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우리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聖殿)입니다! (고전 3:16-1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8. 14. 08:34

우리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聖殿)입니다! (고전 3:16-18)


  우리 인간은 특별한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하나님의 특별한 작품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으로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생물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말을 하며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입니다. 언어가 있어서 자기 의사를 남에게 표현하며 의사소통을 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동물도 나름대로의 커뮤니케이션을 갖고 교류하고 삽니다만 인간과 같은 언어의 소통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큰 신비는 인간은 영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동물과 같은 몸만을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닌 영혼이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을 갖고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 방법으로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 속에 보내주셨고 그 성령이 거하는 성도는 곧 하나님의 영이 거하므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할/ ◀제목 소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앞 부분에서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하나는 교회 내의 분쟁의 문제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사이에 바울파니 아볼로파니 게바파니 심지어는 그리스도파니 하는 파당들이 생겨나 교회가 마음과 뜻이 하나되지 못하고 파당이 생겼습니다. 어떤 공동체라도 하나가 되지 못하면 분열이 생기고 무너지게 됩니다. 특히 교회공동체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 되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엡4:4-6절에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니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할/
  다른 하나의 문제는 참 지혜의 문제입니다. 참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미련한 것으로 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야말로 참 지혜임을 확신시키는 문제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보는 자들은 멸망할 자들이고,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전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할/
  그런데 참 지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고전2:1-14).
  고전2:10-12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이 성령을 통해 얻게 되는 지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이는 것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나뉘지 않고, 하나 되는 것을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교회'라는 개념에 연결을 시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이 그 안에 계셔야 하고, 성령이 계시다는 것은 십자가의 도를 믿는 지혜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하나 되는 지혜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지혜가 있어야 하나님의 성전이라 할 수 있으며, 이 두 가지 지혜가 없으면 교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교회를 각 사람의 심령 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할/


  ①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특히 우리 몸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을 6:19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강조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몸은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값을 주고 우리 몸을 사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이 내 안에 오시는 순간부터 이제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멘!/
  ▶우리 몸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에 몇 가지의 교훈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사43장에서 이렇게 알려주셨습니다. 1절에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기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셨고, 우리를 한사람씩 지명하여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러면서 4절에 서 '하나님의 눈에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들, 하나님이 가치 있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아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내가 소중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삶을 책임지신다고 아울러 말씀하십니다. 평온할 때는 물론이고, 혹이라도 우리 삶에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시고, 지키고, 보존하고, 이끌어 가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 내가 고난 당할 때, 힘들어할 때, 상처받고 아파할 때,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때마다 힘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피할 길도 주시고, 모든 시련을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43:2-3절에서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할/


  ㉡내가 곧 하나님의 성전임을 잊지 말고 행동해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기에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고 더 나아가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성도는 자신에 대해 두 가지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세입니다. 마땅히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너무 죄인의식만 갖고 소극적으로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못된 짓을 하다 들켜 혼났다고 늘 죄송해하고 부모 앞에서 기죽고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듯이 이제 모든 죄를 용서받았으니 당당하고 멋있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프라이드를 갖고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믿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어느 때 인간이 죄 가운데 빠져 방탕할까요?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사라질 때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동시에 성령이 내 속에서 거한다는 성전의식(聖殿意識)을 갖게 되면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면 좌절과 절망, 방황 속에 살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가 가치 있는 존재요,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존재임을 깨닫고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의 행복이 있습니다. /믿/


  ㉢내 몸에 성전을 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들이기에, 이제 우리 몸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 몸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잘 관리해야 합니다. 내 몸을 혹사시키거나 학대하면 안 됩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기에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무서운 죄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살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자살은 또 다른 살인입니다. 살인이란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자살도 일종의 살인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이런 귀한 생명을 버리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상황은 이해가 되어도 우리의 목숨을 스스로 끊거나 버려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자살론을 말하자, 한 때 유럽은 자살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적이 있었습니다. 자살 신드롬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자살이 남의 이야기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이 자살율이 심각한 수준에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믿는 자는 '나는 내 것이 아니고, 내 몸도 내 것이 아님을 알고, 하나뿐인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 줄'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나의 몸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이 바로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을 더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숭배나, 음행이나, 부도덕, 세상의 문화로 깨끗하게 보존해야 할 몸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기록했습니다. 본문도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이해되어야 은혜를 받습니다. /할/
  ⑴자기와 몸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6:15-20절에 보면,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래서 몸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잘 보존하고, 몸을 지키고,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명 성경과 세상의 문화는 다릅니다. 하늘의 것이 있고, 땅에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이 있고, 교회에 속한 것이 있으며, 사탄에 속한 것이 있고, 분명 하나님께 속한 것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에 삽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문화나 관습에 빠지거나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술과 담배'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것이 세상을 대표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서 우리는 바로 이런 것에서 나를 보존하고,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아멘!/
  ⑵담배는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의 몸을 헤치는 독과 같습니다. 몇 해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 이주일 씨의 금연광고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담배, 그거 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때 담배의 1급 광고 모델로 남성미를 과시했던 최고의 영화배우 '율 브리너'도 담배 때문에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1985년 죽기 전 녹화한 필름에서 그는 '나처럼 담배를 많이 피워서 폐암에 걸리지 말아 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했습니다.
  의사들의 연구에 의하면,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면 5분 30초의 수명이 허공으로 날아간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담배의 유해성분은 발암물질과 독성 화학물질을 합쳐 무려 4,000여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해로운 3대 물질이 '타르, 일산화탄소, 니코틴'입니다. 특히 타르는 인체에 치명적입니다. 담배 연기를 통해 인체에 흡수되는 타르 속에는 약 60여종의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폐암을 일으키는 주원인입니다. 폐암 뿐 아니라 무슨 암으로 죽던지 원인의 30-40%도 담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담배는 자기도 죽이고, 남도 죽입니다. 그렇습니다. 담배가 바로 몸을 헤치는 주범입니다.
  담배가 이런 것이기에 절대적으로 멀리하라고 권합니다. 하물며 내 몸을 하나님의 것으로 아는 우리가 담배로 몸을 헤치고, 더럽혀서야 되겠습니까? 절대 안됩니다. 독을 알면서 독을 가까이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강조합니다. 독을 모르고, 아니 독을 알면서도, 독을 끊지 못하는 것이 '미련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할/
  ⑶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술도 건강의 적이요, 독입니다. 술은 우리 몸에 위, 뇌, 특히 간에 치명적인 병을 줍니다. 담배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성경에는 술에 대해 많은 교훈을 줍니다. 물론 술은 때로 약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술을 멀리하라고 명령합니다. 특히 에베소서에서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5:18)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술은 곧 '방탕'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술은 결코 술로 끝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술은 곧 방탕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알려주는 사건이 성경에 나옵니다.
  ▶단5장에 보면,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은 바사의 장군인 고레스의 지휘아래 바벨론에 진격하여 바벨론을 격파하고 성를 포위했습니다. 이제 벨사살 왕과 바벨론의 운명은 풍전등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목숨을 내놓고 싸울 임전태세를 갖추고 깨어 경계를 해도 부족하였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은 큰 잔치를 배설하고 허세를 부렸습니다.
  그는 바벨론 중에서 중요한 인물 일 천명을 초대했습니다. 벨사살 왕이 거나하게 취하여 술기운이 오르자 곧 자제력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술은 이성의 조절기능을 마비시켜 본성과 본능대로 행하게 만듭니다.
  벨사살 왕이 어떻게 했습니까? 술 취한 벨사살 왕은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고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느부갓네살 같은 위대한 왕도 감히 거룩한 성전 기명에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들이 지극히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벨사살은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죄를 범하게 했습니다. 십계명에 비추어 볼 때 그는 신성 모독죄를 범했습니다. 신성모독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공공연히 모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벨사살은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했습니다. 우상숭배는 또 다른 신성 모독죄입니다.
  벨사살 왕과 그 귀인들이 잔치를 벌이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을 때, 이들 앞에 두려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단5:5절에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그때에' '여흥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에' 술잔치가 다 끝났을 때에, 모든 사람들이 잠에 곯아 떨어져 있을 때가 아니고, 한창 지금 술잔치가 무르익은 그때에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났습니다.
  조금 더 실감나게 표현한다면 '나타났다'는 말은 '툭 튀어나왔다'는 뜻입니다. 벽에서 뭉클뭉클 하더니 사람의 손가락이 튀어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떠들면서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쥐죽은듯이 조용하게 되었고 찬물을 끼얹은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을 것입니다.
  단5:25절에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메네'는 세어보았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이 여러 해 동안 그의 날을 세어보시다가 '이제 너의 시대는 끝났다'고 정지 신호를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끝났다고 선언하시면 인생들은 하던 모든 것을 중지해야 합니다. 벨사살 왕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날을 끝나게 하셨습니다.
  '데겔'은 '무게를 달아보았다'는 뜻으로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우바르신'은 무게를 잰 결과로 왕의 나라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하
  나님은 인간의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끝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끝난 것입니다. 부르시면 가야 합니다. 실제로 그 날이 벨사살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30절을 보면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할/
  ▶성경을 보면 술 취함으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이 또 나옵니다. 그중 한 사람이 헤롯왕입니다. 헤롯이 자기 생일날 연회를 배설하였을 때, 헤로디아의 딸이 요사스럽게 춤을 추었습니다. 만취한 헤롯은 그 춤에 매료되어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데로 주겠다고 헛소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딸은 세례요한에게 원한이 사무쳐 있던 그의 어머니 헤로디아의 사주를 받아 요한의 목을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헤롯왕은 의인의 무죄한 피를 흘리는 무서운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노아도 술 때문에 큰 실수를 했습니다. 의인이요 그 시대에 완전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았던 노아도 포도주에 취해 그의 막내아들을 저주하는 죄를 졌습니다. 술은 의인이나 악인이나 가리지 않고 죄를 짓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술입니다. 술은 그냥 술로 끝나지 않습니다. 방탕하게 되든지, 추태를 부리든지, 자기 몸을 내팽개치든지, 정신이 없어지던지 그렇게 이어집니다. /믿/ 
  ▶술에 잔뜩 취해 밤길을 비틀거리고 걷던 술꾼 한 사람이 맞은편에 서 있던 할아버지와 부딪혔습니다. 순간 '꽈당'하는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는 뒹굴고 말았습니다. 겁이 더럭 난 그는 얼른 할아버지의 뺨을 두들겨 보고 가슴에 귀를 대어 봅니다. 아무 소리가 없자, 할아버지를 업고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그는 할아버지를 자신의 침대에 뉘여 놓고 찬물을 끼얹고 다리를 주무르며 제발 살아만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러다가 지쳐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새벽녘에 눈을 뜬 그는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물에 흥건히 젖어 있는 할아버지는 KFC의 광고용 할아버지 조형물이 누워 있는 게 아닙니까? 술에 취하면 사람인지, 인형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어떤 사람은 엡5: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술은 먹되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술을 먹고 취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한잔만 먹어도 취하고, 어떤 사람은 10잔, 20잔 먹어도 취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대체 술 취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성경이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의 의미는 '술이 습관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습관이 무섭고, 몸에 베이고 중독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퇴근하면 가정이 생각나야 하는데, 한잔이 생각나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처음 술을 한잔부터 마시지 1병, 5병을 생각하고 마시지는 않습니다. 한잔, 두 잔을 계속하면 습관이 되고 중독이 되어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그것은 담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이 박히고, 중독이 되면 좀처럼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과 담배가 내 삶에 습관이나 문화가 되지 말라는 뜻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멘!/ 그러면서 술이 아니라 성령으로 취하고, 성령이 나를 지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삶이 축복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할/


  ㉤'거룩한 삶을 살라'는 당부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몸 된 성전을 거룩하게 관리하라'고 명하십니다.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롬12장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롬12:1절의 말씀처럼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그 방법은 12:2절의 말씀처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할/
  ⑴'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세상 사람들은 땅엣 것만 생각합니다. 그들은 썩어질 것, 덧없는 것, 일시적인 것만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새로운 마음, 변화를 받은 마음은 다릅니다. 우리는 위엣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면서 살아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세대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문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주님의 가치관으로 변화하라는 것입니다. 즉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 즐기고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이 좋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노는 물이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것을 본받지 않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⑵'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란 외향적인 외모를 말하지 않습니다. 심령의 변화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라' 또 '변화를 받아라'라는 말은 다른 방향으로 가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위해 살아왔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믿/ 그런데 그것이 내 힘으로 안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아멘!/
  ⑶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할/
  그리고 '분별하라'는 말은 '도키마조' 시험하여 갈라놓는다는 뜻입니다. 참 진리와 비 진리를 구별하라는 뜻입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찾는 비결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신앙 양심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할/


  ②마음에 성전 삼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윗 왕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시14-15).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⑴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엄숙하게 선언할 뿐입니다.
  창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 첫장 첫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관해서는 더 이상 논할 여지가 없는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런데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면 시인이 말한 것처럼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요?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부패한 까닭에 하나님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패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할/
  ▶18세기의 유명한 불란서의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Voltaire)는 '기독교가 세워 지기까지 여러 세기가 결렸지만 불란서의 한 사람이 50년 안에 기독교를 박멸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리라'고 큰 소리 치면서 펜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지 20년 만에 스위스 제네바 성서공회에서 그의 집을 사서 성경 출판소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외국어 성경을 출판하는 본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볼테르가 쓴 책은 6권 한 질에 1달러도 안 되는 90센트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가 죽을 때 한탄하며 말하기를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러면서 천국도 지옥도 없다던 그가 죽어가면서 고통 속에 '나는 지옥으로 간다.'고 자기 입으로 고백했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소련의 최초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비행을 하고 돌아와서 '하늘에 올라 가 봐도 하나님은 없더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 그런 그가 비행사고로 34세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l934-1968). 그러나 미국의 우주 비행사 암스트롱은 우주비행을 하면서 하나님의 신비한 창조의 솜씨에 충격을 받고 돌아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할/
  ⑵세상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눅12:20절에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나님께서 직접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어리석은 것은 세상에 재물을 많이 쌓아 두면 그것이 영원히 자기 것이 되는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인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많이 심으십시오! 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데로 거두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할/
  ⑶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히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심판은 불신자들이 가는 지옥 음부에 심판입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몸부림을 치며 지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은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저 천국에서 영원히 왕 노릇하며 살게 됩니다. /할/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무엇인가? 어리석은 자로 살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마음의 성전 삼고 살아가는 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무엇인가?(시15:1-3)
  ▶시15:1-3절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⑴'나는 바른 예배자로 살고 있는가?'를 늘 묻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시15:1).
  여기서 '주의 장막'이란 '하나님의 성전'을 의미하고, '유할 자'란 '계속적으로 머물러 살 자'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가 누구냐는 질문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입니다.
  ▶기독교사상을 집대성한 교부 '어거스틴'은 자신이 대단한 신앙의 경지에 들어가 있는 줄로 자부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분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에 들어서자 입구에서 천사가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는 어거스틴이고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다가와서 어거스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야 네 머리 속에는 철학 사상만 가득 차있어'라고 호통을 치더랍니다.
  깜짝 놀라서 꿈에서 깼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객관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천사의 말처럼 자신은 머리로만 예수를 믿고 있더랍니다. 다시 회개하고 철저하게 신앙생활에 정진했다고 합니다. /할/
  다윗은 시15:1절에서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물었다는 것입니다. '과연 제가 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이 말씀은 예배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물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인가? 과연 하나님께서 내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실 까?'
  이 말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늘 고민하면서 살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할/
  ⑵다윗이 그리스도인의 덕목 몇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시15:20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직, 공의, 진실'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모습입니다.
  '정직'은 '모든 참된 행위들을 포괄하는 근본적인 행위의 원리'입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이중적인 마음을 품지 않는 것, 즉 흠 없이 완전한 것을 말합니다.
  '공의'는 '무엇을 행하든지 치우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하거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진실'은 '모든 언행의 근원인 마음속 깊은 데서부터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정직한 것을 말합니다. /할/
  ▶신설동 설렁탕 집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신앙이 좋은 집사 님이 설렁탕 집을 권리금을 주고 모든 것을 그대로 주방장까지 인수받았습니다. 내일이면 이제 설렁탕 집을 운영하게 된 집사 님이 교회에 와서 간절히 기도하기를 '하나님!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을 예수님을 대접하듯이 하게 하여 주세요'
  다음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첫 출근을 했습니다. 주방장은 언제나 그렇듯이 하루 종일 팔 설렁탕 국물을 큰 가마솥에다 끓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고기 국물처럼 보이게 하려고 커피 후림을 약간 타서 뽀얗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본 집사 님이 혼자 중얼거리기를 '예수님을 어떻게 커피 후림을 탄 설렁탕 국물로 대접 하냐?' 그리고 그 국물을 아깝지만 다 쏟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문 앞에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금일은 휴업입니다!'
  식사 때가 되어 설렁탕을 먹으러 온 손님들이 왜 휴업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그대로 솔직하게 다 하자, 그 주변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는데, '저 설렁탕 집은 진짜 고기국물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 설렁탕집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끓어서 최고로 잘 되는 설렁탕 집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집트의 한 가난한 농부가 알라 신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돈 200파운드만 달라는 것입니다. 그 편지를 본 우체국에서는 수신자가 알라 신이므로 어디로 전해 줘야 할지 몰라서 계장에게 주었고 계장은 과장에게, 과장은 국장에게, 국장은 체신부 장관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를 받은 체신부 장관은 그것을 대통령에게로 보냈습니다.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던 '낫세르'는 그 편지를 뜯어보고는 농부의 사정을 매우 딱하고 불쌍하게 여겨 대통령 이름으로 100파운드를 우송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100파운드를 받고 기뻐하거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발대발했다고 합니다.
  '알라 신은 분명히 내가 요구한 200파운드를 보내 주셨을 거야. 그런데 대통령이 중간에서 100파운드를 떼어먹고 나머지 100파운드만 내게 보낸 거야'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닙니까?
  ▶어느 가게 주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가까운 교회의 새로 부임해 온 목사님 칭찬을 하더랍니다. 특히 그분 설교를 참 잘한다고 하더랍니다. 한 번은 손님이 물었답니다. '그러면 목사님이 지난주에는 어떤 설교를 했습니까?' 주인이 대답하기를 '저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번도 그 목사님 설교를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손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목사님이 설교 잘하는 줄 압니까?' 주인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이 그 목사님 오신 후에 외상값을 잘 갚아요'
  그렇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머리로 깨닫고 끝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마음으로 결심하고 끝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할/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을 돌봐주십니다. 욥8:6절에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정직하게 행하는 자의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 잠15:8절에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정직하게 행하는 자의 자손에게 복을 주십니다. 시112:2절에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의 가정은 흥하게 됩니다. 잠14:11절에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에게 장수의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가 기도하자 그의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해주셨습니다(왕하18:3/20:6). /할/
  ㈁언행심시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시15:3).
  여기에서 '혀로 참소 한다.'는 말은 남을 해치기 위해서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중상 모략하는 것을 말하고, '행악'이란 온갖 나쁜 일로 괴롭히는 것을 말하며, '훼방'은 함부로 멸시하고 비난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펄전'은 말하기를 '남을 해치기 위하여 이 집 저 집을 두루 다니는 자의 혀끝에는 마귀가 붙어있고, 그 말을 잘 들어주는 자의 귀에도 마귀가 붙어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남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축복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손과 발과 혀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달해주는 매개체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아멘!/ 마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할/


  ③우리는 지혜자로 살아야 합니다(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여기 '이 세상에서'는 '이 세상의 기준에 따라'라는 사는 자들을 뜻합니다. 이 세상 기준으로 지혜 있다 하는 사람들을 신앙적인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자일 뿐, 그러니 모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지혜로운 것을 세상의 기준으로는 어리석어 보여도 택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는 세상사람들이 보면 미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 사실을 바로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아멘!/
  다시 한번 고전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할/
  ▶한국근대정치사의 거목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8월 달이 그 분의 5주기 기념 행사가 곳곳에서 있다고 합니다.
  그분의 호는 후광(後廣)이지만 그는 '인동초'(忍冬草)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립니다. 그분이 '인동초'를 처음 언급한 것은 1987년 9월이라고 합니다.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나는 혹독했던 정치 겨울 동안 강인한 인동 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인동초가 되겠습니다.'라고 연설을 했습니다. 
  자신을 추운 겨울을 버티고 여름에 꽃을 피는 인동 초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 이후 '인동초'는 그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숱한 고비를 넘기고 한 나라의 지도자로 우뚝 선 그의 정치 인생이 마치 인동 초의 강인함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다섯 번의 죽음의 위기를 넘었고, 매번 병석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굳건히 다시 일어섰습니다. 인동초와 같은 삶이었지만, 그도 모든 사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히9:27절의 말씀대로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그 길'로 갔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이 우리의 뜻이 아니듯이, 떠나는 것도 인간의 뜻이 아닙니다. 내 의지나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면 언제라도, 누구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야합니다. 그것을 보면 분명 인생은 우리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 것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이것을 모르고 더디 알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다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그것을 알려줍니다.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21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만물이 아무리 모두 우리의 것이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결국 우리는 곧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가만히 보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할/ 이 사실 한 가지만 바로 알아도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멘!/ (2014년 8월 10일 대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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