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회개하면 받는 세가지 복 (호 14;4-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10. 16. 12:42

회개하면 받는 세가지 복

                                                                             

                                                                                            

  호14;4-8.


 춘천 근교의 어느 조그만 교회에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첫 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한 분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나는 이상한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한 분은 너무나 목사님을 속섞이고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충성하게 하고 문제를 혼자 다 일으킵니다. 그 한 사람때문에 문제가 사사건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시면서 저런 사람을 급살맞아 죽게 하시지 않으시는 것일가요?”

나는 식사를 하면서 조용히 대답하였습니다.

“집사님! 이상할 것 없어요. 만일 사람들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이 그 때 그 때 급살맞아 죽게 한다면 3일이면 이 세상사람들 다 급살맞아 죽어요. 죄짓다가 회개하고 돌아와 더 큰 일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많아요.”

이렇게 대답함에도 불구하고 그 집사님은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이번의 목사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어 설교도중에 그 분이 급살맞아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 집사님은 분노를 풀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죄지을 때마다 급살맞아 죽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다시 사랑하여 주시겠다고 용서의 말씀을 주시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호세아서입니다. 호세아서의 분명한 주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의 패역한 죄와 하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

 

이것이 바로 호세아서를 면면히 흐르고 있는 물줄기입니다. 그렇기에 호세아서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거절당한 사랑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4장부터 10장까지는 책망하는 사랑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장부터 14장은 치유하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호세아는 회개를 호소한 사랑의 선지자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죽어야 마땅한 죄인들에게도 살 길이 있음을 애타게 외치는 호세아를 호세아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아내 고멜과 관계를 말해주면서 음란한 이스라엘과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의 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멜은 너무나 음란한 여자였습니다. 호세아와 살면서 다른 남자와 나가서 같이 살았습니다. 호세아는 그런 아내 고멜을 용서하고 다시 데려다가 살았습니다. 전보다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가출하여 다른 남자와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 곳 저 곳으로 다니면서 기여코 고멜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용서하며 다시 살며 사랑하여주었습니다.

호세아는 고멜과 살면서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 아들은 이스르엘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발음이 비슷하지만 의미는 정반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징계하심을 말합니다.

두번째 아들은 로루하마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세번째 아들을 로암미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음란하고 더러운 세대를 하나님은 흩으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의 반열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의미입니다.

고멜은 범죄하였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였습니다.

고멜은 음란하였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였습니다.

고멜은 다른 남자 품으로 수없이 많이 갔었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았습니다.

고멜은 돌로 때려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으나 호세아는 죄를 감추어주고 끝까지 살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호세아는 아무리 범죄하였다고 하더라도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축복이 따르게 됩니다.

 

신의주 제일 교회를 담임하며 목회하시던 윤 하영 목사님은 성품이 강직하여 온 교인들이 어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별명을 “장로교의 네로 황제”라고 붙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랑이 많은 목사님이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에게 그런 별명을 붙인 사람은 그 ryh회 김 석후 장로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별명을 붙이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교회를 떠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셈입니다. 장로님의 생일을 맞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생일을 축하하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청하지도 않은 윤 목사님이 나타났습니다. 김 장로님은 평소에 윤 목사님을 욕만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길에서 마주쳐도 인사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도 김장로님은 윤목사님을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김 장로님이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10년간 윤 목사님을 욕만 하고 다녔는 데 윤목사님은 나를 늘 변함없이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10년간 한번도 빠짐없이 내 생일에 찾아오셨습니다. 나는 오늘 회개하지 않고는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회개한 후 다시 윤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제일 교회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회개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복이 임합니다.


1. 패역을 고침받게 됩니다.

호세아는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하면 패역을 고쳐주십니다. 패역이란 말은 원어로 <메슈바>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등을 돌리고 떠나간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으면 등을 돌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여도 죄를 지으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등을 돌리시는 분이십니다.이사야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 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 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5)

 

등을 돌리고 떠나가시던 하나님이 다시 등을 반대로 돌리고 돌아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내게로 향하게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개를 기르고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보니까 자기 집 개가 먹을 것이 전혀 없는 소뼉다귀를 물고 있었습니다. 더 맛있는 것을 주려고 하여도 뼈다귀에 집착하여 물고 보물인 듯이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맛있는 것을 주려고 하여도 받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버리고 회개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죄를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패역을 고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하나님은 등을 돌리고 계시다가 앞을 바라보시면 응답을 주시며 새로운 관계로 일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복음을 전할 때에 첫 소리를 이렇게 발하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물론 예수님도 같았습니다.

죄로 인하여 등을 돌리고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쳐다 보게 하여야 합니다. 패역을 고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오직 하나의 비결은 회개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설교를 듣고 세례요한에게 와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부자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회개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가요?”

세례요한이 말했습니다.

“옷이 두 벌이면 가난한 이에게 한 벌을 나누어 주십시오.”

부자들은 세례요한이 하라고 하는 대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세리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세례요한이 말했습니다.

“너희에게 정하여 준 세금 이상은 받지 말고 이미 받았으면 도로 돌려 주어라.”

세리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회개하여야 합니까?”

세례요한이 말했습니다.

“칼이나 무기로 남의 땅을 빼앗지 마시오.”

그 후 군대는 공격하지 않고 방어만 하게 되었습니다. 창녀가 와서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말해주었습니다.

“음란한 마음을 버리고 시집을 가서 한 남자를 머리처럼 섬기시오.”

창녀들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수많은 고침의 역사, 회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또 범죄하였습니다.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세례요한에게 나와서 또 고백하기가 챙피하여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로 할 수 없으니까 가슴에 죄목을 써서 달고 나타났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그들앞에 서서 한 명 한 명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간음죄>라고 가슴에 붙이고 온 창녀에게 다가 가신 예수님은 그 종이를 떼어 자기 가슴에 붙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를 내가 대신 지마.”

<도적죄>라는 종이를 붙이고 온 사람에게도 다가셔서 떼어 자기 가슴에 붙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도 내가 대신 짊어졌다.”

<살인죄> <거짓말죄> <시기> <질투> 모든 죄목을 다 예수님은 자기 가슴에 붙이며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모두는 죄사함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쁨에 넘쳐서 돌아갔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패역을 고쳐주십니다. 기도응답을 주시고 원하는 자에게 나타나 주십니다.

 

임페리얼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림이 있다고 합니다.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성당에 들어가려고 하는 데 주교가 못 들어가게 막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사연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로마 통치를 반대하는 1500명을 390년 무참히 학살한 황제입니다. 그가 이태리 밀라노를 방문하여 마침 주일이라 성당에 들어가려는 중이었습니다. 암부로시우스 주교가 막아 서면서 못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왜 못 들어가나?”

“당신은 죄인입니다. 사람을 죽인 죄인입니다.”

“다윗왕은 더 큰 죄인이지 않는가?” 이 때 암브로시우스가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도 다윗처럼 회개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윗의 회개는 침상을 눈물로 적시는 처절한 회개였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패역을 돌이키시고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고 보아 주십니다. 오늘 그런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2. 즐거운 사랑을 받게 됩니다.

호세아가 말했습니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희에게서 떠났음이니라”(4)

 

회개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즐거이 사랑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즐거이 사랑한다고 하는 의미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즐거이라는 말은 <네다바>라고 하는 데 이는 <본성적으로>라는 의미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회개하여야 하나님의 본성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무디 목사님에게 한 청년이 몹시 근심스러운 얼굴로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낮으막한 소리로 말했습니다.

“무디 목사님! 저는 저의 회사에서 회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너무나 쪼달려서 회사 사장님의 돈 1,500불을 훔쳤습니다. 그런데 신앙양심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회사 사장님에게 돌려 드리려고 하는 데 다 쓰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돈으로 장사하여 원금을 갚으면 안 될가요?"

1800년 대 1500불이면 지금으로는 15만불 약 2억원 좀 안 되는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이 말을 곰곰히 듣고 있던 무디가 말했습니다.

“훔친 돈으로 장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남은 돈이라도 돌려 드리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갚을 길을 찾으십시오.”

“무디 목사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개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그런데 나 혼자 갈 자신이 없으니 같이 좀 가주시겠습니까?”

그래서 무디 목사님과 그 청년이 같이 사장을 찾아 갔습니다. 사장앞에서 그는 모든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사장님은 오히려 감격하여 주었습니다. 그 후는 그 청년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던 이는 도적질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 청년을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면 더욱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일본 동경 근처에 자마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그 동네에 미하다 요시오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자마시 상공회의소 부회장이며 목재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자나 불우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구하여 주는 일을 계속 하면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형무소에 있는 죄수에게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습니다.

“나는 반 평생 교도소에서 살아온 전과 21범입니다. 이제 곧 출소하게 됩니다. 저를 취직시켜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교도소를 찾았습니다. 소장을 만나서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소장이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나가면 3일이 멀다고 다시 들어 올 것입니다. 취직시켜 주는 것은 좋습니다. 결코 돈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을 듣고 요시오는 출소한 그를 아예 자기 목재상에 데리고 일을 하면서 재정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자기에게 돈을 모두 맡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희에게서 떠났음이니라”(4)

 

3. 풍성한 축복을 주십니다.

호세아는 호세아서의 총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운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같으리니 그 그늘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 올지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즙 같이 되리라.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리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5-8)

 

이스라엘은 아열대 기후입니다. 그래서 4월부터 11월까지는 비가 한 방울도 안 내립니다. 건기철입니다. 그 때에 밤에 내리는 이슬이란 모든 생물에 절대적이 요소가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잔디밭이 깔려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잔디를 밟으면 신발이 흠뻑 젖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슬은 이스라엘에서 생명입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밤마다 이슬을 주셔서 백합화가 아름답게 피게 하셨습니다.

백향목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하셨습니다. 가지가 무성하게 퍼지게 하시며 향기를 발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포도나무같이 꽃이 피게 하셨습니다. 또 푸른 잣나무같이 무성하게 하셨습니다.

 

로마에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시민들을 괴롭히는 강도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악하였습니다. 시민들의 재산을 훔치고 생명까지 죽였습니다. 얼마나 교묘한지 잡히지 않았습니다. 날이 갈 수록 방법도 포악하여 갔습니다. 시민들이 그 한 명 강도 때문에 불안하게 살았습니다. 황제는 드디어 많은 현상금을 걸고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강도의 목을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는 평생 먹고 살 많은 돈을 보상한다.”

모두가 잡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러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황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황제시여! 그 자의 목을 가지고 왔나이다.”

목을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빈 손으로 들어 온 그를 보고 황제가 말했습니다.

“오! 수고하였다. 어디 그 목을 보자.”

그 사람은 자기 목을 받쳐 들고 말했습니다.

“그 목이 여기 있습니다. 내가 그 강도입니다. 나는 회개하고 싶어서 황제님 앞에 내 목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이제 결코 강도짓하지 않겠습니다. 그 동안에 괴롭습니다. 내 목을 마음대로 하여 주옵소서.”

황제는 그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회개하는 아름다움을 믿고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를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나무인 백향목, 포도나무, 잣나무가 잘 자라게 하는 축복은 이슬을 통하여 주셨습니다.

이슬과 같은 축복이란 어떤 축복입니까?

 

1. 은밀한 축복입니다.

이슬이 낮에 내리는 법은 없습니다. 자고 있는 중에 몰래 내리는 축복입니다. 언제 어떻게 주어지는 지 모르는 축복입니다. 이것을 이슬과 같은 축복이라고 합니다.

 

2. 꾸준한 축복입니다.

우리나라에 가랑비에 옷젓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슬은 매일 내립니다. 비는 오는 날이 있고 오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은 매일 내립니다. 비보다 적은 양이지만 변함이 없습니다. 이슬과 같은 축복은 꾸준한 축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이슬을 내려주시는 것과 같은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죄가 문제가 아니라 회개가 문제입니다.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회개하는 자에게는 세 가지의 축복이 임합니다.

1. 패역을 고쳐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등을 돌리고 계신 하나님이 다시 쳐다보아 주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2. 즐겁게 사랑하여 주십니다.

3. 풍성한 축복을 주십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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