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믿음의 글

[스크랩] 하얀 손을 보다./김승옥 소설가의 신앙간증 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7. 10:46

나에게 오신 하나님
 동아일보 소설연재 중단으로 가장 괴로운 사람은 내 아내였다. 수입이 없어진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변변찮은 인세와 집을 줄이면서 간신히 버텨왔었다. 이젠 남편이 자기 할 일 되찾아 희망을 갖게 되었는데 그만 펜을 놓아 버리니 절망적인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남편은 또다시 술만 마셔댄다. 
 어느 날부터 아내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늘 같이 믿던 남편을 믿을 수 없게되니 하나님을 믿겠다고 교회에 나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하나님이 있어야 믿는 것이지 있지도 않은 하나님 믿어 보아야 시간 낭비일 뿐이지' 그러면서도 교회 다니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다. 교회에서 뭔가 위로 받는 게 있다면 다행이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는 이젠 나한테 전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남편이 고집쟁이여서 아내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기에 다른 분을 모셔다가 남편에게 전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아내의 초청으로 어떤 부부가 우리 집에 왔다.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부부인데 안식년 휴가를 얻어 고국에 다니러 왔다는 것이다. 남편은 내 눈에 익은 분이었다. 대학생 시절 캠퍼스에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학생시절에도 수염을 기르고 있었던 특징 있는 얼굴이다. 통성명은 처음 하는 것이지만 그 분도 내 얼굴이 낯익다고 했다. 남편은 방규환씨, 아내는 김성한씨였다. 
 이 부부가 뉴욕 순복음교회의 독실한 신자들인데 한국 방문한 김에 나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고 말겠다고 작정한 표정으로 매주 일요일만 되면 우리 집에 와서 교회 가자는 것이다. 산책하는 셈치고 자기네와 교회 함께 가면 예배 끝난 다음에 술 사준다는 것이었다.  
 다시 외국으로 떠날 분들이기에 말대접이나 해드리자고 나는 그들을 따라 교회로 갔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였다. 순복음교회에 대해서 나는 별로 좋지 않은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다. 60년대 중반, 내 신혼시절에 나는 갈현동에 살고 있었는데 서울 시내 출입을 하게 되면 버스가 서대문을 지나게 된다. 순복음교회가 당시 서대문에 있었다. 그 교회에서는 신자들이 울면서 기도하고, 손뼉치며 찬송 부르고, 목사는 병자들 병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자랄 때 경건하고 엄숙한 장로교회에 다녔던 나로서는 이 순복음교회가 바로 이단이구나 그런 단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단교회'에 억지로 따라나와 앉아있으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긍정적 사고방식 강의 같은 설교는 들을만하지만 "신도들 중 무슨 병 무슨 병이 지금 고쳐졌습니다"고 선언할 때는 무슨 무당 보듯이 불신감이 되살려지는 것이었다. 다 아는 찬송가지만 나는 따라부르지 않고 기도할 때도 나는 눈을 뜨고 앉아 있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믿는 나에게 교회란 어리석거나 교활한 자들의 사교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교회에 정말 따라가 주고 싶지 않은 주일엔 나는 그 대학선배 부부가 우리 집에 도착하기 전에 슬쩍 외출해 버리기도 했다.
 1981년 1월부터 그런 식으로 교회에 끌려다녔는데 어느 덧 4월이 다 가고 있었다. 미국에 곧 돌아갈 줄로 여기고 있던 선배부부는 아직도 가지 않고 나에 대한 전도에 열중한다. 나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어지간히 많이 하고 있는 듯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은 4월 26일이었다.
 4월 26일 주일날 6부 예배에 우리는 참석하고 있었다. 워낙 신도 숫자가 많기 때문에 2시간씩 부를 나누어 예배를 드리는데 6부 예배는 오후 4시에 시작되어 5시 반에 끝나는 예배였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난 다음에 결신자(決信者) 일어서라는 예배순서가 있다. 앞으로 예수 믿기로 하고 이 교회 교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분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라는 것이다. 근처에 대기하던 교회 임원들이 결신자에게 카드를 주면 거기에 이름 주소 등을 적어 줌으로써 교인으로 등록되는 것이다. 
 그 날 결신자 순서에서 문득 목사님이 눈을 지긋이 감은 상태로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성령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을 구주(救主)로 영접해야만 할 사람이 이 자리에 두 사람 있는데 일어서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면 파멸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두 사람 있는데 고집을 부리며 예수 영접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느낌이 확신처럼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나는 얼른 부인했다. 아하, 저 목사님이 저런 식으로 최면을 거는구나. 이 자리에 2만 명쯤 되는 사람들이 앉아있는데 아직은 예수 믿겠다고 결정이 안된 분이 두 명 아니라 2십 명 아니 2백 명도 있을 수 있는데, 두 명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사로잡는 그 말을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난 몇 달 동안 결신자 시간에 목사님이 한번도 이런 식의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뭔가 '성령의 말씀'이 있긴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슬며시 드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결신하겠다고 일어서지 않고 예배가 끝나서 교회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자꾸만 명치 있는 데가 마치 체한 것처럼 답답하며 한 가지 생각에 집중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아닌지 나는 모르겠다. 이 교회에서는 걸핏하면 성령님 어쩌구 하는데 도무지 성령이 무엇인지 난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국민학생일 때 교회에 처음 가서 신약성경에 써있던 예수님-'원수를 사랑하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뺨도 돌려 대라'고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느꼈던 그 충격적인 감동을 잊을 수는 없다. 여순반란사건, 육이오 동란 등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원수가 되어 죽이고 죽는 현실을 보아온 나에게는 예수님의 그 평화를 지향하는 가르침처럼 아름답고 숭고한 감동을 주는 가르침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정말 사랑했었다. 집안 심부름 때문에 이 십리 인적 없는 시골길을 걸어갈 때마다 찬송가를 되풀이하며 소리 높이 부르곤 했다. 찬송가를 부르고 가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예수님이 내 앞에서 인도해 주는 듯한 느낌조차 가지곤 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내 마음만은 시원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충동이 교회 문 밖을 나서면서부터 참을 수 없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예배가 끝나면 선배 부부와 우리 부부 네 사람은 여의도 광장을 가로질러 가서 '음식백화점'이라는 빌딩 안에서 음식을 사먹곤 하는 게 예사였다. 그 날도 여의도 광장을 건너가는데 사람은 우리 밖에 없고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나는 '예수님을 정말 좋아한다'는 고백을 토로하고 싶은 충동을 더 견디지 못하고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번쩍 쳐들고 마치 산에 가서 '야호!'하듯이 있는 힘을 다 하여 외쳤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합니다!" 그렇게 외치고나니까 명치를 답답하게 하고 있던 것이 쑥 빠져나가며 속이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같이 가던 일행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울증에 빠져 지내는 사람이 이젠 이상해져 버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장난이었던 듯 씩 웃고 말았지만 그 고백으로 마음은 편했다. 물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다'고 외쳤지만 그 뜻은 예수님의 인격과 가르침을 존경하고 따르겠다는 정도의 뜻이지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어지거나 앞으로 교회에 계속 다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날 밤, 평소의 습관대로 밤 12시 반까지 독서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는 내 옆에 먼저 잠들어 있었다. 서울 강남구청 옆 해청아파트의 4층이었다. 형광등 불을 끄고 잠이 들었는데 아마 새벽 서너 시경에 문득 잠이 깼다. 잠이 깬 내 눈에는 캄캄한 어둠만이 보였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보안등 불빛 때문에 방안의 물건들이 희미하게라도 보이는 법인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칠흑 같은 어둠 뿐이었다. '정전이 된 모양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내 왼쪽 허리 위 공간에 하얀 손이 팔목까지만 나를 향하여 보라는 듯 떠있는 것이었다. 백옥처럼 하얀 빛깔로 약간 크고 손가락이 쭈욱쭉  뻗은 남자 손이었다. 도둑이 들었구나, 나는 공포를 느끼고 잠이 깨지 않은 체 몸을 굳히고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이 깬 사실을 상대가 알면 칼이라도 푹 찔러올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손도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떠있는 것이다. 마치 나에게 자세히 보라는 듯. 현관문 등 모두 잘 잠궜는데 이 도둑은 어디로 들어왔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 손을 자세히 살폈다. 혹시 아내가 내가 차버린 이불 덮어 주려고 내밀고 있는 손이 아닐까? 그러나 그 손은 힘차게 보이는 남자 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손 생김새가 너무 잘 생겼다. 어디 한 군데 흠 잡을 데 없이, 의지하고 싶을 만큼 강하고 든든하게 생긴 것이다. '야, 그 손 완전하게 생겼구나. 남자 손이라면 저렇게 생겨야지. 미켈란제로 조각품 같은 손이로구나' 그렇게 찬탄하는 느낌으로 감동하고 있으니까 그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던 손이 꿈틀 움직이더니 내 배를 향하여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 다가오는 속도에서 느껴지는 것은 지극한 온유함과 겸손이었다. 마치 잠자리 잡으러 가는 손길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내 속셔츠를 들추고 들어와 내 명치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쓸어주는 것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자 배 쓸어주듯 그렇게 사랑이 가득한 느낌이 밀려들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순한 도둑 같으니 한번 잡아 봐야겠다고 용기를 내어, "누구야?" 낮게 외치며 내 오른 손으로 명치 위의 그 손을 덮쳤다. 그리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사람 손이 내 손에 잡혀야할 텐데 손에 잡히는 아무런 물질이 없다. 그리고 상반신이 일어나고 있는 중에 눈이 또 떠지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 캄캄한 어둠과 하얀 손을 보고 있었는데 또한번 눈이 떠지는 것이다. 그 두 번째 떠지는 눈이 바로 내 평소의 육안(肉眼)이었다. 불빛이 희미하게 비쳐들어 있고 물건들이 보이고 옆에 자고 있는 아내가 보인다. 그리고 앞엣 눈으로 본 어둠과 손은 종잇장 뒤집히듯 숨어 버리고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찌 된 일 인가? 내가 꿈을 꾼 것도 아니고, 왜 눈이 두 번씩 떠지는가? 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어리둥절해 앉아 있는데 내 오른 손을 뻗치면 닿을만한 방안 허공에서 약간 울림이 있는 아주 굵은 남성 음성으로, 뚜렷한 한국어로 "하느님이다."는 말씀이 들려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 손이 하나님의 손이었단 말인가? 그러니까 앞에 떴던 눈이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보기 위한 내 영안(靈眼)이었단 말이구나. 물질인 육체의 눈으로는 물질세계를 보게 되어 있고 하나님은 영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로구나. 영안은 내 맘대로 뜨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뜨게 해주셔야만 뜰 수 있는 것이구나. 인간은 육체와 영혼 두 개가 겹쳐 존재하는구나. 하나님은 내 바로 안쪽에 존재하시는구나. 육체로는 지구 위의 삶을 살고 영혼으로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그것이 인간의 삶이구나. 그 둘이 조화되지 못할 때 병이 들고 죽게 되는구나. 영원하신 우주의 하나님이 어찌 나 같은 놈을 아시고 이 아파트 골방까지 나를 찾아주셨나! 너무나 놀랍고 놀랍다. 여의도 광장에서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한다'고 외쳤기 때문인가? 작년 광주사태 때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고 부르짖었기 때문인가? 아내와 선배부부가 하도 기도해대기 때문인가? 어린 시절 교회 다닐 때부터 항상 보살펴 주시고 계셨던 것일까? 아, 하나님이 한국말을 쓰시다니! 그제야 고교생 때 성경을 완독하고나서 이스라엘말을 쓰시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으로 성경책은 이스라엘인들의 독선적인 역사책에 불과하다고 단정하고 내가 무신론자가 돼버린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나님의 인격성, 인간의 언어로 개인에게 말을 거시는 하나님,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을 의심했던 나의 과오를 정통으로 뒤집어 놓으시는 것이었다. 성경이 진실이었구나.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인간이 어떻게 시작되어 이제까지 살아왔는지 항상 간절히 알고 싶었는데, 성경의 가르침은 믿을 수 없는 미개족의 전설처럼 여기고 지내왔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수천년 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던 하나님,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하나님, 다윗에게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거시다니! 살 희망을 잃어 버리고 가정문제, 직업문제, 국가문제 등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어찌할 바 모르는 나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시기 위해서 당신 모습을 보여 주셨구나! 
 인간의 잘잘못을 모두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정말 계셨구나. 깊은 사랑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 우주의 시작이고 마지막이라면 우리가 사랑하는데 무엇을 주저할 것인가? 몸을 태울 만큼 사랑하고 사는 것을 왜 주저할 것인가? 사랑으로 심판하는 분이 계시다면 이젠 정말 두려울 게 없다. 혼란에 빠질 이유가 전혀 없다. 내 눈에서는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감사를 어떻게 표현하란 말인가. 창밖에 날이 환히 새고 있었다. 

출처 : 주님 오시리 구름타고 오시리
글쓴이 : 주님사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