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사설] 법 논리에서 벗어난 ‘이석기 사건 판결’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2. 18. 10:25

 

[사설] 법 논리에서 벗어난 ‘이석기 사건 판결’

한겨레신문 등록 : 2014.02.17 19:01수정 : 2014.02.17 19:01

법원이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등 사건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징역 12~4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아르오’(RO)가 내란음모의 주체라는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아르오 자체가 국가정보원과 제보자의 추측으로 만든 소설이라고 주장해온 이 의원과 변호인단의 주장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의 유죄 판결이 법리적 측면에서도 그렇거니와 그간의 사건 전개 과정에 비춰봐도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와중에 터진 이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로서는 공안당국과 정권의 국면 회피용 ‘희생양 만들기’에 법원이 들러리를 선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가질 법하다.

 

내란 음모 및 선동죄에 대한 유죄 판단은 우선 법리적으로 무리한 측면이 있다. 재판부는 아르오가 주체사상을 수용한 비밀 지하혁명조직으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국헌문란의 목적 아래 내란 수준의 모의를 했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다. 언론에 이미 공개됐듯이 이들의 모임에서 녹취된 속기록에 “유조창 탱크 폭파”나 “철탑 파괴” 또는 “후방 교란” 등 황당하다고 할 정도의 표현이 다수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 제보자 이아무개씨를 비롯한 3명의 대화를 담은 별도 녹취록에는 사상 학습을 진행하면서 북한의 3대 세습을 용인하는 듯한 표현도 등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내란 음모나 선동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형법 87조에는 내란죄에 대해 ‘국토의 참절 또는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하여 폭동하는 죄’로 규정하고 있다.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폭동’이어야 할 뿐 아니라 일반적 추상적 합의를 넘는 구체적 모의도 있어야 한다. 판결문에서 “음모가 계획의 세부에까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밝혔듯이 이들이 과연 이런 정도의 구체적인 내란 계획을 세웠는지, 실제 그럴 실행 능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장난감총’ 운운하고, 어린아이 우는 소리까지 들리는 회합이 내란 음모를 위한 조직 모임이라는 게 합당한 판단인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2010년 제보를 받고 지난해 7월까지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규정해 감청영장을 받아오던 국정원이 갑자기 8월에 내란음모 사건으로 둔갑시킨 것은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국기문란의 범죄행위에 대한 반발로 시국선언과 촛불시위가 이어지면서 국정원 자체가 위기에 몰리자 사건을 과대포장해서 내놓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녹취록을 미리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을 시도한 것으로 미뤄봐도 이런 정치적 의도는 읽을 수 있다. 이 사건에 앞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리하게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정부가 법무부를 통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는 등, 이 사건을 전후해 정권 차원의 ‘종북몰이’가 기승을 부렸다는 것은 이 사건의 정치성을 잘 말해준다.

 

결국 이런 정치적 사건에 법원이 엄격한 법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공안당국의 여론몰이에 휘둘린 게 아닌지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