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이태종목사/경건을 연습하라! (딤전 4:6-1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11. 11. 07:46

이태종목사/경건을 연습하라! (딤전 4:6-10)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얼굴 색이나 음색을 통하여 건강을 진단하기도 합니다. 년초에
대통령께서 신년담화를 하셨습니다. 목소리가 잠기셨고 수척해 보이셨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대권을 위해
서 뛰고 있습니다. 세계경제도 어렵고 한국경제도 어렵습니다. 먹구름이 끼여 있습니다. 학
생들은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는 오리무중의 위기의 사회입니다. 사회적으로 개인적
으로 항상 위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기 때마다 방법을 바꾸려고 애를 씁니다. 직
업을 바꿉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위기를 벗어나게 하신 줄 아십니까?
사람을 바꾼 것입니다. 사람을 택해주셨어요.
인류가 죄에 빠졌을 때 노아를 찾으셨습니다. 그래서 방주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셨습니
다. 백성들이 다시 죄악에 빠집니다. 그때 나타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사회를 바꾼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을 당할 때 출애굽을 할 사람을 불렀습니
다. 누구인 줄 아십니까?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여러분! 미국 잡지인 타임지와 뉴스위크지의 특징이 무엇인줄 아시지요? 뉴스위크지는 사
건이 표지 모델로 씁니다. 그러나 타임지는 인물들이 모델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을 일
로 볼 것이냐 사람으로 볼 것이냐 차이입니다. 어쩌면 타임지 발행인이 독실한 크리스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들이 필요한가? 라는 점입니다. '돈 섹스 권력'의 작가인 리처드 포스트
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이다. 그것도 지식이나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
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깊은 경건의 사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경건의 사람!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너무나 소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경건을 가지고 있는 소리는 흔하지 않습니다.
경건에 대한 오해가 얼마나 심한지 모릅니다. 제가 신학교 가서 설교의 실제라고 과목에
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 목소리에 경건이 없어 안되겠다
는 것입니다. 참 웃긴 일입니다. 경건한 목소리가 따로 있습니까?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힘든 것은 가짜 경건의 모습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드
신 공동체에서 회칠을 하고 사는 것이 편합니다. 화장을 짙게 하면 할수록 즐겁습니다. 얼마
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마음을 여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숨는 곳이 되어
버렸어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이 득실거립니다. 회칠한 무덤! 예수님이 아파서 던지신 말씀입니다.
회는 마음을 내 놓는 곳이에요. 숨기는 곳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못된, 거짓 경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참된 경건은 무엇일까요?
야고보서 1장 27절을 다같이 보시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
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
것이니라"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는 겁니다. 예
수님 믿는다고 혼자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누가 고아와 과부입니까? 마음의 고아와 과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자들을 돕고 나누는 삶이 진정한 경건의 모습임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경건은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경건해 질 수 있을까? 쉬운 방법을 바울은 본문 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첫째,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경건해지는 방법 중의 하나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버려야 채워지는 것이지요, 우리가 누구를 용서할 때도 그 분노를 내려놓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빼내야 하는 것입니다.
망령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1월 마지막 주 설교처럼 에서가 바로 망령된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6절을 보세요. "음행 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었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교회 한번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을 거짓으로 드릴 수 도 있습니다. 피곤해
서 주일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는 분
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이 무엇입니까? 망령된 자입니다.
망령된 것이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치 못한
것입니다. 안 보인다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경건하지는 못해도 망령된 자로 살아야
되겠습니까? 정신을 차려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버리고'가 먼저 나옵니다. 왜 경건하지 못하는가?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
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버리는 것입니다. 버리는 거예요. 얼마나 잘 버리는가? 이것이 중요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신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화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갖는 신화는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돈 많이 버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출세하는 것이라고 하는 신화입니다.
믿음생활은 보조로 하는 것이야! 광신자가 되서는 안되라고 하는 신화입니다.
결혼 초에 왜 힘든 줄 아십니까? 신화 때문입니다.
남자는 아내가 모든 것을 다 해줄 줄 압니다. 특히 아내는 남편이 멋진 꽃 한 송이를 사
가지고 멋진 곳에서 사랑을 고백할 줄 압니다. 언제까지요? 평생 말입니다. 신화입니다. 신
화를 내려놓으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신화가 너무나 많이 있지 않습니까? 돈이 있으면 행복합니까? 분명히 행복하다면
어떻게해서 라도 벌어야죠. 그러나 잠시는 즐거워 보이지만 허상입니다.
공부를 잘하면 행복하겠다고요? 좋은 직장을 취직하면? 박사학위를 받으면 행복할 것입
니까? 거짓말입니다. 사기입니다. 속이는 것입니다.
왜 내가 교회 나와도 변화하지 않을까요? 말씀을 들어도 바뀌는 것이 없을까요?
간단합니다. 손에 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많아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아비를 버리고 나를 쫓으라고 하였습니
다. 이것이 불효를 하라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
면 효도를 잘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믿음이 좋아지면 부부관계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효도하려고 하면 하나님 섬기지 못합니다. 너무나 부부 관계가 좋으면 하나님을 섬
기지 못해요. 신혼부부들은 매일 놀러 다니느라 1년은 신앙생활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작심3일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깊으면 모든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교회 안에 경건의 바람이 불지 못합니까? 그것은 내 손에 너무나 가진 것이 많기 때문
입니다. 돈을 벌어야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신화를 버려야 합니다.
양손에 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의 음성으로 여러분 마음 안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손에 잡은 것이 무엇입
니까? 왜 나는 경건한 사람이 되지 않는가? 왜 나는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는가? 왜 변화가
찾아오지 않는가? 왜 내 삶은 이렇게 영향력이 없는가? 여러분의 양손을 살펴보십시오. 무
엇인가를 가득 든 채로 주님을 따라가기 원하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경건하기 위해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결코 행복하게 해 줄 수 없고, 언젠가 우리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을, 우리 주위의
수많은 거짓말들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둘째 경건은 연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딱 한 마디로 말하라면 '거룩'입니다. 거룩
함.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를 한 마디로 말하면 '경건'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자세, 하나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경건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것. 그런데 이 경건을
연습하라, 훈련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생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을 온몸에 익
혀야 됩니다. 생각, 감성, 의지, 생활습관까지, 심지어 내 문화생활에까지 경건이 완전히 젖
어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경건을 연습하라"하였습니다. 아시는 대로 연습이라는 것은 그 생
각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내 생활 속에 옮겨가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지금은 볼링을 잘 하지 못하고 있지만 예전에 조금 쳤습니다. 한 번에 10게임 정도
는 치고, 평균 180-200점 정도 되었습니다. 아직 perfect는 못했지만 최고 점수가 276점입니
다. 왜 그 정도의 점수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 꾸준히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일주일에 3일
은 운동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잊어버립니다. 이것은 남녀노소 가릴 것이 없습니
다. 꾸준히 하면 연세가 드셨어도 날아갈 듯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지 못
했기에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에 운동한다고 하다가 큰 일이 나는 것입니다. 계속 연습하는
것이에요. 연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어림
없습니다. 단순한 운동도 그러한데 하물며 쉬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물며 경건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셨
습니다. 경건은 연습해야 하는데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습하라는 단어를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운동선수들이 체육관
에서 훈련하는 그 단어를 여기에 썼습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경건은 결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이 어떻게 나오는 줄 아십니까? 물론 재능이 있어야지요.
그러나 재능만 가지고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피아노 치는 분들이 아령을 하고 역기를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워 있는 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신앙생활에서 가장 불쌍한 분 중의 하나가 태어나면서 믿은 모태신앙입니다. 연습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냥 선수가 되어 있습니다. 매일 꼴찌로 뛰니 원래 그런가 보구나! 그
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못해! 못해!'하는 것이 모태신앙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한 것은 저절로 경건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0일 금식하고 난 후 경건하여져서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진다면 누구나 한번쯤 하지 않
겠습니까? 그러나 경건은 지속적인 연습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현재시제입니다. 계속적인 용법입니다. 계속적인 훈련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복
입니다. 똑같은 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성가대가 저 인원, 아마츄어 가지고 저
정도 하려면 연습 꽤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 연습이 또 무엇입니까? 같은 것을 하는 것입
니다. 같은 것 또 하고 같은 거 또 하고 또 하고--- 그게 연습입니다. 한번 부르고 지나가
는 것은 연습이 아닙니다. 백 번 천 번 부릅니다.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지루할 정도로
반복해야 합니다. 똑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해서 익히는 것입니다. 속독, 지속, 꾸준하게 해야
됩니다. 꾸준하게. 그래야 이것이 연습이 되고 익혀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를 힘
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연습을 하십시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가족들과 TV, 컴퓨터를 끄
십시오. 촛불을 켜놓고 가족들과 믿음의 대화를 해보는 것입니다. 더욱 좋은 것은 교회에 한
번씩 매일 나오는 것입니다.
특히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새벽기도 같은 경우도 처음 시작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새벽기도 오고 참 좋
기는 한데 한번 새벽기도 나갔다 오면 정신이 없어요. 하루종일 정신을 못차리겠어요." 말씀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선 3개월 이상 꾸준하게 나와 보십시
오. 그리고 3년만 개근을 해 보십시오. 그 다음부터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쉽고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왜 아직도 그게 힘들어가지고 들락날락하느냐?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훈련이 부족한 것입니다. 경건을 연습하라 했습니다.
다 잠자고 경건에 힘쓰겠다고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성경은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새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그
새벽에 큐티를 하고 찬양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연습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교회 소그룹에 참여해야 합니다.
제가 목사라고 해서 그런 말씀을 절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 생활은 나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목사인 저도 혼자 내버려두면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은혜를 나
누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이 소그룹입니다. 저희교회는 여러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나누
어야 합니다. 청년들도 청년부에 참여해야 합니다. 경건을 훈련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구역예배, 성경공부 등에 참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택이 아니라 경건의 훈련장입니다.
우리의 경건을 연습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경건에 이르는 훈련입니다. 또한 경건이
라는 것은 '충성'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충성을. 충성도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맹세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오랜 시간 훈련을 합니다. 충성에 대한 훈련, 진실에 대한 훈련,
또 특별히 '순결'이 훈련입니다. 순결의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깨끗하게 사는 훈련을 쌓아나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꾸준하게 건강을 위하여 훈련을 쌓아가야 되는데, 정신적으로 경건, 경건의 훈련,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 훈련입니다. 성경 보는 습관도 훈련입니다. 예배하는 자세도
훈련입니다. 찬송가 한 장을 부르는 것도 훈련입니다. 많은 시간 반복적으로 열심히 꾸준하
게 훈련해서 거기에 도달해야 우리가 마지막에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도, 세상 떠날 때에도
맑은 정신으로 주를 찬송할 것이 아닙니까? 주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훈
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목적을 새롭게 하고 꾸준한 인내가 있어야 하고 절제가 있
어야 합니다. 절제의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경건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은
훈련입니다. 경건을 연습하라, 경건을 훈련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운동선수들이 저만큼 되
려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겠습니까? 피아노를 치고 음악을 하는 사람도 그들이 말을 들어
보면 하루에 다섯 시간씩 연습한다고 합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자기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벌써 청중이 안다고 합니다. '연습
안 했구나' 얼마나 하루에 다섯 시간 연습입니다. 그러고야 소위 음악가가 소리를 들을 수
잇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사를 그렇듯 쉽게 생각해서야 되겠습니까? 생각으로는 쉽지마는
내 생활의 너머에 내 성품에까지 완전히 익혀서 성숙한 경건, 거기에 도달하여야 합니다. 그
럼 경건은 어디 도달하는 것입니까? 사랑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사랑- 경건에서 사랑을 훈
련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사랑하고 저런 사람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모름지기 훈련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목사님 좋습니다. 경건 훈련을 하면 어떤 것이 유익합니까?" 질문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그 유익에 대하여 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
느니라"
그렇습니다. 달리기를 하면 육체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약간의 유익이 있을 수 있습니
다. 그러나 대단하지 않습니까? 경건은 범사에 유익합니다. 모든 것이 좋은 것입니다. 다 하
나님의 은혜입니다. 게다가 참된 경건자들에게는 이 땅의 약속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말
씀하신 것입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경건을 위해서 언제나 자기자신에게 일곱
가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첫째로, '나는 항상 기도하고 있는가?'입니다. 내가 항상 기도하고
있는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걸 물었습니다. 두 번째는 '너는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고 있는가?'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기쁨이 내 앞에 있는가 그 말
입니다. 셋째는 '너는 모근 경우에서 감사하고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감사 대신 원망이 나
오면 그건 경건이 아닙니다. 경건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도 훈련입니다. 너는 항상 모
든 경우에서 감사하고 있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스스로 물었습니다. 넷째는 '너는 욕심을 내
는 것이 없는가?'입니다. 돈에 대해서, 명예에 대해서, 물질에 대해서 욕심내지 않는가? 내
마음에 욕심이 없는가? 그것을 늘 물었습니다. 다섯째는 '너는 두려워한 일이 없는가?'입니
다. 두려움은 불신앙입니다. 믿음 안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두려워한 일
이 없는가? 물었습니다. 여섯째는 '너는 연속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가?'입니다.
오늘도 이런 일 저런 일 다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느끼고 있어야 되는데, 혹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린 일이 없는가? 그것을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이나 행동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입니다. 내 말과 내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이렇게 늘 일곱 가지를 자기에게 물었습
니다. 그리고 자기자신을 늘 훈련시켰습니다. '경건'에로의 훈련입니다. 경건하게 살아야 합
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훈련 할 것은 훈련해야 합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꾸준하게
연습할 것입니다. 9절과 10절에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하도다. 이를 위하
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하였습니다. 이 경건의 금생과 내생에의 유익함- 금생에도 유익
하고 내생에서도 유익합니다. 이 세상과 저 세사에서 유익한 것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다시 한번 경건을 점검하여야 하겠습니다. 다시 시작하여야 하
겠습니다. 경건의 훈련을 말입니다. 반드시 경건을 연습함으로 두 세계의 복을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