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교회여 거룩하고 순결하라 (요 17:16-2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2. 23. 08:57

교회여 거룩하고 순결하라

17:16-22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

하게 하옵소서

 

오늘은 우리교회 창립주일입니다. 우리교회는 19551월 마지막 주일날 창립되었습니다. 그래서 금년으로 59주년을 맞이하게 되고 이제 내년이면 6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함께 하시고 부흥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우리나라에 교회가 약 7만개 정도 있다고 합니다. 해외에는 약 25백개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참 대단합니다. 오늘 한국인은 이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곳이 없습니다. 또 한국인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가기만 하면 먼저 교회부터 세웁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운 다음에는 꼭 싸웁니다. 틀림없는 현상입니다. 이같은 모습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싸우는 것도 좋은 현상입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열심이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사람이 열심이나 열정이 없으면 싸우지도 않습니다. 잘 싸우는 사람은 대부분 열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살아가는데 맥아리가 없고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들은 싸우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흔히 건물을 교회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예배당입니다. 교회는 예배당에 모인 성도들을 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름받아 예배드리려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름받은 교회들에게는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을 성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인 성도들은 거룩을 지향해야 합니다. 거룩해 지려고 노력해야 하고 힘써야 하고 거룩을 흉내라도 내려고 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본문은 예수님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 즉 교회들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시면서 교회는 몇가지 조건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즉 교회에게는 몇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말씀

 

1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버지여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여기서 진리는 말씀과 복음을 말합니다. 교회에는 반드시 진리, 말씀, 복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성도는 말씀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성도가 세상에서 반듯하게 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 이 시대는 교회와 성도에게서 말씀이 사라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늘 설교에 철학과 이론과 내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말씀대로 중심있게 살려는 의지가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힘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제도도 건물도 숫자도 모양도 역사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먼저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1511년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수행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교황청이 있는 이태리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30세 되던 해였습니다. 그는 공무를 마치고 빌라도 계단을 찾아갔습니다. 그 계단은 무릎으로 기어오르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는다는 전설이 있는 계단이었습니다. 루터는 계단을 밑에서부터 무릎으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옷이 찢기고 살이 터지고 피가 흘렀습니다. 그래도 특별한 은혜를 입기 위해서 참고 올라갔습니다. 그러다 순간 루터가 깨달았습니다. “이게 아닌데, 고행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데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때 루터의 머리속에 로마서의 성구들이 불현 듯 생각났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 그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다!” 루터는 그 즉시 일어나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6년간 깊은 묵상을 하고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151793195개의 조항을 내 걸은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중세 시대 기독교를 냉철하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중세기독교는 형식, 제도, , 모양은 아주 세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있었지만 사제들만 읽었고 일반인들에게 보여주지를 않았습니다. 못 읽게 하였습니다. 자국어로 번역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을 번역하여 일반인에게 읽게 하려고 했다가 종교재판에 회부하여 화형을 시키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러니까 중세시대는 외형은 그럴 듯하게 있었지만 말씀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외형은 그럴 듯한데 내면이 텅 빈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쇠락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웅장하고 크고 사람은 많은데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중보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이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했으면 합니다. 교회는 말씀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거룩

 

두 번째 요소는 거룩입니다. 17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룩은 순결입니다. 거룩과 순결은 교회의 생명의 요소입니다. 요한복음 1:14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의 성육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교회에 말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넘치고 있습니다. 성경을 한해에 50, 60독 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일일이 손으로 필사해서 책으로 만들어 아들에게 딸들에게 나눠 주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은 넘치는데 그 말씀이 성육신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말씀은 있는데 말씀이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되는 일이 앖다는 말입니다. 즉 말씀화가 안되어 신앙과 불신앙이, 성과 속이 구분이 안되는 것입니다.

어느 처녀가 이런 배우자를 주세요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 조건 가운데 하나가 권사 시어머니 말고 집사 시어머니를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권사가 얼마나 좋은 직분입니까? 그럼에도 집사 시어머니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처녀는 권사에게서 말씀이 성육신 되지 않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괜한 일로 권위만 내세우고 고집이나 부리고 주장만 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이중적인 모습에서 그만 실망하였을 것입니다. 무늬만 목사요 장로요 권사이기에 쓸데없이 고집이나 부리니까 교회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 말씀은 있는데 그 말씀이 성육신이 안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삶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교회들이 너무 혼탁하고 오염되고 갈등이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성도와 비성도 간의 구분이 없어졌고 성과 속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가 거룩을 상실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갈등이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가관인 것은 그렇게 싸움을 하면 경찰이 와서 말립니다. 어떤 교회는 두 패로 나뉘어서 한쪽은 1층에서 한쪽은 2층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서로 정의를 말하고 진리를 말합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거룩과 순결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거룩과 순결은 교회 공동체를 떠받치는 힘이고 기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저들을 거룩하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외형도 중요하고 역사도 중요하고 숫자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룩입니다. 이 거룩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말씀에 충실할 뿐 아니라 이 거룩을 유지하였으면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실력입니다.

하나됨

 

또 하나는 하나됨 입니다. 교회는 거룩과 순결과 말씀이 있어야 하고 또 하나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1절 말씀에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라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또 에베소서 4장을 보면 하나님 안에서 부름받은 너희는 십자가를 지시고 화목제물로 죽으신 예수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를 알고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을 따라 너희도 하나 되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주도 한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분이시니 너희도 하나 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너무 열심을 내려고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더 많이 일 하려고 애쓰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 하나가 되기 위해서 더 애써야 합니다. 오늘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갈등하고 갈라지고 찢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약화되고 거룩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남은 것은 인간주의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무엇보다도 교회공동체가 하나되기 위해서 은사를 발휘해야 합니다. 먼저 온 사람은 나중에 온 사람에게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성격이 독특한 분은 스스로 자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 공동체가 원만히 유지될 수 있습니다. 언어가 거친 분은 절제해야 합니다. 마음대로 내뱉으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분은 멀리서 오는 분을 위해서 차를 두고 걸어오던지 택시를 타고 오던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왔으면 정확히 주차해야 합니다. 그래야 후에 오는 분들에게 지장이 없습니다. 중간선에 애매하게 주차하면 다음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것들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모두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입니다.

한때는 IQ를 중시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능지수가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에는 EQ를 중시했습니다. 감성지수, 인간됨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NQ를 중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NQNetwork Quotion, 즉 공존지수를 말합니다. 즉 사람들과 얼마나 관계를 잘 운영하고 소통을 이루는가 하는 능력을 재는 지수를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소통이라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공존지수가 탁월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운영해 나가는데 이 공존 지수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공존 지수가 약한 분들은 자꾸만 내 관점 내 생각을 내세우게 됩니다. 그러면 갈등하게 됩니다. 먼저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부터 길러야 합니다.

거북이 한 마리가 부산에서 서울로 출발을 했습니다. 한참 가는데 지렁이가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 가냐고 물으니까 서울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렁이에게 내 등에 타라고 했습니다. 한참 가는데 굼벵이가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 가냐고 물으니 또 서울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서울 가니까 내 등에 타라고 했습니다. 거북이 등에 지렁이와 굼벵이가 함께 타고 서울을 가게 되었습니다. 가다가 굼벵이가 지렁이한테 주의를 주었습니다. “, 거북이는 되게 빠르다. 번개 같아. 잘못하면 떨어져 죽으니까 꽉 잡아.” 굼벵이 눈에는 거북이가 참 빨랐습니다. 그런데 옆에 토끼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세 존재가 함께 가는 것입니다. 굼벵이한테 아무리 거북이가 빨라 보여도 토끼가 보면 거북이는 느림보입니다. 그때 토기가 거북이 보고 느림보라고 놀리면 안됩니다. 거북이는 거북이대로의 장점이 있습니다. 굼벵이도 그렇고 지렁이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합니다. 그 이해 속에서 조화하고 존중하는 것이 하나됨의 요소입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고 존중하는 태도와 능력이 거룩이고 순결입니다. 교회에는 이 거룩과 순결이 있어야 합니다. 그 순결은 말씀이 내안에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해 내가 죽고 내가 성육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거룩하고 순결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 내가 주님의 성숙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역할

 

교회의 요소가 있다면 말씀, 거룩, 순결, 하나됨 그리고 역할일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과 순결이 있어야 기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야 힘과 파괴력이 생기고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거룩은 교회 공동체를 스스로 지키는 울타리이기도 합니다. 오늘 교회가 거룩을 상실해 보십시오. 존재나 가치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것이 버려진 소금입니다. 오늘 교회가 거룩성을 상실하면 세상으로부터 버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들이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고 비난받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이런 모습, 이런 역할을 감당했으면 합니다. 그런 모습을 마가복음 2장의 중풍병자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들것에 싣고 예수께 갑니다. 사람이 많아서 돌아가려다가 지붕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붕을 뜯어냅니다. 여러분은 이 지붕 뚫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기서 지붕이라는 말을 원문으로 보면 헬라어 도마(doma)라는 말로 써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지붕인가 하면 카라몬입니다. 카라몬은 타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예수님이 계시던 집의 지붕이 도마 카라몬 즉 타일로 된 지붕입니다. 오늘말로 말하면 콘크리트로 된 지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문에는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고(doma dia ton keramon)”라고 써 있습니다.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내렸습니다. 그 말은 뜯는데 수고와 힘이 들었다는 이야기이고 그 사람이 고침 받은 후에는 그 지붕을 원상복구 해주는데 돈이 많이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 모습을 예수님이 보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지붕을 뚫는 것은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혹 지붕을 생각했어도 타일이 깔린 지붕을 보고 뜯을 생각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중풍병자가 고침 받은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마가복음 2:5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은 이 중풍병자가 그 동료들 때문에 고침 받았다는 말입니다. 여기 이 들것을 들고 지붕을 뚫은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오늘 교회공동체 일원입니다. 오늘 교회에 먼저 온 사람들입니다.

옛날 시골에서 저녁이면 일제히 굴뚝에서 연기가 올랐습니다. 그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은 분명 먹을 것이 없거나 땔감이 없는 집입니다. 그러면 동네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나무 한 짐을 가져다가 헛간을 채워주거나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이 마을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옛날 순종은 저녁때가 되면 대궐문을 나서서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지를 조사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이 있으면 그날 저녁상을 물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세상이 얼마나 건강하였겠습니까? 그것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이고 정신입니다. 그 힘이 거룩이고 순결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아버지여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십니다. 왜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는가 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 거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는 제일 큰 교회도 아니고 제일 많이 모이는 교회도 아니지만 말씀과 거룩과 순결과 하나됨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하여 은사를 발휘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 교회는 은혜가 넘치고 힘이 생깁니다. 그 힘으로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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