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하나님과의 화목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욥 22:21-3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2. 16. 07:54

하나님과의 화목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욥 22:21-30)

 

  영국의 의사이며 작가인 '조셉 크로닌'씨가 쓴 책 중에 '천국의 열쇠'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한 토막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조셉 크로닌이 어느 날 자기 밑에 있는 간호원이 자기가 지시한 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아서 환자 한 명을 죽게 했습니다. 크로닌은 병원장에게 탄원서를 썼습니다. '이 간호원은 자격 미달이니 파면하여 주시기를 간청합니다.'라는 내용입니다.
  간호원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탄원서가 올라갈 것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크로닌 의사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선생님!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크로닌은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말이 곧 자기가 예수님 앞에 가서 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렇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 나도 주님 앞에 가서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한번만 용서하여 주세요. 사람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냐? 저 간호원을 누가 정죄할 수 있단 말인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느 간호원이 일부러 사람을 죽이겠느냐? 정말 실수요, 정말 모르고 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크로닌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탄원서를 들고 간호원 앞에서 찢어 버렸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간호원은 영국에서 가장 큰 병원에 간호과장이 되었답니다. 가장 유능한 간호원이 된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서로 알아주는 세상이 살맛 나는 세상입니다. 서로 이해해 주는 세상이 살맛 나는 세상입니다. 서로 아껴주는 세상이 살맛 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은 서로간에 화목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세상은 평화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제목소개!▶

 

  ▶유명한 화가가 되기를 원하는 몇 명의 소년들이 당대의 유명한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아주 조용한 가운데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그만 한 소년이 화판 더미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작업이 방해를 받아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는 붓을 집어던지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년에게 화를 내며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소년은 울면서 화실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시 붓을 들고 예수님의 얼굴을 완성시켜 보려고 애썼지만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창조성과 영감은 화를 낸 후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울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얘야, 미안하구나. 내 말이 너무 지나쳤다. 나를 용서해다오. 나는 너보다 더 잘못했구나. 너는 그저 화판에 걸려 넘어진 것뿐인데 공연히 화를 내어 나의 생명 안에 흘러드는 하나님의 영감을 막았구나. 나와 함께 다시 화실로 들어가지 않겠니?'
  그런 후 그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주시는 평안과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죄는 분열을 만듭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파괴합니다. 죄인의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와 화목을 원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과 화목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사람과 화목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여기 '화목'이라는 말의 헬라어의 어원은 '아래로'라는 말과 '잘못된 것을 새롭게 바꾸다.'라는 말이 합성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화목은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를 바꾸고 새롭게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고치라'는 뜻입니다. 왜 고쳐야 합니까?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될 때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멘!/

 

  ①본문의 배경은 고난 속에 있는 욥에게 친구 엘리바스가 권면해 주는 말씀입니다.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꿀벌형'인간입니다. 이 사람은 열심히 꿀을 따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둘은 '개미형'인간입니다. 이 사람은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무관합니다.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유익을 끼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만을 위해서 삽니다.
  셋은 '거미형' 인간입니다. 이 사람은 함정을 파놓고 숨어서 때를 기다립니다. 남에게 해를 가하고 고통을 줍니다.
  위로하는 것도 세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꿀벌형 위로'입니다. 위로하기 위해 찾아가서 큰 위로를 줍니다. 둘은 '개미형 위로'입니다. 위로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별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위로했다는 자기만족만 있을 뿐입니다. 셋은 '거미형 위로'입니다. 위로하기 위해 찾아가서는 오히려 큰 고통만 안기고 돌아옵니다.
  그렇습니다. 위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위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위로했다는 자기만족을 얻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위로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진정한 위로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욥은 두 차례나 고난을 받았습니다. 우선 욥1:13-19절을 보면 욥은 갑작스런 재난을 겪게 됩니다. 강도를 두 차례 만나고 또 두 차례 천재지변을 겪으면서 자식들과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먼저 재산을 다 잃어 벼렸습니다. 스바 사람들이 와서 양떼들을 몰아갔고,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약대들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 다음에 열 자식들이 큰 아들집에서 회식하고 있을 때 거친 들에서 대풍이 불어와 집이 무너져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다음으로 욥2:1-10절을 보면 극심한 질병으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온 몸에 종기가 나는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나병의 일종인 상피 병을 앓게 됩니다. 게다가 견디기 힘든 질병 중에 아내마저 욥을 저주하고 떠나갑니다.
  이런 상황을 듣고 그의 친구 셋이 찾아옵니다. 욥2:11절에 보면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
  욥이 이런 모진 고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찾아온 사람들이 세 친구들입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입니다. 이들은 정말 멀리서 왔습니다.
  데만은 남부 아라비아 사막 지대의 한 성읍이고, 수아는 북 아라비아 동부 지역의 성읍이고, 그리고 나아마는 아라비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욥이 살던 우스 땅과는 적어도 수백 키로는 떨어진 곳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들이 서로 약속을 하고 왔다는 점입니다. 자기들끼리 막역한 우정을 이어온 사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욥이 고난을 당한다고 하자 자기들끼리 긴밀히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그 먼 거리를 마다 않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욥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욥에게 위로한다면서 변론을 하는데 때로는 위로도 되었지만, 오히려 욥에게 상처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욥과의 대화를 보면 다 신앙적입니다.
  그들이 욥과 세 번씩 변론을 했는데 오늘 본문은 엘리바스가 욥에게 세 번째 권면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인간이 가장 소망하는 복 받는 비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본문 21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세상에 복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복은 우리나라 사람도 중국사람도 일본 사람도 다 좋아합니다.
  ▶일본의 '니꼬'라는 유명한 관광지에 있는 어느 사찰에는 네 개의 우물이 있답니다. 그 우물물을 마시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각각의 우물에는 장수를 의미하는 수(壽), 부귀를 의미하는 부(富), 권세를 의미하는 권(權), 사랑을 의미하는 애(愛)라는 글자가 쓰여있다고 합니다.
  그 우물마다 물을 마시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고 합니다. 수(壽)라고 쓰여진 우물 앞에는 주로 60세가 넘은 노인들이 오래 살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서 있다고 합니다.
  부(富)라고 쓰여진 우물 앞에는 주로 삼사십 대 젊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서 있다고 합니다.
  권(權)이라고 쓰여진 우물 앞에는 정치권의 사람들이 한 자리하고 싶은 갈망으로 서 있다고 합니다.
  애(愛)라고 쓰여진 우물 앞에는 주로 이십대의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연인을 소망하며 이 물을 마시려고 서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관광 갔던 사람들 대부분은 네 군데의 우물물을 모두 다 마셔보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복(福)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우물물이 복을 줍니까? 오직 복의 출처는 하나님이십니다. 잠10:22절에서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여기서 복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라크'와 그 다음에 '아쉬레'의 복입니다. '바라크'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직접 받는 복'을 '바라크'라고 하고, 그 다음 '내가 받은 복이 차고 넘쳐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런 복을 '아쉬레'라고 합니다. 올해 우리교회는 영육간의 형통의 복을 받는 해로 정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할/
 
  ②하나님의 복은 어느 때 임하게 되는가?(21-25)
  ㉠하나님과 화목해야 평안히 옵니다(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이 말씀을 조금 다르게 말하면 '네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된 다음에 너에게 진짜 평안히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살아가면서 제일 고통스럽고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 있을까요?
  불화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불화, 부모와 자식간의 불화, 직장 동료 간의 불화, 이웃 간에 불화 등으로 인하여 원수가 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이 세상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예 먼 사람과는 불화하지 않으며 불화 할 이유도 없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뜻이 안 맞아 다툼과 미움이 생기고 원한이 생기게 됩니다
  불화 하게 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먼 사람이 되고 이웃과 형제가 원수가 되어 불행하게 됩니다. 여러분! 인간이 행복하려면 돈이 많다고, 가진 것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과 사랑이 있어야 하고, 화목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일찍이 솔로몬은 잠17:1절에서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의 불행이 어디로부터 옵니까? 화목하지 못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화목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⑴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화목은 하나님과 관계가 통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후에 평안히 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통해야 은혜도 받고, 평안도 누리고, 기쁨도 맛보고, 감사한 마음도 우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면 어떤 일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바느질하는 사람이 실에 매듭이 지어져 있으면 바느질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바느질이 되려면 반드시 매듭을 먼저 풀어야합니다. 하나님과 매듭이 있으면 어떤 일도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먼저 하나님과 매듭을 풀고 화목해야 합니다. /할/
  ▶6.25동란 때 북한 공산군이 서울을 진격해 왔습니다. 더 이상 공산군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한강다리를 폭파했습니다. 그때 한강 다리 위에는 남쪽으로 피난 가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폭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국에서 '이제 곧 다리를 폭파할 예정이니 더 이상 이 다리에 들어서지 마시오'라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난길에 나선 사람들은 이 다리를 건너야만 살아날 수 있었기에 그 경고가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길을 막는 국군을 밀치고 노도와 같이 다리 위를 진입했습니다.
  다리를 폭파하는 순간 끊어진 다리 밑으로 떨어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다리가 이미 끊어 졌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밀려오는 군중들의 힘으로 인해 끊어진 다리 난간에 서있던 사람들까지 다리 밑으로 추락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비극적 참사가 65여 년 전 이 땅에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는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발전의 대동맥인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나 시원스럽게 뚫려 있습니다. 계곡이 있는 곳에는 다리를 놓고, 산이 가로막는 곳에는 터널을 뚫고, 바다가 있는 곳에는 물위로 다리를 놓았습니다.
  특히 영종도를 보십시오. 낙후된 작은 섬 영종도가 세계가 주목하는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탈바꿈을 했습니다. 4년 연속 세계 공항 서열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종도와 육지를 잇는 영종대교와 고속도로가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다리가 끊어진 곳에는 파멸이 있고, 다리가 놓인 곳에는 눈부신 발전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곳에는 영원한 멸망, 지옥의 형벌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불행과 실패의 연속입니다. /할/
  ⑵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죄악으로 인해 마치 끊어진 다리처럼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사59:2절에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이 안타까운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나님과 세상사이에 생명의 다리를 놓으신 분이 계십니다. 누구십니까? 그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할/
  땅위에 놓인 다리의 재료는 철근콘크리트나 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놓으신 다리의 재료는 예수님 자신의 생명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였습니다.
  이 고귀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요14:6절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을 잇는 유일한 다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아멘!/
  사도 바울은 고후5:20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당부하시면서 18절에서는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⑶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화목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목 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화목을 이뤄주셨습니다.
  롬5: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여기서도 단순히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화목 제물이 되지 아니하였더라면 우리는 감히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한 손으로는 하나님의 손을 잡으시고, 또 한 손으로는 우리의 손을 잡아서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 사이를 이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할/
  ⑷'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는 말은 '하나님과 깊은 믿음의 교제, 기도의 교제, 찬양의 교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라는 의미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교제(대화, 의논, 상의)가 없이는 삭막한 분위기가 됩니다. 부부관계는 늘 교제가 이루어져야 사랑이 샘솟고 행복이 넘쳐 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로 교제하며 부르짖을 때, 응답해 주시고, 믿음의 교제를 통하여 기적을 베풀어주시며, 감사할 때, 우리의 영혼이 더 풍성해지며 우리의 범사 위에 화평함으로 충만'하게 해 주십니다. /믿/아멘!/
  ⑸또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다는 의미는 나의 가장 중요한 관계를 하나님에게 두겠다는 말입니다. 나의 가치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살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화목한 삶은 나의 삶 가운데 천국을 이루는 삶을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아닌 그 무엇에 나의 마음과 삶을 맡기지 않겠다는 내 마음의 결의이며 오직 하나님께 나의 삶을 맡기는 삶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함을 이루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중심과 동기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의 숙제가 하나님과의 멀어진 간격을 어떻게 극복하고 좁혀 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 거리와 그 간격으로 인하여 날마다 갈등하고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제주도에 사는 어떤 남자는 26년 전에 결혼해 26세 된 딸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중매한 사람을 욕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이유는 중매를 잘못해 지금 함께 사는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6년 동안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온 그 남자는 교회 집사라고 합니다. 한 평생을 불화로 산 사람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⑹성경에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을 말하라고 하면 먼저 다윗 왕입니다. 행13:22절에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⑺화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마5:23-25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여기서 형제에 대하여 좀 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형제라는 말은 '아주 가까운 사이'를 가리킵니다. 눈을 뜨면 날마다 보고 만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일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교인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형제라고 합니다.
  '맥스 루카도'라는 기독교 저술가는, 우리가 날마다 눈을 뜨고 보아야 하고 살을 비비고 살아야 하고 그래서 분노하기 쉽고 욕하기 쉽고 어떤 면에서는 서로 상처주기 쉬운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서 '꼼짝없이 매인 사람들'이라는 재치 있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실 짜증이 나고 혈기가 나는 관계는 사돈에 팔촌도 안 되는 모르는 사람하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들 형제라고 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 때문에 짜증이 자주 납니다. 화가 자꾸 치밀어 오릅니다.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 자꾸만 쌓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형제에게 화를 낼 수 있습니다. 형제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항상 숨기고 있을 뿐입니다.
  23절은 대상이 '교회이고, 형제들'입니다. 25절은 그 대상이 '세상이고 원수들'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과 밖에서 형제들과 원수들에게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를 보여 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모두 다 다 불편할 관계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두 긴급 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23절에서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화해하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예배를 드리다가, 혹은 예배를 드리러 오다가 내가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고 생각되면 예배드리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미움을 먼저 처리하고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또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지금 마음에 원한을 갖고 이를 갈고 있으면 먼저 사화하고 화해하고 와서 예배 드려야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유대나라 사람들은 제사만 지내면 어떤 죄든지 다 용서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스스로 회개하지 않고 가슴에 그대로 담고 있는 죄가 있으면 그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예수님도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먼저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마6:15)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를 안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형제를 향하여 분노를 갖고 있는 사람은 먼저 분노부터 처리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할/
  사실 예배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형제와 화목 하는 것입니다. 만약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를 품고 욕을 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예배를 안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외우는 주기도문을 보세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늘 우리가 고백하는 주기도문입니다. 먼저 용서해 주고 그 후에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마18: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눈에 보기는 화려한 예배의식이 아니라 정말 한 형제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귀한 제사'라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 말씀은 ㈀형제 화목이 하나님께 대한 제사(예배)보다 먼저 해결해야 될 일이요, ㈁또 형제화목이 제사응답과 직결되어 있음이요, ㈂보이는 형제를 사랑함이 없을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다는 진리(요일4:20)를 교훈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행여나 우리가 이웃과 불화하고 미움과 시기로 가득 차 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그것을 풀어야 합니다. 형제와 화목하십시오, 용서하시고 관용하시고 사과합시다. /할/
  화목의 결론은? 마5: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아멘!/

 

  ㉡하나님 말씀을 심령 깊은 곳에 새겨라!(22)
  축복의 비결은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이요, 화목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순종하는 것이 첫걸음'이라는 것입니다. /할/
  말씀이 유익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에만 두고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은 머리 신앙이 아니라 가슴(마음) 신앙이어야 합니다. 마음은 애정을 뜻합니다. 말씀을 애정에 둔다 함은 말씀을 사랑함을 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에 애정을 갖지 않는 것은 자기 좋은 대로하고 하나님 교훈대로 살 의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잘 자라는 아기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합니다(벧전2:2). /할/
  하버드대학 총장을 역임하였던 '찰스 윌리암 엘리옷'은 어렸을 때 얼굴에 큰 점이 있는 점박이였는데 이는 수술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기에 소년은 그 점 때문에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우울하게 지내는 아들을 붙잡고 말씀하십니다. '찰스야! 너의 얼굴에 있는 점을 없앨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고 살아라. 그리하여 네 영혼이 크게 자란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얼굴에 있는 점을 보지 않고 네 속에 있는 인격과 믿음을 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총장이 된 것입니다. /할/
  여기서 '마음에 둔다.'는 말은 '피와 심장이 움직이는 곳 즉 생명의 중심에 있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중심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고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곧 화목입니다. /할/
  ▶우리나라에 200년 전 천주교가 들어왔습니다. 그때 천주교는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해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
  그 중에 정하상이라는 사람은 목민심서를 쓴 정약용의 조카입니다. 정약용의 형님의 이름이 정약종이고 그 정약종씨의 아들입니다. 정약용의 형제 정약종, 정약정 두 분은 그 박해 때에 순교를 당합니다. 그 아들 정하상도 순교를 당합니다.
  그 아들 정하상이 1839년도에 한문글자 3,400자로 된 '상제상서'라는 글을 남겨놓았는데 그 글의 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천당도 보지 못하고 지옥도 보지 못했으므로 그 천당과 지옥을 믿지 못하겠다고 할 것 같으면 이것은 소경이 하늘을 보지 못하므로 하늘에 해가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어떤 사실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비록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믿을 수 있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본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 앞에 주식을 차려놓고 먹으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금하는 것입니다. 음식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에 맞는 음식이며, 도덕은 영혼의 양심이며, 우리가 살았을 때에 영혼이 밥을 먹지 못했는데 어떻게 죽은 후에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부모님이 주무실 때에 밥을 차려 드리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죽어서 무덤 속에 잠자는 그분에게 밥을 먹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순교를 당합니다. /할/ 가슴에 말씀을 받은 자만이 순교할 수가 있습니다. /할/
  여러분, 국민이 언제 당당할 수 있습니까? 법을 지킬 때입니다. 법을 지키고 사는데 경찰이 무섭습니까? 도리어 경찰이 있어 마음 든든합니다. 자식은 언제 떳떳합니까? 부모님 말씀대로 행할 때입니다. 인생이 언제 평안 할 수 있습니까? 세상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 때입니다. /아멘!/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불행이 찾아 온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을 때입니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 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장 중요한 관계를 하나님께만 두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삶의 가치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살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그 무엇에도 나의 마음과 삶을 맡기지 않겠다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장 손해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 갈 때 하늘에 보고가 열리게 됩니다.
  신28:12-14절에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할/

 

  ㉢하나님과 항상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라!(23)
  여기 '전능 자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등을 돌린 상태에 있음을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전능 자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우화가 있습니다. 어미 꿩이 새끼들에게 늘 이런 주의를 주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이 땅 위에서 먹이를 찾아 먹을 때 입으로는 먹이를 먹되 귀를 열어서 내 음성이 들리는지 주의를 기울여라. 내가 땅을 보고 있다가 너희를 해치려는 짐승이 나타나면 크게 소리를 칠 테니 내 소리가 들리면 지체말고 나무 위로 날아오너라. 너무 멀리가면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테니 멀리가지 마라.' 그래서 꿩 새끼들은 엄마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먹이를 찾으면서 입으로는 먹이를 먹고 귀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렸습니다. 꿩 새끼 한 마리는 맛있는 먹이를 먹는데 팔려서 형제들과 떨어져 멀리 갔습니다.
  꿩 새끼들이 한창 먹이를 먹고 있을 때 여우 한 마리가 꿩 새끼들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새끼들이 위험하게 된 것을 본 엄마 꿩이 소리를 지르자, 새끼 꿩들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위험이 다가온 줄을 알고 일제히 나무 위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엄마 꿩과 멀리 떨어져 있던 꿩 새끼는 위험을 알려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여 그만 여우에게 잡혀 먹히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렇듯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 멸망을 받게 되며 불행의 늪에 허덕이고 만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할/
  ⑴여기 '전능 자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과거의 죄악된 생활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께서 결코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떳떳하지 못한 행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돌아가기만 하면 복을 다시 주십니다. 또한 불의를 멀리 버리기만 하면 다시 흥하게 하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⑵여기 '불의를 네 장막에서 버리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성도답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불신자와 같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망해도 일으켜 주십니다. 장막에서 불의를 버리면 다시 흥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장막은 삶의 영역을 말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불의한 모습이 있다면 과감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길이 회복의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믿/아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보배로 삼고 살아라!(24-25)
  미국 '스미스 소니 언' 박물관에서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를 공개하였습니다. 이름은 '호프 다이아몬드'이며, 45캐럿 짜리 인도산 다이아몬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소유한 자마다 하나같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여 '저주의 보석'이라고 불려집니다.
  최초의 소유자는 페르시아 총독인데 그는 도둑에게 살해당하여 비명에 갔습니다.
  두 번째 소유자는 페르시아 왕이었습니다. 그도 반란군에 의해 처형당했습니다.
  세 번째 소유자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인데 그는 목에 이 보석을 걸어본 후 천연두에 걸려 죽었습니다. 루이 16세가 네 번째 소유자인데 그는 왕비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최대 재벌인 헨리 필립 호프라는 사람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그 다이아몬드는 호프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호프 가는 곧 몰락하고 말았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보화와 재물을 좇는 인생의 종착역은 죽음과 허무라는 교훈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할/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 귀한 은이 되시리니'
  누구나 하늘의 참된 보화를 얻으려면 먼저 세상의 보배는 지푸라기처럼 버려야 된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보화에 비하면 세상 것은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비교할 것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 것을 붙잡고 있으면서 하늘의 것을 더 받으려고 합니다. 본문의 '그리하면'이란 접속사는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보화를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참된 보배를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할/
  ▶보배를 진토에 버리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자기 것이 아까워 어물어물 하는 자는 보배를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나서 세상 것을 다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보배로 얻기 위해 세상 것에 연연해서는 안됩니다. '죽어야 산다'는 말과 함께 '버려야 산다'는 말도 진리임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훼방되는 일은 속히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모든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참 보배가 되어 주십니다.
  찬송가 102장에 '주 예수 보다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이 찬양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여러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질입니까? 명예입니까? 쾌락입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귀하신 보배로 삼아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사33:6절에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아멘!/

 

  ③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임하는가?(26-30)
  ⑴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시37: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아멘!/
  ⑵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습니다(26).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부모 앞에 죄를 지으면 자식이 떳떳하지 못해 얼굴을 못 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당당하게 주님의 얼굴을 뵈올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은 전능 자에 대한 신앙 회복을 의미합니다. /할/
  ⑶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27).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한나가 삼상2:6-7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할/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서원한 것을 갚을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멘!/
  ⑷사업의 경영을 이루시고 빛을 발하게 하십니다(28).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 여기서 경영은 우리가 결정하는 일마다 성취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할/
  옛말에 '사람이 돈을 쫓아다니면 얼마의 돈은 벌 수 있지만, 돈이 사람을 따라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재벌은 하늘이 내다.'는 말도 있습니다.
  신8:17-18절에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아멘!/
  ⑸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29). '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겸손입니다. 겸손은 낮아진 마음입니다. 신앙인의 고품격이 바로 이 겸손입니다. 겸손하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잠22: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이런 축복을 받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⑹모든 것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소원합니다(30). '무죄한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을 인하여 그런자가 건지심을 입으리라' 하나님은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과 화목한 자를 도우시고 그를 건지십니다. 그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그를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하십니다.
  욥이 이런 복을 받았습니다. 욥42:10절에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할/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하나님과 화목 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삶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과 화목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요, 성공으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화목 하는 사람은 전능 자에게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참된 만족이 있습니다.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참된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014년 2월 16일 대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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