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영혼을 살려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7. 19. 11:59

7월의 묵상

 신도들은 그 날 밤에 곧바로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다. 두 사람은 거기에 이르러서, 유대 사람의 회당으로 들어갔다. -행 17:10-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에서 마게도니아의 첫 성, 빌립보에서 놀랄만한 성공을 거둔 후(행 16:37) 데살로니가로 갔는데 거기서도 유대인의 회당에서 세 안식일을 지내며 예수가 그리스도라고(행 17:2,3) 담대히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시기 때문에 이들은 바울을 야손의 집에 머물게 하지도 못하고 몰래 밤에 베뢰아로 도피시켰습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탄생된 초기의 상황입니다. 당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기독교 공동체가 분명히 자리를 잡지 않은 때였으며 유대인들은 바울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때였는데 바울이 새로운 복음을 전해 놓고 신앙공동체가 굳건히 서기도 전 피한다고 하는 것은 불성실한 지도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가 위태로워지자 밤중에 그를 베뢰아로 도피시켰습니다. 즉 그들은 위기 속에서 먼저 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지금 말로 하지면 사람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의 사람들은 바울을 더 안전한 곳, 아덴까지 보냈지만 바울도 데살로니가를 잊지 못해 디모데를 남겨 두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생각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고, 건물을 크고 아름답게 지어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인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보다는 건물을 유지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무리하게 교회를 짓고 신도들에게 불신자를 불러 교회를 채우고, 몸으로 헌신하여 교회를 섬기면 있던 병이 낫고, 십일조를 바쳐 헌신하면 복 받는다고 강권하는데 신도들은 오히려 불행하기만 합니다. 은행 빚으로 건물은 넘어가고 교회는 법원에서 경매처분이 되는 부끄러운 일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건물보다도 교인이 구원을 받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요?

 

기독교 대학들도 가치관이 다르지 않습니다. 대학을 살리기 위해 신입생 충원률이 어느 수준에 미달하면 그 과를 없애고, 교수도 학생들의 평가가 어느 수준이하면 퇴출시킨다는 기준을 정하고 재단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이 철학도 배우지 않고 역사의식도 없고 추리능력을 기르는 수학도 배우지 않은 채 기능인으로 졸업한다는 것입니다. 학생과 교수가 살아야 대학이 사는 것이 아닐까요?

청강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뉴턴을 루카스 석좌 교수로 모시고 있던 케임브리지 대학은 위대했습니다. 개인이 살아야 교회도, 학교도, 나라도 사는 길임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기도:

하나님, 제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잎에 열납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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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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