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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선택과 축복!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5. 21:32

                     

                      "선택과 축복!"

 

*제목: 선택과 축복!

*설교: 김인삼 집사

*말씀: 창 13:1~13

 

저는 오늘 "선택과 축복!"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일 매일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오늘은 누구를 만날까’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등 우리는 순간 순간마다 선택을 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하루에도 수만 번의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택 중에는 사소한 선택도 있지만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선택도 있습니다. 장래의 진로를 선택하고, 친구를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신앙을 선택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특히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배우자를 잘 선택하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잘못 선택하면 평생원수가 됩니다. 인간에 있어서 선택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택에 의하여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청년이 도박을 하러 도박장에 가려다 도박장 옆에 있는 교회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예배당 정문 곁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설교 제목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강한 죄 의식을 느껴 친구에게 도박장에 가지 말고 교회에 가서 설교나 들어보자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이미 결심한 대로 해야지 무슨 소리냐며 혼자 도박장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날 교회에 갔던 청년은 말씀을 듣고 변화를 받아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 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클리블런드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그날 도박장에 들어갔던 친구는 감옥에서 대통령취임 기사를 읽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에 취임한 사람은 다름 아닌 30년 전에 자기와 도박장으로 가다가 교회에 갔던 그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때서야 그는 후회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선택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시간이 늦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번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은 평생 따르게 됩니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우리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의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지 무어는 “선택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선택을 잘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 있고 잘못된 선택으로 화를 초래한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선택을 잘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솔로몬입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후에 기브온의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꿈에 하나님이 솔로몬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열왕 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장수와 부귀와 지혜의 축복 중 지혜를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지혜를 주시고, 지혜와 함께 부와 영광을 겸하여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선택을 잘하여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람도 선택을 잘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아브람은 실수도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가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선택을 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아브람은 어떤 선택을 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았는지 알아봄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브람은 어떤 선택을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을까요?

첫째, 아브람은 화목을 선택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아브람에게는 가축과 은과 금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을 따라 나온 조카 롯도 자기의 육축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이 없을 때는 서로 돕고 화목하게 잘 지내지만 물질이 많아지면 분쟁이 일어나고 불화가 생기게 됩니다. 아브람과 롯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땅은 좁고 소유가 많아지니까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창 13:6)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은 인생을 편리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툴 때 아브람은 누가 잘했다, 누가 잘못했다, 잘잘못을 따지면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 13:8)고 말합니다.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화목입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큰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다투면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습니다.

 

깊은 산속 조그마한 연못에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붕어들은 서로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자주 싸웠습니다. "저 놈만 없다면 내가 이 연못을 독차지하며 살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서로 미워하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이 붕어 두 마리가 심한 싸움을 하게 되어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며칠 후 더 큰 상처를 입은 붕어는 죽고 말았습니다. 싸움에서 이긴 붕어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제는 내 세상이다. 이 연못에서 혼자서 마음껏 지낼 수 있다." 그러나 혼자 남은 붕어도 연못에는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연못이 죽은 붕어의 몸이 썩으면서 물은 악취가 나고 물이 오염되었습니다. 썩은 물을 먹은 붕어도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화목하지 못하면 모두가 불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화평하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이 말씀에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는 말은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복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브람은 의견 다툼이 생길 때 자기의 권리주장보다 화목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화목을 선택했습니다. 화목을 깨뜨려가면서 얻는 것은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그것은 축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화목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아브람은 사랑의 언어를 선택했습니다.

아브람은 롯과 분쟁이 생겼을 때 아름다운 언어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롯과 한 친족임을 강조합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 13:8)고 말합니다. "우리는 한 친족(We are brothers)“이라는 말은 “우리는 한 형제”라는 말입니다.

 

갈등이 생길 때 잘잘못을 따지면 오히려 사이가 더 나빠집니다. 정의감에 불타서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감정만 상하게 되고 문제는 더 커지게 됩니다. 옳고 그른 것을 아무리 따져보아야 서로에 상처만 남습니다. 아브람은 누가 맞았다, 틀렸다는 말보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고 부드럽게 말합니다. 우리도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서로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주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말은 정말 중요합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께서도 말씀으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한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상처와 고통이 주기도 하고 힘과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과 악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옛날 어느 나라 임금이 신하를 둘을 불러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악한 것을 구해오라고 햇습니다. 두 신하는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악한 것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 다녀습니다. 얼마 후에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악한 것을 구해 임금 앞에 왔습니다. 여러분, 과연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악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가져온 것은 사람의 혀였습니다. 우리가 혀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혀로 칭찬의 말을 하기도 하고 남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도 혀요, 가장 악한 것도 혀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혀를 잘 사용하면 복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큰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혀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말 한마디에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The tongue has the power of life and death, and those who love it will eat its fruit.)”고 말씀합니다.

 

제가 신문에 보니 중국에서 한 초등학생의 말 한마디에 10명이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자율학습을 마치고 교실에서 나오던 4, 5학년 학생들이 한 학생이 “귀신이다”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학생들이 놀라 아래층으로 급히 달려 내려오다 넘어지면서 10명이 사망했고 25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20세기 인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은 에디슨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저능아라고 퇴학을 당했습니다. 에디슨이 달걀을 품고 끙끙거리며 엉뚱한 일을 자꾸하자 담임선생님은 에디슨 어머니를 불러 말했습니다. “에디슨은 학교에서 엉뚱한 실험을 하고 엉뚱한 질문해서 수업 분위기도 해치고 또 너무나 멍청해서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에디슨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멍청한 아이가 아닙니다. 에디슨은 호기심이 매우 많은 아이입니다. 제가 집에서 가르치겠습니다.” 그리고 에디슨에게 말했습니다. “에디슨아! 너는 창조적 두뇌가 뛰어난 아이다. 너는 앞으로 훌륭한 발명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늘 격려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이 말에 힘과 용기를 얻은 에디슨은 연구에 몰두한 결과 위대한 발명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에디슨 어머니가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왜 엉뚱한 짓을 자꾸 해서 엄마 속을 이렇게 썩일 수가 있니. 너 같은 녀석은 꼴도 보기 싫다”고 하면서 에디슨을 혼냈다면 발명왕 에디슨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에디슨은 어머니의 격려와 자신의 열정으로 인해 위대한 발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언어는 자신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한 말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은 더욱 중요합니다. 늘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안된다. 나는 못한다. 나는 망했다. 나는 끝장이다."라는 부정적이고 원망적인 말을 늘 하다보면 우리의 삶은 부정적이 되고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자신있다. 해내고야 말겠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나는 앞으로 큰 인물이 될 사람이다"등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늘 사용하다 보면 우리의 인생이 긍정적이게 되고 성공과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말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잠언 16장 24절은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말 한마디가 행복과 불행의 씨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이제는 아브람과 같이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아브람은 양보의 미덕을 선택했습니다.

아브람은 양보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양보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나옵니다. 그는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고 말합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오늘날 싸움의 대부분은 조금 더 챙기려고 하는 이기심에서 나옵니다. 자리를 양보한다든지 나에게 큰 손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남에게 양보하기 쉽지만 정말 이해관계가 걸린 큰일들은 양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질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조카 롯과의 화평을 위해 양보하고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예수님은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 받으려면 화평해야 합니다. 어떻게 화평할 수 있습니까? 이기심을 버리고 양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반목하는 자에게 복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기심을 버리고 양보하고 화목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아브람이 화목을 택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고 양보하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15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넷째, 행복도 신앙도 선택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선택하고 불행을 멀리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 비록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선택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진정한 평안과 안식이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잘못된 선택한 사람은 아담과 하와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인류 불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한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고통 속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요 3:16)”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상에서 몸 찢고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청산해 주셨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e!) (고후 5:17)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아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지만 그 선택은 우리 인간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을 선택하고 하지 않는 것은 자유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팥죽 한 그릇과 장자의 명분 중 굶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자기에게 무슨 상관이냐며 팥죽 한 그릇을 선택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였습니다. 아브람의 조카 롯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악함을 알지 못하고 눈을 들어 보다가 요단 지역에서 소알까지 온 땅에 단지 물만 넉넉하다는 이유로 요단 지역을 잘못 선택하므로 불행한 일을 당하고 맙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으나 주님께서 "네 소유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다고 했습니다.(마 19:16~22, 눅 18:18~23) 이 부자 청년은 하나님과 재물 중에서 재물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 속에 사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 같지만 그리 오래 가지를 못합니다. 얼마 후에 그는 지옥의 인생이 되고 맙니다. 선택은 우리의 자유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은 선택에 승리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이 선택의 결과입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도 모두가 우리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일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잘 선택하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지만 잘못 선택하면 불행과 실패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선택은 마치 씨앗과 같습니다. 선택한다고 해서 당장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선택의 결과는 서서히 나타납니다.

 

이 세상에는 선한 것과 악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습니다.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결과는 영원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할 때 먼저 기도하면서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아브람처럼 화목을 선택하고, 좋은 언어를 선택하고, 양보를 택할 때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김인삼의 성공과 행복과 기쁨 http://cafe.daum.net/gooting

 

출처 : 김인삼의 행복과 기쁨
글쓴이 : 김인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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