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나그네의 집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7. 12. 14:27

7월의 묵상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요 14:3-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가서 우리 있을 곳을 마련하면 우리를 데려가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 나그네로 살면서 영주할 거처가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정말 우리는 지상에 영원한 거처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일까요?

 

이번에 저는 막내아들과 함께 31년 전에 학위 논문을 남겨 놓고 교편을 잡았던 시골 대학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에 와서 주말에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없느냐는 아들의 말에 고생을 하며 살던 그곳이 갑자기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댈러스의 한인장로교회에서 200 마일쯤 떨어진 곳입니다. 아들이 어린 중학생 때였는데 3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2년 이상 다녔던 곳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손 권사님이 한 번은 심방을 왔다가 너무 놀라서 이 먼 거리를 중고차를 타고 다니면서 무사히 교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계속 기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학위도 없고, 영주권도 없고, 영어 원어민도 아닌 학생에게 전임강사 자리를 준 이 대학의 부총장이 너무 고마워 그런 어려움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가면서 놀란 것은 가는 도로변 도시들이 너무 많이 변한 것이었습니다. 좀 큰 도시라면 그랜베리(Granbury), 스티븐빌(Stephenville), 코만치(Comanche)인데 모두 몰라보게 변했습니다. 숙박업소, 유락시설, 음식점 등이 많이 늘었으며 특히 놀란 것은 현대와 대우차의 영업점들이 그랜베리에는 생긴 것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한 하워드페인(Howard Payne)대학은 많은 변화를 격고 있었습니다. 학생수는 많지 않지만 1889년에 세워져 1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학인데 초창기에 지어져 대학의 상징이었던 Old Main Hall은 제가 떠난 지 얼마 안 된 1984녀의 화제로 완전히 소실되고 대신 그곳은 광장이 되고 기념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제 사무실이 있었던 건물도 세로 개조 되어 있었으며 지금도 과학관으로 그 작은 대학 속에 수학과는 연구실과 함께 건재하고 있었습니다. 캠퍼스 내에 제가 살았던 집은 사라지고 부부 학생들의 아파트가 세 체 세워져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세 그루의 피칸나무로 겨우 위치를 알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애들과 함께 나그네로 살았던 제가 영원히 남아 있을 집을 찾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는 저를 심방 왔던 목사님도 권사님도 나를 그곳에 있게 한 총장이나 부총장도 또 당시 나를 지도해 주셨던 지도 교수도 다 가셨습니다. 늙으면 가까운 글씨가 안보이고 먼 곳만 잘 보이는 것처럼 이제는 있어야 할 곳에 있을 것이 안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먼 나라의 영원한 거처가 똑똑히 보이면 행복할 뿐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안식할 거처를 예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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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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