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소동이 있다. (마 2;1-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12. 19. 09:25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소동이 있다. (마 2;1-3)

 

예수님께서 이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습니다.

그 때 헤롯과 예루살렘 온 성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소동이 일어났는 데 그 후 소동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도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소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늘 소동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35번째 질문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입니다. 대답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본성을 지닌 채 성령의 사역을 통해 동정녀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리셔서 이 땅에 오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방법으로 오셨습니다. 처녀 마리아와 성령의 연합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는 우주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교리를 잘 세워주었던 아타나시우스는 말했습니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말미암았으되 만들어지거나 창조되지 않았고 오직 낳은 바 되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하늘에서 하나님과 천사들을 다 알았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 땅으로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이 땅으로 파송하시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시려고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소동이 있었을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탄생 소동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이 말을 듣고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였습니다. 헤롯왕이 소동한 이유가 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아니면 왕으로 세우지 않는 민족이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닌 데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배경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불안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이 오셨다고 하니까 소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살 이하 어린이를 모두 죽인 것입니다.

동생을 죽이고 동생 아내와 함께 사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목을 헤로디아가 춤을 잘 추었다고 선물로 준 악당중에 악당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집집마다 눈물을 뿌리게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악한 헤롯의 정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방 박사가 와서 유대인의 왕이 난 곳이 어디냐고 할 때 드디어 기다리던 왕이 온 것으로 알고 모두가 소동하였습니다.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소동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언제나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속에 오셔서 경제적인 소동을 일으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병이어 기적이 이를 증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벳세다 들판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장정만 5천명 모였습니다. 모두 합하면 1만명은 족히 넘을 것입니다. 점심때를 지나 밤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점심 저녁을 먹지 못 한 상황이었습니다. 밤이 되니 헤어져야 하는 데 모두가 허기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먹을 주어서 보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불가능이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적으로 밤입니다. 공간적으로 들판입니다. 물질적으로 1만명 정도라 그들을 먹일 돈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안드레가 5병2어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를 찾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얼마 안 되지만 이것 가지고 어떻게 하여 보시지요.” 예수님은 이 것을 하늘을 향하여 드시고 축복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경제적으로 항상 소동이 일어납니다.


미국 밴나이스 교회에서 집회할 때였습니다. 장로님이 내 곁에서 식사하시면서 말했습니다.

“강 목사님! 목사님이 머믈고 계신 모텔이 제가 경영하는 모텔입니다. 목사님 조용히 계시라고 양 쪽 방을 비어 두었습니다. 손님이 많아도 그 방에는 손님을 안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호텔을 경영하고 싶습니다. 내가 보니 목사님은 축복의 종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12해 혈루증 앓던 여인이 만졌습니다. 병고침을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물건을 통하여서도 축복이 흐릅니다. 목사님 넥타이를 바꾸어 주세요. 목사님 넥타이를 매고 다니면 목사님에게 주신 축복이 내게 흐를 것같습니다.”

그는 억지로 넥타이를 바꾸었습니다. 몇 년 후 내가 그 곳을 방문하였을 때 그 장로님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큰 호텔 경영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경제적인 소동이 일어납니다.

 

육신적인 소동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육체적인 소동도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소동을 몰고 다니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병든자들이 일어났습니다. 귀머거리가 들었습니다.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앉은뱅이가 걸었습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짊어지시는 분이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육신적은 소동을 일으키시고 계신 것을 이렇게 증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눅 4;40)

 

어떤 병자든지 예수님은 일일이 손을 얹으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육신적인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고침받은 이들은 모두 탄성을 지르며 뛰었을 것입니다. 엄청난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으니 소동이 크게 일어났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의 3분의 2가 신유기적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중에 가장 많고 중요한 기적은 병고치는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못 고칠 병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항상 병고침의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신유 소동의 주인공입니다.

 

영적인 소동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영적인 소동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귀신과 영적인 전쟁을 하셨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사역하신 곳을 가버나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사역을 귀신을 쫓는 것으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부터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셨습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데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보자 견딜 수 없어서 소리를 지릅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 1;24)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귀신이 경련을 일으키며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귀신을 내어 쫓으시면서 영적 전쟁을 하셨기에 영적인 소동이 곳곳마다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사람들은 모두 모를 때 귀신은 귀신같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이 불가피하였습니다. 누가도 말했습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 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니라”(눅 4;40-41)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항상 소동이 있습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이 나타나시기만 하면 소동을 부렸습니다. 자기들이 멸망당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옥 호열 목사님 수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옥 목사님이 625시절 포로 수용소 선교를 맡고 있었습니다. 수용소를 거니는 데 화장실안에서 이런 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내가 죽일 놈이지. 내가 죽일 놈이지.....” 이상하여 기다렸습니다. 그가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왜 그런지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죽일 놈입니다. 내가 이북에서 살 때 예수믿는 아내를 교회만 갔다오면 장작 패듯이 팼습니다. 무참히 핍박하였습니다. 옷을 찢어 버리고 교회 못 가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내게 맞으면서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후 인민군에게 끌려 나와 전쟁터로 오게 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혔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여서 나도 나왔습니다. 나머지는 다 끌려가 죽은 것같습니다. 나에게 찬송가를 불러 보라고 하였습니다. 아내가 나에게 맞을 때 불렀던 찬송가가 어렴픗이 생각이 났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미군들은 나를 끌고 포로 수용소로 보낸 것입니다. 아내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제는 저도 예수를 이 곳에서 영접하였습니다. 아내 생각이 납니다. 핍박하던 아내 덕분에 살았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내가 죽일 놈이었습니다.”

 

자연 기적의 소동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자연적인 소동도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자연 현상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자연적인 분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분이십니다.

갈릴리 바다를 배를 타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건너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광풍이 불어 왔습니다. 배가 뒤집힐 것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외치셨습니다.

“풍랑아! 잔잔하라.”

예수님은 자연을 향하여서도 명령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풍랑이 잔잔하여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씨를 좋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여도 됩니다.

 

라인하르트 본케 목사님이 남 아프리카 그린밸리에서 집회할 때 대형 텐트를 쳤습니다.

그런데 심한 태풍과 먹구름이 동시에 무섭게 몰려 왔습니다. 대형 텐트를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무서운 위력을 가진 태풍이었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서 꾸짖었습니다.

“네가 만일 이 텐트를 무너뜨리면 나의 하나님께서 이보다 세 배나 큰 텐트를 세우실 것을 믿는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태풍과 먹구름은 물러가라!”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몰려 오던 구름이 칼로 자르듯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텐트를 가운데 두고 피하였다가 다시 모였다가 사라졌습니다. 이를 본 이들이 어디를 가나 환영하여 주었습니다. 그는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지금 영적 온도는 몇 도인 가요? 당신 영적 온도는 스케이트를 탈 정도로 얼어 있지 않은 가요? 온도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는 가요? 불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습니다.

당신의 기도는 공포탄인 가요? 아니면 사탄의 심장을 맞아 쓰러뜨리는 능력있는 총탄인 가요?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만 뜨뜻하게 데우고 사라지지 않는 가요? 소파에 편히 앉아 컬러 TV나 보라고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전도하여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의 무기를 사용하여야 합니다. 최악의 실수는 하나님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악의 때가 최선의 때입니다.”

 

스페인 함대는 무적의 함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배가 영국 플리모스 함선에게 격추당하였습니다. 영국 배가 스페인 배를 공격할 때 영국배 쪽에서 스페인 배쪽으로 광풍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격침된 곳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비문에 이렇게 새겨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람으로 그들이 격침되었다.”

 

지적 소동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소동이 있었는 데 예수님이 12살 되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유월절이면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예수님도 늘 그랬습니다. 12살 때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예수님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예수님을 찾으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성경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눅 2;46-47)

 

예수님은 12살에 최고 성경 학자들과 토론을 하여 그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지적 소동을 일으키셨습니다. 배운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지혜였습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눅 2;47)

 

예수님은 지식의 소동도 일으키신 분이십니다.

 

십자가 소동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려고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인자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이 오직 목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온 예루살렘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런데 12시에 온 세상이 어두워졌습니다. 하루중에 가장 밝을 때 가장 어두워졌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천재지변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소동을 몰고 다니시는 분이었습니다.

 

재림 소동

예수님의 생애는 소동에서 시작하여 소동을 끝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다가 다시 재림하실 때 소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소동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상황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6-17)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하늘로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종될 것입니다. 그 때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엥그리는 가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는 이런 뉴스가 전해질 것이라고 미리 구상하여 보았습니다.

 

“긴급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아침 6시경 세계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도 충격적이며 신비스런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보고가 본 방송국에 들어 왔습니다. 이 보고에 의하면 수만명의 사람들이 공중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인류가 직면한 사건중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알라베스타시에 있는 애기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웃 도시에서도 계속 전화가 걸려 오고 있는 데 이것은 세계 도처에서 동시에는 보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할 것없이 모조리 행방불명된 가정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신비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던 이들의 말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그들의 성도들을 공중으로 데리고 올라 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없어졌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계속 이 방송을 청취하여 주십시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대로 속보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소동으로 시작하여 소동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항상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동적이고 공개적인 소동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임재하시면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전혀 딴 사람으로 바꾸어지는 개인적인 소동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삭개오는 오직 돈만 모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보고 싶었습니다. 키가 작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삭개오는 뽕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여리고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삭개오가 뽕나무위로 올라갔다는 것은 용기였습니다. 체면 불구한 것입니다. 주님은 사모하는 영을 만족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도 다가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겠다.”

삭개오가 말했습니다.

"내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 주겠사오며 남에게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에게는 엄청난 소동이었습니다. 삭개오에게는 인생이 뒤집어지는 사건이었습니다. 주님이 임재한 곳에는 소동이 일어납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그렇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7 귀신 들린 여자였습니다. 창녀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 가실 때 마지막까지 지켜 본 여자가 마리아였습니다. 무덤을 제일 먼저 찾아간 여자도 이 여인이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소동이 일어납니다.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근근히 살아가던 어부였습니다. 그가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던 밤에 예수님이 그에게 오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 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베드로에게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 주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놀라운 소동이었습니다. 그는 소동을 몰고 다니시는 예수님의 영을 받아 베드로가 가는 곳마다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40년 동안 앉아만 있던 앉은 뱅이를 베드로가 일으키자 예루살렘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루에 3천명, 5천명씩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오는 소동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개인적으로 소동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바울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자 예수님을 전하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최고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보다 더 가는 곳마다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오신 날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소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나 영적으로 육적으로나 항상 소동이 따를 것이라는 징조였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소동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칼타코에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대 핍박이 있었습니다.

페리스라라는 여인은 오직 예수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임신중에 예수믿는다는 명목으로 감옥에 갇혀 있다가 내일 사형이 집행되는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간수가 물었습니다.

“내일 교수대에서 이슬로 사라질 텐데 예수를 부인하고 살아나갈 수 없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왜 이런 고통을 당하십니까? 더구나 임신중이 아닌가요?”

이 말을 듣고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임신의 고통은 나 혼자 당하는 고통이지만 교수대의 고통은 주님이 함께 당하여 주는 고통입니다.”

그는 순교당하기 전에 머리를 가지런히 빗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곧 주님을 만날 테니까 단정해야지요.”

그리고 산뜻하게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항상 소동이 일어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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