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고난의 은혜 (시 119:67,71-72/롬 5:3-4)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2. 23. 09:10

고난의 은혜

시 119:67,71-72 롬 5:3-4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금년 7월은 정전 60주년이 되는 달입니다. 그리고 8월은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68주년이 되는 달입니다. 7-8월은 지난날의 어두웠던 역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달입니다. 사람 중에는 어렸을 때 유독 잔병치레를 많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큰 수술을 여러 번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듯이 나라들 가운데서도 유독 환란, 수난, 전쟁을 많이 겪은 나라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소국으로 늘 주변국에 흔들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늘 외부의 침입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구약시대를 보면 예루살렘은 바벨론이나 앗수르의 침략을 여러 번 당했습니다. 로마시대에는 압제도 받으며 살았습니다. 2차 대전 때도 나찌 히틀러에 의해서 유대인들이 600만 명이나 학살을 당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오늘도 이스라엘은 500만 인구가 아랍인 2억 인구에 둘러싸여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보면 원수, 적, 전쟁에 대한 시가 많이 나옵니다. 특히 46편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오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하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시는 대부분 이렇게 고난을 겪는 과정에서 나타난 고백들을 모아놓은 시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도 각국의 각축장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으로는 신흥대국을 꿈꾸는 일본이, 서쪽으로는 중화사상을 넓히려는 중국이, 북쪽으로는 아시아에 부동항을 확보하여 세계화를 꿈꾸는 러시아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들의 각축과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편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억눌려 살아간 역사, 고난의 역사가 바로 우리나라의 지난날의 역사의 내용입니다.
나라마다 해방절이 있습니다. 중국은 10월 10일 쌍십절입니다. 이 날은 청조로부터 지배받다가 봉기하여 중화민국을 세운 건국일로 중국인들의 해방절입니다. 미국은 7월 4일입니다. 영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776년 7월 4일에 “죽음 아니면 자유를 달라”며 독립선언을 한 날입니다. 이 독립기념일이 미국의 최대 명절입니다. 이스라엘은 1월 14일입니다.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출애굽한 날입니다. 이 날이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입니다. 개신교는 10월 31일을 종교개혁의 날로 지킵니다. 당시는 교황권이 압도하는 시대였습니다. 당시는 신앙이 통제됐고 성직이 매매됐고 면죄부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때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일은 교황청 통제에서 개신교가 탄생된 날입니다.
우리나라는 8월 15일이 광복절입니다. 일본에 통치되던 36년이 우리나라 역사 중에 가장 어두웠던 기간입니다. 말, 글, 이름, 나라를 다 뺏기고 억눌린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해방은 되었지만 그때 우리나라는 참 비참했었습니다. 해방 전에는 온갖 억압과 핍박의 삶을 살아서 해방 후에는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그래서 가난에다 온 세상이 폐허가 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미군이 지나가면 아이들이 남루한 옷을 입고 코를 흘리며 쫓아다니며 초콜릿을 달라 껌을 달라고 손을 벌렸던 때입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참 초라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68년 만에 오늘의 이 나라를 일구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룩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데 혼란과 논쟁과 혁명과 요란함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집트를 보면 민주주의가 이제 시작을 합니다. 이제 중국도 곧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대 선배가 되는 셈입니다. 또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수출은 7-8위권으로 지난해 수출은 5,300억 달러에 이릅니다. 이 수치는 전 아프리카와 남미 전체가 이룬 수출 규모보다 더 큰 규모입니다. 우리나라는 대단한 기적을 일군 것입니다. 또 신앙적으로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나라로 신앙부흥을 이루었습니다. 6.25때 우리나라에 와서 참전했던 나라들이 오늘 한국의 발전한 모습을 보고 하나같이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민족에게 이런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오늘에 와서 생각을 해 보면 생각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고난 받음의 은혜
 
그동안 우리들이 받았던 고난들도 생각해보면 은혜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고난의 삶을 살 때는 어렵고 고달픕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삶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성숙하게, 깊이 생각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함을 알게 만듭니다. 건강의 소중함, 물질의 소중함, 신앙의 소중함,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 만듭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그 어려움의 훈련으로 6.25 때 공산화를 막아냈습니다. 당시 미 군정청이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당시 우리민족의 공산주의 선호도가 78%였다고 합니다. 이는 충분히 공산화가 될 수 있는 수치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가 공산화 되지 않고 민주주의 나라가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북쪽에 살던 우리 백성들 중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공산주의의 실체를 너무 뼈저리게 느낀 것에서 기인을 합니다. 북쪽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공산주의와 함께 살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체험하였습니다. 도저히 그들과 함께 살 수 없음을 알게 되니까 그 소중하게 여기던 모든 재산을 놓아두고 혈혈단신 남하했습니다. 일부는 서울로 또 일부는 거제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제도로 간 사람들은 서울로 올라오며 서울로 간 사람들은 지방으로 내려가며 북한 공산주의의 실체를 남한 전역에 전파하게 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실체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선호도가 높았습니다. 그런데 북쪽의 사람들이 알려주어서 그 실체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고난을 생각해 볼 때 이 고난도 은혜였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농촌출신입니다. 어려서 고생도 많이 했고 한때 방황도 해서 어른들이 염려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도 은혜였고 감사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한때의 고생이 내 삶에 많은 유익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입장도 이해하게 되었고 마음의 여유도 가지게 되었고 생각도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고난이나 아픔 그리고 부족함은 때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생각을 깊게 하고 삶의 폭을 넓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교회나 신앙에도 모두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겪었던 고난들은 오늘의 국가발전으로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2차대전을 겪은 나라들이 오늘 눈부시게 발전하였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전쟁 후 독일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 가장 두드러지게 발전했습니다. 이것도 그 당시는 고난이었지만 전란을 겪은 아픔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IMF를 경험하였을 때 당시 사람들은 모두 이제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 모두 눈앞이 캄캄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그것도 우리나라를 위해서 준비된 기회였습니다. 우리 국민은 그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였습니다. 서산 앞바다에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 얼마나 낙심했습니까? 그것은 분명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기회로 활용했습니다. 그 기름을 제거하려고 80만 명이 줄지어 자원봉사자로 나섰습니다. 모두 손에 걸레를 들고 서산 앞바다로 나아갔습니다. 그 모습에 세계가 놀랐습니다. 이는 국론이 하나로 묶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고난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고난은 당시는 어렵지만 지나고 보면 많은 유익을 줍니다. 그래서 시인은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67) 하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을 보면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고난 프로그램
 
하나님은 고난을 적절히 활용하십니다. 그리고 환란을 프로그램화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속에 하나님의 경륜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7명의 집사가 선출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7명의 집사가 열심히 전도를 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복음전파의 물결이 도도히 흐르게 됩니다. 당시 제사장이 약 8천여 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 상당수의 제사장들이 흔들리게(7절) 되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표로 스데반이 붙잡혀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배경사를 보면 스데반을 데리고 4m 낭떠러지에서 밀어 떨어트렸는데 죽지 않자 돌로 쳐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순간 예루살렘은 비상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도망 다니고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왕성해 가던 복음전파 조직은 와해되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3절을 보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 옥에 넘기니라”고 말씀합니다. 상황이 급박해졌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야밤을 틈타 도망을 갑니다. 심지어 사마리아까지 도망가서 숨게 됩니다. 이것은 그 시대가 얼마나 급박하였는가를 보며주는 예입니다. 평상시에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상종도 하지 않았고 그 땅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상황이 너무 급박하니까 사마리아까지 도망가서 숨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상상황에 모두 걱정하며 탄식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인간이 느끼는 한계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는 한 가지 독특한 생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은 가는 곳마다 전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마리아에 가서도 전도를 했습니다. 핍박이 있기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전에는 그 땅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핍박을 이렇게 활용하셨습니다. 복음은 핍박과 수난을 통해서 세계로 흘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분명 불행한 일입니다. 조직이 와해되는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파로 인해 안주하여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전국으로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복음이 확산되고 전국화 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소극적으로 살고 안주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우리끼리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안주하는 것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평양에서 옹기종기 모여 우리끼리 안주하던 것도 용납하지 않으시고 전국으로 흩으셨습니다. 공산군의 핍박이 주어지니까 도저히 그들과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서울로, 일부는 거제도로 떠나갔습니다. 그들이 내려오고 올라오면서 공산주의의 폐해를 알리므로 오늘 우리나라가 공산화 되지 않고 민주주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프로그램화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전향적으로 활용하십니다. 아이가 성장할 때 반드시 몇 번씩 감기에 걸리고 홍역을 치룹니다. 넘어져서 깨지고 부러지고 다치면서 자랍니다. 그것이 성장 과정입니다. 큰 위인들도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서 위인이 되었습니다. 큰 전도자들도 모두 연단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입니다. 12제자들도 3년간 모진 훈련과 연단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무능한 모습만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사용하시려고 하나님은 그들을 모질게 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들을 세계로 흩으셨습니다. 그들을 오늘 ‘디아스포라’ 라고 부릅니다. 흩으실 때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모르니까 불안했고 두려웠고 낙심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보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었고 계획이었습니다. 그들이 세계로 흩어졌기에 오늘 이스라엘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흩어지지 않으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강제로 그들을 세상으로 흩으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세계로 가장 많이 흩어진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도 그냥 놔두면 스스로 흩어질 민족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은 밖을 모르고 살아온 민족입니다. 고종이 그렇게 나라를 개화시켜 보려고 노력하였지만 한사코 거부한 민족입니다. 상투를 자르면 집안 망하는 줄 알고 상투를 부여잡고 거부하며 발버둥친 민족입니다. 죽은 시체를 앞에 놓고 10일 보름동안 그 앞에서 절하며 곡했던 민족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36년 동안 우리민족을 압제하는 동안 우리민족은 비로서 울타리를 넘게 되었습니다. 북간도로 중국으로 퍼져서 나가 정착하였습니다. 그들이 오늘 조선족으로 220만 명이나 됩니다. 한 무리는 더 북쪽으로 올라가 러시아로 사할린으로 중앙아시아로 옮겨갔습니다. 그들이 고려인으로 50만 명이나 됩니다. 6.25때 고아들을 세계로 흩으셨습니다. 매년 3천 명씩 모두 14만 명이 세계로 펴져 나아갔습니다. 살 길이 막막하니까 남미 멕시코로 브라질로 아르헨티나로 하와이로 펴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세계 150여 개국에 600만 명이 나가서 살고 있습니다. 왜 흩으셨습니까? 오늘에 와서 눈을 뜨고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사도행전은 “그날에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8:1)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흩어지니라” 이 말은 언뜻 보면 불행이고 비극입니다.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에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냥 놓아두면 세상으로 퍼져야 할 복음이 정체되고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안주하니까 하나님이 강제로 흩으신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들이 상기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읽은 본문말씀입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오늘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과 가난으로 삶이 힘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 때가 곧 기회입니다. 새로운 방향을 잡을 기회이고 새로운 기회를 얻을 섭리의 시간입니다. 어떤 사업가가 실패하여 부도가 났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을 실감나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고백한 말이 있습니다. “사업의 실패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가장 큰 은혜였다.” 고난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나를 향한 싸인 이고 나의 삶에 개입하신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아픔과 고난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개입하시고 다가오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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