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이스라엘의 번성 (출 1:1-13)
(갈등론)
요 약
출애굽 사건은 곧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예표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여정을 통하여 구원의 원리를 발견한다. 즉 야곱 가족이 높이 된 요셉 안의 이주였듯 우리의 구원은 높이 된 그리스도 안의 영광된 구원이다. 또 이스라엘이 지면 가득히 번성하듯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인격 전체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나타나 박해하듯 성화에도 갈등의 과정이 있다. 여기서 성도는 자신의 연약과 부족을 철저히 깨달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설 명
<출애굽>
⇒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귀한 예표이다.
☆ 본문에서 발견되는 구원론 ☆
1. 구원은 그리스도 안의 구원이다.
1-5절 "야곱과 함께
엡2:6 "또 함께 일으키사 -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 복음을 믿으라.
2. 구원은 날로 자라는 구원이다.
6-7절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마13:31 -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
벧전2:2 -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구원은 갈등의 과정을 거친다.
8절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갈5:17 -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본 문)
1:1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1: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1:3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1:4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1:5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 인이었더라1: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1:9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1:13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1:14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강 해)
출애굽기의 한문 의미는 애굽을 나온다는 뜻입니다. 70인역 성경에서는 '엑소더스'로서 '출발, 탈출'의 의미입니다. 서론을 말씀하면 출애굽기는 모두 40장으로 되어 있고 그 내용은 전후반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전반부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심이고 후반부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언약 체결하심과 율법을 주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창세기에서부터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기까지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역사하시는 놀라운 섭리를 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복 주셨으면 70명의 야곱의 가족이 온 땅에 가득할 만큼 되었을까요? 학자들은 당시 이스라엘 민족을 200-300만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이 역사는 이스라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출애굽의 교훈은 곧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귀한 예표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몇 가지 성격을 발견합니다.
1.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의 구원입니다.
1-5절에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 인이었더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주하게 된 배경 설명입니다. 가나안에 살던 야곱 가족에게 7년 흉년이 들어 총리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에 왔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설명하기 좋은 그림입니까? 더구나 12나 70의 숫자는 택한 백성이나 일군 선택의 수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귀한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이주는 요셉 안의 이주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높이 된 요셉 안에서 이주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주는 곧 우리의 구원이 하늘까지 높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임을 계시합니다. 그래서 엡2:6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했습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고 권세 있는 존재로 구원하셨습니다. 이 복음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2. 우리의 구원은 날로 자라는 구원입니다.
6-7절에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70명의 야곱 가족이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하고 번성해서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민족은 장차 예수 믿어 될 영의 이스라엘의 예표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그 구원은 날마다 자라 가는 구원이란 점입니다. 이스라엘이 70명이 140명 되고 140명이 300명 되고 300이 600, 600이 1000 2000 5000 10000 10만 100만 번성해 감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겨자씨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겨자씨 비유는 구원의 비유입니다. 우리 안의 천국이 자랍니다. 구원이 자랍니다.
예수 처음 믿을 때 내가 새 생명을 받았는지조차 느끼지 못하지만, 신앙생활을 잘하시면 날로 자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라게 되고 천국을 누리게 되고 권세와 복락을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쓸 일은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서 늘 성령의 진액을 빨아먹는 것입니다. 늘 강조하지만 성령의 은혜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날마다 성령과 말씀을 먹으면 우리의 구원이 날로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한 민족을 이루듯 우리 인격 전체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처 만국 백성이 이루어집니다.
3. 우리가 받은 구원은 갈등의 과정을 거칩니다.
8-14절의 말씀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다 읽지는 않겠습니다.
이 말씀은 은혜를 모르는 애굽의 새 왕이 이스라엘의 강대함을 보고 박해를 시작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진리는 구원의 원리는 간단하지만 그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남아 있는 죄악된 본성의 강한 대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단도 이념이 같으면 갈등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념이 다르면 대립이 생깁니다. 이처럼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는 마음이 한결 같으니 갈등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새 양심을 갖게 되고 새 생명을 갖게 되면서부터 갈등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마음도 있고 죄악된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 진영의 대립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아벨과 가인도 그렇습니다. 야곱과 에서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과 애굽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갈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로 깊이 갈등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꼭 필요합니다. 갈등이 필요 없을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혹시 아직 갈등조차도 하지 않았다 한다면 그는 분명 아작 죄 가운데 살고 있을 것입니다.
구원이 자라면 자랄수록 어느 선까지는 더욱 갈등이 옵니다. 아주 자라면 그 때는 갈등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쯤 될 때 가장 큰 갈등이 옵니다. 그래서 범죄하고 회개하고 범죄하고 회개하고를 반복합니다. 이 때처럼 심령이 어려운 때는 없습니다. 백마고지 전투처럼 밀고 밀리는 영적 전쟁입니다. 이 때처럼 어둡고 난감하며 혼란하며 답답하고 만신창이 심령이 없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바로를 위하여 죽도록 혹사를 당하듯 심령의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경험하면서 죄악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닫고 교훈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의를 사모하는 마음이 커져갑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런 갈등의 과정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이 고통이 없이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 고통이 큰 교훈을 줍니다. 이 사실을 설명해 주기 위해 성경에 수많은 전쟁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승리했듯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이 계시해 주는 구원의 시제에 대해서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이루신 높이 되신 그리스도 안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날마다 자라 가는 현재적 구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현재 갈등의 과정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말씀과 성령 안에서 날마다 자라서 온전한 믿음에 이르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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