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기고]내란음모사건 20년 구형?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2. 15. 13:02

[기고]내란음모사건 20년 구형?

                        경향신문 입력 : 2014-02-12 20:47:30수정 : 2014-02-12 20:47:30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검찰은 소위 ‘내란음모 사건’ 재판에서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2013년 8월28일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 등 3명을 체포하면서 ‘내란음모’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을 적용해 온 나라를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사건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석기 의원 등이 주축이 된 ‘RO’라는 조직이 5·12 모임 등에서 내란을 모의했다고 했다. 당시 공개된 5·12 모임 녹취록(발췌본)에 등장하는 일부 호전적인 문구들을 언론이 도배하면서, 혹독하고도 잔인한 여론재판이 전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런데 내란음모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녹취록이 수많은 왜곡과 오류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기존 녹취록에서 무려 272곳을 수정한 녹취록을 다시 제출했으며, 변호인단의 지적에 수정을 거듭했다.

    특히 5·12 모임에서 이석기 의원이 한 강연의 내용이 대폭 수정되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처음 녹취록에 등장했던 호전적인 문구들은 대부분 실제 발언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단적인 예로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는 발언은 ‘전쟁을 준비하자’로 둔갑되었음이 드러났고, 반전평화를 주장하는 ‘선전 수행’이라는 문구는 마치 전쟁을 선동하는 ‘성전 수행’이라는 단어로 왜곡했음도 드러났다.

    이것은 단순히 녹취 과정상의 오류가 아니라, 녹취록 내용의 악의적인 왜곡 수준이다. 녹취록 단어와 문구를 교묘하게 왜곡하고 짜깁기함으로써 5·12 모임 발언의 전체적인 취지와 문맥을 순식간에 내란음모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내란죄란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폭동하는 것’을 말한다. 내란음모죄는 그러한 폭동을 모의하고 준비하는 행위다. 내란음모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실제 적용요건이 매우 엄격하다. 첫째, 국헌문란의 목적과 국헌문란을 위해 폭동을 일으키겠다는 의사가 있어야 하고, 둘째, 당사자들이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모의가 있어야 하며, 셋째, 내란을 일으킬 만한 물적·인적 준비가 수반돼야 하며, 넷째, 실제 폭동을 실현할 만한 직접적인 위험성이 인정돼야 한다.

    국정원은 녹취록 외에 내란음모의 결정적 증거도 있는 것처럼 떠들었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녹취록과 국정원이 포섭한 정보원 이모씨의 진술 외에 다른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과는 다르게, 검찰이 법정에 제출한 녹취록에 의하면 전쟁이나 무력을 이용한 폭동을 준비하자는 내용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녹취록에는 폭동에 해당하는 모종의 도발적인 행위를 구체적으로 합의하거나 계획한 정황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더구나 국정원과 검찰은 내란음모의 주체로 ‘RO’라는 조직을 지목했지만, 재판 과정에서는 ‘RO’라는 조직이 과연 존재하기는 한 것인지조차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에는 반국가단체 구성죄가 있다. 헌법질서를 파괴할 목적의 내란을 모의할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과거 내란음모죄가 적용된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서 검찰은 ‘민청학련’ ‘한민통’을 내란음모를 꾸민 반국가단체로 지목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조작사건으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서 검찰은 ‘RO’라는 조직이 내란음모를 획책했다고 하면서도 반국가단체로서 ‘RO’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증을 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서의 실체도 규명하지 못하면서 내란을 모의했다고 기소한 것 자체가 황당하기 그지없다.

    결국 내란을 음모했다는 조직도, 실체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 처음 공개된 녹취록의 의도적인 왜곡 부분을 바로잡고 보면, 5·12 모임의 이석기 의원의 강연이나 참가자들 발언 내용은 내란의 폭동행위를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합의했다는 검찰의 기소 내용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은 우리 사법역사에서 허구의 날조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 직면해 국정원이 마치 헌법을 파괴하는 거대한 사건이 존재하는 양 여론을 호도하면서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것이 이 사건의 역사적 진실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