵 뒤집어졌어요. 지금도 곤란한 일이지만 해방 전이라면 그건 국물도 없는 거예요. 교인들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에요. 제직회가 열렸어요. 모두 섭섭한 마음에 일사천리로 결의를 했어요. 쫓아내기로... 그런데 그렇게 결정을 하니까 이제 조금 마음이 정리가 되는 거예요. 나이 많은 장로님이 일어나셔서 말씀하셔요. “여러분, 목사님에게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으니 우리가 결의한 대로 목사님을 내보냅시다. 그러나 지금 당장 담배 목사라고 쫓아내면 젊은 목사가 어디를 가겠습니까? 그러니 쫓아내되 담배를 끊을 때까지만 기다려줍시다.”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다음에 공은 이제 목사님한테 거예요. 당장 쫓겨나지는 않게 됐는데 다음 주일 설교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한 거예요. 그날부터 교회 강단 앞에 무릎을 꿇고 나와서 회개합니다. 가슴을 치며 회개합니다. 그러다가 성령의 은혜를 받았어요. 그리고 주일날 강단에서 눈물을 뿌리며 회개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어요. 교회식구들이 같이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았어요. 얼마 지나서 장로님이 다시 회의를 소집합니다. “이제 목사님이 담배를 끊으신 같으니 내보냅시다.” 그랬더니 교인들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장로님 그런 마십시오. 이렇게 은혜를 주시는 목사님을 어디서 구해온다고 내보냅니까? 그냥 모시고 삽시다.”

여러분, 연약해요. 연약한 것이 드러날 없어요.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에게 기회를 주고 그리고 그를 고치시고 우리를 고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그런 교회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