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내가 죽어야 내가 다시 사는 진리! (요 12:24-2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5. 4. 07:51

내가 죽어야 내가 다시 사는 진리! (요 12:24-26)

 

  세월호의 침몰 사건은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세계에서 당시 제일 큰 배였고 제일 호화로운 배였던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날과 비슷한 날 침몰되어 관심을 모았습니다.
  전남 진도 해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 시점이 102년 전 타이타닉 침몰 시점과 유사한 것으로 확인이 되었답니다. 실제 진도 여객선 침몰시간은 4월 16일 오전 8시께 이며, 타이타닉 사고지점인 북해의 시차가 진도보다 8시간 빠른 점을 감안한다면 102년 전인 1912년 4월15일 오후 11시40분께 타이타닉 침몰 시간과 엇비슷하다고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타이타닉 호는 1912년 4월11일 승객 2,223명을 태우고 영국 사우스햄프턴에서 미국 뉴욕 항으로 출항하던 중 4일 만인 15일 오후 11시40분께 북대서양 뉴펀들랜드에서 빙하와 충돌해 침몰, 당시 선장을 포함한 1,500여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었습니다.
  세월 호 침몰이 날짜로는 타이타닉 침몰일 다음날이지만, 시점이 엇비슷하고 대형참사라는 유사성으로 세계 누리꾼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더욱 깊은 애도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시 사고가 나자, 타이타닉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승객 중 어린이, 여자, 노인 그리고 남자 순으로 탈출시켰습니다. 이성을 잃고 먼저 살려고 발버둥치는 남자들을 설득시키면서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700명을 살리고 자기는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그의 고향 영국 리치필드에서는 그의 업적을 그리며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한 말을 동상에 새겼습니다. '영국인답게 행동하라'
  그 후부터 선장은 사고난 배에서 제일 늦게 나와야 한다는 것은 100년 전통이 되어 왔습니다. 그 후 선장들은 배가 파선하였을 때 배와 운명을 같이 해 왔습니다. 102년 동안 배에서 도망친 선장은 딱 두 번이었다고 합니다.
  첫 번 사건은 이태리에서 있었습니다. 타이타닉 침몰된 지 꼭 100년 후 이태리 '코스타 콩크르디아'호의 선장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이 배가 파손되어 침몰되는 순간 300명의 승객을 배에 둔 채 도망쳤습니다.
  당국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배에서 나왔는가?' '간신히 탈출하였습니다.' '도로 배로 가라' '가라앉는 배로 다시 들어가라는 말인가요?' '그렇다. 가서 승객을 구하라' '못 들어갈 형편입니다.' '이 새끼야. 들어가!'
  그리고 기어코 그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후 세월호 이준석 선장이 두 번째입니다.
  ▶뉴욕타임지는 이 사건을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공포에 질린 수백 명의 승객을 배에 두고 맨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배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선장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버렸다. 그는 혼자 육지에 무사히 발을 디뎠는지는 몰라도 감옥에 내리게 되었다.'
  2시간 30분 동안 배가 떠있었습니다. 만일 선장이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할 마음을 가졌더라면 447명 승객도 다 살리고 자기도 살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습니다.
  안산 단원 고등학교 2학년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모두가 죽어서 없어지는 한국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생겼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을 깊은 바다 속에서 한 생명도 구하지 못한 천추의 한을 어른들이 남기고 말았습니다. 2호선 건대 전철역에서 본 지하철 노조에서 걸어 논 액자 속에 글을 소개합니다.
  <돈벌이에 눈먼 기업이 사고를 재앙으로 만들고, 무능한 정치인들은 재앙을 참사로 만들었습니다. 그저 돈이면 다라는 오만과 탐욕이 부끄럽고 욕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돈과 바꿔버린 세월 호는 아직도 대한민국 곳곳을 휘젓고 다니고 있습니다.... 침몰하고 가라앉아야 할 모든 거짓과 불의는 그대로인데, 아이들만 거기서 꽃잎처럼 지고 말았습니다.
  미안하단 말조차 미안합니다. 살아남은 어른들이 깊을 수 있는 길은 이제와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오눌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 영혼들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제목 소개!▶

 

  오늘은 한국 교회가 어린이 주일로 드립니다. 어린이는 꽃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주일을 꽃 주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어린이들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무시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직 미성숙하고 어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무시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너무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는 일입니다. 어린이들은 미래의 주인이고 미래를 위한 세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가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127: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그리고 '젊은 자의 자식은 장수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고, 그 화살이 전통에 가득한 자는 성문에서 원수와 만날 때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자식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부모에게도 영광이 되고, 든든함이 되며 힘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할/
  그런데 자식이 정말 부모에게 힘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엘리 제사장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엘리가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는 고기를 먼저 먹고, 성전을 돕는 여인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이 두 아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엘리 집안은 영원히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보면, 밝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여 아버지의 임금자리를 찬탈하려고 예루살렘으로 질풍같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놀라 다윗이 피하여 도망치는 신세가 된 일이 있습니다.
  다윗을 보면 자식이 영광이라기보다는 원수와 같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신앙교육이 제대로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할/
  사실 인간은 태어날 때 세상에서 가장 미숙한 존재로 태어납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일년이 되어야 겨우 걷는 동물은 아마 사람 밖에 없을 것입니다. 웬만한 동물은 일년이 되면 성숙한 어른이 되는데, 사람은 성숙한 어른이 되려면 20년 가까이를, 혹은 그 이상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세상에 사람만큼 뛰어난 하나님의 피조물은 없습니다. 세상에 사람보다 빨리 달리는 동물은 없습니다. 세상에 사람보다 빨리 그리고 멀리 바다를 건너는 동물도 없고, 세상에 사람보다 빨리 멀리 하늘을 나는 동물도 없습니다. 사람은 하늘을 날다 못해 이제는 우주를 납니다.
  진화론자들은 우리 사람이 원숭이에게서 진화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지만 말도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진화는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원숭이에게서 진화되었다면 원숭이 중에는 거의 사람 비슷한 능력을 가진 원숭이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원숭이가 동물 중에는 그래도 가장 사람 비슷하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 능력의 차이는 인간과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은 인간으로 창조하셨고, 원숭이는 원숭이로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냥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인간과 비교할 수 있는 동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인간이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세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 뛰어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인간에게 주신 능력 중에 하나는 '학습 능력'입니다. 인간은 학습 능력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동물이 좇아 올 수 없는 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동물들에게도 학습 능력이 있긴 있습니다. 그래서 개도, 코끼리도, 사자도 길들이고 교육을 시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고, 학습입니다. 잠22: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고, 우리가 가르쳐야 할 '마땅히 행할 길'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아이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아멘!/
  시119: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딤후3:16-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교육에는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있습니다. 학교교육은 지식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가정교육은 인성교육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오늘 우리 주님께서 한 알의 밀 알의 교훈을 통하여 죽어야 사는 법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할/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생명체로서 그 존재 의미를 가집니다. 농부의 손에 의하여 땅에 떨어지는 씨앗, 곧 종자(種子)를 뜻합니다. 그 밀 알이 자루나 항아리에 담겨져 있더라도 생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멘!/
 
  ①예수님이 '한 알의 밀'의 비유로 말씀하신 배경을 알아보자!
  그 당시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온 나라 안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 당시 유대나라에서 제일 인기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한번 만나보고 그분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했습니다.
  더군다나 요11장에 보면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납골당에 썩어 냄새가 나는데 예수님이 현장에 가셔서 그 시체가 일어나 멀쩡하게 살려내는 기적이 베다니 동네에서 일어나니 지금 나라 전체가 어떻게 하면 예수를 볼 수 있을까 해서 찾아오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참 즐거운 비명으로 식사하실 겨를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도 아주 신이 나서 무언가는 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헬라 왕국에서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와서 보니까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는데 외국 사람으로 더욱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지금 헬라 왕국의 특명을 받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만나야 됩니다. 목적이 있어서 일부러 찾아온 것입니다.
  20-21절에 보면,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예수님이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와 계십니다.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여기 명절은 유월절을 말합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살벌한 그런 시기에 왜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가? 또 이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들인가?
  ▶한국의 유명하신 목사님께서 본문을 설교하시면서 그 당시 그들이 온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 설교 문을 참조했습니다.
  헬라 왕국 가운데 '에뎃사'라는 자그마한 왕국이 하나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 왕국에 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왕위를 계승해야 되는 첫 번째 왕자가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는데 헬라 왕국까지 '그 갈릴리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문둥병을 그렇게 잘 고쳐준다더라' 이렇게 소문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왕국에서 사람을 특별히 파송한 것이랍니다.
  '가서 봐라!'는 명을 받고 와서 보니까 사실입니다. 문둥병자들을 현장에서 고치시는 주님의 능력을 보고 감탄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만나서 자기 나라 에뎃사 왕국으로 한번 모시고 가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에뎃사 왕국으로 모시고 가면 왕자도 고치고 자기 사명을 완전히 완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예수님 곁에 많으니까 도저히 이런 이야기를 자세히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온 국민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머리를 쓴 것입니다.
  '아!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헬라 파에 가까운 빌립이 있지' 빌립이라는 이름 자체가 헬라식 이름입니다. '헬라파니까 빌립을 통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빌립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정이 있어서 예수님을 만나야 되는데 우리 힘으로는 안되겠고 당신이 존 주선해서 만나게 해 주면 거기에 대한 대가는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왕국에서 왔다.'
  호기심이 생긴 빌립도 '와! 그런가요?' 그래서 이것을 꼭 성사시키고 싶었습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예수님의 최초의 제자가 된 안드레에게 부탁을 해서 함께 예수님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헬라에서 사람들이 와있는데 이런 일로 예수님을 보자고 합니다. 만나주시겠습니까?'
  그 때 예수님이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유명한 한 알 밀 알의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할/
  왜 예수님은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고 에뎃사 왕국을 안 가셨는가? 왕자의 문둥병을 고쳐주시면 복음 전하기도 편하실 테고 대우도 잘 받으실 것 같고 제자들도 괜찮았을 것 같고, 그런데 왜 안 가시고 이렇게 정반대의 설교를 하셨는가?
  '나 더러 오라 하지말고 그가 와서 나를 따르도록 하라'는 말씀이 그 속에 묵시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암시적으로 '너희들 왜 이렇게 흥분해서 나더러 에뎃사 왕국을 심방하자고 하느냐? 내가 가는 길은 그런 길이 아니다. 헬라 왕국의 후원을 받아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려는 것이 아니고 정반대의 길이다. 나는 땅에 떨어져 죽을 것이다. 흔적도 없이 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파생하는 한 생태의 원리가 이 세상을 새롭게 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것이다.' /할/
  그러니까 곡식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져야 삯이 잎이 피고 꽃을 피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되는 원리를 설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설교의 특징은 바로 역설적인 진리로 되어 있습니다. '너희들이 살고자 하느냐? 죽으라! 죽으면 살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죽었는데 어떻게 삽니까? 그런데도 계속해서 예수님은 설교를 그렇게 하십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리라'는 전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사상도 여기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고전15:43-44절에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할/
  오늘 본문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씨를 뿌릴 때 종자 씨앗은 땅에 떨어져 죽습니다. 그러나 추수 때 혹은 30배, 혹은 60배, 그리고 혹은 100배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당신께서 한 알의 밀 알 씨앗이 되어 죽어서 수많은 생명들을 새롭게 탄생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한 알의 밀이 종자 씨가 되어 땅에 떨어져 죽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이 땅에 생명의 씨를 심으셨습니다. 그 결과 죽음 아래 있는 인류에게 구원의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요10: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갈6:8절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할/

 

  ②'한 알이 썩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내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포기하고, 지식을 포기하고, 나의 경험과 연륜을 포기하고, 교만을 포기하며, 혈기를 포기하란 말씀입니다. 그러면 부딪칠 이유가 없습니다. /할/

 

  ㉠희생의 삶을 의미합니다.
  땅에 떨어져 묻힌 밀 알은 땅속에서 썩습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싹이 나고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겨울 밭에 나가서 파란 싹이 나있는 밀이나 보리 이삭을 뽑아보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밀보리의 새싹 밑뿌리에는 밀보리의 씨앗이 그대로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씨앗은 껍데기뿐입니다. 속은 다 썩고 없습니다. 새싹을 내기 위한 자양분으로 모두 소모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기를 희생하는 자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굴러갑니다. 희생의 삶을 참 아름답습니다. /할/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왕이 민심을 살피기 위해 평민복장으로 갈아입고 길 한복판에 큰돌을 가져다 놨습니다. 그리고 숲 속에 숨어 사람들의 동태를 지켜보았습니다.
  잠시 후 한사람이 나타나 돌을 바라보더니 옆으로 그냥 지나갔습니다. '무관심 형'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돌을 보더니 '누가 이곳에 돌을 갖다 놨느냐?'며 저주를 퍼붓더니 그대로 가버렸습니다. '개인주의 형'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정성껏 돌을 치웠습니다. '희생 형'입니다. 그런데 돌 밑에는 왕의 치하문과 함께 많은 보석이 들어 있었습니다. 조건 없는 희생이 가져다준 큰 선물이었습니다. /할/
  ▶미국의 하버드대학에 가면 캠퍼스 안에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그것은 하버드대학 창설자인 존 하버드의 동상입니다.
  존 하버드는 1636년에 영국에서 이민 온 목사입니다. 하버드 목사는 미국 신천지의 복음 화를 위해 목회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자기의 모든 재산을 바쳐서 하버드대학을 창설했습니다. 초기에는 목사를 양성하던 대학이 지금은 수많은 세계의 석학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밀 알이 땅에 떨어져 희생함으로 인류 역사에 큰 공헌을 한 하버드대학이 된 것입니다.
  ⑴사람들은 자기 희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가정법원에 이혼 청구 소송 가운데 이혼 사유에 '감자'라고 적혀 있는 서류를 보고 판사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판 때 유심히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데, 어느 휴일, 부부가 감자를 쪄서 먹으려고 하다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부인이 찐 감자와 함께 설탕을 가져오자 남편이 '감자를 설탕에 찍어 먹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소금을 찾았고, 이에 질세라 부인은 '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설탕을 찍어 먹었다.'고 반박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평소에 처가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남편이 '설탕을 찍어 먹으니까 집안이 그렇지' 하고 대꾸했고, 부인은 '우리 집안이 어때서? 당신 동생 교육이나 잘 시켜'하며 싸움이 시작되어 결국 가정법원까지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자 먹는 데 설탕이나 소금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요? 그것이 부부생활을 끝낼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가요? 사랑이 없고 희생이 없고 양보가 없어서 빚어진 사건입니다. /할/
  ▶몇 년 전 어느 일간지에 이러한 기사가 시렸습니다. '어느 할머니가 내밀고 간 1억'이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지난 1일 오후 2시쯤 한 할머니가 연세대학교에 들어섰다. 커다란 살구색 재킷에 헐렁한 바지를 입은 할머니는 학생들이 모여 밥을 먹고 있는 지하식당을 서성이며 두리번거렸다. 한참 뒤 할머니는 구석진 곳에서 식사를 하던 정제훈씨(26.사회체육학과)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학생, 좋은 일하러 왔는데 어디로 가야 되나. 길을 헤매다 여기까지 와버렸네.' 정씨는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가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대학본부 총무처로 안내했다.
  할머니는 총무처 직원과 마주앉고 나서야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봉투하나를 꺼냈다. 봉투엔 5,000만 원짜리 수표 1장, 4,000만 원짜리 수표 1장, 100만 원짜리 수표 10장, 모두 1억 원이 들어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써주세요.'라고 했다.
  할머니의 차림새로 보고 봉투에서 100만 원쯤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총무처 직원들은 깜짝 놀라 총장실에 연락을 취했다. 할머니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묻자 '나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라고만 대답했다. 김한중 총장이 달려와 '장학금 받은 학생들이 감사 서신이라도 보낼 수 있게 주소만이라도 알려 달라'고 해도 '경기도에 살고 있는 60대'라는 대답뿐이었다. '연세대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말만 듣고 찾아왔다.'는 할머니는 '식당해서 모은 돈에 최근 내가 살던 지역이 재개발돼 나온 토지보상금을 보탰다.'며 '깨끗한 돈이니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학교를 나선 할머니는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이 종점인 버스에 올랐다.> 이런 할머니의 헌신을 통하여 어려운 학생들이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해서 훌륭한 사람들이 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⑵성경에서 가장 순수한 헌신의 모델은 오병이어 어린이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들판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계셨습니다. 하루 종일 증거 하시는 예수님도 대단하고 하루 종일 복음을 들으며 지내는 사람들도 대단했습니다. 날이 저물도록 전하고 그들은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밤이 되도록 듣고 알렸습니다. 대단한 열정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점심도 굶고 저녁도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허기져 있었습니다. 그 때 오병이어를 가지고 있던 어린아이가 안드레 제자를 통하여 예수님에게 자기 도시락을 헌신했습니다.
  그것으로 5천명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헌신한 어린 아이 하나가 5천명을 배부르게 먹게 했습니다. /할/
  ▶노벨상은 1901년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노벨 평화상을 수상 받은 사람은 스위스의 '헨리 듀넌트'입니다. 그는 그 유명한 적십자사의 창립자입니다. 그는 은행장이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 황제를 만나 사업을 크게 확장시키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폴레옹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공교롭게도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전쟁터로 나간 나폴레옹을 찾아갔습니다. 그 곳에서 전쟁의 현실과 접하게 되었습니다. 죽고 죽이는 현장이었습니다. 피 비릿내 나는 죽음의 지옥 같은 현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수많은 시체를 보았습니다. 수많은 피투성이 환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생명의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부상자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 황제를 만나 큰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포기하였습니다.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이 땅에 폭력과 전쟁이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부상당한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돕는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부상자 돕기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적십자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기적인 꿈을 헌신적인 꿈으로 바꾸었습니다. 헌신의 밀 알이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드디어 그는 적십자사를 창설하고 적십자사의 한 알의 밀 알이 되었습니다. /할/
  세상은 이런 헌신과 희생자들을 통해 아름답게 글러가고 있습니다. 우리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밀 알 교육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아멘!/
  ⑶희생을 특권으로 알고 헌신한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의 의료 선교사였던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온갖 위험과 고생을 겪으며 선교하다가 본국에 다니러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희생적 생활을 칭찬하고 존경하는 말을 할 때에 리빙스턴은 결코 희생이 아니라고 했답니다. 오히려 '희생이 아니라 특권'이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한 일은 희생이 아니라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장차 받을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요, 예수님의 희생에 비하면 결코 희생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내가 희생해서 많은 사람이 산다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죽어져서 가정이나 교회가 화평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내가 희생하는 모습 속에서 교회가 바르게 성장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희생은 풍성한 삶을 가져오는 특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죽어야 산다는 진리입니다.
  한 알의 밀이란 그것이 안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그것이 열매를 맺으려면 차가운 땅에 떨어져 무덤 속에 매장되는 것처럼 땅에 묻혀야 합니다.
  ▶어떤 병사가 전쟁에 출전을 하면서 이 격전 터에서 어쩌면 아무도 묻어 줄 사람이 없을지도 모르는 나의 시체가 앙상히 썩어 뼈만 남을 때 거기에서 아름다운 꽃의 향기가 휘날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몸에 한 움큼의 코스모스 씨를 안고 전쟁에 출전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전쟁이 휩쓸고 간 그 자리에는 무명의 병사의 앙상한 시체가 썩어서 몸에 지니고 갔던 코스모스 씨가 가을이 되어 꽃이 피고 바람에 코스모스 향기가 휘날렸습니다. /할/
  ⑴죽어야 산다는 말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막8:34절에 예수님이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기서 자기 부인이 자기의 욕망을 죽이는 그런 삶을 의미합니다. 
  ▶한 살인범이 어떤 한 재판에서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살인범의 형이 공직에 있는 동안에 아주 많은 공로를 세워서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형은 주지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동생을 사면해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주지사는 동생을 위하여 탄원하는 형의 잊혀질 수 없는 공로를 참작하여 그 동생의 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 주지사의 사면장을 받아 넣은 형은 곧바로 감방 안에 갇혀 있는 동생을 찾아갔습니다.
  동생을 만난 형이 물었습니다. '만약 네가 사면을 받고 살아 나간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니?'
  그러자 동생은 안면을 찡그리더니 즉시 대답을 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살아서 감방을 나간다면, 첫째로, 나에게 사형 언도를 내린 판사를 찾아 그 놈을 죽이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던 놈을 찾아서 그 놈을 쏘아 죽이는 일이야!'
  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습니다. 형무소 문을 나서는 형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주지사로부터 받은 사면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찢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어야 사는 것이 우리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아멘!/
  ▶강재구 소령 이야기는 지금도 감동이 옵니다. 1965년 10월 4일 월요일 오전 10시 37분, 스물 아홉의 한 장교가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고 수류탄과 함께 일순에 산화했던 사건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맹호부대 수도사단 예하 제1연대 10중대장 강재구 이야기입니다.
  후에 그 부대는 그의 이름을 따서 '재구대대'라고 불렀습니다. 3대대는 그 날 홍천 인근의 부대훈련장에서 수류탄 투척훈련이 계획돼 있었습니다.
  6시 30분쯤 24인용 텐트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던 강 대위는 인접 중대장들에게 지난 투척훈련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의를 당부하며 훈련장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자기 중대에서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훈련 도중 박해천 이등병이 던진 수류탄이 높이 치솟아 중대원 쪽으로 떨어졌습니다. 군인들 대부분이 유효반경 내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모두 죽을 순간이었습니다.
  지형이 평탄치 않아 손으로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발로 찰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강 재구 소령은 그 순간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쳤습니다. 강 재구는 폭음과 함께 무참한 주검으로 산화했습니다. 지금도 육사 교정에는 그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고 합니다. /할/
  ⑵나라 지도자가 죽어야 공동체가 삽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대통령이 있습니다. 대통령을 위한 나라가 있고, 나라를 위한 대통령이 있다는 말입니다.
  ▶중국에서 재앙이 그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중국에 가뭄이 계속 되었습니다. 논과 들의 농작물이 다 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온 국민이 기근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 왕이 기우제를 드리겠다고 공포를 하고, 수많은 국민들을 한 자리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단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드리는 기우제가 최고의 기우제입니다 그 동안 수없이 기우제를 드렸지만 소용이 없어서 마지막 결단의 기우제를 드리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드릴지 제물이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준비가 다 마쳐졌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를 죽일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 때 왕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나라의 극심한 가뭄은 왕인 내 잘못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내가 죽겠습니다. 나를 묶어 제단에 올려 놓고 불을 지르십시오.'
  모두가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왕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자 스스로 단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단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억수같은 비가 내려 단의 불을 꺼버렸습니다. 가뭄의 재앙이 물러갔습니다.
  대통령이 그 자리를 이용하여 명예와 돈을 쌓은 대통령이 있는 나라들은 거의 다 기울었습니다. 이집트, 필리핀, 아르헨티나, 이란 등이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라만 생각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를 다스린 나라는 다 흥왕 했습니다. /할/
  ⑶가장이 죽어야 가정이 삽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10자녀가 다 죽고, 아내는 떠나고,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가정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굳건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결론은 더 좋은 가정을 만들었습니다. /할/
  동양의 노벨상은 막사이사이상입니다. 필리핀 대통령 막사이사이가 만들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땜장이였습니다. 뒷골목에 조금만 대장간을 만들어 놓고 땜질하여 생계를 겨우겨우 유지하여 나가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막사이사이가 대통령이 된 후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그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땜장이 일을 그만 두시고 궁궐로 들어가세요. 고생하신 아버지를 편하게 하여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네가 대통령이 된 것이지 내가 된 것은 아니다. 나는 평생 내가 할 일을 하겠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아버지가 그런 훌륭한 아들을 만들었습니다. /할/

 

  ③죽어야 사는 신앙의 절정을 '섬김'에서 결론을 짓고 계십니다.
  26절 하 반절에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섬김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섬기는 생활은 영광스러운 주님의 제자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생각으로 살려고 하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으뜸이 된다든지 제일이 되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으뜸이 될 때 분명한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남을 섬기려는 철학입니다. /믿/
  ㉡섬김은 '시중들다, 붕사 하다, 돌보다, 제물을 드리다, 예배하다, 엎드리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섬김인가?
  ⑴예배가 섬김입니다. 롬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는 섬김, 봉사라는 단어입니다.
  ⑵직분대로 순종하는 것이 섬김입니다. 교회에서 받은 직분 따라 열심히 순종하는 것이 섬김입니다. 목사가 하는 일이 따로 있고, 권사, 집사, 평신도가 하는 일이 분명히 따로 있습니다.
  집사란 '봉사하다.'의 '디아코니아'란 말을 씁니다. 그러므로 집사님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섬김이 직분입니다.
  ⑶드리는 삶이 섬김입니다.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몸을 드리고, 재능을 드리고 물질도 드리는 것입니다.
  ⑷하나님의 일을 돌보는 봉사가 섬김입니다. '섬기다.'의 원어 속에는 '치유하다, 고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봉사는 '예수님을 통하여 병든 자를 고치며, 가난한자, 천한 자, 소외된 자, 고통 받는 자, 억눌린 자에게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버림받은 자들을 찾아 위로해 주는 것이 바로 오늘 섬김의 정의입니다. 우리 주님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준 것이 바로 주님께 대접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
  ⑸겸손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여러분, 진실한 봉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섬기다.'의 히브리어의 '샤하'는 '자신을 굽히다. 숙이다. 잠기다'란 뜻입니다. 빌2:3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예수님을 섬기는 자의 본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누가 크냐는 다툼이 있은 후 다락방에서 친히 겉옷을 벗고 수건으로 허리를 동인 후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신발이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샌들모양으로 그 당시 신발문화가 발달하지 못했으므로 노끈으로 신바닥을 발에 맨 것이니 밖에서 들어오면 먼지투성입니다. 그리하여 집집마다 문 앞에 물통을 놓고 종들이 주인과 손님의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다락방에 모인 예수님의 일행은 하인이 없었습니다. 누가 크냐는 변론 때문에 아무도 발씻을 물에나 수건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손수 준비하시고 친히 하인이 되셔서 섬김의 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섬김의 본을 받아야 합니다. 서로 섬기는 종의 자세로 모인 곳에는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 온 성도들이 섬김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섬기는 자의 권위는 하늘이 준 것이며 남을 지배하는 권위는 인간 정욕의 산물이요, 교만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는 날이 옵니다. 수치를 당하는 날이 옵니다. 그러나 섬기는 종의 권위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제자의 영광이랍니다. /믿/아멘!/
  ⑹섬김의 극치는 충성입니다.
  ▶6,25때 있었던 숨은 이야기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서 6,25전쟁 소식을 들고, 동경에서 비행기로 한국에 날아왔습니다. 와 보니까 이미 한강인도교는 파괴되어 끊어졌습니다. 인민군이 이미 서울에까지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피난 가느라 혼란 중이었습니다. 그때 끊어진 인도교 끝에서 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는 한 사병이 있었습니다.
  그 병사에게 맥아더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서 있느냐?' 사병이 대답하기를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작정이냐?'고 물으니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을 때까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미 지휘계통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지금은 극심한 혼란중이고 모두가 살겠다고 피난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때 맥아더가 또 말하기를 '혼자 그렇게 서 있으면 반드시 죽는다, 그래도 그렇게 서 있겠느냐?'고 물으니 '그대로 서 있어야 한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맥아더가 그 병사의 순수하고 우직한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맥아더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땅에 이런 병사가 있다니 이 나라는 희망이 있다. 이 나라는 반드시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참전의지를 새롭게 했다는 것입니다. /할/
  얼마나 감동적인 일화입니까? 단 한사람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감동도 받고 실망도 받게 됩니다. 한사람을 통해서 받게 되는 감동은 순간 감동으로 끝나지 않고 큰일을 이루게 하는 계기도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한사람을 중요시합니다. 나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내가 바로 서면 전체가 바로 서게 됩니다. 내가 변하면 전체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감동 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 즉 한 알의 밀 알 정신이요, 섬김의 생활입니다. /아멘!/
  ▶영화 '타이타닉'으로 잘 알려진 타이타닉호의 침몰 과정에는 숨겨진 감동적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실제로 이 배가 침몰할 때 있었던 실화입니다. 밴드 책임자 '윌레스'는 전도하기 위해 이 배에 승선했습니다. 배의 악장으로 봉사하면서 전도의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불의의 사고로 배가 침몰하는 것입니다.
  이 때 모든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할 때, 자기 악기 팀 멤버들을 마지막까지 격려하면서 찬송을 연주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웰레스는 이 음악을 연주하면서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우리 인생 마지막 우리가 선택하여야 할 분은 주 예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소망은 그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자기에게도 죽음이 찾아오고 있는 그 순간 자기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돕기 위해 찬송으로 위로하고 말씀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그 순간에도 주님의 전도명령에 충성한 사람입니다. /할/
  주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얻느니라' 그렇습니다. 한 알의 밀 알이 되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땅에는 평화가 있고 안정이 있고 부강이 주어졌고 이런 잠재력을 가진 나라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할/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게 이 귀한 '한 알' 신앙의 교훈을 가르처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살고, 이웃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훌륭한 자녀로 키워야 합니다. /아멘!/ (2014년 5월 4일 어린이주일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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