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는 1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 전에 쓰인 성서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성직자의 본분이라고 밝혔다. 특히 강 주교는 지난 16일 선종 5주기를 맞은 고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리며 “김 추기경께서 살아 있었다면 거짓에 대한 질타를 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1977년부터 1998년까지 21년 동안 김 추기경 곁을 지켰다. 제주/취재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토요판] 커버스토리 사제들이여 일어나라
“정치·사회 참여는 역대 교황들 가르침”
강우일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에게 듣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강우일(68) 주교(제주교구장)가 사제의 정치·사회 참여에 대해 “(가톨릭)교회나 성직자는 사회문제에 대해 침묵하면 안 된다”며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강 주교의 이런 발언으로 천주교 시국미사와 관련한 사회참여 논란은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주교회의는 한국 천주교 최고의결기구다.
강우일 주교는 지난 19일 오전 제주시 관덕로에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청에서 <한겨레>와 만나 “성직자의 정치참여는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이어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마땅히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강 주교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불거질 때 앞장서서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 이를 위해 어떠한 정치적·사회적 활동도 망설이지 말라는 것이 역대 교황의 일관된 가르침이었다”고 전했다.
강 주교가 지난해부터 시국미사를 주도하고 있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정의평화위원회 등에 힘을 실어주면서 국가기관 대선개입 규탄과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천주교 시국미사는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에서는 지난 10일 광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17일에는 원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이 박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며 시국미사를 열었다. 24일에는 부산교구 사제단이 역시 시국미사를 통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할 예정이다.
강 주교는 2002년 10월 제주교구 교구장에 임명됐고, 2008년 10월부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가엾이 여기자
-1985년 주교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주교의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주교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건 교구 사제나 신자와 만나 복음을 선포하는 겁니다. 행정적인 일에 시간을 뺏길 때도 있지만, 각 본당 및 성당을 매주 방문해 미사를 드리고 교우들과 식사도 하면서 사목 현황을 살피는 사목방문에 시간을 많이 쓰려고 합니다. 한 교구의 사목 전반, 세속의 표현을 빌리면 입법·사법·행정에 관한 모든 권한을 주교가 갖기 때문에 책임은 무거운 반면, 정해진 임기가 없어서 부담스럽습니다. 빨리 은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웃음)”
-바쁜 일정 속에서도 각종 신문을 꼼꼼히 챙겨 보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왜 그리 관심이 많으십니까?
“주교나 사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복음, 곧 성서에 쓰인 하느님 말씀은 벌써 2000년 전에 하셨던 겁니다. 그 시대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그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연구하는 한편, 그 말씀을 지금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살피는 것이 성직자의 본분입니다.”
-신문을 펼치면 대개 좋은 소식보다 우울한 일,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더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왜 이런 것입니까?
“그렇지요. 저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답답하지요. 가슴 아플 때도, 울분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예수님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 했던 그 시대를 떠올려보곤 합니다. 예수님이 살던 세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배운 것 없고 기댈 곳 없는 서민들은 정말 암담했던 거죠. 바로 그때 예수님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편에 서서, 좌절하지 말고 하느님의 나라를 일으켜 세우자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저도 오늘의 세상만 보면 크게 희망이 보이지 않고 우리 사회가 자꾸만 뒷걸음치는 것 같아 걱정과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여전히 정의에 굶주린 사람이 많고, 불의에 맞서기 위해 자기 온몸을 불사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 속에서 하느님은 여전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사랑과 열정, 그것이 우리에게 희망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억하라 연대하라>라는 제목의 책을 내셨지요. ‘연대’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의 죄인이나, 종교생활마저 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던 이들을 모아 제자단을 꾸리신 뒤, 어디론가 그들을 보낼 때 항상 두 사람씩 파견하셨습니다. 힘없는 이들이 이 세상을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서로 연대하는 것밖에 없지요. 비록 힘이 미약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라도 정의에 목말라 연대하면, 악의 권력이나 세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맞설 수 있다고 봅니다. 잘못된 권력과 제도, 구조에는 혼자 맞선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기둥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것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힘없는 사람들, 정의롭지 못한 권력으로부터 탄압받는 사람들은 지금 제대로 연대하고 있습니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누구나 힘있는 사람의 편에 서고 싶어하지요.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어디에 서야 편하게 살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는지 잘 압니다. 정작 힘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힘을 모아야 하는지도 모를 때가 많지요. 복음에도 예수님은 항상 힘이 없어서 고통받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힘없는 우리에게도 서로가 서로를 가엾이 여기고, 상대방의 고통을 내 것처럼 받아들이는 마음이 작동할 수만 있다면 굉장한 힘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도 로마제국 치하에서
버림받은 이들 편에 섰다
역대 교황도 교회가 사회문제
바로잡기 위해 정치참여를
망설이지 말라고 가르쳤다
김수환 추기경님 계셨다면
인간을 존중하고 연민하며
거짓을 질타하지 않을까 싶다
김용판 재판처럼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일 너무 많다
교회의 세속화 경계해야
강우일 주교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과정이야 어쨌든 성공하면 된다, 이런 사고가 깔려 있다. 때로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며 그 대표적 사례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법원의 무죄 선고를 꼽았다. 강 주교 인터뷰는 지난 19일 오전 제주시 관덕로에 있는 제주교구청에서 이뤄졌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종북·빨갱이 공격 나도 두렵다
그런 딱지 붙여 단죄하긴 쉬워도
강기훈·유우성씨처럼
당하는 이들의 삶 평생 망가져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한국과 한국 교회에 관심 많아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 위한
메시지를 주지 않을까 한다
난 이미 종북으로 찍힌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는 정권이 하는 일에 반대의 목소리를 낼 때, 대개 종북세력이라거나 빨갱이라는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강 주교께서는 그런 공격이 두렵지 않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운 마음이야 다들 똑같지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내란음모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을 때 강 주교님이 그의 무죄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에 이름을 올리셨다면서요. “그의 정치적 주장 및 노선에 대해 제가 깊이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문제가 됐던 모임에서 실제 국가를 전복하려는 구체적 계획 등은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때 운동권에서 격렬하게 활동했던 그분들이 다소 과격하게 들리는 말을 서슴지 않은 부분만 문제 삼고 있는데, 사회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울분 속에서 일부 과격한 언사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배경에 대해 우리가 이해한다면, 그들을 그저 ‘종북’, ‘빨갱이’로 몰아세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종북몰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십니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만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이들에게 딱지를 붙여 단죄하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역적’이, 일제시대에는 ‘비국민’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적이든 비국민이든 용어는 다르지만 그 피해는 지금의 종북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딱지를 붙여 단죄하는 건 참 쉬울지 몰라도, 당하는 이들의 삶은 평생 망가지는 겁니다. ‘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지금 또 증거 서류까지 위조해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간첩으로 몰린 유우성씨라는 분의 고초는 말도 못할 겁니다. 사람 인생을 그렇게 망가뜨리면…, 그렇게 단죄한 분들 나중에 하느님 대전에서 뭐라고 변명을 하실지 모르겠네요.” -점점 강 주교님께 ‘종북 딱지’가 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 수 없죠 뭐. 이미 종북으로 찍힌 것 같아요.” -강 주교님이 이렇게 사회적 쟁점에 대해 말씀하시면,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비판론이 제기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 상처를 받지는 않으십니까? “있지요.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분들을 포함한 우리는 모두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원래 정치적·사회적 문제는 부자지간, 형제지간에도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걸 갖고 서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서운하실 때 있지요? “네, 서운하기야 합니다.(웃음) 왜 우리의 진심을 몰라줄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구실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가르침을 충분히 알리지 못한 성직자로서 먼저 자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국미사와 이에 따른 사회참여 논란 등으로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천주교계에는 여러 경사가 있었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는 두 분의 주교가 동시에 서품을 받았고, 서울대교구장을 맡고 있는 염수정 대주교님은 추기경 서임을 받으셨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시복(복자로 추대함) 발표도 있었는데요, 이런 겹경사가 잇따르는 배경은 뭔가요? “서울(대교구)에서 주교 두 분 나신 거야 은퇴하신 분 때문에 공석이 생기니 빈 주교 자리를 채운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만, 시복 결정은 한국 교회의 위상을 세계 속에 더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시복 결정으로 124위나 되는 순교자를 우리가 공식적으로 복자라 칭하고 모시게 됐습니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분들처럼 순명을 던져 복음을 증언하고 행동하신 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교회를 만들어야 할 텐데,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그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마냥 경사라고 기뻐하기보다 우리에게 그분들의 성덕과 순교적 삶을 이어받으라는 새로운 책임이 주어진 것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천주교계 일각에서는 최근 경사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방한은 확정적인 겁니까?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한국 주교회의가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교황께서 충분히 경청하셨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이뤄진다면 그 의미는 어떤 것인가요? “한국을 방문하신다면 아마 8월 가톨릭 아시아 청년대회가 있으니 거기에 참석하시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오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124위 시복 결정이 바티칸에서 최종적으로 이뤄졌는데, 대개 시복식을 교황께서 직접 집전하기보다 교황께서 보내는 특사가 집전하는데, 이번에 오신다면 시복식도 직접 주재하시리라 봅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과 한국 교회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한국에 오시면 남북 화해를 향한 메시지를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주/최성진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