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에덴동산에서 본 하나님의 인간사랑! (창 2:7-17)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4. 27. 07:51

에덴동산에서 본 하나님의 인간사랑! (창 2:7-17)

 

  창세기는 성경 중 제일 앞에 있는 책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것의 시작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천지만물의 시작입니다. 인류의 시작입니다. 가정의 시작, 생산의 시작, 시험의 시작, 범죄의 시작, 살인의 시작, 심판의 시작, 믿음의 시작, 구원의 시작, 언약의 시작', 등등 모든 시작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모르고서는 이러한 모든 것의 시작을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을 모르고서는 이 모든 것의 본질을 알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를 모르면 참다운 '세계관, 인생관, 가정관, 또 시험에 대하여, 죄악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이것, 저것 창조하신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었다고 하여 만든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 저것 만드신 그 창조주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며 능력이 크시며 사랑이 많으신 가를 알아야 합니다. /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하늘의 별, 뭉게구름, 무지개, 꽃, 벌과 나비, 오곡백과도 다 우리를 위해 지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그것으로 부족하셔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창1:3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지만, 신랑 신부를 위해 신방을 꾸미듯이 아담과 하와를 위해 더 좋은 것으로 에덴동산을 꾸며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춰 있습니다. 그것을 몽땅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할/ ◀제목 소개!▶

 

  ①'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창1:1).
  창1장에 하나님은 첫째 날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둘째 날 하늘을 창조하셨고, 셋째 날 땅과 바다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까요?
  ⑴'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8) 물로 가득 찬 지구를 위에 있는 물과 아래에 있는 물로 나누어서 그 중간에 하늘을 두셨습니다. 그래서 하늘 위에는 많은 물이 있습니다.
  ㈀하늘의 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비가 내려야 모든 사람과 식물과 모든 짐승이 살 수 있습니다.
  ㈁하늘의 물은 '하나님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하늘의 물은 인간을 보호해준 온실입니다. 노아 홍수 때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고 했는데 그 창을 닫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하늘 위에 있는 물 층이 터진다면 이 지구촌은 제2의 노아의 홍수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또 하늘의 물은 '심판의 수단'을 의미합니다. 노아 홍수가 바로 그것입니다.
  ⑵바다입니다(9-10). 시104:9절에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장엄한 바다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능력을 찬양합시다.    ⑶땅입니다(11-12). 그 땅에 먼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을 태양이 있기 전에 식물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태양이 있어야 식물이 자라고 태양이 있어야 낮이 있고 모든 것을 태양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이다. 태양이 없어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식물을 살릴 수 있고, 태양이 없어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영광의 밝은 빛으로 낮을 만드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의 중심은 태양이 아니라 모든 것의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믿/할/ 

 

  ②에덴동산을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창2장)
  2장은 아담이 살아갈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내용으로, 먼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그 에덴동산 중앙에서는 강이 발원하여 한 줄기로 흐르다가 네 개로 나뉘어 흘러 각각 강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에덴'의 뜻은 '큰 즐거움'입니다. '에덴동산'은 '큰 즐거움이 있는 삶의 터전'입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물이 없으면 죽습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그 생명수 강이 하나만 흘러도 좋은데 네 개나 흐릅니다.
  그 네 강의 이름은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입니다. 네 강이 주는 교훈이 다양합니다.
  ⑴비손은 축복이 흐른다는 뜻입니다. 비손 강은 풍성한 축복이 흐르고 그 바닥에는 금, 진주, 보석이 깔렸습니다. ⑵기혼은, 은혜가 가득 차게 흐른다는 뜻이고, ⑶힛데겔은 화살처럼 시원하고 빠르게 흐른다는 뜻이며, ⑷유브라데는 달콤하고 시원하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유브라데 강에서 식수를 길어다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에덴동산은 한 마디로 아름답고 즐겁고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지상 최고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성경 70인 역에 보면 낙원(The Paradise)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땅을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할/

 

  ③인간은 진화된 것이 아니고 창조된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기원이 나옵니다(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우린 여기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진흙을 이겨서 어린아이를 공작한 것처럼 만드셨는가 보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진흙은 그런 진흙이 아닙니다. 원어의 흙은 '티끌, 먼지'라는 그런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흙은 히브리어로 '아팔'인데 우리말 성경에는 '아담'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사람이란 뜻이 되고, 첫 사람의 이름도 되고 흙이란 의미도 됩니다. '아담아! 티끌아! 먼지야!' 그러니까 인간이 대단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교만은 금물입니다. 하나님은 진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를 만드시고 영혼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그때서야 비로소 사람이 생명을 얻어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육체가 귀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영혼이 귀한 것입니다. /믿/ 영혼이 떠나가 버리면 육체는 썩어져 냄새가 나고 티끌로, 흙으로 먼지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 우리의 육체입니다. /할/
  아무리 양귀비처럼 예쁜 미인이라도 영혼이 떠나가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육체만으로는 절대로 존귀한 존재가 아닙니다. 영혼이 귀한 것입니다. 육체는 영혼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육체에다 생명을 불어 넣어주셨을 때, 그가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귀한 자로, 하나님을 닮은 자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가 된 것입니다. /믿/아멘!/
  우리 장로교회는 칼뱅주의인데 칼뱅주의는 오늘 본문을 토대로 해서 인간을 이분 설로 봅니다. 영과 육으로 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알아야 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본질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본질, 우리의 근원, 우리의 체질은 흙입니다. 흙이라도 흙먼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흙도 아닌 흙먼지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보십시오.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자동차를 만들어 타고,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 빌딩을 짓고 큰 도시를 만듭니다. 달과 우주를 정복하려고 연구를 합니다. 그 하는 일이 참으로 대단하고 굉장해서 사람은 다른 어떤 피조물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원숭이와 사람, 짐승과 사람의 차이는 감히 견줄 수 없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본질은 흙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할/
  3:19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흙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흙이라 스트레스를 조금만 받아도, 조그마한 병균이 들어와도 휘청거리고 죽습니다. 자동차에 부딪혀도 일그러지고 죽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흙이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몇 만 명의 사원을 거느린 CEO이고, 몇 억만 금을 쌓아놓은 부자이고, 하늘을 찌를 만한 권세가 있다 해도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믿/
  우리는 흙입니다. 오늘밤에 집으로 가다가 자동차 사고로 죽을 수 있는, 질그릇같이 연약한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겸허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
  ⑴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인간이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흙, 먼지, 티끌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곳에 한 때는 물이 덮여 있었고 잡초가 자랐을 것이고, 짐승들이 뛰어다니며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흙의 원소에서 인간이 지음을 받았다면 하나님 앞에 인간은 마땅히 겸손해야 합니다. /아멘!/  

  일찍이 예레미야는 렘9:23-24절에서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사40:7절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할/
  ⑵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여기 '지으시고'는 '야차드'인데 '형성하다. 만들다.' 즉 '토기장이처럼 만들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64:8절에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아멘!/
  저와 여러분은 진흙으로 지음 받은 질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금으로 지었다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흙으로 지은 몸에다가 죄악의 때까지 묻은 별 볼일 없는 존재가 우리입니다. 기분 나쁘십니까? 그러나 사실입니다.
  또 우리의 몸은 질병에 걸려서 금이 많이 갔습니다. 우리의 몸은 이병, 저 병을 앓으면서 심장도 금이 가고, 위장도 금이 가고, 그러므로 자랑할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 교만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할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행5:29절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할/
  주께서 만든 인간 그릇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진리로 가득 채워지면 귀하게 보이지만 욕심과 음란과 강포와 교만이 담겨져 있다면 아무 유익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대로 인간이 쓰여지면 귀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스르면 그 그릇을 깨뜨려 버리십니다. /믿/
  ⑶인간은 흙으로 지음 받았으므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그가 온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전1:5-7절에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 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인간은 흙으로 취해진 것처럼 머지않아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흙으로 지어진 존재는 이 세상에 오래 있지 못합니다.
  시90:10절에서 모세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약4:13-14절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利)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할/
  아침에 안개가 가득할 때는 굉장합니다. 비행기도 뜨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개는 사라집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는, 이렇게 무리를 지어 살아갈 때는 굉장해 보이지만, 그러나 시간의 바람이 불면 우리는 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찰스 다윈이 '해리옷'이라는 이름의 거북이 한 마리를 길렀다고 합니다. 그 거북이는 몇 십 년을 길러도, 아무리 오래 길러도 변함 없이 거북이입니다. 거북이가 억만 년이 지나면 사람이 되겠습니까? 원숭이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대로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찰스 다윈은 죽었는데 그 거북이는 얼마 전에 180살 생일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거북이를 기르고 있는 호주 동물원에서 생일잔치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지금 30파운드(약 14kg)의 그 거북이가 지금까지 제일 오래 산 동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데,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30년은 더 살 것이라고 합니다.
  거북이는 180살을 넘게 사는데 사람은 그만큼도 못 살고 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그 날의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믿/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은 인간의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죽음은 만인의 공포입니다. 옛날 진시황제는 죽음을 면해 보려고 불로초와 불사약을 구해보았지만 그는 죽어 한줌의 흙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영웅, 호걸, 열사, 미인, 그 누구도 죽음의 길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보세요! 시90:3-4절에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이런 인간들이 하나님께 뭐 잘났다고 교만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할/
  ⑷하나님이 인간에게 영혼을 주셨으므로 영생할 수 있는 길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떤 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아멘!/할/

 

  ④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의 교훈은 무엇인가?(8-9)
  하나님은 동방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에덴이란 말은 '기쁨, 즐거움, 희락, 낙원'이란 말로 헬라어로는 '파라데이소스', 영어로는 '파라다이스'입니다.
  하나님은 기쁨의 동산, 행복의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에게 지키고 관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의 교제 장소로서 육신을 물질도 만족할 수 있는 곳이고, 영혼을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로 만족할 수 있는 곳입니다. 또 그곳은 거룩한 장소이므로 죄가 없는 곳이고, 죄인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이 동산 한복판에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를 주셨는데 생명나무를 주신 것은 그 과실을 먹을 때마다 생명은 하나님께 온 것이라는 소속감을 알게 하셨고, 생명의 기원을 알게 하셨으며 아담과 하와의 신분의 존엄성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아멘!/
  ▶또 선악과를 주신 것은 몇 가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⑴하나님과 사람의 교제의 규범을 보여 주어 질서를 알게 하셨고,
  ⑵계명의 원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계명을 순종할 때 축복이 되고 거역하면 저주가 임함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⑶선악과는 인간창조의 목적을 알려주는 나무였으며,
  ⑷중요한 것은 마귀가 존재하고 죄가 있다는 사실을 경계시킨 나무입니다.
  ⑸선악과의 더 큰 의미는 인간에게 자유는 있지만 그 자유는 제한된 자유임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한마디로 에덴동산은 인간이 철저하게 하나님께 소속되었다는 사실과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살아야 생명을 유지하게 되고 나무는 뿌리를 흙에 두어야 살 수 있듯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설 수 없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믿/아멘!/
  16-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구별하여 살도록 한 계명을 주셨는데 그 계명이 '선악과의 계명'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절대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건강, 자녀, 사업, 물질, 명예, 성공, 상대적인 것입니다. 상대에 따라서는 약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습니다. 또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안에서는 영원한 안식과 생명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요 그 계명자체가 바로 생명입니다. /아멘!/

 

  ⑤에덴동산에 흐르는 4개의 강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10-14)
  에덴동산에서 발원하는 4대강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주는 강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한국에는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섬진강 등 여러 강이 있어서 한국 벌판을 기름지게 하며 윤택하게 하듯 에덴동산에는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라는 4대 강이 있습니다. 이 강으로 아름다운 에덴을 더욱 빛냈으며 아름답게 했습니다.
  우리가 상징적으로 생각해보면 에덴은 우리의 심령을 뜻함이요, 강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강은 인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합니다. 인류 역사를 찬란하게 꽃 피우는 풍요로움을 준 것은 다 강물을 통해서입니다.
  애굽 문화는 나일강변에서, 바벨론 문화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에서 나왔습니다.
  강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지역의 경계선입니다. 그러므로 강을 건넌다는 것은 그 경계선을 넘는다는 것입니다. 강을 건넌다는 것은 그만큼 개인이나 민족역사에 큰 영향을 던져주고 전환기를 이루게 합니다. /할/
  ㉠히브리인이라 함은 이스라엘민족을 가리킵니다.

  히브리라는 뜻은 야곱과 요셉의 일가족이 나일 강을 건너온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⑴아브라함은 믿음의 강을 건너온 사람입니다. 창12장은 고향 갈대아 우르를 75세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시하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유프라테스 강 하류로 비옥한 땅으로 덮어져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비옥한 땅을 두고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⑵야곱도 기도의 강을 건넜습니다. 얍복강의 기도의 강을 건넜습니다. 야곱의 기도는 생명을 건 기도입니다. 홀로 남은 자의 기도였습니다. 간청하는 기도였습니다. 회개하는 자의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인 기도의 강을 건너는 자에게 만나주십니다.
  ⑶모세는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고, 여호수아는 그 백성들을 거느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⑷엘리야와 엘리사도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왕하2:8절에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으려고 한사코 그를 따라 다녔으며 요단강을 가르는 능력까지 받았습니다. /할/
  ⑸우리는 장차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강을 건너가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에덴은 우리의 심령을 의미하고, 강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에덴에서 흐르는 4대 강의 의미가 다양합니다.
  ⑴첫 번째 강은 '비손강'으로, ㈀'풍요, 부요'란 뜻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부족한 것이 없는 모든 면에서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풍요롭습니까? 어떤 것을 얼마나 채워야 만족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산더미같이 재물을 쌓아 놓고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가난 가운데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면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아멘!/
  ㈁이 강은 또 '충만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마 때만 물이 있고, 가뭄 때는 물이 없는 그런 강이 아니라 사시사철 수원이 충만한 강입니다. 이 강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충만히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되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아멘!/
  인간의 작은 심령으로는 형제의 허물 하나도 용납할 수 없으나 성령의 능력을 충분히 받게 되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 강은 금으로 뒤덮여 있으며 정금도, 진주도, 호마노도 있습니다. '베델리엄'은 진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는 즐거움도 주셨지만 그 위에 충만한 물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보석들까지 주셨습니다. /할/
  ⑵두 번째 강은 '기혼강'입니다. ㈀이 강은 주위로 '흘러 넘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충만한 자는 또한 흘러 넘쳐 이웃에게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충만한 성령은 예루살렘으로 넘쳐났고 예루살렘의 충만했던 성령도 다시 온 유대 땅으로 넘쳐났고 온 유대에 충만했던 성령도 사마리아 땅 끝까지 흘러 넘쳤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기혼 강처럼 흘러 넘쳐야 합니다. 기쁨이 넘쳐 찬미가 되고 간증이 넘쳐 전도가 되고 간절한 소원이 넘쳐 기도가 되고 감사가 넘쳐 눈물이 되고 생명이 넘쳐 영원히 사는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멘!/
  ㈁또 '은혜'라는 뜻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넘쳤던 곳입니다. 그곳은 아담이 일군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땅입니다.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은혜의 잔이 넘쳤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도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다(딤전1:14)'고 했습니다.
  ⑶세 번째 강은 '힛데겔강'입니다. ㈀'급히 흐른다.'는 뜻입니다. 충만한 자는 넘쳐흐를 뿐 아니라 신속하게 넘쳐 흐름을 의미합니다.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신속하게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 '결실'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가 언제나 풍성했습니다(9). 여러분의 삶에 얼마나 많은 열매들이 맺히고 있습니까?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열매가 열릴 수는 있으나 결실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예수 안에 오십시오. 풍성한 열매가 열리게 됩니다.
  요15: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할/
  ⑷네 번째 강은 '유프라테스 강'입니다. ㈀'달다.'는 의미입니다.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곳에는 사막이 변하여 옥토가 됩니다. 한마디로 유프라테스 강과 같은 성령이 지나가면 우리 메마른 쓴 가슴에 옥토가 되어 변한다는 것입니다.
  사막이 옥토로 변하듯이 쓸모 없는 자는 쓸모 있는 자로, 저주받은 자는 축복 자로 절망과 좌절이 소망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실패는 성공으로 하나님은 에덴을 지으시고 4대 강을 흐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처럼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아멘!/
  ㈁또 '능력'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했던 곳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인간을 축복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 모든 것을 쓸어버릴 능력도 하나님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죄가 있는 곳에 심판이 있습니다. /할/
  창13:10절에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께서 멸하기까지는 에덴동산처럼 아름답고 물과 풀이 풍성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꿔졌습니까? 창19:24-25절에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멸하실 때에 그 성과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뒤집어엎어서 멸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온 땅을 뒤집기도 하시고 엎으시기도 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노아 홍수 때는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도 구멍을 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없는 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데서 살리시는 분입니다.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이 땅을 다시 멸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 잘 믿고 살아야 합니다. /할/

 

  ⑥지금도 우리의 삶의 터전을 우리가 에덴을 에덴으로 가꿀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⑴에덴이 에덴 될 수 있는 처음원리는 '하나님 안에서'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리 보이는 에덴을 꾸며보아도 진정한 에덴은 없습니다.
  ⑵에덴이 에덴 될 수 있는 두 번째 원리는 '가정 안에서'입니다. 가정은 인간의 삶에 있어 기본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들고 제일먼저 가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대단해져도 가정이 무너진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마당을 쓸면서 살아도 가정이 안정된 사람입가엔 미소가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인간은 행복이 없습니다.
  마귀는 교회를 깨트리기 원하는 것만큼이나 가정도 무너트리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요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정을 가볍게 생각하고 파산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가족은 하나님이 맺어주신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가족을 맺어 주실 때에도 일방적이기보다는 필요를 인식하게 하셨습니다. 아담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짝이 있어야 함을 먼저 필요를 인식하셨다는 데 놀라움이 있습니다. 필요를 인식시키고 가정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족관계를 절대관계라 합니다. 다른 관계들은 상대적인 관계입니다. 자신의 사정에 따라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정은 절대적인 관계입니다. 이웃들과는 다릅니다. 가족문제가 안정되지 않으면 에덴이, 에덴이 될 수 없습니다. 
  ⑶에덴이 에덴 될 수 있는 원리 세 번째에는 '성령 안에서'입니다. 창1:2절에 보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곧 하나님의 신인 성령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있지만 하나님의 신이 운행할 때 창조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강력하게 임할 때 혼돈 즉 무질서가 질서로 공허 즉 텅 비어 있음이 충만으로 흑암 즉 어두움이 빛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⑷에덴이 에덴 될 수 있는 원리 네 번째는 '말씀 안에서'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우주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떠나서는 에덴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할/
  ⑸에덴이 에덴 될 수 있는 원리 다섯 번째는 '노동 안에서'입니다. 일하는 것이 주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⑹에덴이 에덴 될 수 있는 원리는 장소보다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에덴이 에덴 되는 축복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멘!/

 

  ⑦에덴동산을 주시고 금령을 주신 하나님!(15-17)
  독일 통일 이전에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동독에서 베를린 장벽을 넘어 개 한 마리가 넘어 왔습니다. 서독의 개가 물었습니다. '얘 너는 어떻게 목숨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넘어 왔니? 동독에는 먹을 게 없나보지?' 동독 개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서독 개가 되물었습니다. '그럼 왜 온 거야? 집이 없어?' 동독 개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니까!' 진짜 궁금해진 서독 개가 계속 묻습니다. '정말 궁금하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온 거야? 먹을 거 있고 집 있으면 됐지. 무얼 더 바라? 참 이상하네.' 그러자 동독 개가 정색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모르는 소리 말아. 그런 건 견딜 만해. 모름지기 개는 짖고 싶을 때 마음대로 짖어야 되는 거란 말이야. 어디 마음놓고 짖을 수가 있어야지. 답답해서 넘어 왔지.'
  무슨 이야기입니까? 인간에게는 무엇보다 자유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속박을 당하고 갇혀서는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유명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기억할게 있습니다. 인간에게 자유가 필요하지만, 인간은 결코 무제한의 자유를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일정한 범위 내에서의 자유입니다. 다시 말하면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동독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박탈하는 '속박의 울타리'였습니다. 그러나 서독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뭡니까? 정반대로 자유를 지켜주는 '보호의 울타리'였습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물고기의 자유는 '물 속에서의 자유'입니다. 만일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가면 자유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죽음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자유는 '울타리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지고 행복할 줄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100% 착각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만 참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죄요 죽음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약을 합니다. 자유입니까? 자기는 자유라고 강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요?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은 것입니다. 계속 그러다 보면 자신이 마약을 하는 게 아니라 마약 중독으로 속박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죄요 방종이며, 그 결과는 죽음이요 멸망입니다.
  인간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유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어감으로 오히려 자유를 박탈당하고 고통을 당합니다. 영원한 멸망으로 돌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거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요 기쁨이요 행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울타리를 보자! 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서 '동산'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히브리어 성경 원문을 보면 '칸'이라는 단어로 '울타리를 치다, 보호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동산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으로 보호하기 위해 조성해 놓으신 울타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사는 것은 속박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고는 지키고 다스려서 운영이 잘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대자연을 인간들에게 잘 지키고 보존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산에 가서 예쁜 돌만 있어도 무조건 자기 집으로 옮겨놓고 예쁜 나무만 있어도 옮겨 놓습니다.
  하나님은 대 자연만 지키고 보호하라고 하시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가정, 교회, 사회' 이 모든 것을 다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누가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잘 가꾸고 보호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주께서 피 값으로 세우신 이 몸 된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가정과 교회당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다스린다는 것은 흔히 임금이 백성을 다스릴 때 군림과 착취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다스림은 군림이 아닙니다. 관리자로서, 청지기로써의 다스림입니다. 한마디로 더 많은 것을 남기고 발전시키고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낙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일을 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을 하지 않고는 행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
  여러분, 노숙자에게 '행복하십니까?'하고 물어보십시오. '기쁨이 있습니까?'하고 물어보십시오. '보람이 있습니까? 정신적인 만족이 있습니까?'하고 물어보십시오. 다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일이 없으면 얻는 것이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그래서 초라합니다. 그런데 일을 해 보세요! 땅콩을 뽑으면 수십 개의 땅콩이 줄기 째 딸려 나옵니다. 고구마 뽑아도, 감자를 뽑아도 한 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몇 개씩 딸려 나옵니다. 이렇듯 일하면 기쁨, 보람, 축복, 물질이 다 따라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5:17절에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이 행복입니다. 일이 많다고 절대로 짜증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할/
  16절에서는 각종나무의 실과를 임으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임으로 먹되 먹고 싶은 대로 먹으라, 자유대로 섭취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단지 하나 만은 조심하도록 당부했습니다. 17절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할/
  모든 나무 열매를 마음대로 먹으라는 것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에는 한 가지 제한조건이 있었는데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善惡果)는 먹지 말라는 겁니다.

  동산 중앙에는 선악과 외에도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이건 얼마든지 먹어도 됩니다.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일종의 신호(signs) 즉 표지판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서 에덴동산 어디서나 잘 보이도록 중앙(center)에 위치시킨 것입니다. 생명나무는 인간의 자유를 의미하고, 선악과는 자유의 제한 범위를 표시합니다. 그 제한 범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게 마땅합니다. 그것이 생명이요 축복입니다. 그런데 만약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짐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먹지 말라 하셔서 사람을 죄 짓게 하셨나? 하나님이 이해가 안 된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머리로 어떻게 하나님을 이해하겠습니까? 그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며 살 때 축복이 옵니다. /믿/아멘!/ 선악과를 먹고 선악을 안다는 것은 선과 악을 분별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혼자 판단한다는 말입니다. 전에는 '하나님, 이것이 선입니까? 이것이 악입니까?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했는데 이제는 자기가 하나님처럼 판단해서 자기가 사는 것입니다.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간 것입니다. 그것이 망하는 길입니다. /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것 다 따먹어도 이것 하나만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쉽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엄마가 외출하면서 과자를 많이 사다놓고 이것저것 다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쪽에 의자 밑에 있는 것은 '먹지 말라, 그것은 쥐약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심을 시험해 보십니다. '먹거나 먹지 않거나'는 인간의 의지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대로 먹었다면 정녕 죽을 것이고 먹지 않았다면 살 것입니다.
  '정녕 죽으리라!'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최초의 행위언약입니다. '하라, 하지 말라' 이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거역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엄마가 나가면서 이르고 간 말이 궁금하고 의심이 생겨 정말일까 한번 먹어봐야 쥐약인지 아닌지 알 것이니 먹어봐야지 하고 먹어 봤다면 그 아이는 생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먹으면 이 어린아이가 쥐약을 먹은 것처럼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죽음이 틀림없이 찾아오게 됩니다. 여기서 죽음은 영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 죽음입니다. 왜 그런지 아시지요? 그 분이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과 관계가 두절된 것이 영적인 죽음입니다. /믿/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거운 계명을 주시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의 사도요한은 그의 서신 요일5: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주시고 또 어려울 때는 피할 길도 주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분의 계명이 무겁다고 피합니다.
  여기 아담에게도 주신 것은 전부이고, 금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육일은 전부 우리의 날이며, 하루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전부 주시고 하나 만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표로 순종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할/
  신앙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든 축복은 순종하는데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먹고 하나만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 하나를 못 지킵니다. 열 개를 주고 하나만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는데 그 하나를 못 내놓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위계약을 체결하시고 바른 행위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셨으나 아담은 그 하나님의 기대를 실망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의 동산 축복의 동산인 에덴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그 때부터 인간은 죽음이 왔고 인간의 모든 근본 문제들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여자의 후손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에덴의 회복도,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도, 모든 인간의 근본문제의 회복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로 믿으면 회복이 되는 것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2014년 4월 27일 대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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